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말하고 싶어 (2)
오늘부로 나는 김치만두 지지를 철회한다.
이제부턴 지지 관계를 떠나 김치만두와 나는 한 몸이며, 김치만두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이 트롤링을 커버한 김치만두는 신이다!!
“…정말 자해 안 할 거죠?”
나는 데브의 도움으로 겨우 일어섰다. 얼마나 오래 묶여 있었던 건지 사지에선 저릿저릿한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감각이 돌아오려면 오래 걸릴 것 같다.
“음, 의뢰 아직 안 끝났다? 알지?”
그사이, 내가 대답 않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건지 아닌 건지 바람손이 어색한 태연함으로 말을 얹었다.
나를 채근한다기보단,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더해 주는 것에 가깝다. 괜찮은 지원사격이었다.
“아직 수복해야 할 도시도 2개나 남았고…… 악마도 많이 남아 있다고. 잔당도 있고…… 그러니까, 음.”
“…내 검은 어디 있지?”
그래그래. 보스도 잡았겠다 퀘스트 마무리는 깔끔하게 해야지.
그런 김에 내 사라진 검 위치 좀 알려 줄래.
시미터야 변신한 비푸릿 상대하면서 깨 먹은 게 기억나는데, 트루 투헨더는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등에도 없는 걸 보면 폭주하다가 떨구거나 압수당한 것 같은데.
“엄, 그게요.”
나는 말을 흐리는 이들을 보았다. 세 해적은 아예 모르는 눈치고, 인퀴지터와 데브는 아는 것 같은데 쉽사리 말을 안 잇는다.
내가 검을 받는 즉시 자결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안 그럴 건데.
“그으게…….”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전개까지 나올 건 없지 않나?
나는 티벳여우 얼굴 같은 심정이 되어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그래.”
멀쩡한 검이 사라질 이유가 뭐 있나 싶냐마는…… 어차피 검 의뢰 맡긴 게 있으니까 괜찮겠지.
사실 중요한 일 해치우니까 다시 배가 고파져서 다른 것에 신경 돌릴 여력도 없다. 나는 천천히 부축을 받아 바깥으로 나아갔다. 뭐든 좋으니 배 채우고 푹 자고 싶었다.
“자네……!”
그러다 말고 아크메이지와 맞닥뜨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게 아닐까 싶다. 옷자락이라든가 머리카락이라든가 후다닥 달려온 사람처럼 흐트러져 있었으니까.
“깨어났군.”
다급했던 얼굴의 아크메이지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나 그게 오래가진 않았다.
그녀는 곧내 여유를 되찾았다. 평상시 자주 보던 인자한 미소가 아크메이지의 얼굴에 도로 떠올랐다.
그렇지만 저지른 죄가 있는데 정면으로 보긴 좀 그렇지.
나는 그녀를 잠시 응시하다가 이내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참에 성격 좀 죽여 볼 요량이다. 암, 이 정도 사건이면 내가 저들에게 유순해질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나.
“하고 싶은 말이 꽤 있네만…… 지금 하긴 좀 그렇군. 일단 좀 쉬게. 신체에 부담을 덜 주는 봉인으로 고르긴 했지만, 자그마치 2주나 흐르지 않았나. 몸에 무리가 갔을 걸세.”
그렇구나. 내가 걸린 봉인이 신체에 부담을 덜 주는 거였구나.
그런데 지금 그 뒤에 붙은 말이 좀 이상하네요. 2주라고? 2주가 흘렀다고?
어쩐지 포만감이 바닥이더라니.
나는 아크메이지의 말에 데자뷔를 느꼈다. 이거 완전 타타라 때와 똑같았다. 또다시 내 시간이 삭제됐다.
“…그러지.”
그래도 바깥에 보이는 꼴을 보니 2주간 많이 정리된 것 같다.
깨어 있었다면 아마 도시를 저렇게 만드는 데 동원됐을 터. 적어도 노가다는 면했으니 그 점에 감사하도록 하자.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시간, 비관해 봐야 기분만 나빠질 뿐이니까.
무엇보다 이번에 새로 생긴 ‘격노’스킬의 트리거가 아무리 봐도 부정적인 감정, 특히 짜증이나 화 종류 같아서 말이지.
물론 플레이어의 감정 상태를 인지해 발동되는 스킬 같은 거, 그 어떤 게임에서도 본 적 없긴 한데…….
이 게임이 어디 한두 번 이랬나? 나는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본다. 앞으로 초록색 박사님처럼 화를 조절해야 하는 건 좀 그렇지만.
“그래. 푹 쉬게나. 자네, 부탁 좀 하겠네.”
“걱정 마십쇼.”
“인퀴지터께서도 막 들어오신 참이실 테니 푹 쉬시지요.”
“아, 예!”
나는 순순히 아크메이지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아크메이지의 시선이 드디어 나를 벗어났다.
그녀의 다음 타깃은 이쪽에 서 있긴 했지만 아까부터 끼어들질 못한 세 해적들이다.
“자네들도 슬슬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성주께서 돌아갈 채비를 하고 계시는 듯하니.”
“…옙.”
성주? 이 도시의 성주는 죽었다고 했거니와 바람손과 관련이 있다면 자크라티 쪽 성주일 텐데. 그쪽 성주가 여기 왜 왔지……?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바로 아우성치는 뱃가죽을 두고 그만두었다. 다 필요 없고 밥부터 먹자. 밥!
* * *
“저는 여전히 믿을 수 없습니다.”
잘 먹고 푹 자고 일어났더니 들은 말이었다. 성 날려 먹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버린 후라 유감은 들지 않았다.
나 같아도 저런 공격에 당할 뻔했으면 쉽게 신뢰 못 준다.
“어째서입니까?”
“…위험하지 않습니까! 되찾아야 할 도시와 구해야 할 마을이 아직 많은데, 저자를 후방에 두고 돌아다니긴 좀…….”
“왜 후방에 두고 가야 합니까? 그의 무력이면 숲에 숨어든 악마들을 정리하고 마을과 도시들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인퀴지터는 참 이상하단 말이지.
내가 해 준 게 뭐 있다고 쟤는 사형까지 막아 가며 날 믿어 주는 걸까. 고맙긴 한데 떨떠름함이 영 가시질 않는다.
“하여간 교단의 샌님들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내 옆에서 밥 먹는 데스브링거도 이해 안 가긴 매한 가지다.
대충 들어 보니까 폭주 상태의 내가 쿠크리까지 깨 먹으며 죽이려 들었다는데, 그걸 겪고도 날 대하는 태도가 예전이랑 똑같단 말이지.
아니, 오히려 더 챙겨 주려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저 둘이 나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내가 너희에게 준 건 싸가지밖에 없지 않냐.
사각.
음, 모르겠다. 나는 살짝만 볶은 당근과 감자를 씹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평소였다면 일말의 신경도 배분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특수 상황. 다른 건 몰라도 내 폭주를 걸고 넘어진다면 나는 무조건 한발 물러서야만 했다.
“잠깐, 벌써 다 드셨습니까? 아직 남았는데?”
데브가 그런 나를 두고 당황해했다. 쟤는 내가 인벤토리에 식량 넣어 둔 걸 까먹은 게 분명하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쇼.”
“아앗.”
내가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나가니, 데브가 허겁지겁 식사를 입에 밀어 넣고 따라왔다.
인퀴지터도 따라 나오려 하긴 한 것 같은데, 거긴 먹던 게 너무 많아서 쉽게 따라오진 못할 거다.
“어디 가십니까?”
“…따라오지 마라.”
“혹시 식당 가십니까?”
글쎄다. 식당을 가자니 포만감이 어중간하게 차서 굳이 갈 필요성을 못 느끼겠단 말이지.
음. 이렇게 된 거, 아크메이지나 보러 가? 할 말이 있다고 했으니까.
“음, 식당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다, 가지 말자.
나는 생각을 돌렸다. 대충 귀동냥한 바, 아크메이지가 굉장히 바쁜 상태 같았던 까닭이다.
무엇보다 아크메이지 주변에는 마탑 출신 마법사들이 우글댈 게 분명하다.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
『저, 괜찮으시다면 신체 조직 일부만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 가능하면 오른팔로!』
『저, 혹시 마력의 배열과 응집에 대해 관심 없으십니까? 제가 이쪽 방면엔 스페셜리스트라…….』
마법사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건 아는데 사람을 사람으로 봐 줘야 말이지.
해서 아크메이지를 직접 보러 가는 건 좀 꺼려진다. 마법사들이랑 마주치기 싫다.
“그럼 어디 가십니까?”
음, 그렇다면 마을 내 사이드 퀘스트나 하러 돌아다녀……?
근데 이건 이것대로 불가능할 것 같다.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민간인들이 죄다 나를 무서워하는 게 보였다.
이런 상황에 나한테 일을 맡길 사람이 있을 리가. 퀘스트를 대신 받아 줄 모험가 길드도 소속 인원이 싹 다 죽어서 가동을 멈춘 상태다.
교단도 나한테 적대적이니 뭘 시킬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얘네─삼인방─내버려 두고 자크라티로 돌아갈 수도 없고.
“나리?”
나 정말 뭐 하냐.
“…따라오지 말라고 했다.”
“어딜 가는지 말해 주시면 고려해 보겠습니다요.”
“…….”
데브라도 없으면 어디 적당한 구석 찾아서 숨어 있기라도 할 텐데. 아니면 검이라도 휘두르면서 이번에 새로 얻은 스킬이라도 시험해보든가…… 아?
아, 나 검 사라졌지? 검 새로 구해야 하지??
“…검을 구하러 간다.”
이 상황에 장터가 섰을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차피 남아도는 시간, 발품 좀 파는 것쯤이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소지금을 확인하기 위해 인벤토리를 열었다. 여기 무기들은 옵과 상관 없이 가격대가 높았기 때문에 미리 확인을 해야 했다.
인벤토리창이 삐롱 떠올랐다.
「파괴의 트루 투헨더」
「안대」
「금 간 ???」
근데 왜 네가 거기 있어.
나는 소지금이 적혀 있을 곳을 보다 말고, 그 위에 존재하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격자가 아니라 부피에 맞춰 칸을 차지하는 구조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 하긴. 검을 새로 구하실 필요가 있으시겠네요. 근데 무기 파는 곳이 있었던가……?”
데브가 옆에서 뭐라 뭐라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아무렴 사라졌던 검은 왜 여기 있으며, 안대는 또 뭐고, 용이 준 구슬은 어쩌다 금이 갔는지 감이 안 잡혔다. 그저 골만 당길 따름이었다.
“해적들에게 수거한 무기를 모아 둔 곳은 있는데, 거기서 임시로 가져오는 건 좀 별로겠습니까?”
그러다 잠깐. 나는 그제야 위화감 하나를 느꼈다. 너무 사소하거니와 시야가 달라진 게 없어서 미처 몰랐는데, 내 오른쪽 눈 위를 덮고 있는 듯한 감각이 없었다.
“나리?”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내 눈가를 더듬었다. 오른눈을 가리고 있어야 할 안대가 사라져 있었다.
괜히 인벤토리에 이게 있던 게 아닌 거다.
“설마 무슨 문제 생기셨…….”
안대는 대체 언제 또 벗었…… 아니, 아니다. 안대 하나 벗은 게 대수랴. 검이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잃어버린 것보단 백배 낫고.
이 정도면 양반이다. 나는 그 한마디로 내 모든 고민을 날려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문제라면 차라리 겸허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게 속 편했다.
“기사 나리, 문제 생기신 거라면 꼭 말해 주셔야……!”
대신─이걸 대신이라고 해도 될진 모르겠다만─나는 인벤토리에 손을 넣었다.
가방 속에 들어간 손가락이 허공을 움켜쥐자, 가장 먼저 얇은 가죽이 잡혀나왔다.
“…어?”
안대의 끈 부분이 귀에 걸리지 않도록 대충 쓱쓱 착용했다. 시야는 여전하지만 안정된 착용감이 오른쪽 눈을 살짝 짓눌렀다. 이제야 완전해진 기분이 들었다.
스윽.
“……!”
그러나 그것에 멈추지 않고 트루 투헨더까지 뽑았다. 은빛 검날이 햇빛에 번쩍번쩍 빛났다.
“그, 그게 왜 나리 가방에서……?”
글쎄다. 옵션엔 나와 있지 않았지만 검에 자동 회수 기능이라도 달려 있던 걸지도. 일단 예약 구매 특전이니까.
어쨌거나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검을 구매할 필요성이 완전히 가셨냐면 그것 또한 아니고.
나는 잠시 멈추다시피 한 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내겐 투헨더 외, 가볍게 쓸 만한 장검이 필요했다.
“해적들 무기를 모아 둔 곳이 어디지.”
“예, 예? 아…… 성벽 쪽에 있습니다요. 안내해 드릴깝쇼?”
뭘 물어봐. 당장 안내해 줘.
“그럼 이쪽으로…….”
내 시선을 알아차린 데브가 앞장섰다. 다소 황당한 기색이었지만 일은 참 착실히 했다.
머지않아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라, 악마기사님?”
그러나 성벽 근처에 다다른 순간, 내가 먼저 본 건 무기가 아니라 날 알아보는 타인이었다.
어딘가 얼굴이 낯익은 게 모르는 사람 같지는 않은데…… 아! 기억났다. 본대와 별동대로 갈리기 전까지만 해도 같이 행동했던 모험가들이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는 몰라도 묘하게 반갑다.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이제야 얼굴 보네요!”
“어딜 가시는, 아. 바깥에 나가시게요?”
반면, 그들은 내가 뭘 했고 왜 대외 활동을 못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치대는 모험가들을 두고 성문으로 좀 더 다가갔다. 그쪽에 쌓인 무기 더미가 보였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이봐, 멈춰라!”
그리고 막혔다. 신전 쪽 사람들이다.
한 명은 나와 면식이 있는 듯 적대와 공포가 섞인 얼굴이고, 하나는 말로만 전해 들은 듯 적대만 떠올라 있다.
“넌 못 나가!”
아니, 난 나가려던 게 아니라 무기를 가져가려던 건데.
“나갈 생각 아니니 무기는 거둬 주시죠. 저흰 그저 남는 무기를…….”
“무기? 그런 거라면 더더욱 못 줘!”
음. 안 되나…….
“잠깐, 이미 무기를 등에 지고 있잖아!”
“대체 누가 내준─!”
데브가 나서서 중재했음에도 그들은 나를 향한 적의를 거두지 않았다. 이해는 갔기에 별다른 감상은 안 들었지만 조금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공짜로 무기 얻나 했는데.
“악마 주제에…….”
그때 누군가가 나를 향해 그리 중얼거렸다. 내 오른팔에 악마가 있다는 설정이긴 했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과몰입하지 않을 말도 아니지! 핫하!
나는 오른팔을 살포시 쥐고 꾹 눌렀다. 신전과 나를 중재하던 데스브링거가 어쩔 줄 몰라 했다.
“바, 바깥에! 악마 떼가!”
“뭐?!”
“화살 준비!”
“뭐, 뭐야!”
그러나 그런 내 연기도 다음 순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성벽 위에서 바깥을 관측하던 이들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러 댔다.
“……!”
동시에 내 감각에도 성벽 너머의 기척이 잡혔다. 빨랐다. 그리고 선명했다.
놈은 지금 성문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물러나라!”
“나리?!”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30m 이내에 존재합니다.」
말로는 늦는다.
나는 그것을 확신하곤 앞으로 튀어 나갔다. 신전 사람들이 창을 겨누고 있던 상황이라 몸 일부가 긁히긴 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악마라니, 대체 무슨─.”
“막아, 멍청아!”
“악마들이 온다!”
“발사!”
성문 바로 앞에 붙어 있던 놈들을 뒤로 던졌다. 그와 동시에 성문이 산산조각 나며 무언가가 달려들었다.
마력을 두른 몸에 강렬한 충격이 일었다.
“큭!”
절로 잇새에 신음이 흐른다. 그러나 내가 이대로 밀린다면 기껏 사람들을 뒤로 던진 의미가 없다.
나는 밀려나는 발을 땅에 박으며 손에 마력을 끌어올렸다. 자각도 없이 끌려온 마력이 나선의 형태로 꼬이고 끝내 손바닥을 타고 쑤욱 터져 나왔다.
콰앙!
허탈한 듯 후련한 듯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을까. 나는 장풍을 쏟은 손으로부터 거대한 검은색 기운이 빠져나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운이 전방을 휩쓸어 버리는 것을 보았다.
나를 덮쳤던 악마는 지름 1m쯤 될 만한 구멍이 나며, 육신 대부분이 소멸한 상태다.
“…미쳤네.”
그러게, 진짜 미쳤네.
나는 빔이라도 한 방 갈긴 것처럼 뻥 뚫린 악마와 전방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일깨웠다.
아직 끝이 아니다. 방금 죽인 놈은 성문을 부수기 위한 돌격대였을 뿐, 진짜는 뒤에 있었다.
“따라오지 마라.”
“…저도 주제는 압니다요.”
늑골이 부러진 것처럼 가슴께가 아프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하므로 나는 내색하지 않고 등의 검을 뽑았다.
「❖ 자크라티를 겨냥하는 송곳니
∎ 아유 힌 해방하기
∎ 몬타타 섬 도시 해방 0 / 2
∎ 선택: 악마 제거 0 / ?
∎ 선택: 도시 재건 돕기 0 / ?」
그 순간, 오랜 퀘스트가 갱신되며 슬슬 퀘스트의 막바지를 알려 왔다.
해당 지방의 최종보스도 잡았겠다, 이제 이것만이 이 지방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메인 퀘스트일 것이다.
세상에 도시 수복보다 보스 잡는 게 먼저라니. 서순이 조금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대신 나리, 이거 하나만 대답해 주십쇼.”
나는 데브의 말을 들으며 검을 제대로 쥐었다.
“아크메이지 양반 데리고 와야 합니까?”
원인은 잘 모르겠으나 뻥튀기된 마력이 투헨더에 잘근잘근 맺혔다. 마력 컨트롤이란 스킬이 생겨서일까, 어쩐지 마력을 다루는 게 편했다.
“필요 없다.”
보다 좁고, 세밀한 검격이 세상을 어긋하게 베었다.
“다음 도시로 길을 내는 건 내일이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