소설리스트

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06화 (106/389)

◈106화 존재하는 (8)

나는 간신히 몸을 비틀어 베르세르크의 초대를 회피했다.

중요한 게 떠올랐다며 날 이끌고 자리를 피해 준 데브의 지원사격에 다시 한번 찬사를 보낼 따름이다. 걔도 그 자리에 가기 싫어서 그런 거겠지만, 어쨌든.

아, 누가 찾아오든 절대 들여보내지 말라던 부탁을 성실히 이행한 신전 사람들에게 역시 감사하다. 덕분에 신전에 콕 박혀서 베르세르크를 피할 수 있었다.

“시체에 돌팔매질이라니, 세상엔 죽음을 모욕하는 방식이 참 많습니다요.”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들은 악마에게 남을 판 자들이다. 죽음을 모욕당해도 싸다.”

“누가 뭐래요?”

시체에 돌팔매질을 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기 앞서, 다른 것부터 설명해 볼까.

파 에녹 사람들은 일단 하루간 추가침공의 기미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점쳐지는 즉시, 그들이 오랜 세월 세워 둔 매뉴얼을 따랐다.

침공을 경계하면서도 급한 대로 어설프게나마 땜질했던 성벽을 차례로 복구하고, 도심 속 건물도 중요한 것부터 재건을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신전은 곳곳에 껴 있던 배신자들의 존재를 정식으로 공표했다.

전투가 거의 끝났거니와 배신자들이 다 처리된 지금, 그들의 존재를 밝혀도 분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하게도, 처음엔 믿지 않던 사람이 많았다. 중상위급 투사는 둘째 치더라도, 인기로 열 손가락 안에 들던 투사가 무려 셋이나 연루된 까닭이다.

그러나 이 땅이 어딘가. 최전선이다.

증거까지 있는 마당에, 다른 곳도 아닌 최전선에서 적과 내통한 자를 끝까지 옹호할 리가 있나.

믿었던 만큼 분노는 배가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시체에 돌팔매질을 하는 것이다. 이미 죽은 놈들, 또 죽일 수는 없으니 시체라도 고이 보내 주지 않겠단 심보였다.

물론 현대인의 시선에는 굉장히 야만적인 행위였는데…… 세계관도, 인권의 발달 수준도 다르니 감내하는 수밖에.

거기에 저렇게 돌 맞는 건 그나마 나은 대우였다. 1인자로서 5년 넘게 정상에 군림했던 무왕의 대우는 더욱 심했다.

그 작자는 지금 오체분시 된 후, 남은 살덩이를 창에 꽂아 효수한 상태였다. 돌팔매질도 어김없이 당하고 있고.

“…칸칸은 어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광경에 참여하지 않되, 성에서 내려다보던 데브가 조용히 속삭였다. 둘이 친구였단 사실을 의식한 게 아닐까 싶다.

“가장 앞장서서 던지고 있는 걸 봤다만. 넌 못 봤나?”

“……?”

“……?”

그마저도 인퀴지터의 말에 경악하는 식으로 바로 변했지만.

본인이 인퀴지터보다 늦게 알았다는 것이 충격이었는지, 아니면 칸칸이 돌 던지고 있었다는 게 충격인 건진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가 아닐까? 나도 두 가지 지점 다 놀라우니까.

“성주도 목을 매달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매달면 인수인계는 어떻게 하려고. 악마가 쳐들어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애초에 목을 매달 일인지도 잘 모르겠는데. 성주가 악마와 내통한 건 아니잖아.”

“그렇지만 주민 일부가 죽었다.”

“무왕이 죽였지.”

그사이, 우리의 뒤에선 고위 인사들이 모여 성주의 범죄 행각을 두고 토론을 이어 나갔다.

대충 해당 교구의 주교와 성주를 대신해 전투를 지휘하던 지휘관들, 그밖의 뭐 고위급 인사들이었다. 아크메이지도 마탑의 대현자 자격으로 거기에 살포시 껴 있고.

“지위를 박탈해야 해.”

“그건 너무 성급한 발언이 아닌가? 당장 성주의 뒤를 이을 재목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지.”

“그럼 저걸 그대로 내버려 두자고? 최소한 대리자를 세우기라도 해야지.”

“허, 대리자로는 누굴 올릴 건데? 그걸 정하는 사이에 악마가 쳐들어오면?”

“악마가 현상 유지를 언급해 놓고도 쳐들어올까?”

아, 우리는…… 전투에서 너무 활약했거니와 각자 끌려올 만한 이유가 있어서 끌려왔다.

나는 대악마에 대해 증언하러, 데브는 자기가 죽인 놈들 확인하러, 인퀴지터는 용사라서. 대충 그런 이유들.

지금은 다 끝나서 뒤에 물러난 채 떠드는 것만 듣고 있다마는.

“다른 건 몰라도 악마를 믿는 것만큼은 안 됩니다.”

“아, 대현자님.”

그때 대부분 도시 사람들이 알아서 하도록 지켜보던 아크메이지가 슬쩍 발언했다.

“근시일 내에 악마가 쳐들어오지 않을 것 같단 의견은 저도 찬성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게 정말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결코 경계를 소홀히 해선 안 될 겁니다.”

아크메이지는 덩달아 악마의 의도도 의심해 봐야 한다는 말도 꺼냈다

“그 존재는 악마기사를 통해 ‘현상 유지’의 의지를 전달했지요. 그러나 타인에게만 이득인 제안을 건네는 사람은 없습니다. 악마라면 더 그렇지요.”

“하면?”

“여기서 봐야 할 건, 나태가 계약자가 아님에도 인간을 배신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그 술수는 신전의 시선을 피하기까지 했지요.”

“…같은 일이 반복돼도 눈치채기가 어렵다 이거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상 유지란 건 이 도시에 꼭 좋은 일이 아닙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 그 결과가 이번의 배신이다.

물론 이번 일로 물을 교체하긴 했지만…… 다음이 정말 없을까? 작금의 순간이 지나면 물은 또 고일 텐데.

“악마들은 불로의 존재. 그런 존재가 이 도시에 10년, 20년을 투자하는 건 그다지 긴 세월이 아니지요. 그러니 성주가 누가 되었든, 어떤 일을 벌이든 이 일에 대한 단속은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 악마와 전선을 맞대고 있는 한 영원히 말입니다.”

아크메이지가 꼬집은 건 그 지점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투사의 타락을 막기 위해 더한 감시가 진행되어야 할 거라며, 대악마의 간계를 두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다행히 듣는 이 중 아무도 그 말을 흘려듣는 자는 없었다.

“그럼 더욱 성주를 바꿔야 되는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투가 이제 끝났는데…….”

“최소한 안정은…….”

그렇다고 성주의 처벌 강도가 정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열받네요.”

거론되는 처벌의 면면을 살피던 데브가 불만을 토해 냈다.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처벌을 받는 것 자체에 안도하고 있지만 저것들이 정말 맞는 처벌이냐 물으면 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니까.

다만 한 명의 범죄자가 많은 사람을 구할 능력이 있을 때 그를 엄벌하는 게 옳은가, 혹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처벌을 유보하거나 양형하는 것이 옳은가. 그런 논제는 언제나 어려운 문제라.

“그는 죽어야 마땅해요.”

“그럼 죽여라.”

나는 벽에 기대선 채 조용히 뇌까렸다. 데브가 날 올려보았다. 인퀴지터 역시 그랬다.

“아, 악마기사. 그건…….”

“그리고 책임져라.”

“……!”

“네가 한 짓의 대가를.”

도적 직군의 갠스는 친구를 죽이고도 멀쩡히 잘 사는 귀족을 암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즉, 그들의 트리거는 심판받지 않은 악인.

그러니 데브가 성주를 죽이고 싶어 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 내내 도적 캐릭터는 약자들을 대표하는 사람이자 그들의 복수를 대행하는 사람으로 그려지니까.

“머리를 잃은 도시가 만약 무너지거든, 그리하여 최전선이 망가지거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네가 죽든 살든 네 몫임을 받아들이란 거다.”

그런데 내가 그 갠스에 공감하느냐면 사실 별로? 난 사적제재를 옹호하지 않는 사람이거든. 이해는 하지만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알아들었다면 검을 들어라. 검을 들고 너의 용기를 입증해라.”

그러나 말리지도 않을 거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말리겠나. 결국 가치관 차이인데.

거기에 컨셉 자체도 남이 복수를 하든 뭘 하든 신경을 안 써서 말이다. 데브가 인퀴지터와 멸망전을 벌이고 싶다면 눈물 나더라도 보내 줘야지.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다면, 넣어라.”

음, 그래도 개인적으로 네가 그러지 않기는 바란다. 고기만두야.

인퀴지터랑 멸망전 벌이거든 백이면 백, 네가 이 파티에서 빠질 텐데…… 그렇게 되면 내 컨셉 커버는 이제 누가 쳐 주겠어.

“…….”

나는 복잡해진 얼굴을 두고 토론의 장을 벗어났다. 장소가 성에 마련된지라 그곳을 나간다고 해서 갈 곳이 사라지진 않는다.

어차피 숙소는 신전에 있다.

바스락.

물론 숙소로 바로 가진 않는다, 핫하!

나는 수련장에 발을 내디뎠다. 투기장이 있는 만큼, 신전 방문객으로도 전사들이 많이 찾아와 본래 마련되어 있는 장소다.

“후.”

스킬을 너무 과하게 쓰면 터가 망가지니까 가볍게만 수련해야지.

이번에 보니까 적의 수가 너무 많이 늘면 마력창 쏘기가 너무 힘들더라. 타점도 살짝살짝 빗나가고.

적들이 매번 커다란 놈만 나오리란 법은 없으니 그것만 어떻게 익숙해지고 싶은데.

퍽.

나는 발로 돌멩이를 걷어차 올렸다.

허공으로 뜬 돌멩이가 마력창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균등하게 부서진 게 아니라 일부는 작고 일부는 크다. 마력창이 돌멩이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를 꿰뚫은 까닭이다.

동체 시력의 문제인가. 내 반사 신경은 이게 최선인가.

나는 눈썹을 살풋 찌푸리며 돌멩이 하나를 더 차올렸다. 아까보단 나은 것 같은데 만족스럽진 않았다.

“계속 빗나가는 건 제어가 풀리며 창 끄트머리가 흔들려서 그래요.”

그렇게 몇 시간 정도 더 시도해 보았을까.

어둠 속에서 누군가 툭 튀어나왔다. 나름 기척을 내 가면서 부드럽게 접근한 것이니 툭까진 아닐지도 모르고.

“마력은 넘쳐나는 것 같으니 할 말 없고, 제어력 부분만 신경 써 보는 건 어떨까요? 마력을 세밀히 다룰 줄 안다면 정확도뿐 아니라 소모량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네놈.”

아니, 신전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했을 텐데. 어떻게 들어왔지? 담 넘었나.

그보다, 살짝 빗나가는 이유가 그런 것 때문이었어? 애초에 발동한 스킬을 더 조절하는 게 가능하긴 하고? 출력 정도만 가능한 게 아니었나?

나는 새로 깨달은 사실에 놀라는 한편, 검을 잡으며 최대한 분위기를 잡았다.

슬슬 나도 내 컨셉의 성질머리에 회의감이 든다마는, 아니 사실 처음부터 들었었지만. 이노무 자존심은 조언을 듣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권유였어요. 너무 날 세우진 말아요.”

그보다 말투를 생각하면 베르세르크가 아닌 웨폰마스터 쪽이겠지?

외형상의 차이점이 없다 보니 말투와 표정으로 판단을 세워야 한다. 독보적으로 달라서 구분이 편하단 게 유일한 위안이다.

“동생에게 들었어요. 여정에 함께해 주길 바란다고.”

한데 아크메이지와는 언제 이야기를 마쳤대.

“목적은 악마 사냥이라던데. 맞나요?”

나는 이걸 대답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얼굴을 구겼다.

“그래.”

그러면서 손에는 마력창을 생성했다.

“당신도 그 여정의 일원이고 말이죠?”

“임시 동행이다.”

“그래요. 동행.”

그러니까, 이걸 바로 쏘아 보내지 말고 제어에 신경 쓰란 거지. 근데 제어를 어떻게 해?

출력이야 생수통으로 물 따르듯 세기를 조절하면 됐다. 그런데 이미 내 손을 떠난 놈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마력 컨트롤은 다 찍어서 그쪽 보정은 더 이상 못 받는데. 찍고 나서 체감도 잘 못했지만.

“외부로 마력을 표출할 때는 마력을 응집시키는 게 중요해요. 마력은 대기 중으로 흩어지는 성질이 있으니까.”

“…너.”

“참고로 당신에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복습하는 거지.”

…천산가? 베르세르크에게도 가야 했어야 할 사회성이 이쪽에 몰빵된 건가?

“마법사는 수식과 주문을 통해 수월하게 제어를 해내지만 우리 같은 전사들은 달라요. 오롯이 본능과 정신력으로만 해내야 하죠.”

본인이 복습하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 하겠는가.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나, 컨셉도 용인할 수밖에 없는 변명이다.

나는 그녀의 배려를 냉큼 받아들였다. 물론 겉으론 자존심 상한다는 듯 이는 박박 갈았다.

“이것에 편법은 없어요. 마력을 눈에 보일 수준으로 다루는 전사가 없는 이유기도 하죠. 마력이 보일 정도로 응집시킬 수준의 제어력도 드물고, 그만한 마력량을 보유한 사람도 드무니까요. 당신은 두 가지 다 충족한 것 같지만.”

한데 왜 마력 사용자가 눈에 잘 안 띄나 싶었더니만, 이런 이유에서였나. 마력이 보이는 게 오히려 특이한 거였군?

“그러나 편법이 없다고 해서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죠. 마법사는 외부의 한 점에서 마력을 쌓기 시작하는 반면, 전사들은 내부부터 마력을 쌓아 나가잖아요. 그러니 그것을 잘 고려해서…….”

고려해서?

“당신은 이 여정이 성공할 거라 생각해요?”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말을 중간에 끊는 거라는 거 아십니까! 흐아아악!!

그것도 이론을 넘어가 하필 제대로 된 방법이 나올 때 끊었어! 완전 노골적이잖아!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생성해 뒀던 창을 내보냈다. 그러곤 다음 창을 만들어 냈다.

끝까지 다 듣진 않았으나 판타지 작품 섭렵한 짬밥이 있지. 절박하게 힌트에만 매달리진 않을 거다.

“궁금해서 그래요. 제 동생을 맡겨도 될지 아닐지…… 알아야 하니까.”

아까 마법사들은 외부에서 마력을 쌓는댔지. 전사는 내부부터 마력을 쌓고. 외부와 내부의 차이점이 뭘까.

…음. 표면적?

“당신이 부정적이라면, 난 굳이 이 여정에 동참할 이유를 못 찾을 거예요.”

외부의 한 점에서 시작한다면 전방위로 마력을 쌓을 테지만 내부에서 시작한다면 살갗이나 병장기에 닿는 부분은 신경 안 쓰지 않을까? 아닌가?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에 신경이 가장 쓰이나?

아니면, 마법은 구를 부풀리는 느낌이고 이건 코팅하는 느낌으로 간다거나……?

이게 맞나?

“내 알 바, 아니라고 했다.”

아, 모르겠다. 역시 실전은 이론과 다르다니까.

나는 미련 없이 두 번째 마력창을 던져 보냈다. 표적 없이 날려 보낸 마력창은 아까보다 좀 더 먼 곳에 도달한 후 그대로 흩어져 버린다.

“왜 알 바 아니죠?”

“네놈과 네 동생이 이 여정에 들어오든 들어오지 않든, 이 여정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악마를 죽일 수 있다면 아무 상관 없으니까.”

그를 갈음하듯 웨폰마스터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아까와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다.

아마 살기등등한 내 표정 때문일 것 같은데…….

일단 난 만족스럽다. 저쪽이 파티에 영입되는 건 이제 내 손을 떠난 문제니 제치고, 컨셉은 잘 유지되어야 했다.

“그러니 꺼져라. 방해만 될 겁쟁이 따윈 필요 없으니.”

아, 야바드 지방의 사건 때문에 수그러들었던 성깔이 대악마 때문에 다시 부활한 걸로 할까? 해치웠나는 내가 아니라 대악마가 지르고 갔네.

* * *

유능한 노르다 전사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자리를 뜨는 이를 보았다. 아크메이지에게 대략적인 이야긴 전해 들었지만, 생각보다 더 드세다.

“좋은 노르다 전사는 성공과 실패를 점치는 대신 스스로를 믿으며 목적 달성을 위해 나아가지.”

그러나 나쁘지 않다. 객관적으로 좋은 성격은 아니나, 여정의 목표가 목표지 않은가. 이런 일엔 모난 구석 없되 나약한 사람보다, 둥글지 못하더라도 뚝심 있는 자가 낫다.

용사라 자신을 소개하며 가볍게 말을 섞는 동안, 우직함을 선명히 내보인 아이가 그랬듯이.

“아까도 일행은 합격점이라 생각했지만.”

성격만 그냥 모난가? 그 성격들을 이해할 만한 무력도 다들 갖추고 있다. 지금 길 가는 사내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나마 약자에 속했던 도적마저 ‘사냥’을 할 줄 알 정도니 분명하다. 이 일행의 면면들은 무력적인 부분에서 동료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흠.”

이뿐만 아니다. 아크메이지가 내보인 현명함과 도적 친구가 몇 마디 말로 보인 재치를 생각하면 베르세르크의 성격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말이 안 통하는, 소위 꼴통을 제어하는 데 익숙해 보였다.

하물며 여정의 목적도 나름 마음에 들었다. 악마에겐 큰 유감이 없으나, 베르세르크에겐 한계에 부딪칠 수 있는 싸움이 필요했던 차다.

그런 점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기 좋은 여정은, 목적 없이 강자만 찾아 헤메는 세월보단 나을 것이다. 겸사겸사 세계를 구한다는 점에서 명예도 챙길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더더욱 포기 못 하겠는데.”

그러나 그녀를 가장 결정적으로 자극한 건…… 앞서 말한 것들이 아니다. 아니, 앞서 말했던 것에 살짝 껴 있던 것이다.

“…베르세르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을 놓칠 순 없지.”

기실 이 일행의 모두가 약했어도, 여정에 의미가 없었더래도 악마기사가 있는 한 그녀는 동행을 숙고했을 것이다.

아무렴, 베르세르크에게 패배의 굴욕을 선사한 이는 저 사내가 처음이었다.

“하.”

그녀는 약간의 힌트를 주자마자 단번에 개선하던 악마기사를 곱씹었다.

마력도 넘쳐날 정도인데 그런 재능마저 가진 이상, 베르세르크는 결코 그 기사를 이길 수 없다. 그 기사가 정규교육을 받다 말고 독학하며 나쁜 버릇과 이론 부족이라는 벽을 맞닥뜨린 상태라도 그렇다.

“천재 곁이라면 억지도 그만 부리겠지.”

그래, 베르세르크가 지금처럼 본능만 믿고 움직이면, 계속해서 억지를 부린다면 그녀는 절대 저 기사를 못 이길 거다.

“…이젠, 정말 그만할 때가 됐어.”

어리광도 오래가면 꼴불견에 불과하다. 하니 정신 차리게 하려면 극약 처방이라도 하는 수밖에.

“이야기는 다 끝났나?”

마침 베르세르크를 통해서, 그리고 대면한 그녀에게 제안을 건넸던 현자가 다가왔다.

이미 인지한 기척이기에 노르다 전사는 타이밍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예.”

결정이라면 사실 제의를 받았던 시점에 내렸다. 함에도 대답을 미룬 건 저 사내의 성정을 자세히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뿐이니.

“그러면 제안에 대한 답은?”

저 사내가 위기를 두고 도망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걸 확신한 지금, 답을 미룰 필요는 더 이상 없다.

베르세르크야 피와 투쟁이 있는 이상 이 여정을 반대할 리도 없고.

“여러분이 괜찮다면, 함께하고 싶네요.”

하여, 그녀는 기꺼이 이 여정에 합류하기로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