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92화 (92/389)

◈92화 그래도 아직 희망이 (1)

다음 도시로 가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열흘이면 충분히 쉴 만큼 쉬었다고 생각하니까.

또 봉인구가 완성 직전인 이상 컨셉도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폭주한 걸로 눈치를 보긴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을 얌전히 순응할 성질머리도 아니지 않나.

슬슬 악마 잡으러 다른 곳으로 떠날 때가 됐지.

동료 영입 건도 반길 만한 사항이었다. 게임에선 누커(한순간 폭딜할 수 있는 직업)로 이름 날리던 아크메이지도, 현실적인 요소가 적용되니 썩 좋은 딜러가 못 돼서 말이지.

캐스팅─붙박이처럼 가만히 서서 주문 외는─시간이 너무 길고, 준비 사항도 너무 많이 필요하다. 공성전이나 레이드 상황이라면 몰라도, 계속 이동하며 싸우거나 난전이 대부분인 지금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거다.

전투에 참여하기보다 후방에서 여러 의미의 서포트를 할 때가 더 많은 것도 있고.

데브? 데브는…… 애초에 무력을 보고 데려온 게 아니니 포함할 수 없다. 쟤는 지금 해 주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1인분을 다하고 있다.

하므로 새 동료를, 그것도 전투가 가능한 인원을 영입할 필요는 분명 있다.

“투기장…… 말입니까?”

다만 지금 당황하는 건 그거다. 열흘이면 충분히 쉰 거긴 한데, 그래도 더 놀고 싶다는 심정.

‘벌써 주말이 다 지나갔다고?!’라 외치는 직장인의 비명 같은 거지.

“예. 분명 함께할 만한 인재가 있을 겁니다. 인재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강자들이 즐비할 것이니 만큼 힘을 시험해 볼 수도 있을 테고 말입니다.”

하필 투기장인 것도 좀 걸린다. 오랜만에 원작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투기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업이 하나 있거든.

“투기장 이름이 뭔데요?”

“아이녹사르. 파 에녹에 있는 투기장일세.”

물론 그 직업의 공식 캐릭터가 파티에 들어오면 우리의 부담이 덜어지긴 할 텐데…….

…어음. 정말 괜찮을까 모르겠네.

그 직업 캐릭터, 내가 잡은 컨셉만큼 말이 안 통한단 말이야.

* * *

“…거기 남부전선이랑 가깝지 않습니까?”

내가 잠시 근심 어리는 사이, 데브가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미 생각해 둔 지점인지 아크메이지가 술술 대답을 늘어놓았다.

“그 지점은 걱정 말게. 남부전선은 생각보다 안전하니. 투기장이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부터가 그 사실의 증거가 되지 않나. 간다고 큰일이 벌어지진 않을 걸세.”

그녀는 동서남북 네 곳의 전선 중 가장 안전한 곳을 꼽으라면 남부가 될 거라며, 이번 기회에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거란 코멘트를 붙였다.

나름 설득력 있었다. 언젠가 겪어야 할 거라면 가장 레벨 낮은 장소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 게 제일 좋다.

순간이동으로 뿅뿅 이동할 수 없고, 오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아니, 그…….”

그러다 데브의 걱정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후드 속 눈동자가 슬그머니 내게로 돌아왔다.

“나리 문제도 있고…….”

일순, 잊고 있었던 설정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 마역에 들어서면 악마가 더 날뛸 수 있다는 가설을 핑계로, 최전선에 한 번도 안 가 봤다는 설정 아니냐.

“그 부분은 나도 꽤 고민했네. 그렇지만…… 알잖나. 이 여정에 함께하는 이상 언젠가는 마역에 들어서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아크메이지의 시선이 데브에서 나로 옮겨지는 걸 확인했다. 빙설을 연상시키는 하늘색 눈동자는 걱정이란 구름을 어지러이 품고 있다. 스스로도 본인의 제안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게 보였다.

“마침 봉인구도 개발된 참이지 않은가? 이번 기회에 시험을 해 보자는 걸세. 자네가 정말 마역에 들어설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봉인구의 힘으로 이겨 낼 수 있는지 말일세.”

“그렇지만 리스크가 너무……!”

“전 좋은 생각 같습니다.”

데브는 반대하고픈 모양이나 인퀴지터는 찬성을 던졌다. 물론 말한 직후 아차 한 얼굴이긴 했다.

“악마기사께서 싫으시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도해 볼 의향이 있으시다면, 뒷일은 제가 감당해 보이겠습니다. 이번엔 자신 있습니다.”

그것 참 믿음 가는 말이었다.

나는 난데없이 나오려는 웃음을 막으며 컨셉에 이입했다. 컨셉으로선 이런 상황에 어찌 나올까.

계산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가겠다.”

암, 컨셉이 여기서 물러날 리가 없잖아. 현실적으로 여기서 물러나면 앞으로의 전개도 죄다 꼬일 테고.

나는 봉인구가 채워졌던 자리를 매만지며 논쟁을 끝내 버렸다. 데브가 무어라 말하고 싶은 눈치였으나 그 말이 입 밖으로 토해지는 일은 없었다.

다음 목적지가 결정되었다.

* * *

다음 날 새벽, 내구도만 보완하면 된다며 깡총 뛰쳐나갔던 맹렬한 흰바람이 돌아왔다.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봉인구가 완성되는 대로 출발하고자 의견을 모은 상태였으니까.

“완성품인 만큼 디자인에도 신경 썼어!”

…내가 디자인과 출신은 아니지만 나름 패션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뭐가 달라진 거지?

“지금까진 옷 위에 착용했지만 이제부턴 팔 위에 바로 착용해! 스스로 풀지 못하게 하는 마법을 걸어 놨으니까!”

나는 오묘한 기분으로 투박한 링형 봉인구를 받아들었다. 남들 보는 앞에서 스트립쇼할 생각은 없기에─옷을 벗더라도 붕대로 꼼꼼하게 감은 상체밖에 안 보이겠지만─착용은 나중에 할 요량이다.

“부서질 걸 대비해 예비용으로 하나 더 만들었으니 이것도 받아 가고. 생활하면서 불편한 점이나 보완할 점이 생기면 저 친구를 통해서 알려 줘! 계속 개량할 거니까!”

“그 부분은 걱정 말게. 내가 책임지고 연락할 테니.”

“음음, 너라면 믿을 만하지!”

직후 흰바람은 낄낄 웃곤 제 할 일은 끝났다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별명값 하는 사람이었다.

“…그간 고생했네.”

뭐어…… 흰바람의 텐션에 컨셉을 맞추느라 힘들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개발자인 흰바람이 더 고생하지 않았을까?

나는 흰바람이 만들어 준 봉인구를 손끝으로 몇 번 더 간질였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 감사하단 인사나 하다못해 수고비도 들려 주지 못했다. 컨셉상 전자는 불가능하더라도 후자는 줄 법했는데 기회를 놓쳤네.

괜찮은 건가?

“착용하고 오게. 그동안 말을 준비할 것이니. 혹시 같이 가야 하나?”

“필요 없다.”

…아크메이지가 뭐라 하지 않는 걸 보면 괜찮은 거겠지.

나는 아크메이지의 배려를 받아들여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안 쓰는 방을 잠시 빌려 바로 봉인구를 오른팔에 채웠다.

마력 총량이 줄어듦과 동시에 머리 한 구석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냥 상쾌하냐면 그건 아니었지만.

“…….”

나는 옷을 껴입고, 건틀릿을 채우기 전 오른손 쪽의 살짝 느슨해진 붕대를 다시 감았다. 그 과정에서 새까맣게 물든 피부가 보였으나 적당히 넘겼다.

씻을 때마다 본 거라 익숙해졌다.

붕대를 감는 행위가 그러하듯, 안대를 불편하지 않되 풀리지 않게 조이는 행위가 그러하듯이.

혹은 내 원래 육체와 전혀 다른 모습을 두고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된 것처럼.

…휴일이 끝나고 다시 일할 때가 돼서 그런가. 감자기 감성에 젖네.

나는 뜬금없이 든 생각을 휘저어 없앴다. 짝짝. 가볍게 뺨을 두드리면 정신이 다시금 퍼뜩 든다.

스윽.

셔츠와 베스트, 코트, 건틀릿이 차례대로 차곡차곡 덧입혀졌다.

아, 셔츠 안에는 새로 얻은 가슴보호대도 찼다. 대충 양궁 가슴 보호대 하면 생각나는 디자인인데…… 셔츠랑 베스트 때문에 티가 안 나니 됐다.

이제 마지막으로 표정까지 확인한 후 고치면 만전이다.

“저, 죄송합니다만…… 길 좀 물을 수 있을까요? 제가 길을 잃어서…… 아핫.”

근데 이 사람은 뭐지?

내가 옷 갈아입는 데 쓴 방은 내가 지난 며칠간 썼던 방이다. 더불어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신전이 방문객에게 내주는 일반 숙소와 분리되어 있고.

아무리 길을 잃었다지만…… 여기까지 새어 나올 수 있나?

심각한 길치인 사촌 동생을 생각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배정받은 숙소를 찾고 있는데 여긴 아무리 봐도 제 일행 방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가슴팍에 적힌 ‘그리다나’란 글자를 힐끗 본 뒤, 대답 없이 걸음을 옮겼다. 좀 찝찝하기도 하거니와 나도 일반 숙소 위치를 몰라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 따라가면 된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완전 꺼지라고 화내기도 좀 그래서.

나는 따라오는 이를 방치했다. 한동안 불편한 침묵이 주위 공기를 꽉 눌렀다.

“…런데 파 에녹에 갑옷 입고 가도 되는 겁니까? 사막이라 더울 텐데.”

“그건 걱정 말게. 안 그래도 지난 밤에 시험해 보았으니.”

“시험?”

“인공적으로 방을 후덥지근하게 만들어 보았네. 해룡의 비늘이 들어간 것이니만큼 물의 힘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 하고 시험해 본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 예상이 맞아떨어지더군.”

“물의 힘이라면…….”

“특별하게 거대한 힘은 아닐세. 그저 물에 쉽게 녹슬지 않게 되고, 어느 곳에 있든 물에 잠긴 것처럼 시원한 기를 느끼게 될 뿐이네. 좀 더 나아간다면 물에 들어갔을 때 보통 사람보다 편하게 버틸 수 있겠지.”

“특별하지 않긴! 완전 좋은 거잖습니까! 최소한 더위는 안 탄단 소린데!”

그리고 다른 이들이 대기하고 있는 마구간에 다다랐다.

뒷사람이 숙소가 아닌 걸 알고 다소 얼떨떨한 소리를 내는 건 내 알 바 아니었다. 마구간지기한테 길 물어보라지.

“젠장, 기사 나리한테 좋은 갑옷 뜯어내서 기분 좋겠습니다.”

“뜨, 뜯어내다니!”

데브가 부러움에 시비를 살살 거는 동안, 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크메이지가 나를 발견하며 둘 사이를 중재했다.

“자자, 악마기사가 오지 않았습니까.”

“그, 그렇지만 저 망종이!”

“헹.”

…배에서 데브가 인퀴지터 챙겨 줄 때부터 깨닫긴 했지만 둘이 많이 친해졌네.

나는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준비된 마지막 말에 올랐다.

“출발하지요.”

이제 출발이다.

* * *

아크메이지가 다음 목적지로 제시한 투기장과 그것이 있는 도시는 사막 인접 지대에 위치해 있다.

항구도시 카나베스에서 출발하면 도착하기까지 몇 주일을─말을 탔다는 가정하에─달려야 한단 소리다.

“파 에녹 주변에서 크게 특이한 일은 관측되지 않는답니다. 오히려 간간히 수작을 부려오던 악마추종자들마저 싹 사라져서 평소보다 더 평화롭다네요. 그게 오히려 어떤 징조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데브는 마을에 들를 때마다 파 에녹과 아이녹사르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왔다.

도시의 치안 수준, 근처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일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재들의 정보 등이었다.

“대략 십, 이십 년 전부터 투사들의 평균 실력이 차차 오르기 시작했다니 그것 때문일 수도 있고요.”

“평균 실력이 올랐다라. 인재들이 많이 모였나 보군.”

“아마도 그렇지 않겠습니까요. 그리고 현재 아이녹사르에서 제일 이름 날리고 있는 건 ‘무왕’이란 별명의 전사랍니다.”

음, 강해 보이면서도 왠지 약할 것 같은 이름이군. 보통 저런 별명은 주인공이나 주인공 파티, 라이벌이 가지고 있어야 이름값을 하던데.

나는 보고하는 데브를 두고 샐러드를 으적으적 씹었다. 사막과 가까워져서 그런가, 대추야자가 들어가 있어서 굉장히 달았다.

“무려 5년 내내 투기장의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는데…… 3주 전 소식이긴 하지만 5년이나 지켰다니 그사이에 자리를 빼앗겼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렇군.”

“챔피언이 뭐지? 별명인가?”

“…투기장의 일인자에게 주는 명예직 같은 겁니다. 별명이랑은 별개죠.”

밥이 너무 달면 밥 먹은 느낌이 잘 안 드는데…… 이건 좀 아쉽네.

“10연승 이상 한 참가자만 챔피언에게 도전할 수 있되, 챔피언은 그 도전을 절대 거절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으니…… 5년이나 자리를 지켜 왔으면 분명 강할 겁니다.”

“확실히…… 그런 조건이라면 실력이 부족할 것 같진 않군. 그럼 ‘무왕’에게 협력을 요청합니까?”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다면, 그러는 게 좋겠지요.”

나는 마지막 채소 조각까지 쿡 찍어 입에 넣은 후, 수저를 내려 두었다. 달긴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자네 의견은 어떤가?”

근데 이걸 나한테도 묻네.

“관심 없다.”

동료 영입에 대한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격렬하게 주장할 만큼 바라진 않는다. 컨셉이 독고다이라서 파티원의 존재에 크게 영향받지 않거든.

더구나 이번에 영입할 인물은…… 만약 내가 생각한 직업군의 공식 캐릭터가 맞다면 난 웬만해서 사절하고 싶다.

‘영웅전설’ 원작에서야 인기 많던 직업군이지, 직접 대면해야 한다고 하면 ‘그건 좀…….’ 하게 되는 캐릭터거든.

그러니 물어봐도 뭐…….

펄럭.

“어서 옵쇼!”

그때 우리가 있던 여관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사막에 가까운 지대라 나무 문 대신 두꺼운 천이 드리워져 있어 특유의 둔탁한 소리가 났다.

“강자의 냄새가 난다!”

이어지는 건 호쾌한 음성이었다. 감미롭진 못할지언정 ‘강인함’이란 단어를 꽉꽉 눌러 담은 것처럼 생기가 느껴졌다.

“예? 여기엔 그런 음식이 없습니다만…….”

“…워.”

뭐, 목소리가 중요한 건 아니지. 뜻 모를 손님의 말에 식당 주인이 당황하는 사이, 데브가 감탄사를 흘렸다. 그의 귀는 슬그머니 내려가고 있다.

“음식을 말하는 게 아니야! 밥도 먹긴 할 거지만!”

“…저렇게 커다란 슬랜드족은 처음 봅니다.”

주인장과 새로운 방문객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데브가 목소리를 살짝 낮춰 속삭였다. 그 속삭임에 인퀴지터도 호기심이 들었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데브와 달리 그녀는 식당 입구를 등지고 있기에 손님을 보려면 고개를 돌려야 했다. 나도 마찬가지고.

“굉장히 단련된 전사 같습니다.”

“피부가 검은 걸 보니 사막 출신 같군. 사용하는 무기는 할버드인가?”

이어진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의 평은 내가 아직 보지 않은 이에 대한 정보를 추가했다.

체격이 큰 슬랜드족 전사, 다짜고짜 ‘강자’ 운운하는 말투, 검은 피부, 할버드.

문득 하나의 인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그럼 양젖으로 만든 치즈와 대추야자 빵은 어떠십니까? 훈제한 양고기도 있습니다!”

“아주 좋지! 그렇지만 그 전에 먼저 찾아야 할 것이 있어!”

…혹시 방금 들어온 사람, 머리색이 백금색이진 않겠지? 백금색이더라도 병지 컷을 하고 있진 않겠지? 그렇겠지?

“난 강자와 싸우러 왔다. 그래, 너! 등 돌리고 있는 너 말이야!”

제발 아니라고 해 줘.

“나리, 나리를 부르는뎁쇼?”

나는 별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정체에 마른세수가 하고 싶어졌다. 알면서도 무시하고 있건만 데브가 확인 사살까지 해 줘서 더 그랬다.

“내 말이 들리지 않나?”

저거 아무리 봐도 투기장 하자마자 떠올린 그 직업군 공식 캐릭터잖아. 얼굴 안 봐도 알겠네, 젠장.

“…혹시 우리 테이블을 말하는 건가?”

다행히 나를 대신해 아크메이지가 화답을 해 주었다.

“그래! 그쪽을 향해 말한 거다!”

그 속의 떨떠름함을 캐치하지 못했는지 상대는 호기롭게 긍정했다. 골치가 점차 당겨 오는 기분이다.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가?”

“방금 ‘베르세르크’가 말하지 않았나? 거기 등진 전사와 싸우고 싶다!”

차라리 말투랑 특징이 조금 겹칠 뿐 아예 다른 사람이라면…… 은 무슨.

나는 방문자가 내놓은 말을 곱씹은 직후 끝내 ‘설마’, ‘혹시’, ‘에이’라는 단어로 겨우 돌리던 희망회로를 부수었다.

암, 지금 본인이 고백했다. 자신이 베르세르크라고.

그리고 베르세르크Berserker는 내가 떠올린 직업─투사의 3차 전직 명칭이다. 즉, 공식 캐릭터 확정이다.

“…그건 조금 곤란하네.”

“무엇이 곤란하지? 강자와의 싸움만큼 즐거운 것도 없는데!”

투기장에서 다음 동료 얻는다는 말부터 좀 불길했는데, 역시나 베르세르크가 합류하는구나.

가능하면 아크메이지나 인퀴지터가 반대해서 합류가 무산됐으면 좋겠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

그래, 그렇겠지. 지금까지 공식 캐릭터가 얼굴 내보인 직후 합류하지 않은 사례가 없으니까.

“그는 일반인과 싸우지 않네.”

“베르세르크는 일반인이 아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악마와 관련되지 않은 인간과는 안 싸운단 소리네.”

“악마사냥꾼이었나? 더 만족스럽군! 악마를 잡을 줄 아는 자만큼 강한 이도 없지! 싸우자!”

“…….”

“와, 댁보다 말이 더 안 통하는뎁쇼.”

“…보다?”

나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두고 물잔이나 집어 들었다. 요즘 괴로워지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나랑 싸우자, 전사여!”

“…꺼져라.”

…삼재가 이렇게 왔으니 앞으론 일이 잘 풀리겠지?

제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