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처음부터 (6)
배 한 척은 결국 못 잡았지만, 크라켄도 죽이고 항구도 무사하다.
더불어 나 또한 바람손이 배를 타고와 준 덕에 뭍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으니.
이거면 되지 않았나 싶다. 모든 이득을 긁어모으진 못했어도, 피해 없이 위기를 극복한 이상 당장은 됐다고.
“올라갈 수 있겠어?”
“네놈이 못 올라갈 것은 알겠군.”
“…구하러 가줬으니까 봐주면 안 될까?”
밧줄을 건네받은 손에 힘을 주니 바람손이 슬쩍 물러났다. 데브랑 아주 똑같다. 살벌해지기 직전까지 살살 간보는 게.
그런데 그게 기분 나쁘냐면, 본체 입장에선 꼭 그렇지만도 않은지라. 나는 쫄아 버린 바람손을 두고 만을 틀어막은 배 위에 올랐다.
배 세 척을 곧바로 치우지 못하는 이상, 한동안은 밧줄로 이 위를 오르락내리락해서 이동해야 했다. 이동용 보트도 올렸다가 반대쪽에 내리는 식으로 가야 했고.
“이야, 감탄했소.”
한데 그렇게 위로 올라가니, 누군가가 여유로운 몸짓으로 내게 다가왔다. 무법자인가 뭔가 하는 양반이었다.
“단신으로 배들을 수장시킨 것도 모자라 바다 괴물마저 침묵시키다니…… 혹시 해적일에 관심 없소이까?”
“치마와.”
“이런, 이미 형님이 점찍었소? 아쉽게시리.”
“그으래. 내가 점찍었으니까 포기해라.”
“으으음. 그렇지만 형님. 해적에게 포기란 없는 법이요! 무엇보다 이런 건 본인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 않소?”
바람손과 티키타카 대화를 나누던 무법자가 내쪽으로 윙크를 했다.
졸지에 그것을 직격으로 받은 내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저것도 애인이나 25살 이하 솜털 보송한 애들이 해줘야 귀여운 거지, 아무리 예쁜들 속 알맹이 시꺼먼 해적이 해봐야…….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말해 주시오. 우리는 당신 같은 강자를 환영하니까.”
“됐고, 배는? 돌아갈 배도 있겠지?”
“하하, 이를 말이오.”
“준비나 해 이 자식아.”
다행히 바람손이 무법자의 머리를 밀어내며 저쪽으로 치웠다. 무법자가 낄낄 웃으며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해룡에 이어 바다 괴물까지 정복한 기분은 어때?”
그때 바람손이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왜 이렇게 묻는진 잘 모르겠는데……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다신 하고 싶지 않다거나, 많이 힘드네요 따위는 캐붕이니 아웃. 해룡은 대가리 반쪽이라도 얻었지 문어는 주운 게 하나도 없어서 서글프다도 캐붕이니 패스. 레벨 오른 건 당연한 거니와 스텟 상승은 미뤄 두더라도 스킬 찍을 게 더 없어서 애매하니 땡.
결국 남는 답은 하나도 없다. 나는 그를 흘겨 주다가 무법자가 마련한 쪽배에 다리를 올렸다.
“…악마기사?”
어디 갔나 했더니, 붉은 머리의 선객이 이곳에 있었다.
“죄송합니다, 오시는 줄도 몰랐…….”
그보다 얘, 컨디션이 영 안 좋아 보이네. 만두의 얼빵함은 어디다 두고 20년차 사회인의 피곤한 낯을 하고 있어.
뭐, 용잡이 때도 신성력 과다 사용으로 며칠 기절했었으니 이번도 같은 맥락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럼 이만 출발하지.”
인퀴지터가 나한테 뭐라 사죄하기도 전에─애초에 사죄할 일도 아니고─무법자와 바람손이 각자 노를 잡고 젓기 시작했다.
쪽배라 탑승 인원이 제한된 게 결정적인 이유겠지만, 그래도 선장 둘을 노 젓는 데 부려 먹다니. 조금 호화스러운 기분이었다.
물론 득실 교환을 따졌을 때 이득인 건 압도적으로 저쪽이지만!
“으핫, 형님과 내가 노를 젓다니. 성주님도 이런 호사는 못 누릴 텐데!”
“그 양반은 못 누리는 게 아니라 안 누리는 거고.”
“그건 그렇소!”
내가 의식하던 부분을 저쪽도 알고 있었는지 가볍게 주제로 올렸다.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인퀴지터가 본인도 노를 저어야 하는지 슬쩍 물어왔다.
“…노 저을 줄은 알고? 아서. 뭍사람한테 노 안 맡겨.”
내가 천하의 멍텅구리를 보듯 하는 사이, 바람손 또한 어처구니없는 어투로 말했다. 그게 뭐가 재밌던지 무법자가 빵 터져서 깔깔대고 웃었다.
“그래도 사람 취급은 해주는 거요? 으하하하. 하긴 그러지 않았으면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폐에 구멍 내주랴?”
“이미 났으니 걱정 마시오.”
저 사람 인생 참 즐겁게 사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쓸데없는 부러움과 함께 선창에 다다랐다. 방금 전투로 피로도가 20 가까이 올라서 그런가. 선창을 밟는 다리에 잠시 힘이 풀렸다. 균형을 잃고 휘청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순간 주춤하는 건 모두가 봤을 터였다. 눈가가 조금 뻐근했다.
“헉, 악마기사. 괜찮으신 겁, 으헉.”
그런데 나 다음으로 내리던 인퀴지터는 더 가관이었다.
이쪽은 균형을 잃은 건지, 아니면 선창에 오르다가 높이 계산에 실패해 발이 걸린 건지.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와악, 뭐 합니까!”
데브 나이스캐치. 그래도 동료라고, 이럴 땐 잡아 주는구나.
“바봅니까? 그거 하나 못 올라오게!”
“시, 시끄럽다.”
어히구, 귀엽게 놀기는.
나는 미지근하게 웃고 싶은 걸 겨우 참으며 선착장 안쪽으로 걸음하려 했다. 선창을 막다 못해 그 너머로 빼곡하게 모인 인파가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너흰…….”
“강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허, 뭐라 말을 못하겠군.”
뭐야, 뭔데. 심지어 앞열에 있는 사람들 죄다 고위 직급 아니야? 옷가지도 그렇고 일부는 가슴팍에 훈장도 달고 있는데.
“…왼쪽부터 붉은수염 아메스, 절름발이 와일란, 서풍 카토. 셋 다 해적입니다. 대머리는 도시 아유 힌의 경비대장이고 뒤의 콧수염은 경비대장 부관, 가장 앞은 아유 힌의 재경입니다. 그 옆쪽은 다시 해적인데 늙은 여자는 두목 라홍이고…….”
운 좋게도 쏘소속 다가온 데브가 내 귓가에 정보를 일러 주었다.
말이 빠르기도 하고 한 번에 다 외울 머리도 안 되는지라 ‘어어, 그렇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안 들은 것보단 나았다. 최소한 누가 어느 직업이고 어디 소속인지는 알 것 같으니까.
“일단, 감사를 전하네.”
특히 지금 나선 양반이 해적이 아니라 도시관련 인물인 걸 안 게 조금은 도움이 된다. 모른다고 해서 내가 반응을 달리할 건 아니긴 한데, 아무튼.
“그대 덕분에…….”
“쓸모없는 허례허식은 집어치우지. 내가 이곳에 온 건 섬의 현 상황과 적군에 대한 정보, 비푸릿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다.”
나는 컨셉에 집중하면서도 한편으론 딴 생각에 잠겼다. 이쪽 바다가 저 위보다 따뜻한 편인가. 별로 춥지는 않은데 괜히 따뜻한 국물이 당기네.
“그, 그렇군. 그렇지만 신세를…….”
“신세를 갚고 싶다면 정보를 가져와라.”
예컨대, 순대국밥 같은 거? 얇게 저민 머릿고기까지 퐁당퐁당 들어간 국밥 있잖아.
이건 정말 생각할수록 아쉽기만 하다. 여긴 왜 국물 요리가 스튜랑 스프밖에 없는 건지.
“두 번째로, 내 앞에서 비켜.”
아, 국밥 먹고 싶다.
* * *
데스브링거는 정말 한결같아서 머리 아픈 사내를 두고 양 관자놀이를 잡았다.
저 사람 저거, 어디 도시 가면 괘씸죄라든가 뭐라든가 해서 현상금 걸려 있을 거야. 분명 걸려 있을 거라고.
“와하하하!!”
와중에 너무 신난다는 듯 웃는 무법자는 더욱이 얄미웠다. 조사해 본 바,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라서 더 그러했다.
그도 법 일부를 우습게 알며 범법도 많이 저질렀지만, 무법자처럼 민간인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는 악질은 아니었다.
“뭐해요, 빨리 따라가요.”
그렇지만 당장은 아군이니까. 챙겨야 하는 얼빠진 신관 나리도 있고.
“어? 그, 그래도 되나?”
“댁 모가지 멀쩡할 방법은 나리 곁에 있는 거거든요? 제가 갈 때까지 절대 떨어지지 마십쇼.”
데스브링거는 다들 무용에 압도된 틈을 타, 벽창호를 얼른 보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제정신을 찾으면 가장 먼저 집중할 것이 저치의 소속인 까닭이다.
이 정도까지 도왔거니와 악마기사의 압도적인 무력을 보고도 설마 죽이려 들겠냐만, 혹시 모른다.
거기에 저 소갈머리는 시비 붙기 너무 좋은지라. 범접하기 힘든 기사 나리 옆에 붙여 두는 게 딱이었다.
“저, 저!”
“으핫, 으하핫, 걸물이야 걸물!”
“호쾌한 사내로군. 그래, 무릇 호걸에겐 저런 프라이드가 있어야지.”
“새파랗게 어린 놈이 싸가지하곤.”
“크으, 말도 못 걸어 봤잖아. 이봐 바람손, 이야기 좀 들려주라고!”
동시에 그는 사람들의 표정에 집중했다.
누가 악마기사의 싸가지에(면전에선 표현 못 할) 불만을 품는지, 누가 감사하는 마음을 우선하는지 등.
저 두 사람이 활약하는 동안 얻어 낸 정보가 그의 혓바닥 위에서 차근차근 놀았다.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십쇼. 악마기사 나리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아까 정도 되는 괴물을 잡는 데 수고는 좀 들어서요. 환경도 워낙 안 좋고. 그래서 신경이 바짝 서신 것뿐입니다요.”
내가 어쩌다 저 양반들 뒤치다꺼리를 하게 된 거지. 물론 가진 바 무력을 높이 사준 덕에 함께한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정보 조사랑 이건 많이 차이 나지 않아? 그는 약간의 허탈감을 가슴 어림에 두며 손을 흔들었다. 악마기사를 따라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가 싫어하는 고위직과 목적 없이 자기만족을 위해 양민을 약탈하는 범죄자들까지.
“한동안 저러실 테니 그동안 저랑 대화하시죠?”
법사 나리 언제 옵니까. 그는 이런 걸 항상 도맡아 주던 아크메이지가 무척, 굉장히 그리워졌다.
“그럼 일단 자네들의 정체부터…….”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텐데.”
저는 아직 한 것도 없건만, 저를 죽일듯이 노려보는 해적을 보니 더 그랬다.
“왜 교단의 인사가 이곳에 있는 거지?”
아, 그냥 좀 넘어가 주지. 이 설명을 몇 번째나 하는 거야?
남모르는 곳에서 데스브링거의 핏대가 섰다.
* * *
나는 반발짝 늦게 내 뒤를 총총 따라온 김치만두를 확인했다. 데브는 그쪽에 남았는지 따라오는 기색이 없다. 바람손이나 그 이외도 그렇고.
“어딜 가십니까?”
글쎄. 나도 거기 있기 싫어서 무작정 나온 거라 잘 모르겠다. 어디 가지?
인퀴지터의 물음에 속으로 답하며 일단 항구를 쓱 훑었다. 아깐 급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항구의 전체 외형이 눈에 들어왔다.
절벽 위의 항구도시, 쏘렌토가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다만 이제 주변을 벼랑으로 한 번 더 감싼 쏘렌토인 거지.
꼬르르륵
그보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어디서 난 소리고.
“죄, 죄송합니다.”
나는 시선의 ㅅ자도 돌리지 않았건만 범인이 직고했다.
죄송할 건 아니었다. 밥 먹은 지 시간이 얼마나 많이 흘렀는데.
내 포만감도 바닥을 기긴 매한가지였다. 즉, 식사할 때가 됐다.
문제는 이 숨겨진 곳에 식사할 곳이 있느냐고.
나는 기죽은 인퀴지터를 끌고 적당히 사람들이 모인 곳을 훑었다. 비밀 항구라지만 이 정도 규모라면 대폿집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헛, 악마기사. 저곳에 주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썩 틀리지 않은 판단이라. 나는 일단 주점이라 적힌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작금은 급식소 정도로 쓰이는 것 같긴 한데…… 외부인인 우리는 그걸 모르잖아? 그러니까 괜찮지 않을까?
“지금은 식사 시간이 아니야. 나가.”
안 괜찮은 듯…….
“영업 안 하는 겁니까?”
“뭔 소릴 하는 거야? 아직 배급 시간 안 됐다고.”
인퀴지터가 바로 시무룩해졌다. 안 그래도 탈수된 만두처럼 뻑뻑해진 녀석이 그러니 괜히 안쓰러웠다.
“음식을 사고 싶다.”
“나참. 이번에 새로 합류한 것 같은데, 식량은 거래 불가 품목이야. 인당 양을 정해 놔서 배급하고 있으니까 배고파도 저녁 때까진─.”
“으아아아악!!”
혹시 몰라 구매라는 수단까지 시도해 봤지만 그것도 안 되나 싶었다. 누군가가 주방을 뛰쳐나와 우릴 응대하던 이의 입을 막지만 않았어도 끝까지 그리 알았을 거다.
“되죠, 되고 말고요!”
“이게 미쳤, 읍!”
“드시고 싶은 건 없으십니까?! 뭐든 마련해 오겠습니다!”
저기요, 지금 당신이 잡고 있는 사람 얼굴이 벌게졌는데요.
“안 되는 게 아닙니까?”
“어휴 두 분은 괜찮습니다! 뭐 주문하실 거라도!”
“…아무거나, 요깃거리면 다 괜찮습니다만.”
인퀴지터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주문했다. 그러자 요리사의 입을 여전히 틀어막고 있는 이가 이번엔 나를 보았다.
“육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것.”
아니, 음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얼굴이 홍씨가 됐다니까. 저거 놔줘야 하는 거 아니야?
“푸학! 이 미친놈아!”
다행히 붙잡힌 이는 본인이 직접 손을 풀어냈다. 시뻘거진 얼굴과 두툼한 손이 우리의 주문을 받은 이의 등짝을 퍽퍽 쳤다.
“주문을 받으면 어떡해!”
“아, 아! 설명해 줄 테니까, 아! 그만 때려!”
“지금 사람 질식사시킬 뻔한 놈이!?”
“실수실수. 아, 테이블에 앉아 조금만 기다리십쇼. 음식 내가, 그만 때리라고!”
그래도 어떻게 사망자 없이 밥 얻어먹을 수 있게 됐으니까…… 된 거겠지?
“…괜찮은 겁니까?”
…눈치 없는 인퀴지터가 되물을 정돈데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나?
쿵.
모르겠다. 나는 치워 둔 테이블을 발로 원상 복귀시킨 후, 의자도 제대로 세웠다. 털썩. 소금기로 꼬질꼬질할 몸이 의자에 얹어졌다.
눈을 굴리던 인퀴지터도 바로 제 옆에 자리 잡았다. 부산스러운 바깥에 비해 가게 내는 한산하니 조용했다.
“저분들이야…….”
“잠깐, 저건 교단의 문장 아니야?”
“괴물을 죽였어…….”
정정하겠다. 가게 내만 한산하고 가게 밖은 곧장 시끄러워졌다.
활약한 게 우리인 건 어떻게 안 건지, 정말 우리 보러 모인 건 맞는지. 하여튼 사람들이 우글우글 밀집한 덕이다.
“……!”
그리고 인퀴지터가 벌떡 일어나 한 곳을 쳐다보았다. 두근두근. 간질거리는 팔의 감각과 고동 소리가 겹쳤다.
“악마가…….”
이제 밥 시켰는데. 또 일거리가.
남에게 고하지 못할 탄식이 일었다.
“악마기사, 그…….”
“어디냐.”
울고 싶은 마음으로 무기를 잡은 채 몸을 일으켰다. 바깥쪽 숨소리가 사뭇 멎은 듯했다.
“제가 느끼기에, 완전한 악마는 아닙니다.”
악마가 악마지 완전하지 않은 건 대체 뭐다냐.
“제가 기억하기로…… 감염이 진행 중인 좀비가 이런 느낌을 풍겼습니다. 정확히 판단하려면 근거리에서 보다 자세히 관찰해야겠습니다만.”
…감염이 진행 중이라면 다행인 거 아닌가? 아닌가?
“제가, 나서도 되는 문제입니까?”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신전이 40년 전 벌인 대학살을 기억하는 자들이 생생하다. 그 과정에서 인간과 좀비를 구분하지 않고 전부 불태웠다 했고.
그런 과거가 있는데, 지금 여기서 사제의 신분으로 ‘어 인간 한 명이 좀비가 되고 있는데 확인해도 될까요?’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앞서 활약한 게 있다지만 저들 입장에선 그냥 싸우자는 소리로밖에 안 들릴 것 같다.
“위치.”
“위치 말입니까? 일단 바깥에, 모인 사람 중에게서 느껴집니다.”
근데 더 문제인 건 뭔 줄 알아? 쟤가 나한테 상담한 것도 모자라 위치를 알려 준 순간 내 컨셉은 노빠꾸로 나갈 거란 점이야!
“음식 나왔…… 어, 어디 가십니까들?”
나 컨셉 그만두면 안 되냐. 근데 정말 그만두면 메이스로 내 머리 후려칠 거지? 알아…….
“비켜라.”
나는 가게문을 벌컥 열고, 검 자루를 단단히 쥔 채 사람들에게 뇌까렸다. 사람들이 식겁하며 우르르 길을 텄다.
“위치.”
“함부로 해를 가하면 안 됩니다.”
“악마를 두고 보진 않는다.”
“그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인퀴지터가 ‘이래도 되는가’와 ‘아니 그치만 악마인데’ 사이를 오가는 면면으로 끙끙 앓았다. 융통성이 있으면 적당히 타협이라도 볼 것을, 그게 안 돼서 저 모양이었다.
“당장 무력을 휘두르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결국 만두가 결단을 내렸다. 녹색 눈동자가 반짝반짝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그것을 각오하고 이 땅에 왔으며, 그것을 맹세했기에 기회를 받았습니다.”
컨셉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 말 자체는 꽤 나쁘지 않았다.
“악마기사라도 이것을 양보해 드릴 순 없습니다.”
크, 용잡이 전까지만 해도 네 할 일 네가 떠올리라던 말이나 듣고 살던 아이가. 이젠 내 말만 따르는 게 아니라 고집도 부리고.
잘 자랐다.
“약속해 주십시오.”
“…네놈.”
정말 잘 자랐는데 내 컨셉은 언제 자라. 성장으로 인한 변화도 뚝배기 깨려 들까 봐 함부로 못 하겠어. 나 울어도 되나?
이런 순간에 칼자루 쥐고 얼굴 일그러트리는 컨셉이 맞나?
“아니, 두 사람은 또 왜 싸울 분위기예요?!”
다행히 우리 사이를 중재해 줄 데브가 등장했다. 순간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