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존재하는 (6)
“난, 나는……!”
무왕의 주변에 생겨났던 원시적인 형태의 투기장이 흔들렸다.
그것의 원리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무왕에게 있어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적에게 좋지 않다는 건 그에게 있어 기회란 소리고.
“난 패배자가 아니야!”
무왕이 칸칸을 내던지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칸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건 칸칸이 이때까지 시간을 끌며 벌어 준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전사도 아니게 된 패배자가 말이 많군!”
하여 데스브링거는 베르세르크─아마도─의 비호 아래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악마뿐 아니라 무왕마저도 그녀에게 모든 주목을 가하고 있어, 그의 움직임을 알아채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난! 아니라고─!”
“하, 베르세르크는 약한 자를 상대하지 않는다!”
베르세르크가 코웃음을 치며 무왕을 무시했다. 자칫하면 그에게로 시선이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진심인지, 그저 어그로인지 구분은 안 될지언정 그녀의 대응은 훌륭한 효과를 보였다.
“어딜 가는 거냐! 당장 이리로 와라!”
그녀가 무왕 따윈 안중에 없다는 양 모래범에게로 향하는 순간, 무왕이 길길이 날뛴 것이다.
“나를 상대해, 나를 상대하라고!”
“거기, 비켜! 그 악마는 내 것이다!”
완벽한 짝사랑이군. 데스브링거는 호흡을 고르고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며 무왕을 살폈다.
피부는 불그스름하니 달아올랐지만 입은 조개처럼 다물렸고, 사지는 파르르 떨리기만 할 뿐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분노와 질투 아래에는 내재된 공포와 해묵은 패배 의식이 존재한단 증거다.
“베르세르크!!!”
계기는 글쎄. 알아야 할까? 소의 머리는 못 되고, 꼬리는 되기 싫어서 닭의 주둥이가 되려는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는데.
하물며 무왕은 계구가 되는데도 힘이 부쳐 편법을 써야만 했다. 편법 하나 없이 소의 머리로서 당당히 서 있는 누군가와 다르게.
쾅!
그사이 베르세르크가 모래범과 격돌했다. 할버드로 앞다리를 찢고 턱을 박살 내는 모습은 가히 초인의 대열에 그녀를 집어넣어도 손색이 없다.
“……!!”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더욱 자극받을 수밖에 없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거늘, 함에도 제 분수를 납득할 수 없어서 감정에 먹히고 마는 거다.
스르륵.
그리고 감정에 눈이 가려진 순간, 무왕은 더 이상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아무렴, 밥상이 다 차려졌는데 이 기회를 잡지 못하면 데스브링거란 이름이 울지 않겠는가.
스으.
관심의 뒤편에서, 그는 드디어 무왕의 뒤편에 섰다.
상공의 악마가 그를 감지하지 못하게 바짝 낮춘 몸은 마치 그림자와 같고, 창자벌레가 눈치 못 채도록 사지말단의 움직임마저 조절한 신체는 극도록 절제되어 있다.
얕고 길게 내쉬는 숨은 이제 열기조차 머금지 않고 있다.
“네가, 네가 어떻게 나를─!”
그때 무왕이 분을 못 참고 움직였다. 그가 제일 바라던 순간이었다.
데스브링거의 발소리가 무왕이 내는 소란에 가려진 채 앞으로 나아갔다.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는 이것을 제법 많이 해 보았고, 결정적으로 악마기사를 제압하던 때도 했었다.
그러니 그때에 비하면 무왕 따윈 우스울 수밖에.
“베르세르크!”
쾅!
모래범이 기어코 대지에 몸을 뉘었다. 그 순간에도 차마 베르세르크에게 도전하지 못한 자는 몇 걸음 앞에서 소리만 바락바락 지르고 있다.
“난, 나는……!”
그런 목에 빛 한 점 흐르지 않은 칼날이 걸렸다.
“겁쟁이 패배자지.”
“……!”
오금을 밟고 오른 순간 무왕이 몸을 틀기야 했다. 그러나 늦었다. 회복을 상정하지 못한 대가로 첫 번째 기회를 날려 먹은 암살자는 두 번째에 제 목숨을 내걸었다.
회피란 길을 제거하는 대신 상대를 반드시 죽일 수 있는 길을 고른 것이다. 독이란 기교조차 부리지 않은 채, 저 칼날이 적의 목을 썰 수 있을 것이란 믿음만 가진 채로.
“컥!”
그리고 그 믿음은 보답받았다. 칼을 쥐고 있던 팔이 붙잡혀, 저편으로 내동댕이쳐지긴 했으나 무왕은 목으로부터 피를 분수처럼 쏟고 있었다.
저렇게 되면 어떤 수를 쓴대도 살아날 수 없다.
“영원히.”
데스브링거가 이겼다.
쨍그랑. 사방에 퍼져 있던 거짓 환영이 전부 깨져 버렸다.
“제기랄, 졸라 아프네…….”
그는 건물 파편에 꽂힌 몸을 바르작거렸다.
파편화 된 바위 더미에 던져진지라 등짝이고 뭐고 욱신거리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뒤통수가 박살 나지 않은 게 다행일 지경이다.
“으윽.”
뭐, 붙잡혔던 팔은 부러진 듯하지만.
데스브링거는 부러진 팔이 놓친 검을 쥐고자 그나마 멀쩡한 손을 움직였다.
콱!
다리에서 맹렬한 고통이 올라왔다.
“개같은……!”
그래, 악마들한테 안 당하고 끝나나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물린 게 운이 좋았던 거지.
파삭, 파삭.
다만 가장 큰 고난을 넘은 직후 악마 밥이 되는 건 역시 억울하다.
그는 제 주변으로 올라오는 창자벌레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검을 휘둘러 죽이고 싶어도 팔에 이미 한 마리가 붙었다.
마비독으로 인해 팔을 제대로 가눌 수 없다.
“시이발…….”
혀라도 자유로워서 다행인가? 아니, 혀도 슬슬 굳는 것 같은데.
그는 그를 뜯어먹으려 모여드는 악마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뭐야, 벌써 죽었나?”
콱!
그의 다리를 꽉 물고 있던 악마로부터 체액 튀기는 게 느껴졌다. 팔도, 몰려오던 것들도 말이다.
“아…… 직.”
그는 간신히 안구를 움직였다. 모래범의 체액으로 온몸을 적신 이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모래범의 사체가 태산처럼 굳건히 서 있다.
그 잠깐 사이에 저 강대한 악마를 찢어 죽이고 온 거다.
“살, 아 있…….”
그에 때에 맞지 않는 웃음이 흘러나오려 했을까. 호박색 눈동자가 빙글 휘어졌다.
“하! 그래, 그래야지! 패배자를 무릎 꿇린 자가 이리 허망히 가서야 쓰나! 자, 살아 있다면 어서 일어나라!”
미친 인간인가. 창자벌레에게 물리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나 베르세르크는 상식이 없었다. 그녀는 그를 냅다 잡고 끌어올렸다.
뻣뻣이 굳은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졌으나 베르세르크의 힘은 그의 뒷덜미를 잡고 드는 게 가능했다.
“그 정도 마비독은 기백으로 이겨 낼 수 있지 않나?”
“…….”
본인이 인간을 초월했다고 헛소리 한번 기깔 나게 지껄이는 양반이었다. 악마기사는 배려할 마음이 없을 뿐 이런 식의 막무가내는 아니었는데.
“칸…… 칸은…….”
그래도 그를 살려 준 사람이다. 데스브링거는 은혜로 하여금 그 무식함을 덮어 두었다. 시급한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살아, 있다.”
다행히 저편에서 칸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죽어 가는 형상으로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있긴 했지만, 목숨이라도 붙어 있는 게 어딘가.
승리도 살아 있어야 누릴 수 있는 법이다.
“…가, 죠. 후…… 방…… 으로.”
그리고 겨우 붙은 목숨을 제대로 붙이려면 치료사가 있는 데로 가야 한다.
그들은 산 자들을 수습해 서둘러 약속된 위치로 물러났다.
* * *
알고 보니 인퀴지터 쪽에서도 습격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2번이나.
처음엔 데브가 눈치채고 도우러 왔고, 두 번짼 김치만두가 혼자 어떻게 해 본 모양인데.
피해는 없었지만 날 도우려 올 여력이 없을 만했다. 애초에 내가 위에서 싸운다는 것 자체를 몰랐기도 했고.
“제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
“조심하십시오. 신성력을 과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지금은 쉬셔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성벽 전체에 축복을 가하느라 애가 홀쭉이가 됐다. 저걸 보고 뭐라 하는 게 나쁜 놈이지.
나는 그냥 인퀴지터의 안위를 확인한 후 아래로 내려갔다. 아크메이지에게 전할 말이 있던 까닭이다.
“마침 잘 왔네. 특별한 일은 없었나? 여력은 있고? 한데 왜 혼자 왔나? 혹시 다치기라도 한…….”
“대악마가 왔다.”
“……!”
가던 길에 본 걸로 판단하건대, 천만다행히도 이쪽엔 큰일이 없던 것 같다. 침입하려던 자가 없지는 않았는데 결계에 튀겨졌다더라고.
마법사들이 있던 곳 복도에 까맣게 구워진 시체를 봤으니 확신할 수 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비록 이쪽도 성벽에 대악마가 강림했다는 건 모르긴 매한가지였지만.
“그게 무슨…… 일단 알았네. 대악마가 멀쩡히 돌아갔다니, 다시 공격이 돌아올지도 모르겠군. 자네는 그냥 이곳에, 아니 신전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서─.”
“전했으니 이만 가겠다.”
“잠깐, 어딜 가려는 건가? 혹 지원이라도 갈 생각이라면 그만두게. 대악마가 어디에 숨어 있을 줄 알고 그러나. 한번 숨어들었던 놈이 두 번이라고 못 숨어들 리 없네. 차라리 이곳에 남아 있는 게 덜 위험…….”
“위험?”
나는 피해가 생각보다 적었다고 떠들던 일선의 병사들과 지휘관을 떠올리고, 위에서 봤을 때 아주 개판이나 다름없던 도심을 생각했다.
현상 유지가 좋다며 지금 그대로만 가자고 떠들던 악마도.
“그것은 기만과 거짓으로 돌돌 뭉친 한낱 가루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것의 손길은 내게 닿지 않아.”
“…그건 자네의 자존심에서 비롯된 판단인가?”
“…마력으로 몇 번이고 공격을 가했지만 그것 역시 타격을 받지 않았다. 마치 환영처럼.”
현상 유지가 좋다는 건, 글쎄. 관계자도 당사자도 아니니만큼 뭐라 판단 내리진 않겠다. 그러나 이번 싸움으로 말미암아 사상자가 나왔다는 건 알고 있다.
평소보다 피해가 적은 편이든 뭐든 간에, 일단 다치고 죽은 사람들이 나왔다고.
하면 내가 손 거들어 줄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이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아직 악마들 몇 마리가 날아다니는데.
“놈은 그것을 두고 몽중몽이라 부름과 동시에 제물이 허용하는 몽중몽은 한계에 달했다고 했다. 악마가 하는 말은 믿을 가치가 없다지만, 그것이 완전한 거짓도 아니겠지.”
“…자네 말대로 환영을 주로 다루는 악마라면, 그리고 자네의 공격이 통하지 않되 그쪽 역시 타격을 줄 수 없다면 굳이 자네에게 제물을 더 소모하지 않을 테고 말일세.”
더불어 대악마는 내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크메이지 말마따나 기력만 소모되고 서로에게 피해를 못 주는데 또 싸우려 들 리 있겠냐고.
이 이상 무언갈 할 능력도 없을 거다. 악마가 한 말을 믿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런 수단이 있었으면 다음 기회를 노릴 게 아니라 처음 마주했을 때 썼을 거라 생각하니까.
“하지만 그건 긍정적인 견해에 불과할 수도 있네. 만약 악마가…….”
“가능성 따위로 날 붙잡을 수 있다 생각하지 마라.”
나는 아크메이지의 말을 끊었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너무 과하다 싶었던 탓이다. 확률 놀음을 할 거였다면 애초에 이 땅에 와선 안 됐던 게 맞다.
“…놈은 현상 유지를 바란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게 진실일 리는 없지. 관련해서도 경계를 갖춰야 할 거다.”
“…그런가. 알았네. 추가 침입을 경계하도록 하지.”
내가 의견을 확실히 하니 결국 아크메이지도 납득해 주었다. 그렇다고 쉽게 보내 준 건 또 아니지만 말이다.
특히 봉인구가 박살 났다고 말했을 땐 다시 반대하려 들더라. 대악마에 대한 정보 몇 개 더 넘기고 고집 좀 부리는 식으로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쓰지 않았다면 끝까지 붙잡았을 거다.
그렇게 해도 봉인구 끼고 가 달라며 신신당부 받는 것만은 피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봉인구 다시 끼는 작업을 요구받았을지언정 그건 어차피 했어야 할 일. 그걸 대가로 허락받았다 생각하니 나쁜 교환비는 아니었다.
이제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다.
* * *
“어, 어떻게 거기서……?”
해서 왔습니다, 후방.
도심을 가로질러서.
“병동으로 꺼져라.”
나는 도시를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동안 주워 버린 이들을 서둘러 병동으로 내쫓았다.
“암녹색 머리의 큐어티나 붉은갈기를 본 적 있나.”
이후 두 놈의 소식을 찾았다. 데브가 배신자들을 찾아 성벽을 나갔다는 걸─칸칸까지 더해서─들은 까닭이다.
아마 방어선에 있던 배신자를 찾으러 간 것일 텐데, 도심 내부 방어선이 무너진 지금 건물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기 있을 확률이 높다.
다른 건 몰라도 생존 여부는 들어야겠다.
“아, 그분들이라면 아까 병동으로 가는 걸 봤습니다.”
근데, 병동? 물론 악마가 마구 쏘다니던 도시로 갔다니 다칠 만도 하지만…….
“부상은 심각한가.”
“그, 좀 많이…….”
치료를 돕겠다 나선 민간인들이 기억할 정도면 얼마나 크게 다친 거야?
나는 다급히 환자 수용소로 걸음했다. 부상자가 너무 많아서 찾기가 좀 힘들었으나, 데브가 먼저 나를 발견한 덕에 너무 헤매지만도 않았다.
“아…… 나리, 역시 무사하셨군요.”
그보다 데브 팔 왜 저래. 왜 부목 대고 있어? 다리엔 왜 피 묻은 붕대가 있고? 다쳤어도 적당히 긁힌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잠깐, 얼굴에 그거 뭐야. 마기 침식이야?! 악마한테 물렸어 너?!!?
“검은 안개가 생긴 걸 보고 걱정 좀 했는데, 크게 다친 데 없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요.”
난 헤헤 웃는 데브를 두고 옆자리를 살폈다. 데브 바로 옆에는 온몸에 붕대를 칭칭 휘감다 못해, 팔 한쪽이 허전한 칸칸이 있었다.
나는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칸칸이 저 모양이 되는 동안 데브라고 안전했을 린 없다. 그래서 팔이 아작 난 것일 테고.
그렇다면 내가 성벽 위에서 듀크한테 놀아나는 동안 고기만두는 죽을 뻔했다 이건가?
정말로?
“그, 나리.”
물론 스토리가 아니고서야 동료를 죽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상황에서 움직이지 못한 것 역시 내 탓은 아닐 테고 말이다.
아무렴, 공격이 안 통한다고 보스몹 두고 다른 데 가는 사람이 어딨어. 언제 페이즈가 바뀔지 모르고 자리를 뜨려 한 순간 공격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는데.
그런데.
“화나셨……?”
그래도 마음이 쓰였다.
얘네들이, 특히 상대적 약자 포지션인 데브가 다치고 피 보는 건 앞서 본 적이 없기에 더 그랬다. 친하진 않다지만 칸칸도 팔이 잘려 영구적인 장애를 얻어 버렸고.
“나리?”
하다못해 인퀴지터도 신성력 과사용으로 고생은 할지언정 부러지거나 한 적은 없던 걸로 기억하건만.
지난 몇 달간 함께하며 정든 애를 감히 잡몹 따위가……!
“어, 아! 혹시 마기 침식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요. 약은 충분한데 상황이 급해서 지급이 좀 늦어지는 거라…….”
이 꼬맹아, 내가 그걸 걱정하는 것 같아? 난 그냥 네가 어디 가서 쥐어 터진 게 짜증 나는 거라고.
펄럭.
“어, 어디 가십니까?”
그렇지만 내 컨셉은 이런 마음을 티 내선 안 되니, 나는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오히려 앞으로 거리를 더 둬야겠단 생각도 좀 했다. 암, 정 주기 싫어서 곁에 사람 안 두는 설정인데 쟤가 다쳤다고 화가 나면 컨셉이 뭐가 되겠어.
“나리?”
나는 데브가 신세 지고 있던 환자 수용실을 떠나 도시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오! 역시 너도 살아남았군!”
참고로 이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듀크로 인해 악마에 대한 증오가 다시 불붙었겠다, 놈들을 가만두는 건 컨셉에 어긋나기에 가려는 것뿐이다.
“어딜 가나?”
“꺼져라.”
아, 아무튼 내가 그러면 그런 거라고.
“베르세르크가 물었다. 어딜 가냐고.”
응, 그거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우연히 마주친 베르세르크를 꼬랑지처럼 단 채 방어선을 넘었다. 누군가는 날 막아서려고도 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시늉만 하고 끝냈다.
“아하, 악마사냥을 하러 가는 거군! 좋아, 이런 일에 노르다 전사가 빠질 수 없지. 베르세르크도 함께한다!”
도시에 존재하는 쥐새끼들을 청소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