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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05화 (105/389)

◈105화 존재하는 (7)

“기어코 도시를 다 정리했나.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은 안 했네만…… 그래도 고생 많았네. 덕분에 희생이 많이 줄겠어.”

우리 둘은 꼬박 밤을 새워 가며 도심 속 악마를 사냥하고 다녔다.

뒤늦게 합류한 구조대도 악마를 좀 잡았겠으나 우리 둘이 잡은 양에 비할 바는 못 될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길엔 악마들의 시산혈해가 쌓여 버렸으니까.

“대악마는 안 나온 듯하고. 다행일세. 이쪽도 워낙 잠잠하여 혹 후방에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네.”

이에 대한 원인이라면 별거 없다.

내 컨셉이란 게, 승부욕까진 아니더라도 자존심 하난 하늘에 닿은 컨셉이지 않은가.

거기에 호전적이고 불굴의 의지마저 가지고 있는 베르세르크가 더해지면 답은 뻔하다.

우리 둘은 누가 먼저 악마를 잡느냐, 더 많이 잡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하며 경쟁적으로 달렸다. 그러다 보니 쉬지도 못한 채 밤을 지새운 거고.

“병력 상황을 말하자면 중상자를 제외한 이들은 대부분 병석을 털고 일어난 상황일세. 이제 부서진 성벽과 건물을 보수할 차례인데…… 자네들 덕분에 악마들 수색하는 작업은 필요 없겠군.”

힘들지 않았느냐면 그건 거짓말일 테다. 그러나 우리의 고생으로 모두의 수고가 줄었다면 그걸로 만족이다.

솔직히 힘든 것도 피로감보단 베르세르크의 광소나 우렁찬 부름─으하핫, 덤벼라!─를 듣느라 귀가 혹사당한 게 더 크고.

“수고했네.”

하여튼 나는 아크메이지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팩 돌렸다. 아크메이지 좋으라고 그 고생한 거 아니니 감사의 말은 사절이다. 대충 그런 의미다.

그걸 본 아크메이지는 흐뭇하게 웃는 대신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과 반응이 살짝 달라진 듯해 새롭다. 그 정도로 많이 걱정했나?

“아, 시신들이 온다.”

그때 보수를 하러 나갔던 이들이 수레에 시신을 가득 짊어지고 돌아왔다. 혹시나 있을 창자벌레를 대비해 두꺼운 신발을 신은 그들은 전부 지원 나온 민간인들이다.

“엉망진창이군…….”

“후방은 이게 문제야. 멀쩡히 죽어 오는 놈들이 없다니까.”

시신 대부분은 악마에게 당해 사지가 찢기거나 뭉개진 형상이었다. 창자벌레에게 뜯어먹히거나 모래범에게 깔려 죽은 이들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마기 침식으로 악마가 되어 죽은 이들 역시…… 사지가 멀쩡해도 악마화가 진행된 시점에서 썩 보기 좋은 편은 아닌지라.

“얼굴이 다 부서졌잖아. 이래서야 누구였는지 알 수도 없어…….”

…참고로 저건 내 잘못 아니다. 남 탓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나는 진짜 곱게 죽였어!

“무왕이다!”

“무왕이 왜? 죽었어 설마?!”

“무왕이 죽었어?!”

그때 수레 중 하나로부터 목이 반쯤 베인 시체가 내려졌다. 희고 검은 큐어티족. 나는 모르겠는데 주변인들 반응으론 쟤가 무왕인갑다.

“들었는지 모르겠네만, 무왕도 악마와 거래한 것 같네. 그가 기묘한 힘을 썼다는 증언도 확보했으니만큼 아무도 이 일을 덮지 못하겠지.”

그렇게 내려지는 시체를 두고 아크메이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관련 사항을 못 들은 걸 알고 설명해 주는 듯하다.

그보다 음. 본래라면 무왕의 흠을 찾아 그의 커리어를 박살 내고 처벌을 받게 할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세상사가 다 그렇지 뭐.

그나마 영웅으로 죽지 않아서 망정이다. 지금까지 보내 준 범죄자가 몇인데 새삼 무왕 심판받는 걸 챙기나 싶다마는, 그렇다고 다 안 받는 것보단 낫잖아.

“악마가 연계된 이상 성주도 조사를 피할 수 없을 걸세. 몰랐노라 발뺌한다고 될 일은 아니니까. 그 과정에서 살인 은닉도 밝혀질 것 같군.”

별개로 이걸 왜 저한테 일일이 말하시는지. 저는 이런 거 별로 관심 없는데.

“알려지는 즉시 가산 절반을 덜어 낼 벌금형은 물론이고, 최대 지위 박탈까지 이야기 나올 것 같네. 다른 지방이었다면 깊게 볼 것도 없이 파면이겠지만, 이 도시는 사정이 좀 다르니.”

권선징악이야 인간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지마는 컨셉에겐 알 바 아닙니다. 자기 일 아니니까.

“그걸로 끝입니까요?”

아, 그냥 나한테 한 말이 아니구나?

난 불쑥 끼어든 데브를 두고 재빨리 안색을 살폈다. 내가 가고 나서 약 먹었는지 침식의 전조는 사라졌다. 팔은 여전히 부목을 대고 있지만 그건 인퀴지터가 여유 나면 치료해 줄 테니까.

“사람이 죽은 걸 덮었는데, 파면으로 끝난다고요?”

“범인 은닉죄는 형벌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닐세. 알잖나.”

“살인죄를 은닉해 준 사람이 그것만 했을 리 없잖습니까! 더한 유착도 했을 텐데 그것들도 조사하면……!”

“나올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건 우리의 관할도 아닐뿐더러 우리에겐 그럴 여유도 없네. 자네도 잘 알잖나.”

“……!”

아크메이지는 지팡이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의 일은 악마숭배자를 막고 악마들을 처단하는 것이지, 부정부패를 청산하는 게 아닐세. 그건 남는 사람들의 몫이야.”

“…그렇지만.”

“그래, 그래. 분하겠지. 이해하네. 암, 범죄를 두고 넘어가야 하는 상황만큼 화나는 게 없다는 걸 내가 왜 모르겠는가. 하나 우리가 모든 도시를, 모든 사람들을 세세하게 챙겨 줄 수는 없네.”

“…….”

“한때 자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나누어 돕는 게 편하다고. 인정하기 싫겠지만, 받아들이게. 이 이상의 일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에 속하네.”

“…알겠습니다.”

데브는 그다지 납득한 얼굴은 아니었다. 어지간히 성주가 마음에 안 든 모양인데, 도적 직군의 갠스를 아는 입장에선 대충 어느 포인트를 건드린 건지 알 것 같다.

아크메이지의 말도 틀린 건 아니라서 차마 편들 수 없을 뿐이지.

“이해해 줘서 고맙네.”

“…필요 없습니다, 그런 말.”

“그래, 그래도 고맙네.”

그래도 아크메이지가 말을 잘해서 다행이다. 우리 파티에 아크메이지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듯.

“그보다 참 아쉽구만. 인재를 얻고자 기껏 온 도시에서 사달만 이리 나고. 인재라 생각했던 자들은 죄 변절자니. 그렇다고 수준 미달인 사람을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화제를 돌리려는 듯, 아크메이지가 다른 이야길 꺼냈다. 이 도시에 왔던 목적을 고려하면 한 번쯤 나왔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베르세르크란 존재를 아는 나로선 다소 떨떠름하지만.

아크메이지 눈엔 베르세르크도 안 차나? 합류를 반기지 않는 것과 별개로 베르세르크 실력이 수준 미달일 리 없는데. 성격 때문에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 건가?

“그, 음. 괜찮은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오, 그런가?”

그때 데브가 조심스레 발언했다. 표정이 도드라지게 바뀌는 편이 아닌데도 그의 복잡한 심상이 잘 보였다.

“그, 모래범을 단신으로 잡기는 했단 말입니다? 그걸 보면 실력은 확실히 괜찮은 것 같은데…….”

“오오. 모래범을 단신으로 잡는 실력자라니. 자네가 언급한 걸 보면 변절의 문제도 없을 테니 걱정 없을 테고. 한데 다른 문제가 있나?”

“그으…….”

그런데 저렇게 망설이는 이유가 어째 짐작이 간다면 그건 너무 편협한 생각일까.

“음, 아닙니다. 이건 확실해지면 말씀드리는 걸로.”

“자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리하게. 다만 너무 오래 걸리거든 차라리 자리를 주선해 주게. 추가 침공을 대비해 좀 더 경과를 지켜볼 참이나…… 솔직히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이니.”

“넵.”

다행히 데브의 입에선 그 이름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 이름이 나왔을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아 참, 휴식 하니 악마기사, 자네도 슬슬 쉬어야겠군. 내 생각이 짧았네. 이만 가 보게나. 추가 침공이 있다면 있는 대로 참전할 체력이 있어야 하고, 없다면 없는 대로 도시를 떠나야 하니.”

나는 내 체력을 따라온 것도 모자라 내게 밀리지 않던 베르세르크를 잠깐 머릿속에 담았다.

“참, 봉인구에 관해선 미리 전해 두었네. 도시를 떠나기 전에 예비품을 받을 수 있을 테니 그 부분은 너무 걱정 말게.”

내기 자체야 결과적으로는 내가 근소하게 이기긴 했으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베르세르크를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다.

본인이 졌다는 사실을 두고 다시 결착을 내자며 도전할 것 같았다.

“여기 있었군! 그새 어디로 사라졌나 했다!”

“……!”

“자넨…….”

“전우여, 가자! 싸움의 끝에는 응당 술과 고기가 있어야지!”

그러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오는 법. 만나기 싫다 생각한 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베르세르크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었다.

옷에 자동 세탁 기능이 있어 비교적 깨끗한 편인 나와 다르게 그녀는 여전히 악마들의 체액에 절여져 있다.

“이 베르세르크가 자리를 잡아 두었다! 자, 가자!”

나는 다가오는 베르세르크를 두고 질색하는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데브도 영 껄쩍지근한 얼굴이 반기는 것 같진 않다.

“꺼져라.”

“아하하.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군! 사양할 필요 없다!”

“…….”

“우와, 벽창호보다 더한 철벽…….”

“앗, 어린 사냥꾼도 있었군. 너도 같이 가자! 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 저요??”

아, 역시 이런 점 때문에 같은 파티 되기 싫다니까. 컨셉을 내던지면 그럭저럭 잘 지낼 자신 있지만, 컨셉 자체는 이런 과텐션이랑 극상성이란 말이지.

나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베르세르크를 두고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녀는 와하하 웃으며 가슴을 탕탕 두드리고 있다.

“혹시 맛이 없을까 걱정하는가?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칸칸이 마을 최고의 요리사를 알려 주었으니까! 그에게 요리를 부탁했으니 분명 맛있는 음식이 나올 거다.”

와중에 이 상황에서 영업하는 식당이 있나 싶더니만, 그냥 요리사를 통째로 고용한 건가. 화끈하네.

“…꺼지라고 했다.”

어쨌거나 나는 저 자리에 함께할 생각이 없다. 컨셉이든 뭐든.

하여 마지막 경고라는 느낌으로 좀더 살벌하게 말해 보았다.

“음. 아! 부담스러운 거였나?”

통하지 않았다.

“그런 거라면 거절할 필요 없다. 등을 맞댄 채 간밤을 보낸 사이가 아닌가! 노르다 전사는 10분을 함께 싸운 자도 손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하물며 작소를 함께 한 전우여서야. 부담 가질 필요는 조금도 없다! 어린 사냥꾼도 마찬가지다!”

“아니, 전 별로…….”

“가자!”

“말 좀 들으십쇼!”

아니야, 그거 아니라고.

날 이긴 사람은 처음이라며 도전장을 또 내밀지 않은 건 분명 좋은 일인데, 그렇다고 이런 초청을 바란 적은 없어……!

“잠깐, 잠깐.”

그때 우리 사이를 지켜보던 아크메이지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눈은 어쩐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지난밤, 자네 둘이 같이 싸웠나? 그러니까 도시에 남은 악마 처리하러 말일세.”

“응? 그렇다! 이 베르세르크와 어깨를 맞출 수 있는 전사는 아주 오랜만이었지! 아, 어린 사냥꾼도 좋았다. 그런 노력한 사냥 기술은 내 고향에서도 보기 드물었어.”

…어쩐지 불길한데.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뤄 두고, 어깨를 맞췄단 건 밤새 쉬지 않고 악마기사와 함께 합을 맞췄단 소리로 이해해도 되겠나?”

잠, 잠시만요. 아크메이지님 스탑. 스탑!

“그렇다!”

흐아아아악!!

“그렇단 말이지. 오오, 그래. 그렇군.”

나는 인재를 찾았다는 양 빛나는 대현자의 눈동자를 두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왜 베르세르크를 헤아리지 않나 했더니 그냥 실력을 몰라서 그런 거였나……!

“자네 일행이 더 있나?”

“일행? 언니와 함께 다니고 있다.”

“그녀도 강한가?”

“으하하! 아주 강하지! 그렇지만 부끄럼쟁이라 평소엔 얼굴을 안 보인다. 그녀를 보긴 힘들 거다.”

“호오. 그렇군. 하면 여행에 목적은 달리 있나?”

“딱히 없다! 강자와의 투쟁이 존재한다면 그곳이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심지어 저 대화, 아무리 봐도 영입을 위한 호구 조사잖아. 포석이잖아!

끝까지 들어올 기미가 없길래 안도했는데 이렇게 뒤통수가……!

“저, 법사 나리.”

그때 다소 거무죽죽한 얼굴의 데브가 아크메이지의 팔뚝을 붙잡았다. 말리는 건가? 반대해 주는 건가?! 잠시 기대가 내 심장을 붙들었다.

“제가 말했던 사람이 저 양반이기는 한데…… 이걸 고려하셔야 할 겁니다요.”

“흠.”

귀가 좋은 인간들을 의식한 건지, 데브는 귀엣말에 더해, 팔뚝에 글자를 적는 걸로 의사를 추가로 전했다. 워낙 작게 손가락을 까닥까닥거려서 나조차 무슨 문장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이 부분은 좀더 고민해 봐야겠군.”

“……?”

다만 그게 아크메이지의 마음을 완전히 돌린 것 같지는 않은지라.

“자네, 이 도시는 언제 떠날 생각인가? 이 늙은이가 자네에게 하고픈 말이 좀 생겨서 묻는 걸세.”

“떠나는 건 글쎄. 아직까진 떠날 생각 없다. 다만 나와 대화를? 무슨 용건이지?”

“오, 자네에게 영 나쁜 이야긴 아닐걸세. 하면 내일이나 모레쯤 이야기 나눌 수 있겠나?”

“흠. 내일이나 모레? 그 정도라면 괜찮다. 그러나 그 이상 걸린다면 나는 먼저 가 버릴 수도 있다. 난 싸움이 끝난 도시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걱정 말게.”

…그럴 줄 알았어. 베르세르크가 등장한 시점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일 줄 알았다고.

어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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