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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64화 (64/389)

◈64화 신이 있다면 (7)

사제의, 그것도 용사란 직함까지 있는 사제의 정화는 직빵이었다. 쏟아지는 금빛 물결에 시꺼먼 액체가 타오르듯 증발했다.

불쾌하면서도 성스러운 광경이었다.

“이야, 저걸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인데, 다시 봐도 장관이네요. 근데 어쩌다 타이밍 맞게 딱 왔답니까.”

별개로, 데브 말마따나 쟤네가 어떻게 온 건지 모르겠다.

아니, 뭐. 배 구할 자금도 있겠다, 용울문처럼 특별한 인재가 필요한 항로도 아니겠다. 못 올 장소까진 아니긴 한데…….

우리가 어디 있는지 알려면 자크라티에 가서 탐문을 해봐야 한다. 더불어 야바드 지방은 교단을 엄청 싫어하는 듯하다.

내 의문은 여기서 기인했다. 쟤네는 어떻게 그 불호를 뚫고 우리의 위치를 알아내 찾아왔을까.

“…….”

나는 해적들의 거처를 털며 내 근처에 있던 바람손의 기색을 슬쩍슬쩍 살폈다. 아까 사제 하나와 멱살잡이 했다가 겨우 떼내졌던 그의 표정은 굉장히 심란했다. 보다 정확히는 오락가락했다.

당장이라도 사제들의 목을 졸라 죽일 것 같으면서 동시에 도움 받았으니 참겠다는 인내심이 느껴졌다.

“끔찍한데.”

반면 교단에 별 사감 없는 모험가들은 다른 것에 집중했다. 인퀴지터가 도착하기 전 검은 액체에 휩쓸려 죽은 해적들의 시체였다.

“이건…… 대체 어떤 저주지?”

“몸을 까맣게 만드는 저주?”

“숯가루를 발라도 이러진 않겠군.”

그들은 새까만 시체를 무기로 콕콕 찔러 보며 설왕설래했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입장─흑사병 같은데 맞겠지?─에선 다소 소름 돋는 행위였다.

이 거리에 있는 나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지만…… 저렇게 접촉하는 건 더 아니지 않나……?

마법사들이 연구 재료가 생겼다며 이것저것 채취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여기는 건가?

“역병의 저주일세. 증상으로 보아 흑사병 같군.”

다행히 이쪽으로 슬렁슬렁 다가온 아크메이지가 모험가들에게 지식을 전파했다. 흑사병이란 말에 모험가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펄쩍 뛰었다.

“예에?!”

“사람을 산 채로 제물화시키는 저주는 다행히 아닌 듯하네만…… 곤란한 일이지. 병을 깨트렸는데 저주가 퍼지다니.”

“산 채로 제물화는 대체…….”

“애초에 흑사병이면 여기 있어선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건 괜찮네. 사제들이 이곳에 있지 않는가.”

아크메이지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지는 말은 내 미간을 미세하게 구길 만한 것이다.

“인퀴지터께서 대규모로 정화한 이상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네. 감염된다고 해도 정화 세례를 받으면 그만이고.”

예전에도 생각했던 거지만…… 참 편리한 세계였다.

어떤 세계는 위생과 순수 의학으로만 상대해야 해서 2천만이 죽어 나갔었는데. 명확한 기준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였던 마녀사냥도 그렇고.

“그래도 무섭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여기가 부럽느냐면 그건 아니다.

마법이랑 신성력이라는 대체품이 있다 해도 기술력이 너무 낮았다. 인권 의식도 바닥이어서 현대인 감성으론 으윽 하게 되는 부분도 많고.

난 역시 내 본래 세상이 좋다. 이곳이 아니라.

“글쎄. 나는 그보다 이 물건의 존재 자체가 두렵네. 당장은 해적의 산채에서 쓰였으니 망정이지, 이것이 대도시에 쓰인다면 어찌 되겠나. 순식간에 퍼져 나가던 좀비 감염은 어떻고.”

“…그, 그렇네요.”

“이런 저주와 물건이 존재한다곤 들어 본 적 없으니…… 아마 이 땅에서 개발된 것일진저. 통탄스러운 일일세. 비푸릿, 그 작자는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알기는 알까.”

한편, 아크메이지는 계속해서 혀를 끌끌 찼다. 내용만 들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하긴, 그걸 알았다면 용을 타락시키는 데 일조하지도 않았겠지.”

“네?!?!?”

“아아, 자네들은 모르겠군. 용의 타락이 악마숭배자들의 짓임이 밝혀졌네. 추적한 결과 야바드 지방에서 시작되었음도 알게 되었지.”

그럴 만하긴 한데, 용이 타락한 이유가 여기서 벌어지는 일의 연쇄 작용이었어?? 어쩐지 용이나 야바드 지방이나 부가 퀘스트치곤 너무 스케일 크더라. 이거 사실 스토리였냐.

“악마숭배자와 손잡은 이에게 몬타타 섬이 통째로 넘어간 걸 고려하면…… 그 부정 의식은 이 섬의 사람들을 제물 삼아 벌어진 것이 아닐까 싶네. 물론 아직은 추측 단계네만.”

그쯤 되면 추측이 아니라 거의 확정으로 본다. 내 오랜 게이머 짬밥도 저게 맞다고 외치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심란해졌다.

“이봐.”

그러던 와중, 바람손이 입을 열었다. 아크메이지가 이끄는 마탑의 마법사들과, 인퀴지터가 리더인 교단의 사제단이 등장한 이래 욕이 안 들어간 최초의 문장이었다.

아, 생각해 보니 최초까진 아닌가. 아까 도주하던 해적들 잡으라고 명령 내렸을 때도 욕은 안 들어갔으니까.

사로잡은 놈 중 직급이 높다 싶은 놈들 빼곤 죄다 모가지 썩둑하라던 말에도 안 들어갔고.

“이젠 말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사건이 그만큼 커졌다는 건 잘 알겠어. 그렇지만 네놈들이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여기에 온 거지?”

너무 사설로 빠졌군.

다시 본 궤도로 돌아와서, 나는 해적의 거처에 있는 편지와 계획서 따위를 살피면서도 바람손과 아크메이지의 대화에 집중했다.

내가 끼어들 수 없다곤 하나 분위기가 보통 심상치 않은 게 아니었다. 자칫했다간 바람손이 아크메이지의 배에 칼침 놓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안 좋은데…….”

봐라, 데브마저도 저러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라, 일단 그 부분은 인퀴지터께서 힘을 내셨네.”

“……!”

“그리고 자격 부분은…….”

“설마, 너 이 자식─!”

“저 부르셨습니까?”

심지어 아크메이지의 발언은 너무 중의적이었고, 가장 안 좋을 타이밍에 인퀴지터가 끼어들기까지 했다.

상황을 지레짐작한 바람손의 눈이 벌게졌다.

잘그락.

인퀴지터의 쇄자갑 위의 천 장식이 바람손의 손에 단단히 쥐어지며 그대로 멱살이 잡힌 건 다음 순간이었다.

“……?”

“너, 너 이 땅에 와서 뭘한 거야!”

“예?”

“내 도시에 뭘 했냐고!”

“도시…… 말인, 입니까? 대화밖에 한 게 없다, 아니 없습니다만.”

그사이 인퀴지터가 멀뚱멀뚱 대답했다. 반말과 존대를 오가는 건 둘째 치더라도 말투에서 느껴지는 태평함에, 정확히는 눈치 없음에 데브가 ‘찰싹’ 하고 제 안면을 짚었다.

사제들은 의외로 이쪽을 바라보기만 할 뿐 나서려는 눈치들은 아니다. 마법사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신나게 구경 중이지만.

“거짓말! 그들이 너희와 순순히 대화했을 리 없어!”

“확실히, 그렇긴 했다, 했습니다. 대부분이 대화를 완강히 거부하시더군요.”

아, 역시 우직한 김치만두. 저걸 단호히 긍정하네.

“그럼, 정말로─!”

“자, 자! 진정 좀 하십쇼, 바람손 나리!”

인퀴지터의 서툰 언변에 바람손이 폭발하려 들었을까. 다급히 튀어나간 데브가 바람손을 만류했다.

“이거 놔! 저 자식을 당장!”

“아이고, 나리 머리 좀 제대로 붙잡으십쇼. 설마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제가 뭘 잘못 말했습니까?”

“댁은 입 좀……!”

하하, 이거 개판이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무언갈 찾는 걸 멈추지 않았다. 곧 뒤적거린 끝에 지도라 할 만한 게 발견되었다.

「❖ 자크라티를 겨냥하는 송곳니

∎ 비푸릿 일당의 새로운 근거지 찾기

∎ 지도에 표기된 산채로 이동

∎ 보너스: 비푸릿 살해」

근거지 파괴와 해적 제거는 옛적에 갱신되어 사라졌고, 그 후 생겼던 미션도 지도 발견으로 지워졌다. 대신 새로 자리 잡은 건 이동 미션이었다.

나는 맵을 들고 몸을 돌렸다. 소리로만 파악한 상황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소리로 파악한 것보다 더 난장판이었다.

“진정하게.”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네. 맹세할 수 있네.”

“……!”

다행히 아크메이지가 강경히 말한 끝에 바람손이 날뛰는 걸 멈췄다. 나설까 말까 어정쩡히 굴던 선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크라티의 시민 중 다친 이는 아무도 없네. 물질적인 피해도 마찬가질세.”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온 거지?”

“그저 대화를 했을 뿐일세.”

“거짓말. 자크라티에 교단과 대화할 사람은 없어!”

“그건 맞는 말일세. 모두가 우리와의 대화를 기피했지. 바다에서 우리를 보고 다가온 배에서도, 어렵사리 도착한 도시에서도 말일세.”

“그럼 대체 어떻게─!”

“그렇지만, 그래도 대화를 했네. 그저 그랬을 뿐일세.”

아크메이지는 그녀의 지팡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무기를 든다면, 결국 과거의 반복일 뿐이지 않은가.”

바람손의 몸이 덜컥 흔들렸다.

“네놈들이 무슨 자격으로 그 일을 입에 담아─!”

음, 감이 아예 안 잡히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정확한 상황을 모르다 보니 바람손의 분노가 잘 와닿지 않는다.

사실 와닿았어도 컨셉상 외면할 확률이 좀 더 높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지도 든 손을 옮겨, 검을 뽑았다.

아크메이지와 바람손이 둘이서만 해결을 본다면 모를까, 선원들까지 칼을 들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물며 그들은 내가 가야할 방향까지 막고 있었다!

콰앙!

해서 출수한 검으로 바닥을 갈랐다. 데브가 붙잡고 있던 바람손 바로 앞 돌바닥이 찢겨지듯 벌어졌다.

“……!”

장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원한을 정리하든, 무엇을 하든 내 알 바 아니다. 그러나 나를 방해하면 모조리 베겠다.”

그 속에서 오직 나만이 건조하게 말을 뇌까렸다. 내 시선이 닿은 곳마다 표정들이 헝클어졌다. 주로 자크라티 출신들이 그랬다.

신전은 헝클어짐보다는 이를 악무는 쪽에 가깝다.

“저들은! 저들은 40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을 학살했어!”

그리고 끝내 바람손이 발악하듯 외쳤다.

“좀비가 된 자들, 좀비가 아직 되지 않은 자들, 좀비가 될 일 없는 자들 전부! 통째로 불태운 미치광이 살인귀들이라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할퀴고 간 목소리는 버석버석하고 짠맛이 났다.

“그런데, 그런데 저것들을 어떻게 용납해!”

하, 시발.

나는 바람손의 말을 이해하는 즉시 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그것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X같은 상황이었다.

“본토라면 괜찮아. 하지만 이 땅은 아니야! 저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이 땅을 밟을 수 있어! 이제 겨우 저들이 낸 상처가 사라지고 새싹이 난 땅인데, 그날의 재 냄새가 이제야 지워진 땅인데! 무슨 자격으로!”

아니, 대학살이란 단어가 나오고 교단을 향한 적대감이 보통이 아닌 시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그걸 진짜 귀로 확정받으니 기분이 참…….

거기에 40년 전이면 한 세대 하고도 조금 전이란 건데. 이건, 이건…….

으아아악. 난, 난 몰라. 난 여기서 편 못 들어. 지금 사제들의 도움이 있으면 좋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대학살 벌였던 단체를 피해자들에게 용납하라고 어떻게 말해!

난, 난 못 해! 나야말로 여기서 제일 자격 없어!! 난 3자라고!!

“그래서, 어쩌란 거지?”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컨셉을 입에 욱여 물었다.

차라리 컨셉으로 답이 정해진 게 다행이다 싶다가도 몹쓸 짓하는 기분에 그냥 기절하고 싶어졌다.

한국인으로서 비슷한 역사가 있다 보니 더 그랬다. 내가 바람손 입장이었으면 이미 고소장 나갔다.

“뭐?”

“죽이고 싶으면 죽여라. 나는 네게 용납하라고 한 적 없다.”

“……!”

아냐, 아냐 컨셉 다행 아니야! 답이 완전 쓰레기잖아! 흐아아악.

“아니면, 복수의 형태를 모르겠나?”

함에도 컨셉은 이어져야만 했다…….

“정 모르겠다면 저놈들의 살점을 찢고, 뼈를 부수어, 심장을 뜯어내라.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찾아 그 목을 베고 머리를 짓밟아 뭉개란 말이다.”

나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한 발 한 발 바람손에게 다가갔다.

나보다 키가 작은 그와 근거리에 시선을 맞대려면 고개가 조금 숙여져야 했다.

“그게 복수다.”

가장한 새빨간 광기가 홀린듯 토해졌다.

“하나 그럴 용기가 없다면, 내 복수를 방해하지 마라.”

아흐흑. 죄송합니다. 제가 컨셉을 인성 파탄으로 잡아서 죄송합니다.

근데 인성 파탄이 아니었어도 제가 딱히 할 말은 없었을 것 같아요. 이런 예민한 문제에 어떻게 함부로 입을 얹어.

심지어 지금은 상황이이이!! 가해자들 꺼져 하기엔 사람들이 어마무시하게 죽어 나가고 있는 게에에!!

“…….”

나는 침묵하는 바람손을 두고 걸음을 돌렸다. 진짜 가슴이 너무 미어졌지만 그렇다고 이미 토해 낸 말을 주울 수도 없었다.

내 가던 길의 선원들이 슬그머니 옆으로 비켜섰다.

“이봐, 악마기사.”

한참만이랄지. 내 걸음이 산채를 벗어나 언덕의 가장 위, 벼랑에 다다랐을 때 바람손이 입술을 떼었다.

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사위가 워낙 조용하고 내 청력이 뛰어난 덕에 어느 정도 들리긴 했다.

“당신이 악마에게 잃은 건 뭐야?”

무엇보다 내용이 내용이어서.

“네놈은 고향이라도 남았군.”

나는 양심에 손을 얹고 이 답만은 제대로 해주었다.

이게 제대로냐고 물으면 사실 아니지만…… 그래도 ‘알 바 아니다’보다는 낫잖아.

원래였으면 그거 했어야 한다. 그래도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어서 11글자로 늘려 준 거고.

대신 이제 대가로 뒤통수 조심을 해야 할 텐데, 그건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니더라도 나는 일단 그럴 거라고 믿어본다. 아니면 그냥 뒤통수 엔딩이니까. 따흐흑.

* * *

“네놈은 고향이라도 남았군.”

바람손은 건조하게 내리깔리는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무거운듯 불쾌한듯, 그렇지만 참으로 선명한 동질감이 목구멍에서 지글지글 끓었다.

혹은 감히 들고 마는 동정이나 연민 따위가.

“선장…….”

“빌어먹을…….”

마음 같아서는 악마기사의 말마따나 저놈들의 살점을 찢고, 뼈를 부수어, 심장을 뜯어내고 싶다.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이웃을 불태우고, 그의 유년 시절을 통째로 망가트린 놈들을 이 땅에서 쫓아내고 싶다.

그러나, 그러나…….

“빌어먹을!”

악마기사의 말이 맞다.

그에겐 고향이라도 남아 있었다. 그는 고향이라도 있었다. 고향이 있었다.

고향이, 그의 도시가, 그가 사랑하는 세계가 아직 있다.

이대로 가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그의 사랑이 여즉 있단 말이다…….

“…대답해.”

아아. 악마기사가 있으니 괜찮다고, 교단 따위 없어도 그의 검격이면 비푸릿 일당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바람손은 어리석은 이가 아니었다.

악마기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무력은 될 수 있어도,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모든 전투의 주역은 될 수 없다.

“정말로, 정말로 대화만 해서 이곳에 왔어?”

그래서였다. 그래서였다…….

그는 울분을 삼키며 기어코 묻고 말았다.

“그렇다네.”

“그들이 정말로 허락을 해줬다고?”

“이를 말인가.”

“어떻게? 어떻게 허락을 받았는데?”

“…주장과 의견을 갖추어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지금 장난해?”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바람손은 빌어먹을 소리나 지껄이는 종교인을 바라보았다.

개같게도, 그 이의 눈은 너무 올곧았다. 그가 사랑하는 누군가와 닮은 눈이었다.

“이번 일에 교단에 나서야 할 근거는 없습니다. 해서 주장과 의견입니다.”

모든 걸 잃은 그를, 저 도시의 아이들을, 사람들을 구했던 여인의 눈이 꼭 저러했다.

“그리고, 자크라티의 분들은 그런 제 억지를 들어주었습니다.”

아, 어머니.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을 벗어날 수가 없어. 당신이 나를 구하고 거둬 키워 준 지금도 그 과거 하날 벗지 못하겠어.

“저희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꼭 벗어날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렇지?

“그러니 부디, 부탁드립니다.”

용서하지 않아도 기회는 줄 수 있는 거지?

“저희에게 한 번의 기회를.”

나는 당신들마저 도저히 잃을 수 없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죄를 저지르지 않을 기회를, 부디.”

당신들도, 그래서 허락해 준 거지……?

“우린 너흴 용서하지 않아.”

그는 눈물을 씹어삼켰다. 당장이라도 저들을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가슴 한편에서 울부짖었다.

“영원히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 복수보다 자크라티가 더 중요해서. 송두리째 날아간 13년의 원한보다 이후 쌓아 온 40년의 삶이 너무 소중해서.

그의 형제들이, 그를 거둬 키워 준 어머니가, 그들이 있는 저 땅이…… 그에겐 너무 귀한 것이라.

“시발, 그 잘난 힘으로 저 개자식들을 죽여.”

그는 결국 기회를 내주기로 했다.

“죽여서, 제발 이 땅을 구해 줘…….”

보물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건 모든 해적들의 본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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