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신이 있다면 (6)
몬타타로 넘어가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나 자신만의─그러니까 멀미와의─싸움이었을 뿐이지.
“협곡이 보인다!”
그래도 가로림량에 도달하는 데 성공은 했다. 섬과 섬 사이를 흐르는 바닷길이 유독 푸른빛을 발하며 넘실거렸다. 하늘은 상황에 맞지 않게 대단히 화창하다.
“화살 조심해!”
해협에 좀 가까워졌을까. 가로림량을 둘러싼 절벽 중 하나로부터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화살이 날아온 족적을 쫓아가면 곧 절벽에 지어진 산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갯가부터 해서, 계단식으로 진 바위들을 타고 올라가 절벽 한 면을 차지하다시피 한 진터였다.
“방패 들어!”
그쯤 되어서 갑판에서 젠체하던 제 몸이 우뚝 섰다. 파박파박. 아까부터 날아오기 시작한 화살의 소리는 장대비의 것과 상당히 흡사하다.
“으와, 저거 정말 뚫을 수 있는 겁니까?!”
어허, 믿음이 약하다.
나는 날아오는 화살 중 내 몸에 닿을 것들만 쳐내며 뱃머리로 뚜벅뚜벅 나아갔다.
돛이 바람을 타는 것이든, 아니면 해류를 따르는 것이든 배는 계속해서 가로림량과 가까워지는 중이다.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30m 이내에 존재합니다.」
「❖ 자크라티를 겨냥하는 송곳니
∎ 비푸릿 일당의 근거지 파괴
∎ 해적 제거 0 / ??
∎ 보너스: 비푸릿 살해」
혹은 산채에서 나온 적들의 배와.
“적들이 온다! 무기 들어!”
“하, 이거 정말 괜찮은 짓인지 모르겠어.”
“약한 소리 하지 마. 저 양반이 다 죽이고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우리끼리 버틸 수 있는가가 문제는 아니고?”
선원과 모험가 일부가 그런 소리를 지껄였다. 나 들으란 소리는 아니겠지만 눈치는 좀 보인다.
나쁜 의미로가 아니라, ‘아 알았어, 빨리할게.’라고 웃으며 답하고 싶은 정도로.
“나의 검에게 승리를, 저 하늘에 영광을……!”
그래서 검을 치켜세우고 전투 전 예를 치뤘다. 휙. 화살 하나가 내 귀 바로 옆을 스치고 다른 하나는 내 발치에 박혔다.
내 검이 아래로 내려갔다.
“죗값을 치를 때가 왔다.”
직후 넘어지듯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걸음을 내디뎠다. 발바닥에서 판자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는 듯하면 몸은 이미 폭발적으로 쇄도하고 있는 상태다.
쿠웅!
철썩!
난간을 밟고 허공을 비상한 내 몸이 다가오던 적의 보트에 요란히 떨어졌다.
“시발 뭐야!”
“으아악!”
“미친, 주, 죽여!”
보트가 바닷물을 밀어내며 아래로 조금 내려앉고, 기존의 탑승객들이 욕을 와락 토해 냈다.
비산하는 물보라와 출렁이는 보트, 욕설을 지껄이며 각자의 반응을 보이는 해적의 모습이 일순 슬로우 모션처럼 제 시야에 비쳤다.
서걱!
그러나 그 모든 걸 감상하며 보낼 시간은 없다. 나는 검을 휘둘러 그 장면에 핏물을 더했다.
착지 지점상 뒤에 있던 한 놈은 베지 못했지만 상관없다.
균형 잃고 난간에 찰싹 달라붙은 게 느껴지거든. 저 정도면 나를 타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탁, 타닥!
하물며 내가 배의 출렁거림이 다 가시기도 전에 다른 쪽으로 넘어가서야.
쿵!
“히익!”
“이 미친!”
도움닫기를 통해 다음 보트로 넘어간 나는 방금과 똑같이 굴었다.
기겁하는 놈들에게 칼침을 먹여 주고, 다음 발판으로 넘어간다.
마치 목장 안에 기어들어온 늑대가 양우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과 비슷했다.
물론 한 번 휘두를 때 정확한 일격보단 많은 타격을 목적으로 하고, 두 번 이상 칼질하지 않고 넘어가다보니 사망자 자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죽은 사람보다 바다에 빠진 사람과 검상에 끙끙대는 사람이 각각 더 많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겐 그것으로 충분했다. 애초에 내가 원했던 것은 뭍에 도달하기 위한 발판 겸 저들이 우리 배에 닿는 걸 지연시키는 거였다.
이 정도까지 무력화해 두면 선원들도 잘 버틸 것이다.
“이 새끼!”
와중에 내 패턴을 익힌 놈이 내 착지에 맞춰 무기를 휘둘렀다. 나쁜 센스는 아니었다.
단지 내게 ‘생존본능’이란 스킬이 있었을 뿐.
“죽─!?”
퍼엉!
스킬이 가르쳐 주는 것을 따라, 내 몸이 보트에 닿는 순간 납작 엎드렸다.
반동으로 보트 앞부분이 치솟아 오르며 날 공격하려던 이의 검로가 엉뚱 맞은 허공을 갈랐다.
철썩!
이어 반작용으로 내가 딛고 있던 부분이 솟구쳐 오르고, 내 몸도 덩달아 떠올랐다.
앞서 타이밍 맞게 발에 힘을 주었던지라, 내 몸은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중이다.
퍼억!
“크헉!”
내 무릎이 적의 턱을 올려차고, 넘어지는 적에 맞춰 펴진 다리가 보트 끝부분을 강하게 밟았다.
쿵! 그 충격으로 배가 뒤집어졌다. 휩쓸린 이들의 몸이 허공을 날아 바다에 입수했다.
“으아악!”
“와악!”
그러나 배가 뒤집힐 적이면 나는 이미 뭍으로 몸을 던진 상태라. 자업자득이라며 그들에 대한 동정을 거두고 갯바위에 착지했다.
“막아!”
내 앞에는 어떻게든 세워 낸 방책이 있다.
콰직!
나는 발로 그것을 부수고 들어가며 손을 뒤로했다. 칼자루가 손에 착 감긴다 싶으면 이제 은백색 검날이 바깥으로 나오며 햇빛을 쪼갠다.
“저 괴물은 뭐야!”
“죽여, 죽이라고!”
이곳은 악마가 없나 보지? 나는 인간뿐이 가득한 병영 속으로 진격하며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확신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하나, 그렇다고 인간 외의 것이 보이진 않았다.
서걱!
해서 일단 마력의 절반을 부어 참격부터 갈기고 보았다.
보스몹한테 박힐 만큼 딜이 잘 나오는데, 마력을 투자한 만큼 범위도 늘어나는 스킬을 아낄 이유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물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남은 마력은 되도록 아끼겠지만…….
그래도 광역기는 사랑이다. 이 스킬이 없던 전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어, 어……?”
“너, 너……?”
다만 이 스킬에도 약간의 단점은 있으니. 스킬을 펼친 직후 펼쳐지는 풍경이 좀 많이 그렇다.
촤악!
“커헉!”
특히 사람이 사/람이 되는 과정이 참…….
잘린 단면 자체도 썩 징그러운 마당에 단체로 장기 자랑을 하고 있어 봐야 정신 건강만 안 좋아질 뿐이다.
“괴, 괴물…….”
그렇지만 감상에 빠질 정도로 여유가 있냐면 그것도 아닌지라. 내가 미적거려 봤자 여기 있을 시간만 늘리는 셈이다.
나는 저것들이 보기 싫어서라도 새까만 검격이 양단한 세계를 서둘러 가로질렀다.
참격이 훑고 간 모든 것은 살짝 어긋난 채로 끝나거나 윗부분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추락하는 결말을 보여 준다.
군화가 빨갛게 젖은 바위를 밟고 위로 올라갔다.
“쏴, 쏴!”
그쯤 되어서 본래 배를 노리던 화살이 대상을 바꾸었다. 티딕, 틱, 티디딕. 비처럼 쏟아지는 것들이 내가 지나간 자리를, 혹은 지나갈 자리를 마구 두드렸다.
에임이 좋다곤 빈말로도 할 수 없으나 수가 수다 보니 제법 거슬렸다.
“올라오기 전에 죽이라고!”
다들 나를 무슨 보스몹 대하듯 여기네. 듣는 플레이어 기분 나쁘게.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껑충껑충 뛰어 화살을 피했다. 곡예하듯, 혹은 묘기를 부리듯 바위를 밟고 뛰어오른 내 몸이 두 번째 진영에 다다랐다.
얘네도 검으로 다 벨까, 사람 피로 피바다 되는 건 기분이 영 그런데 주먹으로 팰까.
찰나간 고민이 이어졌다. 간질간질. 오른팔에서 자리자리한 느낌이 난 건 그 때였다.
서걱!
악마와 연관된 놈들인데 자비를 베풀 순 없지.
나는 검을 집어넣는 대신 그것을 휘둘렀다. 아깝다는 이유로 마력조차 두르지 않은 칼날이 사람의 살갗을 파고들고 근육을 찢은 후 뼈를 갈랐다.
콱!
“으헉!”
왼팔에 마력을 부으면 한 손으로도 투헤더를 손쉽게 휘두를 수 있음을 깨달은지라 오른손은 가끔 적의 멱살이나 머리를 쥐고 던져 버린다.
“시발,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난 거야!”
채앵!
검이 막혔다. 나는 오른편에서 짓쳐드는 적의 발을 걸고 오른쪽 뒤편에서 덤벼드는 적의 검을 건틀릿으로 쥔 채, 왼손에 힘을 더 싣었다.
그그극. 밀려난 검이 기어코 가속도를 얻어 왼편을 전부 베었다. 나와 검을 맞대던 자, 왼편에서 덤비던 또다른 해적 여럿이 피 흘리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끼익!
동시에 오른손으론 쥐고 있던 적의 검을 끌어당겨, 적의 또다른 공격을 막아 세웠다.
왼편을 처리하며 일이 없어진 투헨더가 수평이 되도록 눕혀진 채 내 오른편을 찔렀다.
“커헉!”
공격하던 놈은 이걸로 끝이고. 나는 여전히 붙잡힌 검을 더욱 세게 당겼다.
그리고 검을 온전히 빼앗았을 때, 빼앗은 검의 칼자루로 빼앗긴 녀석의 머리를 찍었다. 인정사정없이 얼굴 한가운데를 찍었으니 최소한 코뼈 골절에 조금 더 가면 뇌진탕이다. 더 신경 쓸 필요 없다.
댕그랑.
하므로 뺏은 검을 내던지고 앞을 보았다.
지금을 노리겠다는 양 달려오는 이가 둘, 겁 먹고 미적거리는 것들이 여럿.
내 투헨더가 절명한 해적의 몸에서 빠져나와 핏물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저리 비켜!”
한데 내가 달려오던 이중 하나를 걷어차고 하나의 목을 베었을 때, 위쪽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영역에서 잘도 날뛰었겠다, 애송이!”
“두목님!”
곧 등장한 건 2족 보행 물소, 그러니까 샤기족 해적이라.
떡 벌어진 어깨 하며 2.5m에 달할 신장 따위가 유독 강인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벚꽃 휘날리는 섬에서 장군 내지 국왕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두목!”
“두목님이 오셨다!”
“네놈은 이제 죽었어!”
그보다 팔이 영 간질간질한 게 느낌이 좀 껄끄러운데.
나는 당장이라도 물소의 등장에 환호하는 해적들을 두고 투헨더를 곧게 잡았다.
“네 몸을 갈가리 찢어다가 저 바다의 고깃밥으로 던져 주마!”
“저 괴물을 죽여 주십쇼!”
“죽어라, 죽어라!”
해적들 드럽게 시끄럽네. 나는 우아우아 거리는 놈들을 두고 금방이라도 돌진할 듯한 물소를 살폈다.
그러다 문득, 물소의 승모근─목 대신 승모근만 있더라─에 도드라진 핏줄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관찰하면 길게 늘어진 귀걸이와 땋은 머리 아래에도 핏줄이 점점 툭 튀어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곤봉으로 머리를 으깨 주마!”
뭐라고 해야 할까. 혈관이 과도하게 확장하고 있는 게 아무래도 뭔갈 복용하거나 저지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여파는 아마도…….
우득, 우드득!
“우아아아아!!”
내게 좋은 쪽은 아니겠지.
나는 헐크 변신하듯 한순간에 피부가 확장되고 몸집이 부풀어 오르는 물소를 보며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공포?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냥 저 새끼 저거 뭘로 도핑했기에 벌크업이 저리 되나 싶었을 뿐이다.
저것도 악마 계약 뭐 그런 건가?
“악마와 손잡은 잡것이…….”
별개로 그런 고민도 들었다.
아직 마력은 남았는데 그걸로 한 방에 처리할까. 아니면 마력 없이 상대할까.
물론 정황상 쟤가 이곳 보스고, 보스에게 스킬 쓰는 게 맞긴 한데…… 아니, 앞서 상대한 보스들이 워낙 위용 넘쳐야 말이지.
역병귀나 용이랑 비교하면 너무 쟤가 너무 약해 보인다. 걔네보다 후반부라서 레벨이 더 높을 거란 메타적 요소를 고려해도…… 뭐랄까, 좀 그렇다는 거지.
속된 말로 너무 X밥 같달까. 스킬 안 써도 딜 박힐 것 같달까.
스토리 시작한 지 이렇게나 많은 날이 흘렀는데 잡몹들이 아직도 평타 일격으로 잡히는 걸 보면 보스에게도 여전히 평타가 먹힐 것 같고.
“죽여 주마! 애송이 놈!”
그러나 내 고민은 결론이 내려지기 전에 끊겼다. 근 3m에 달한 물소가 곤봉을 치켜세운 채 내게 달려온 까닭이다.
“흐아아압!”
좋아. 일단 스킬 없이 한 방 때려보고 딜 안 박히면 쓰고, 잘 박히면 없이 가자.
솔직히 보스 원턴킬보다 쫄 스무 명을 한 번에 잡는 게 시간 단축엔 더 유용하잖아. 쫄들이 산개하면 그것만큼 귀찮은 것도 없어요.
콰앙!
어쨌거나 물소의 나무 곤봉─철을 두른─이 바닥을 두드렸다. 얼마나 무겁고 단단한지 바위에 깨지긴커녕 바닥에 흠집이 조금 났다.
“주제를 알아라.”
그러나 내 몸은 이미 타격 지점에서 약간 비껴 난 상태이니.
나는 덩치만 커졌을 뿐, 뇌는 오히려 오그라든 듯한 적을 향해 투헨더를 치켜세웠다. 단두대의 칼날처럼 서늘하게 빛난 검이 햇빛을 자르고 물소의 머리와 팔을 노렸다.
서걱!
“끄아악!”
“두, 두목의 팔이!”
내 허벅지보다 더 두꺼운, 어쩌면 내 캐릭터의 허리만 할 두께의 팔뚝이 바닥으로 철퍽 쏟아졌다.
머리는 안타깝게도 자르지 못했다.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무렴 체급차가 나도 너무 났다. 놈이 곤봉을 내려찍느라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허리를 굽혀도 나보다 시선이 위일 정도였다.
거기에 놈의 반사신경도 썩 나쁜 편은 아니라서.
내가 옆으로 틀어 검을 치켜세우는 순간, 내가 할 일을 알아차리고 몸을 빼려 들었다. 내가 본래 잘라 내려 한 지점보다 더 아래, 그러니까 손목에 가깝게 잘린 것이 그 증거다.
“두, 두목!”
“이 썩을 놈의 새끼가!”
애송이에서 썩을 새끼로 단번에 등급 상승인가.
나는 필요 없는 영광을 바닥에 흩뿌리며 단번에 놈을 쫓았다. 뒤로 물러났던 물소가 이를 악물며 한 손으로 곤봉을 휘둘렀다.
나 역시 땅을 디딛 발에 힘을 주며 투헨더를 움직였다.
콰직!
물소의 곤봉과 내 검이 교차했다. 곤봉에 둘러진 철이 찌그러지고 이내 찢겨 나가며, 나무가 그대로 절단되었다.
곤봉의 대가리가 동강나며 그대로 허공을 날았다.
“이런, 시발.”
순간 물소의 입에서 그런 욕이 튀어나왔다. 참 구수한 발음이었다.
하나 심정 자체는 나도 비슷하다 야…… 아니, 이쪽은 욕까진 아니고 약간의 허탈함 정도인가.
아무렴 역병귀랑 용 외에 모든 보스가 다 그렇긴 했지만, 스킬 안 쓰고도 이렇게까지 딜이 박혀서야…….
좋으면서도 참 싱숭생숭하다.
“이, 인간이 아니야…….”
“도, 도망가!”
“시발 저런 게 온다고 말한 적 없잖아!”
각설하고, 내 무용을 본 해적들이 도망을 시작했다. 마지막 희망까지 꺾여 버렸다곤 하지만 두목을 두고 탈주하는 부하들이라니. 범죄자의 유대감 참 훌륭하다.
“젠장, 이 새끼들이!”
도망가는 부하들의 모습에 물소도 감명받았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내 고막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라, 나는 소음의 근원지를 처단하고자 기꺼이 검을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리고 내 다리가 내 몸을 앞으로 튕기듯 쏘아보내 줬을 때, 나는 숨을 삼키며 검을 휘둘렀다.
브레이커. 검은 기운을 두른 검이 물소의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그대로 쪼개 냈다. 핏줄기가 튀는 건 놈의 몸뚱이가 두 쪽으로 갈라져 바닥에 쓰러진 이후다.
쨍그랑.
근데 지금 뭐 깨지는 소리가…….
화악!
“……!”
별안간, 물소의 손에 들려 있었고 몸이 두 쪽 남에 따라 같이 바닥으로 추락한 항아리가 새까만 액체를 토해 냈다.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깨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항아리가 떨어진 지점은 바로 내 근처였다. 나는 피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가장 먼저 새까만 액체에 휩쓸렸다.
역병귀 때처럼 액체는 내 발목까지만 적시고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흐아악!”
“도망쳐!”
“크헉!”
아니다. 정정하겠다. 나만 신발 제대로 신고 있어서 피한 듯.
“빌어먹을 악마 새끼들이……!”
아니이!! 보통 이렇게 되면 ‘어라, 얘 뭔 짓 저지르려고 하지 않았나? 흠. 상관없겠지.’하면서 상큼하게 일 마무리하는 게 정석 아니냐고!
다음부터는 베기 전에 걔가 뭐 드는지 일일이 확인한 후 빼앗은 다음 죽여야 하는 거야!?
나는 순식간에 불만을 다다다 떠올리며 이 사태의 해결 방법을 찾았다. 해적들이고 자시고 여기 땅 자체가 망하게 생겼다.
“기사 나리!”
“……다가오지 마라!”
흐아아악. 데브야 안 된다! 여기 오면 안 된다!!
“저주다!”
“예?!”
나는 일단 액체를 성큼성큼 밟으며 달렸다.
해적들은 두목의 트롤로 알아서 자멸하고 있으니 패스. 불로 정화하는 것도 저 액체가 불로 태워지는지 불확실하거니와 불씨를 구할 곳이 없으니 그것도 패스.
더구나 액체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하필 경사와 층까지 져 있어서 조금만 늦어도 우리 배에 액체가 다다를 터였다.
지금은 우리 배 구하는 게 먼저다.
“당장 자리를 벗어─.”
“악마기사!”
어라, 그런데 왜 익숙하지만 며칠 못 들은 목소리가.
“제가 왔습니다!”
나는 바위를 막 짚고 올라오는 이의 얼굴과, 더없이 눈에 띄는 머리카락을 발견하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안 그랬다면 웃었을 테니 어쩔 수 없었다.
“이제부턴 제가 나서겠습니다!!”
우리 HP 털이범 왔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