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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98화 (98/389)

◈98화 그래도 아직 희망이 (7)

나보고 냄새난다고 했던 인간이 왜 여기 있냐.

“그렇게 됐습니다!”

아니, 김치만두야.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뭐가 그렇게 됐습니다인데.

“저 양반이 뭐라고 하던 걸 저 벽창호가 듣고 데려왔답니다.”

다행히 내겐 데브라는 친절한 설명 담당이 있었다. 이쪽도 설명을 다소 뭉뚱그려서 했거니와 화장실 급하다며 자리 비운 바람에 제대로 못 듣긴 했는데…… 그래도 이해는 대략 됐다.

이 인간, 어제처럼 주변 사람 생각 안 하고 막 나불대다가 덜미가 잡혔구만? 그럴 줄 알았다!

나는 졸지에 숨기고 있던 사실을 털리게 생긴 이를 두고 다리만 대충 꼬았다. 내 앞에 앉은 칸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의 귀에서 달랑거리는 귀고리 하나만이 유일하게 태평할 따름이었다.

“이봐, 난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고. 사제님이 치료해 준 건 정말 감사하긴 한데, 그에 대해선 기부금을 낼 거니까…….”

“전 돈을 바라고 당신을 치료한 게 아닙니다.”

그래, 우리 인퀴지터가 꽉 찬 직구만 던지는 애란다. 잘 알고 보면 그냥 우직하니 속여 먹기 좋지만 모르고 보면 이런 불도저도 없지.

“아니…….”

덕분에 칸칸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저번의 시니컬함은 나빌레라 하며 날아가 버렸는지, 아니면 인퀴지터의 저돌맹진에 정신을 못 차리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난 이야기할 게 없어.”

아니면 눈치라도 보는 거려나? 나는 몇 번의 마른세수 끝에 단호히 나오는 이를 가만 살폈다. 그의 눈빛 어딘가에는 아주 단단한 각오가 서려 있다.

“우리는 그저, 무언갈 알고 싶을 뿐이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자네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미 말했잖아. 없다고.”

아크메이지가 나서서 칸칸을 살살 구슬려 보았다. 그러나 그러하면 그러할수록 그의 얼굴은 결연해질 뿐이었다.

“사제님에게 도움을 받은 이상 당신들에게 무례한 태도로 임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날 곤란하게 하지 말아 주겠어?”

“으음. 말하면 곤란해진다는 걸 보니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보군.”

“그런 게 아니라……!”

근데 사람이 너무 허당이다. 그 부분에서 뜨끔한 얼굴로 발끈하면 어떡해. 눈치가 조금 있다 싶은 사람들은 다 알아챌 거라고.

“그럼 하나만 묻겠네. 자네가 ‘곤란해지는’ 이유는 무왕의 소문과 진정 관련이 없나?”

“……!”

그렇지만 저런 사람이기에 우리에겐 오히려 좋았다. 아크메이지가 마지막 쐐기를 박는 순간, 칸칸은 벌떡 일어났다.

그의 낯은 말하기 싫은 걸 억지로 말하게 된 사람의 분노보다, 무언갈 두려워하는 공포가 더 짙다.

“그만해.”

칸칸은 주먹을 질끈 쥔 채 주변을 휙휙 돌아보았다. 그가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아는 입장으로서 영 뜬금없는 행위는 아니었다. 좀 늦었을 뿐이지.

“그 이상 가면 위험해.”

“위험이라.”

“당신들은 이 일에 아무 상관 없어!”

나는 꼬았던 다리를 살짝 풀었다. 펄럭. 우리가 있던 방의 입구, 나무 문을 갈음하는 천 자락이 움직인 건 그때였다.

“잡아 왔습니다요.”

화장실에 간다던 말이 용변 보고 오겠단 의미가 아니라 화장실에 숨어 있던 놈을 처치하고 오겠단 말이었나.

“저놈은……!”

“읍, 으읍!”

“빵 부스러기를 잘 흘리고 다니시는가 봅니다요.”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데브가 내던지는 인간 둘을 두고 대화에 신경 안 쓴다는 양 눈을 슬쩍 감았다. 시야가 닫혀도 칸칸이 뻐끔거리고 있다는 건 잘 느껴졌다.

“그래도 쥐새끼는 다 잡았으니, 이제 제대로 이야기해 보죠?”

지지부진하던 이야기가 드디어 전개되었다.

* * *

“…해서 이렇게 된 거야.”

감시자가 발각되어 끌려온 이상, 우리가 이 사건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다.

칸칸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더 이상 미적거리지 않았다. 숨김없이 내막을 전부 알려 준 것이다.

“그런 악독한!”

당연하게도 인퀴지터가 가장 먼저 분노했다. 우리 중 유일한 분노기도 했다.

“하. 인재 하나 구하러 왔다가 졸지에 범죄 카르텔을 처리하게 생겼네요.”

“귀찮다는 듯 말하는 것치고 기분은 좋아 보이네만.”

“권력과 부로 죄를 덮어, 심판과 처벌을 피해 가는 악인들에게 단죄를 내리는 것만큼 제게 기쁜 일도 없는지라.”

“…사제님 빼고 이미 다 알고 있었나 보지.”

“오늘 아침에야 안 거긴 하지만.”

반면 데브는 어깨만 으쓱였다. 성격을 고려해도 너무 반응이 없다 싶었는데 그새 정보를 주워 먹었던 모양이다.

역시 내가 말해 주지 않아도 잘할 줄 알았다.

“신고하지요. 이건 신고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건 안 돼. 이 일을 묻은 건 성주야.”

“…성주에게도 범죄를 은닉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 역시 처벌하면 됩니다.”

인퀴지터의 말에 칸칸이 다소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걸 말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능할 리가.’ 정도 될 것 같다.

“멍청하긴. 그게 될 리가 없잖습니까.”

신세 진 것으로 인해 칸칸이 차마 못 내뱉은 말을 데브가 대신 쳤다. 인퀴지터가 눈썹을 쭉 올렸다.

“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증거가 없잖습니까.”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지 않나. 사망자의 유족분들도 있으실 테고.”

“시신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가 있겠어요? 다 처리했겠지. 그리고 유족들이라. 증언을 하는 순간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과연 증언을 하려 하겠습니까요?”

“하지만 너도 단죄를 내리자고 했으면서!”

“단죄야 내려야죠. 그런데 그 방식으론 안 된단 말입니다.”

권력으로 인한 범죄 은닉이 정공법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세상의 어지러움은 절반쯤 줄어들 것이다. 그게 안 돼서 이 모양인 거고.

난 이번에는 김치만두의 손을 못 들어 주겠다 생각하며 일련의 사건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지금까지 나온 단서 대부분이 무왕과 엮여 있단 말이지. 그리고 지금 그 사건의 실체가 다 드러났고.

그런데 정말 이걸로 끝인가? 나름 최전선인데 고작 무왕의 비리 하나로 사건이 종결된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절대 그렇게 끝날 리 없는데.

악마가 연관되지 않은 채 넘어가면 최전선이란 이름이 울잖아.

“피해자들에게 분명 입막음을 위한 조치를 가했을 터. 그런 그들을 함부로 들쑤셨다간 그들의 안위가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신전에 보호를 청한다면.”

“신전이 연관되어 있을지 아닐지 모르지 않습니까. 관계가 없더라도 그쪽에서 암살자를 보내거나 한다면 보호하기 까다로울 것입니다. 신전엔 교인만 오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 그렇다면 이분은! 이분은 안 되는 겁니까? 이분도 피해자지 않습니까?”

“부상당했을 때 나섰다면 모를까, 지금은 어려울 겁니다. 하물며 오늘 도전했다가 패배하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이라 믿기보다, 패배의 설욕을 못 참고 악담을 퍼트린다 여길 겁니다.”

“그으읏.”

나는 아크메이지가 인퀴지터에게 현실을 알려 주는 동안 미묘한 꺼림찍함을 계속 더듬어 보았다.

인퀴지터가 말한 ‘거슬림’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게 나를 계속 건드렸다.

“젠장, 역시 당신들에게도 수가 없나. 이럴 줄 알았으면 말하지 않는 건데.”

“이봐요, 붉은갈기 나리. 댁이 말 안 했으면 뭐 달라질 줄 압니까?”

“그래도 놈들에게 주목받지는 않을 거 아니야. 당신들에겐 감시자가 붙어 있지 않으니, 어떤 추론을 하든 놈들이 알아챌 일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놈들이 악마랑 연계된 것 같은데. 데브가 말 없는 거 보니까 별거 아닌 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원래 이런 게 나중에 뒤통수를 친단 말이야.

“…안 되겠어. 내일 다시 도전해야겠어.”

“…혹 무왕을 말하는 건가?”

“그래.”

“아니, 어째서…….”

“놈이 자수하게 만들지 않는 이상 이 사건을 터트릴 방법이 없잖아! 그렇다면 차라리,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강제로 멈춰 버리기라도 해야……!”

“그, 이렇게 말해서 좀 미안은 합니다만. 댁 실력으론 안 될 것 같은뎁쇼.”

“@(%#*%#(!”

진짜 더 이상의 연결 고리가 없나.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정말 이대로 그 범법자를 내버려 둬야 한단 말입니까?”

“으음.”

“뭐, 실력이 안 돼서 문제지, 붉은갈기 나리가 시도한 방식으로 일을 끊어 버리는 건 가능하겠죠. 물론 이 경우, 피해자분의 원통함만 덜 수 있을 뿐 공론화는 더욱더 힘들어지겠지만.”

“그건 법의 허점을 통한 복수에 불과하잖나!”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댁이 좋아할 만한 방법은 하나도 없어요.”

“방법이 있기는 하고?”

“없는 게 더 이상합니다만. 지금 무왕을 보호하는 건 무왕의 커리어를 사랑하는 성주의 뒷배잖습니까. 무왕의 커리어를 박살 내면 성주도 더는 무왕을 보호 안 할 테니, 그런 식으로 가도 길은 나오죠.”

“그의 챔피언 자리를 빼앗자는 건가?”

“그것도 가능은 한데 오래 걸릴걸요. 그것보단 사회적 체면을 구기는 쪽이 나을 겁니다요. 예컨대 성주도 이건 더 이상 보호 못 해 주겠다 싶을 정도의 비밀을 만든, 아니 찾아 폭로한다든가.”

그보다 잠깐. 지금 고기만두의 진심이 엿보인 것 같은데, 그건 기분 탓이겠지.

“가장 좋은 건 악마와 연관되는 거겠지만…… 이건 가능성이 낮으니 안 되겠고. 살인마저 덮어 주는 성주가 무왕을 끊어 낼 정도의 결함은…….”

나는 갑자기 음모와 모략, 정치로 변경된 장르를 보며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데스브링거 갠스를 생각하면 이게 맞긴 한데, 지금까지 봐 온 모습과 좀 다르다 보니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런 거 있습니까?”

“그, 아니. 삼 개월 전부터 이상해진 거지 그 전엔…… 사고를 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어. 네가 원하는 그런 건 없을 거야.”

“그건 확실히 아쉬운데. 삼 개월은 또 뭡니까?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친구 사이긴 하지만 속내를 터놓고 지내지도 않아서.”

“그렇군요.”

칸칸의 말에 데브는 적당히 수긍했다. 덕분에 내 가슴이 더 쪼들렸다. 공격할 팩트가 없다면 선동과 날조로 승부한다! 라는 느낌으로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랬다간 고기만두가 인퀴지터랑 멸망전을…….

“아.”

“……?”

“그러고 보니 무왕에게서도 거슬림이 느껴졌는데. 그에 대해선 나온 게 없나?”

그때 인퀴지터가 질문을 던졌다. ‘더 큰 악행을 폭로한다.’ 이것 자체는 우직한 성미에도 거슬리는 말이 아니었는가 보다.

만들어 퍼트리자고 하면 100% 반발하겠지마는 있는 걸 찾아 신고하자는 건 괜찮다 이거겠지. 그건 원래 치러야 할 죗값이니까.

“그건…… 일단은 없는뎁쇼. 그보다 무왕도 그랬습니까?”

“그래.”

근데 무왕도 거슬림이 느껴졌다고? 아, 이거 아무리 봐도 악마 각인데?! 악마랑 거래한 각인데!?

“하긴, 무왕도 챔피언에 막 오를 즈음에 실력이 막 상승했댔죠. 이렇게 보면 당연한 거였으려나.”

“무슨 이야길 하는 거야?”

인퀴지터가 느낀 ‘거슬림’을 모르는 칸칸이 툭 물었다. 데브와 아크메이지가 그런 그를 두고 머리 위로 느낌표를 띄웠다.

“저 벽창호가 이 도시에 온 후 ‘거슬린다’라고 말한 인간이 몇몇 있거든요. 행동이나 뭐 그런 게 거슬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을 딱 봤을 때 뭔가 이상한 그런 거요.”

“이해했어, 그래서?”

“사제 나리의 감이다 보니까 혹시 몰라서 조사해 봤는데 놀랍게도 공통점들이 하나 있지 뭡니까?”

“공통점?”

“어떤 순간에 가파르게 실력이 상승했답니다. 5년 전, 당신과 비등했던 무왕이 당신을 이기고 챔피언 자리로 직행한 것처럼요.”

“혹시 그에 대해 아는 게 있는가? 우린 이걸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네. 그리고 이제 진정 우연이 아니라 무언가 얽힌 거라면…….”

“무왕이 정당한 실력이 아니라 무슨 술수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는 것만큼 거대한 스캔들은 없습니다. 이게 정말이라면 성주도 커버 못 할 겁니다.”

칸칸에게 설명을 해 준 덕분에 나도 미처 모르던 퍼즐 조각을 얻었다. 내가 관심 없는 척 굴긴 했다지만 정보 공유는 해 주지 그랬냐…… 이제라도 들어서 다행이다마는.

“…그, 술수는 잘 모르겠는데.”

그보다 이 양반은 대체 아는 게 뭐야.

“그렇지만…… 당시에 좀 이상하단 생각은 나도 했어. 기연이나 특별한 수련을 하던 눈치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강해졌…… 어!”

정정. 아는 게 있긴 한가 보다.

“아까 거슬리는 인간들이 있다고 했지. 그 사람들 다 투사야?”

“듣기로는, 그렇습니다만.”

“이름이나 인상착의 같은 거 알아?”

칸칸이 무언갈 눈치챈 듯하자, 데브가 얼른 자료를 내밀었다.

“…나 글 못 읽는데.”

“…읽어 주겠습니다요.”

물론 약간의 문제가 있긴 했는데, 큰 고난은 아니었다. 시간이 좀 더 소요됐을 뿐이지.

“맞아, 그래! 이 녀석들도 다 그랬어! 강해질 이유가 없어 보였는데 갑자기 강해졌어! 확실해!”

“…이야, 제대로 걸렸는뎁쇼.”

“세상에 대가 없는 힘은 없습니다. 분명 무언가 있을 겁니다.”

“악마와 계약한 건 아닌 듯한데. 무엇을 담보로 힘을 얻었는지가 중요하겠군.”

그리고 드디어 활로가 트였다.

“이단심문관님, 이단심문관님!! 여기 계십니까?!”

“……? 무슨 일이십니까?”

“아, 계시군요!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형제님? 무엇이 그리 급하셔서…….”

“봉, 봉화가 올라왔습니다! 악마들이 침공을 시작했어요!”

트인 줄만 알았다.

하여튼 쉽게 끝나면 인생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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