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58화 (58/389)

◈58화 신이 있다면 (1)

“악마……?”

그것을 목격하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진 건 바람손이었다.

그 어떤 바람과 파도도 그를 무릎 꿇리지 못했으나, 악마는 달랐다. 그것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그를 겁에 질리게 했다.

40년 전, 절망과 광기만이 가득했던 순간이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왜? 왜 또다시?”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련한 선원 하나가 머리를 붙잡으며 뇌까렸다. 그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는 한마디였다.

바람손의 절규를 대신하는 외마디였다.

“배를 더 빨리해라.”

그러나 그 적막 속에서 밝게 발언하는 자가 한 사람.

“당장!”

바람손은 홀린 듯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저 쓰레기들을 죽일 수 있게!”

한쪽뿐인 회색빛 눈에는 누덕누덕 기워진 광기와 살의, 증오와 비틀린 희열이 넘실거렸다.

오롯한 파멸의 색이었다.

* * *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악마가 등장했다. 그 시점에서 내가 해야 할 건 단 하나뿐이었다.

「자크라티: 람차반 선착장」

「❖ 자크라티를 겨냥하는 송곳니

∎ 자크라티로 이동

∎ 비푸릿 일당의 근거지 파괴

∎ 악마 제거 0 / ??」

악마란 악마는 죄 때려잡는다.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 버리겠다.”

나는 컨셉에 몰입한 채 그딴 말이나 지껄이면서, 한편으론 냉정히 도시를 살폈다. 가장 급한 건 누더기골렘이 보였던 성일 테고.

성과 가장 가깝다던 항구도 썩 정상은 아닌 게 가볍게라도 정리는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선창 어귀에 악마와 인간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좀비│기생 악마에게 기생당한 가엾은 이들. 자아를 잃은 채 조종당한다.」

흐리멍텅한 눈의 좀비들은 인간보다 수가 적었으나 인간들이라고 마냥 유리한 건 아니라서.

“비푸릿 놈들이!”

빨간 천을 상징 삼은 인간들이 좀비들과 함께 항구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어째서 좀비의 공격을 받지 않는진 의문이나, 대충 악마계약자라고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배를……!”

나는 뱃전에 굴러다니던 통 하나를 부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판자 하나를 집었다.

쾅!

내 몸이 약간의 도움닫기를 통해 난간을 으스러트리며 널찍히 뛰었다. 첨벙. 내가 던진 판자가 바다에 떨어지며 내 발판이 되어 주었다.

“나의 검에게 승리를.”

그리하여 내 몸이 선착장에 닿았다.

“저 새낀 뭐야!”

빨간 천을 몸에 소지한 것들이 그리 외치고, 나는 선창을 내달렸다.

우으아악!

배로 도망치던 인간을 쫓아 교량 위에 올랐던 좀비 몇 마리가 내게 모여들었다.

입가엔 피와 살점이 흥건하고 손에는 도끼와 작살 따위를 든 채였다.

짤랑짤랑. 그것들의 귀에 늘어진 귀걸이 소리가 유난히 산만하다.

“저 하늘에 영광을……!”

그러나 그것들이 무기를 들면 뭐하나? 내가 더 빠른 것을.

쿵, 하고 나무 선창을 밟은 내 발이 다음 걸음에서 투헨더를 휘둘렀다. 새까만 가로 참격이 한때 인간이었던 것들을 무참히 베었다.

피가 촥 퍼지며 부두를 붉게 적셨다. 반으로 갈라진 몸뚱이가 양옆으로 무너지며 바다에 빠졌다.

“뭔, 무슨!”

그 가공할 일격은 산 자들의 경각심을, 자아가 없는 좀비들에겐 관심을 끌었다.

우으어어!!

배에 기어오르며 그 안의 인간들을 노리던 좀비와 뭍에서 인간과 겨루던 좀비 중 몇 마리가 이쪽으로 몰려왔다.

아주 감사한 부분이었다. 몰려 있으면 한 번에 잡아 죽일 수 있다.

탁탁탁탁.

내 다리가 삐걱거리는 나무판자 위를 거침없이 내달리고, 검이 부드럽게 사방을 휘젓기 시작했다.

금세 투헨더가 질척이는 피로 물들었다.

“주, 죽여!”

“시발 어디서 온 놈이야?!”

“바다를 지키던 놈들은 뭐 하길래!”

다만 적은 좀비만 있는 게 아닌지라. 나는 좀비를 모조리 베면서 내 앞에 선 인간들을 두고 검 자루를 다잡았다.

“시발, 죽여!”

그들과 분전하던 자들이 악을 쓰며 항구를 지키는 게 그 너머로 보였다.

“살 가치조차 없구나.”

곧 새까만 기운이 줄기줄기 뻗어나가며 붉은 천을 두른 무리를 베어 넘겼다.

서걱!

“이봐.”

그때 내 뒤에 바싹 붙은 이가 말을 걸어왔다. 삼각모와 긴 귀. 바람손이었다.

“여긴 우리에게 맡기고 성으로 가.”

나는 선착장을 지키는 이들과 남은 적의 수, 그리고 바람손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가서, 성주님을 구해.”

절망 속에서도 차마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절박함.

“제발, 그 사람을 구해 줘.”

…성주님과 사략선 선장 사이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절실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싶지만, 이 정도면 무너지지 않겠다는 확신이 든다.

나는 얼떨떨함을 삼킨 채,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탁!

“이건…….”

내가 바람손에게 던져 준 것은 마기해독제였다.

쓸 일이 없다 보니 타타라에서 썼던 5통 중 딱 1통만 도로 사놨지만…… 그 한 통이라도 있는 게 어디냐. 악성 재고라고 아예 안 사놨을 수도 있었는데.

“해독제?”

물렸을 때의 감염까지 막아 주는진 나도 모른다. 그러나 할큄 당하거나 무기에 맞았을 때 마기에 침식되는 건 또 확정이니까.

그거라도 해결할 수 있으면 최소한 10명 정도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터. 없는 것보단 나을 거다.

“이걸 왜…….”

왜긴 왜야. 너희 먹으라고 주는 거다.

나는 그 말은 쏙 삼킨 채, 바람손의 부탁을 따르고자 달리기 시작했다.

좀비들과 비푸릿 일당이 그런 나를 노렸지만 속도 차이가 너무 심했다. 나는 금세 그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내게 남은 유일한 문제점은, 성이 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덕에 갈수록 길의 경사가 높아진다는 것뿐이다.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30m 이내에 존재합니다.」

캬악!

그때 뭔 괴상한 괴물이 하늘로부터 내가 막 지나쳐 온 자리에 내리꽂혔다.

단단하지 못한 지붕이 내려앉으려는 양 불길한 소리를 내었다. 왜 지붕인가 하면 그건 내가 베베 꼬인 길을 따르기 싫어 파쿠르로 지붕을 넘나든 탓이다.

「가고일│체내에 불꽃을 품은 채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악마. 갈고리가 달린 날개로 벽에 매달려 은폐할 때가 있다.」

각설하고, 박쥐를 닮았으되 몸통만 해도 나보다 큰 괴물이 고개를 들었다.

불꽃을 품고 있다는 설명이 없더라도, 놈의 배를 보면 불 좀 토해 내겠구나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얇은 뱃가죽 안이 종이 등불처럼 벌겋게 빛났으니까.

그륵그르륵.

심지어 놈은 그 상태 그대로 불 뿜을 채비를 했다. 나로서는 쉽사리 외면할 수 없는 징조였다.

파아아아아!

예상대로 녀석이 불을 뿜었다. 타이밍 맞게 옆으로 뛴 내 몸이, 돌아가는 화염 방사─놈이 고개를 돌림에 따라 자연히 화염도 나를 따라왔다─를 피해 거의 반바퀴를 돌았다.

“방해…….”

그쯤 되어서 폐활량이 다된 것인지 가고일이 입을 다물었다. 내 몸은 반바퀴를 타원에 가깝게 돌아 가고일의 뒤를 거의 잡은 상태다.

“마라!”

드드득

굴피 지붕이 발과 마찰하며 나무껍질 몇 조각을 박살 냈다.

서걱!

야구방망이 휘두르듯 나아간 검로에 가고일의 꼬리가 뎅겅 잘려 나갔다. 몸통을 베려고 했는데 위기를 감지한 놈이 비행을 시도하는 바람에 타점이 흐트러졌다.

캬악, 캭!

그렇지만 비행 생물이란 게, 꼭 날개가 잘려야만 비행을 못 하는 건 아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가고일이 균형을 잃고 바로 비틀거렸다.

내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콰직!

지붕이 한 차례 더 들썩이고, 내 몸이 위로 뛰어올라 가고일을 밟았다. 푸욱! 역수로 잡은 투헨더가 놈의 목에 박혔다가, 파지법을 바꾸며 뱅글 돌린 끝에 목 절반이 뜯겨져 나갔다.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30m 이내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적은 그것 하나뿐이 아니었다. 나는 막 추락하기 시작한 놈의 몸뚱이를 힘주어 밟았다.

쾅!

폭음 비스름한 것이 허공에 울리며 내 몸이 상공에 떠올랐다. 다음 목표는 막 내게 접근하고 있던 또다른 가고일이다.

캬악!

먹잇감이 날아오를 줄 예상 못 한 가고일이 나를 피해 몸을 비틀고, 나는 예정했던 대로 검을 휘둘렀다. 참수하듯 내리그어진 투헨더가 가고일의 머리를 깔끔히 잘랐다.

콰자자작!

가고일이 추락하고 지붕이 폭싹 내려앉았다. 저 커다란 몸뚱이의 무게를 버티기엔 너무 조악한 지붕이었나 보다.

쿵. 나도 그런 가고일 바로 옆에 딱 안착했다. 뚫려 버린 지붕에서 먼지와 나무조각, 가고일의 머리통 따위가 푸스스 내렸다.

“이, 이, 이게.”

나는 착지시 구부러졌던 무릎과 허리를 펴며 오른손으로 어깨를 탁탁 털었다. 운 좋게 깔리지 않은 집주인이 그런 나를 망연히 보았다.

근데 제가 이러고 싶어서 이런 게 아니라요.

나는 집주인을 애써 외면한 채 바로 옆에 있던 현관문을 열고─라 쓰고 걷어차고라 읽는 형태로─나갔다.

저분이 부디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으면 좋겠다.

캬아악.

별개로 아까 내가 목을 찢었던 가고일이 집과 집 사이 골목에 껴서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푸욱!

내 검이 놈에게 안식을 선물했다.

자, 그러면 계속 가볼까. 나는 잠깐의 방해를 두고 길을 나아갔다. 곧 성 비슷한 것이 보였다. 폭음은 그 너머에서 들려왔다.

“쯧.”

성을 너무 높은 것에 지은 거 아니냐. 올라가기 정말 불편하네.

나는 볼멘소리를 속으로 뇌까리며 성으로 달려갔다. 내리닫이 쇠창살 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베거나 부수면 그만이었다.

우으어어어.

깜찍하게도, 성문 앞에 좀비들이 몰려 있어서 바로 시도하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참격을 날릴까 하다가 끝내 그만두었다. 쇠창살의 틈새로 사람들이 보였던 까닭이다.

혹시라도 참격이 쇠창살을 넘어 그들에까지 닿는다면…… 그 뒤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어억?

나는 일단 냅다 돌진했다. 발소리를 숨기지 않은 까닭에 좀비 몇 마리가 나를 돌아보았다. 이미 늦었다.

그라운드 크래쉬. 발돋움을 통해 거칠게 바닥에 내려앉은 나와, 그 힘을 입고 내리꽂힌 검이 구 형태로 마력을 퍼트렸다.

검은 폭풍이 매섭게 사방을 가르자 좀비들의 몸뚱이가 튕겨났다. 나뒹구는 몸뚱이들은 칼날로 난자당한 듯 상처로 가득하다.

그러나 아직 남은 것들이 있다. 나는 검을 종횡무진 휘둘러 살아남은 것들을 가르고 베고 잘라 내었다.

“뒤, 뒤에!”

그러던 중 쇠창살 문 너머의 누군가가 나에게 외쳤다. 내가 내 뒤에서 발목을 깨물려던 좀비의 머리통을 부순 건 딱 다음 순간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말해 준 게 제법 가상하다.

휙.

나는 투헨더를 돌려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문을 열어! 누군가가 성문 너머에서 그리 외친 것 같다.

“당장 가야 해!”

“흐아아악!”

뭐라고 해야할까. 나를 안으로 들이려는 것보단 좀비가 사라졌으니 도망치려는 태도에 더 가깝다.

나는 그것을 가만 보다가 천천히 성문에 다가갔다.

“문을 어서 올려!”

그리고 내가 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 문이 조금씩 올라갔다.

“어서 나가!”

“밀지 마!”

“흐아아악!”

내가 들어갈 기회는 둘째치더라도 사람들은 참 다급하게 굴었다. 문이 반의 반도 열리지 않았건만 몸을 바짝 낮춰 가면서 통과하다니.

제가 성문 앞 좀비를 잡는 것으로 당장의 안전은 확보됐다고 하나, 너무 성급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빨리 나가!”

혹은, 불확실 속에 뛰어드는 것이 나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졌나 보지?

나는 완전히 열린 성문 사이를 지났다. 수백 명의 인파를 뚫고 지나는 셈이었지만 특별히 밀리거나 하진 않았다.

“끄아아악!”

“막아, 막으라고!”

“흐아아악!”

그리고 보았다.

성벽 내부 공간을 헤집으며 병사들을 곤죽으로 만들고 있는 누더기골렘과, 누더기골렘이 낸 구멍을 넘어와 사람들을 물어뜯는 좀비들, 날아다니며 불을 뿜는 가고일 따위를.

“으하학, 다 죽여!”

“전부 베라고!”

그것들 사이에 껴서 살육을 저지르는 비푸릿 일당을.

“살려 줘!”

아, 여기가 신도림 지옥철이야? 사람 진짜 많네. 나는 힘주어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으로 발돋움할 공간을 마련했다.

밀쳐진 사람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잡혀 있을 순 없지 않나. 그사이에 병사들이 우후죽순 죽어 나가는데.

쿵!

“으악!”

“와악!”

발돋움을 위해 발을 좀 세게 굴렀더니 대지가 진동했다. 주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내 몸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퍽!

그런데 그냥 띄우기만 하면 좀 섭섭하니까. 나는 허공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호시탐탐 노리던 가고일 한 마리를 밟았다.

그리곤 엎어지듯 그 등에 달라붙은 후 팔로 그 목을 감쌌다. 레슬링에서 팔오금에 머리 끼고 꽉 누르는 기술, 헤드락인가 친락인가 하는 그걸 긴 목에 했다고 보면 된다.

근데 이제 숨을 죄기 위해서가 아니라 놈의 머리를 위로 틀기 위해서.

파악!

놈의 목구멍을 타고 불꽃이 위로 뻗었다가 금세 끊겼다. 사람들에게 불길 향하지 말라고 머리 잡고 억지로 돌렸더니 숨이 막혔나보다.

캬아아악!

컥컥거리던 놈이 머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한쪽으로 날아갔다. 내 무게가 더해지니 비행이 다소 불안정했지만 그렇다고 뚝 떨어지진 않았다.

심지어 가는 방향도 사람이 없는 쪽이었다. 나한테 행운이다.

나는 다급히 왼손을 거둬 단검을 꺼내 들었다. 콱! 마력을 두른 단검이 놈의 미간에 박혀 이마까지 쫙 그었다.

그 안에 든 두개골과 뇌수가 으깨진 건 덤이었다.

키아아악!

날개가 멈추며 추락이 시작됐다.

나는 그것을 느끼자마자 손을 풀고 발에 힘을 주었다. 내 발에 짓눌린 가고일이 바닥으로 완전히 떨어지며, 나는 또 한 번 허공을 날았다.

탁!

캭!

다음 도달지도 역시 가고일이다. 엄밀히 따지면 몸통을 밟은 게 아니라 날개 한쪽을 잡은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훌륭한 공중컨이라 자화자찬하며 나는 단검으로 놈의 피막을 찢고 뛰어내렸다.

날개가 찢어진 가고일이 성 외벽에 처박혔다. 나도 비슷한 처지였지만 벽을 밟고 역으로 튀어오른 점에서 평가는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휙!

나는 마지막으로 그나마 가까이 있던 가고일을 향해 단검을 던졌다. 노렸던 미간은 못 맞췄지만, 턱과 목 사이 공간에 적중한 이상 대미지가 약하진 않을 테다.

놈도 추락했다.

쾅!

그 시점에서 나의 공중 사냥도 끝났다. 내 몸이 대지로 떨어지며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떨어지기 전 몸에 마력강화를 해서 그런가. HP는 달지 않았다.

그어어어!

대신 좀비들이나 비푸릿 일당이 내게 몰려왔다. 병사들을 지나쳐 도망가는 사람들을 죽이고자 달려온 놈들이었는데, 가장 가까운 위치에 내가 떨어지니 나로 표적을 바꾼 거다.

그러나 이러면 나만 좋다. 저항할 무력이 없는 사람들 노리는 것보다야 나한테 달려와 주는 게 낫지!

나는 내게 덤비던 놈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골렘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으우어어어!

“으아악!”

그리고 도망치던 병사를 잡고 물어뜯으려던 좀비의 뒷덜미를 잡았다. 세게 던지자 좀비가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푸욱! 이어지는 건 내 칼날이 놈의 멱을 따는 것이다.

“흐, 흐억.”

내게 구함 받은 이가 서둘러 도망쳤다. 감사 인사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잘 도망쳐서 살았으면 좋겠다.

“버, 버틸 수가 없어…….”

“제발 살려 줘……!”

나는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성벽이 무너지고 좀비와 비푸릿 일당들이 넘어오며 병사들의 진영은 거의 무너진 상태다.

억지로 버티곤 있다지만 다가오는 골렘을 피해 전열 자체가 계속 밀려나고 있다. 하늘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가고일과 얍삽하게 구는 비푸릿 일당은 말할 필요도 없다.

“으아악!”

개체 별로는 약하지만 빠르고 수가 많은 좀비도 문제였다.

한 사람이 물리면, 물린 사람이 그대로 엎어졌다가 곧 적이 되어 일어났다. 이쪽도 시급히 처리해야 했다.

서걱!

그러나 좀비나 사람은 그래도 대항이 가능해 보이니까.

나는 가던 길에 보이던 이들만 좀 도와준 후, 가장 먼저 누더기골렘을 노렸다.

그동안 벌어질 희생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잘 버텨 낼 것을 믿는 수밖에.

“비켜라.”

나는 좀비를 썩둑썩둑 자르며 앞으로 달려갔다. 그럴수록 원근법에 의해 작게 보였던 골렘의 크기가 커졌다.

저쯤되면 한 4m 되려나. 몸뚱이가 가로로도 비대해서 더욱 커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사람을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라 그런가. 생김새도 역하고 악취도 심했다.

이런 디자인을 만화에 넣으면 단번에 19세 이용가가 붙을 거다.

“흐아악!”

“으하학, 죽어─?!”

나는 골렘의 주먹에 어쩌다 맞아 날아온 좀비를 걷어차고, 어린 병사를 덮치려던 비푸릿 일당의 목덜미를 잡았다.

와드득.

건틀릿이 상대의 목을 으스러트리고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흐으……?

“물러나라.”

이제 슬슬 사정거리인가?

나는 투헨더를 단단히 쥐었다.

“같이 베이기 싫으면!”

내 말을 들었든 안 들었든 아군은 이미 골렘을 피해 내 뒤로 달려 나가는 중이었으니. 이 앞에는 적밖에 없다.

나는 무너진 진영 속에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곧, 죽음까지 수백의 목숨을 요한다던 괴물이 피보라와 함께 침묵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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