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처음부터 (7)
“악마기사께 약조를 받고 있었다.”
“대체 뭔 약조요.”
아까 봤던 이중 대부분을 꼬리로 달고 온 데브가 인퀴지터에게 물었다. 그에 그녀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내가 감염되어 좀비가 될 예정인 자를 지목했을 때, 그에게 함부로 해를 가하지 않겠다는 약조.”
“…예?”
본의 아니게 같이 들은 데브의 꼬리들 표정이 어마무시해졌다. 동시에 같이 있던 인파의 분위기도.
“저기, 그거 설마 여기에 있다는 뜻……?”
“있다.”
“이 항구예요.”
“그래. 그래서 가능한 조속히 해결을 해야 하긴 하는데…….”
반면 데브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 것 같아서 조금 착잡해졌다.
내가 돕진 못할망정 일을 망쳐서 미안하다.
“역시 교단의 것들은─!”
그때 누군가가 버럭 소리쳤다. 두목 라홍이라고 했던가? 굉장히 나이 든 해적이었다. 얼굴의 주름과 흉터가 그녀의 세월을 증명했다.
“믿을 만한 게─!”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별생각 없었는데 라홍 본인이 지레 질겁해서 말을 삼켰다.
“너, 너.”
그사이, 탁, 탁, 탁 하고 다가온 바람손이 덜덜 떨며 물었다. 그의 손은 인퀴지터의 어깨를 쥐고 있다. 멱살보다 많이 온건하다.
“그 말, 그 말…….”
“…거짓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걱정은 마라. 겨우 받은 기회, 저버리지 않는다.”
용잡이 때나 이 섬에서 막 마주쳤을 때 이 소리를 들었으면 그대로 죽이려 들었으려나.
그렇지만 바람손은 며칠 간 인퀴지터란 인간을 겪었다. 그리고 인퀴지터는, 솔직히 하루면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참 쉬운 사람이었다.
“믿겠어. 믿어.”
그게 기어코 다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니까, 알려 줘. 누구야? 누가 대체…….”
“바람손!”
“말해 줘.”
인퀴지터의 붉은 눈썹이 나풀, 한 번 흔들렸다. 녹색 눈동자가 빙그르르 돌아간다 싶으면 곧 한곳에 멈춰 선다.
“저곳에 서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악 돌아갔다.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오크통을 밟고 서 있는 미들족 청년이 있다.
“……?”
졸지에 주목을 받게 된 청년이 물음표를 물었다.
“저, 뭐 문제 있어요?”
그는 심지어 사람들이 제 뒤편을 보는 줄 알고 뒤를 휙 돌아봤다가, 아닌 걸 알고 손가락을 들어 본인을 가리켰다.
앳된 얼굴로 보아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이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더 어려 보였다.
“앗, 잠깐 기사 나리─.”
“우악!”
그렇지만 지금은 제 점심…… 아니 이건 어감이 좀 그렇고. 사냥감…… 살해 대상…… 잠깐, 나 지금 죽일 생각은 없는데. 감염되기 전이라면 악마를 싫어하는 컨셉이라도 시간은 좀 줄 법하다고.
결국 나는 드립을 포기한 채, 청년의 몸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나보다 한 뼘은 작은 청년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긴장한 건지 소리도 내지 않는 게 퍽 양심 찔렸다.
“그 아이를 놔라!”
그 대신이라고 할지, 내 기세에 짓눌려 있던 라홍이 노호를 터트렸다.
“네놈들이 감히 내 선원을 지목해!”
아까 수그린 걸 보아, 나한테 쉽게 소리칠 것 같진 않았는데. 그래도 한 배의 선장은 선장이었다. 본인 선원이 얽히니 불을 뿜었다.
“네놈들이 다 가만히 있겠다면 내 손으로 저놈들을 죽이겠다!”
“……! 잠깐, 라홍, 멈춰!”
“멈추게! 저들이 우릴 돕는 걸 보지 않았나!”
“아까 그 전투는 두목님도 보셨잖습니까! 적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다 비켜라! 저놈이 무슨 말을 했는지 너희도 들었을 텐데!”
근데 나는 컨셉 원툴이었다. 당연히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라홍은 기어코 무기까지 뽑으려 들었다.
다른 이들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좀 곤란했을 거다. 지금이라고 곤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제발 평화적으로 해결하면 안 됩니까?!”
동시에, 라홍이 두번째 노성을 터트릴 즈음 다가온─그리고 내 팔을 붙잡은─데브가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지금껏 모든 걸 무력으로 해결해 왔던 사람에게. 하물며 지금도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놔라……!”
“아이고 나리! 여기서 손대면 우리 모두 망하는 거 아시잖……!”
“그, 그 부분에 대해 말할 게 있다만.”
“뭔데요!”
“지금이라면 치료가 가능하다, 저 사람.”
“그걸 왜 지금 말해요?!?!”
근데 여기서 평화적 해결 방법이 나온다고?
“나, 난 말하려 했다! 다만 예민한 주제라고 당부받은 만큼 함부로 발언할 수 없었을 뿐이다!”
“아니 이 빡대가리야!!”
“저속한 말을 내게 대지 마라!!”
“뭐래 멍청이가!!”
아이고 만두야아! 여기서 또 고지식함이 한 건을 해버릴 줄은……!
“잠깐, 치료 방법이 있다고?”
“치료 방법이 있다고 했소?”
“아니, 필요 없다! 저딴 개소리를 믿는 자는 없어!”
“잠깐, 라홍! 기다리랬잖아!”
하하, 개판이네.
한쪽에선 라홍이 날뛰고, 내 앞에선 인퀴지터와 데브, 그 밖에 몇 명이 와글와글 말을 토해 내고, 주변 인파는 불안감에 술렁댄다. 나는 그 총체적 난국을 보며 천천히 손을 들었다.
콰앙!
바위로 이뤄진 땅이건만, 새까만 마력을 두른 검은 무른 두부 파고들듯 쑥 들어갔다. 더불어 인 굉음과 진동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자세히, 말해라.”
내 무력 시위에 바짝 굳어 있던 이 중, 가장 먼저 데브가 움직였다. 쿡. 그의 팔꿈치가 인퀴지터를 찌르자 자동응답기처럼 인퀴지터가 말을 고했다.
“감염 및 합일이 완전히 진행되지 않았다면, 체내의 악마만 골라 정화가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지금 소요된 시간이 시간인지라 더 늦으면 위험해질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는 건 지금 정화만 하면 문제 해결이란 거 아니야?
“선택해라.”
모두가 살 길도 열렸겠다, 나는 가장 먼저 반응했다. 다른 이들이 뭐라 입 열기도 전에 손에 들고 있던 이를 쥐고 흔든 거다.
내 손에 아직도 붙들려 있던 청년이 본능적으로 몸을 들썩였다.
“내 손에 죽을 건지, 치료받을 건지.”
“예, 예?”
아이고, 덜썩거렸는데도 왜이렇게 가볍냐. 성장기 다 안 끝났니? 왜 이렇게 조그매. 밥은 잘 먹고 다니고?
속으로는 전해질 일 없는 말들을 뇌까리며, 나는 태연히 컨셉질을 지속했다.
“두 번 권하지 않는다.”
“으헉! 자, 잠시만, 잠시만요. 저 아직 무슨 소린지……!”
“나리, 제발. 설명은 좀 하고 물으셔야죠!”
“당장 그 애를 내려놔!”
“이봐요, 라홍. 체내의 악마만 골라 정화가 가능하다는데 뭐가 문제요?”
“전부, 전부 문제다! 신전의 말을 어떻게 믿어!”
두목 라홍이 발악하듯 불신을 외쳤다.
“저!”
그러나 그녀의 말을 끊고 인퀴지터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게 사람들의 이목을 단번에 끌어모았다. 강렬한 진홍의 머리칼이 목선 어림에서 찰랑거렸다.
“절 용납할 수 없다는 건 압니다. 그렇지만 뇌가 파먹히는 순간 저분은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교단은 입 다물어라!”
“저분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저분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다물라고─!”
“신성력은!”
인퀴지터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만두가 아니었으니. 라홍의 목소리가 커지자 인퀴지터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악을 쓰는 건 아니었다. 그냥 뱃심으로 우렁우렁 외치는 거였다.
“정화의 힘만큼은 인간의 신체에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정 의심이 되신다면 정화만 한번 해보게 해주십시오! 저분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겁니다!”
“네놈들을 어떻게 믿고 그러나!”
“믿음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와, 목소리 짱 커. 비밀 항구 전체를 울리다 못해 바다까지 뻗어 나갈 성량이다.
“용서를 바라는 게 아니라, 단지 지금 죽어가는 사람을 구할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동시에 그 말은 진실되었다. 대화로 자크라티의 사람들을 설득했다던 순간을 어쩐지 알 것 같았다.
“네놈이─!”
“저, 저, 기사님.”
라홍이 격노하여 핏대를 세우려던 찰나, 내 손에 들려 있던 청년이 덜덜 떨며 나를 불렀다. 그 잠깐 새에 데브가 축약한 말을 전부 들은 그는 판단을 내리려는 상태다.
“그, 제가, 감염됐다는 것 같은데, 맞죠?”
“아니, 아니다, 리안티! 저것들의 말에 속지 마라. 너는……!”
“그럼 받아 볼래요. 그 치료란 거.”
“리안티!”
“힉, 선장님.”
청년의 이름이 리안티였는지. 라홍의 부름에 청년이 또 한 번 몸을 들썩였다.
“그, 선장님! 선장님이 교단을 싫어하는 것도 알고 저도 좋아하진 않지만……! 제가 정말 감염된 거라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피해가 가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검사하는데 제가 다치는 일도 없다고 하고. 설마 항구를 구해 준 사람이 거짓말을 하겠어요?”
새가슴인 건지 의외로 강심장인 건지. 청년은 라홍의 눈치를 보면서도 제 의견을 또박또박 피력했다.
그러자 라홍의 얼굴이, 그리고 꽤 많은 이들의 낯이 충격받은 사람의 것으로 변했다. 대체로 슬랜드족이거나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들이었다.
“저건 교단이다.”
“예, 에. 그래 보여요.”
“교단이라고.”
“…그으렇죠?”
“그런데 어떻게 기회를 주자는 말을 해.”
“그, 그렇지만 우리들 목숨이 걸려 있잖아요.”
나는 그쯤 되어서 한 가지 깨달음이 퍼득 들었다.
라홍은 액면가로 보아 최소 쉰 살 이상으로 보이니. 반면 이 청년은 많아 봤자 이십 대 후반이다.
물론 40년 전 사건이고 당사자들이 곳곳에 있는 이상, 다음 세대라고 해서 적대감이 없지는 않겠지만…….
당사자와 전해 듣기만 한 사람은 결국 다를 수밖에 없다. 하물며 동료를 아끼는 것도 모자라 본인 목숨까지 달려 있어서야.
“그, 안, 안 아픈 거 맞죠?”
“감염 진행 정도에 따라 머리가 좀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
“얼마나요?”
“뇌를 파먹기 시작했다면 많이? 아니면 속이 좀 울렁거리는 정도? 아, 파먹힌 뇌의 양에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 빨리 해주시면 안 돼요?”
“리안티!”
“힉.”
“네가, 네가 어떻게!”
“죄, 죄송해요! 하지만 선장님, 전 악마가 되기 싫어요! 뇌가 파먹히는 것도 싫고 동료들을 공격하게 되는 건 더 싫단 말이에요!”
“무슨……!”
“저, 전 살아서 고향 마을로 가고 싶어요……! 선장님도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셨잖아요.”
무법자의 부하가 청년의 팔을 놓았다. 이제 더이상 잡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세요. 제발요.”
대신, 라홍의 무릎이 털썩 꿇렸다.
* * *
“두목!”
“두, 두목!”
바람손은 무릎 꿇은 이를 보며 심장이 저미는 듯했다.
어쩔 수 없었다. 라홍의 무릎은 그녀 혼자만의 무릎이 아니었다. 그를, 그들을, 그 순간을 공유하는 모든 이를 대표하는 무릎이었다.
해적도, 도시군도, 민간인도. 직업, 성별, 나이 상관없이 그날을 기억하는 모든 이의 울분을 대신해 이 자리에서 외친 사람이란 말이다.
“…어떻게, 어떻게…….”
“…두목.”
“어떻게 교단을.”
“…어리잖습니까.”
“하지만, 하지만 교단이 우리에게 한 짓이 있잖나!”
생생한 절규는 마치 비수와 같아서, 같은 세월을 견뎌 낸 자들의 심장을 찔렀다.
그래, 같은 세대의 존재만을 찔렀다.
라홍의 외침에 절절히 통감하는 자들의 얼굴과 그러지 못한 자들의 얼굴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네. 그렇죠. 하지만, 쟨 이제 열여섯이에요. 그 사건으로부터 24년이 지난 후에 태어난 애라고요.”
“…….”
우리의 해묵은 증오는 이제 우리만의 것이 되었다.
“그 일을 겪지 않은 애들이…… 우리처럼 교단을 증오하기란 어렵다는 걸 알잖아요.”
“하지만, 하지만…….”
그가 숯더미에서 그날의 재 냄새를 맡되, 그의 자식뻘이 되는 아이들은 낙서하고 놀 생각만 하는 것처럼.
“라홍.”
“바람손, 너마저도. 너마저도 잊은 건가? 어떻게 너마저도…….”
“잊을 리가 있나. 이봐, 내 얼굴이 젊다고 당신만큼 살았단 사실이 가시진 않거든?”
“그러면, 어떻게…….”
“시발, X같지. 존나 X같지. 증오는 이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숨쉬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걸 기억하는 새끼들은 다 죽어 나자빠지고. 나는 여전히 조금의 계기만 주어지면 그날의 기억에 고스란히 삼켜진 채로 불타는데, 빌어먹을 애새끼들은 그런 나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고.”
“그럼, 그럼 왜…….”
“제기랄, 그렇다고 가족들을 또 잃을 순 없잖아!”
바람손은 조용히 라홍 앞에 무릎 꿇었다.
맞닿은 이마가 그 시절, 그 불타던 시절. 제발 같이 살아남자고 생판 모르는 이와 부둥켜안은 채 발악하던 날의 온기를 상기시켰다.
“가족들에게, 우리 같은 경험을 또 하게 만들 순 없잖아…….”
더없이 서러웠다.
“이봐 라홍. 한 번만 참자. 시발, 참기 힘들어도 참자. 우리는 영원히 불타 버린 잿더미 위에 살아가겠지만, 쟤네는 그러지 말아야지.”
너무 서러웠다…….
“이런 X같은 삶은 우리들로 충분하잖아.”
* * *
식은 식사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그래도 살려면, 그리고 힘내서 나아가려면 배를 채우는 게 맞는지라.
“그, 요청한 정보를 받아오긴 했는데.”
나는 시들시들한 이파리를 입에 욱여넣으며 데브를 맞이했다. 항구의 책임자들이 배려해 준 덕에 주점은 머무르는 동안 우리만의 식당 겸 쉼터가 된 상태다.
“자료.”
“예엡.”
나는 데브가 받아온 종이 뭉치를 테이블에 내려두었다. 액셀이 없는 세상이란 이다지도 불편해서, 이번에도 내용 파악을 하려면 줄글을 전부 읽어야 했다.
“어째, 치료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거라면 잘 끝났다.”
내가 눈 빠질 듯 서류를 보고 있자니, 인퀴지터가 스튜를 허겁지겁 퍼먹다 말고 대답했다.
입 안에 감자고 고기고 뭔가 많이 들어갔던 것 같은데. 용케도 한 번에 삼켰다.
“항구 수색 결과는?”
“그것도 괜찮았다.”
참고로 아까 그 청년을 치료한 직후, 나와 인퀴지터는 만일을 대비해 항구 전체를 돌아다녔다. 감염 진행자가 더 있을까 싶어서였다.
“수십 명이 더 발견되긴 했지만, 다 치료했으니까.”
“수십 명이나 말입니까?”
“누가 이곳에 기생체가 담긴 식재료를 조달했더군. 그걸 먹은 자들이 기생된 거였다.”
“…배신자?”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식량의 출처는요.”
“급한대로 식량 창고에 접근 가능한 자들을 모두 모아 신문 중이다. 그렇지만 식량 자체는 바깥에서 구해 온 것들이라…….”
“범인 잡기 애매하겠네요. 거참 상황 복잡하네.”
일 참 개판으로 돌아간다, 라고 하기엔 워낙 상황이 열악한지라.
배신자든 간첩이든 하다못해 실수든. 전부 나올 만한 구조라서 딱히 할 말은 없다. 우리가 떠난 뒤 어떻게 될 지가 문제지.
“그렇다고 배신자가 밝혀질 때까지 남아 주실 나리도 아니고.”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배신자 찾아달라는 퀘스트가 정식 겸 필수로 쥐어진다면 몰라, 아니라면 남아서 도울 이유가 별로 없었다.
데브와 달리 나나 인퀴지터는 배신자 색출에 도움이 되는 편이 아니었다.
더불어 여기서 버텨 봐야 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우리뿐이라서.
남아서 디펜스를 한다면야 당장은 도움이 되겠지만, 적에게 시간을 주는 꼴이 된다. 괜히 시간을 줬다가 놈들이 괴상망측한 악마를 소환하는 건 가능한 지양하고 싶다.
나는 가능한 빨리 이곳을 떠나 이 퀘스트의 마지막을 향해 달릴 거다.
“이곳에 대한 걱정이라면 조금 덜어도 된다. 연구하러 왔다가 사건이 터지며 이곳까지 오게 된 마법사가 있어, 그를 통해 본대에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으니까.”
“아, 그 이야긴 들었습니다요. 자크라티에서 잘도 본토 신전에까지 구원 요청을 했네요. 덕분에 여기도 바로 지원군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만.”
“…기회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 그러면 우리가 떠나도 큰 문제는 안 생기겠네. 지원군이 바로 오면 최소한 대비는 될 테니까.
혹은 사람들을 후방으로 이송하는 수도 있을 테고.
다행이다.
“그럼 이쪽 문제는 최소한 일단락됐고. 신전과의 불화도 더이상 없을 듯하고. 남은 건 비푸릿을 잡는 겁니까?”
그렇지. 당장의 목표는 비푸릿 일당의 근거지를 치는 거지만, 최종 목적은 비푸릿의 모가지긴 하니까.
“…바로 가실 건 아니죠?”
뭐, 근거지 치러 갈 거냐고? 피로도 좀 간당간당하니까 좀 쉬고 가긴 할 건데.
나는 내가 그렇게 마구잡이로 다녔나 반성하며─그렇지만 고칠 생각은 않으며─서류를 넘겼다.
직후, 데브가 주어를 생략하고 말한 바람에 다른 쪽으로 이해했던 말을, 드디어 올바르게─아마도─이해했다.
지도엔 비푸릿이 위치한 성이 정확히 표기되어 있었다. 바람손이 알고 있던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 자크라티를 겨냥하는 송곳니
∎ 비푸릿 일당의 근거지 찾기 11 / ?
∎ 비푸릿 일당의 근거지 제거 11 / ?
∎ 적에게 점령된 아유 힌으로 이동
∎ 보너스: 비푸릿 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