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그렇지만 (1)
우리는 용이 배를 이끄는 동안 사상자의 수를 헤아렸다.
그 결과 알게 된 사실은 피해가 현실적으론 적고, 각오했던 것보단 많단 점이었다.
“술, 가져왔던가?”
“그 무거운 걸 왜 가져와요?”
“그래서 정말 없어?”
“당연히 있죠.”
바람손의 수하 중에서 둘. 내게 신세를 졌다며 친구들을 포섭해왔던 전직 모험가 쪽이 넷. 데브가 수소문해서 고용했던 실력있는 선원 중 셋.
신전 쪽도 따라 온 사제 중 절반이 신성력 과다 사용으로 죽었고, 마법사 쪽도 이리저리 부딪치고 구르다가 재수 없게 머리 깨져 죽은 사람이 둘 나왔다.
모험가도 하나 실종됐고.
뼈아픈 죽음들이었다. 죽은 이유도 부상보단 해일에 쥐도 새도 모르게 쓸려나가 실종된 경우가 태반이라 손쓸 수도 없다는 점이, 특히 더.
“뿌려.”
뱃사람들은 만일을 대비해 챙겨 온 식수─술─을 바다에 흩뿌렸다. 모험가들도, 그나마 정신 차린 사제들도 함께였다.
“저게 뱃사람들의 추모 방식인가 봅니다.”
그사이 잠깐 자리 비웠던 데브가 제 바로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의 고개가 내 주변을 둘러싼 마법사들을 구경하는 듯하더니, 이내 내 쪽으로 살짝 틀어졌다.
“…법사 나리는 내상이 깊어서 며칠 정양해야 한답니다. 심문관 나리는 단순히 지쳐 잠든 거라 오늘내일 중으론 깰 가능성이 높다 하고요. 적어도 두 사람 다 목숨 걱정은 없답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었다. 괜히 이 일에 휘말려 부하들을 잃은 바람손에겐 더 미안한 일이지만.
“이봐, 한 잔 뿌려 주겠어?”
제 말하면 호랑이도 온다더니, 그 타이밍에 바람손이 내게 부탁했다.
“용잡이가 애도해 준다면, 놈들도 기뻐할 테니까.”
나는 내밀어진 술병을 가만 보다가, 거칠게 낚아챘다.
나설 사람은 대부분 나선 이후라 뱃머리엔 술을 따르는 자가 더이상 없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거기서 겸연쩍게 술을 꼴꼴꼴 따르는 건 역시 좀 그러니까. 휙. 나는 술을 던졌다.
서걱!
빠르게 빼어진 투헨더가 술병을 반으로 베어 아래로 떨어트렸다. 술이 아주 크게 사방으로 퍼졌다.
“나리…….”
“으하핫, 호탕하긴!”
“이야, 저 정도면 뒈진 놈들 한 번에 다 받아마셨겠는데!”
“용잡이의 술을 받다니, 영광으로 알라고 이놈들아!”
“용 머리좀 보여 주면…….”
“아, 댁들은 좀 꺼져요!”
다행히 아무도 불쾌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잡음이 조금 섞인 바닷사람의 추모가 그렇게 마무리됐다.
* * *
반파된 배를 용이 이끌고 간 곳은 공교롭게도 우리가 한 번 들렀던 그 마을이었다.
수위 때문인지 용은 일정 부분에서 멈춰 섰지만, 배를 나르던 생물들은 끝내 해변까지 동행했다. 모래밭에 너덜너덜해진 배가 완전히 세워졌다.
“이, 이게 무슨…….”
언제 얼굴 봤던 촌장을 필두로 마을 사람들이 무기와 횃불을 꼬나쥔 채 우르르 나왔다. 다들 피골이 상접한지라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위험한 사람들 아닙니다! 해적 아닙니다!”
그러나 이쪽도 체력이 없긴 매한가지라. 여기서 싸움이 벌어져서야 쓸데없는 피해만 늘 뿐이다.
가장 먼저 내린 바람손이 앞장서고, 내 눈치를 보던 데브가 그쪽에 꼈다. 데브와는 안면이 있다 보니 교섭 분위기가 금방 누그러지는 듯했다.
키이이이.
그사이, 용이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거의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있던 덕에 나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뿐만 아니라 무언가도 받을 수 있었다.
용의 입에서 나와, 허공을 건너온 구슬이 내 손에 안착했다. 두근두근. 작은 진동이 구슬을 쥔 손바닥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나를 먹고 다음 대 주인이 될 아이가 죽은 이상, 바다의 순환은 끊겼다. 이 바다엔 더이상 주인이 없을 것이다.]
…야, 잠깐만. 말할 수 있었어?
[그것은 내가 가진 마지막 힘이자, 본래 내 아이가 먹어야 했던 것. 순환이 끊긴 지금 자연에 돌아갈 것에 불과하니 네게 선물하겠다.]
나는 정말 오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말하는 건 본인 자유긴 한데, 아니, 아니.
[가지고 있거라. 네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됐다. 싸울 때 대화 좀 했으면 내가 얼마나 편하게 잡았겠냐마는, 그래도 잡은 이후니까. 여기까지 태워 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보상도 주었다. 아이템 설명이 안 떠서 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긴 한데, 아무튼.
[내 아이를 구해 주어서 고맙다.]
용이 해저로 다시 숨어들었다. 밤바다가 본래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바다의 주인이 더이상 없다는 게 무슨 의미지?”
“먹고 다음 대 주인이 된다니! 순환이라니! 이건 대발견이야!”
“흐아악, 용이 돌아가다니, 아직 관찰을 다 못 했는데!”
동시에 옆에 있던 마법사들이 봇물 터지듯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나와 용 사이의 대화는 차마 못 끼어들더니, 끝나자마자 난리였다.
“용이 선물한 힘이라니 세상에…… 저건 대체 뭐지? 마력의 응집체? 젠장 연구해 보고 싶어!”
심지어 그중 일부는 내가 쥔 구슬과 용 머리를 뚫어져라 보았다. 배에서 계속 받았던 시선이라 새삼스럽진 않는데, 역시 좀 부담스러웠다.
“저, 저, 기사님…….”
그렇지만 컨셉은 마이웨이만 걸으니까.
나는 그 눈길과 걸어오는 말을 죄 무시하며 박동하는 구슬을 살폈다.
아이템 설명은 여전히 없고. 흔한 클리셰를 따라 알로 여기기엔 용의 말이 걸린다.
힘이라고 했지 알이라고 안 하지 않았나. 아이를 부탁한다거나 뭐 그런 말도 없었고.
무엇보다 진동할지언정 기이할 정도로 ‘살아 있다’란 감상이 안 든다. 최소한 생명체일 것 같진 않다.
“제발, 제발 조금만 보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제발요, 기사님!”
“곱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응, 안 돼.
나는 인벤토리에 냅다 구슬을 집어넣었다. 인벤토리 악성 재고가 또 늘어난 기분이지만 마법사들 앞에 꺼내 두는 것보단 나았다.
아무렴,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된 마탑의 마법사들은…… 좋게 말하면 순수한 학자고 나쁘게 말하면 연구에 미친놈들이었다.
흔히 나오는 괴짜 학자 캐릭터랄까, 흥미로운 주제나 소재가 있으면 겁대가리를 상실하는 부류랄까. 뭐 그런 성격들이란 소리다.
참고로 출항 전 마법사들이 나를 쳐다본 이유도 여기서 기인했다. 나는 내가 뽀개먹은 작살 3개 때문에 미운털 박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나를 연구해 보고 싶었던 거더라고.
심지어 내가 이걸 알게 된 계기도 마법사들이 직접 알려 줘서다. 보다 정확히는……
『당신을 연구해 봐도 될까요! 출항하기 전부터 연구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크메이지님께서 막지만 않았어도 일찍 제의했을 텐데! 제발 피 한 방울만, 아니아니 5ml만, 아니아니 500ml만 부탁드립니다!』
『저 혹시 실험 명단에 서명 한 번만 해주실 순 없는지…… 아, 제가 이런 제안을 했단 건 아크메이지님께 비밀입니다.』
대충 이렇게 지껄여서 눈치챈 것에 가깝다. 별로 알고 싶진 않았던 사실이었다. 왜 아크메이지가 엮이지 말랬는지 이젠 알겠다.
“제발, 제발 한 번만─!”
아크메이지 선생님, 제가 모르는 곳에서 대체 어떤 싸움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대체 뭘 하셨기에 이 미친 학자들을 제어하실 수 있던 겁니까.
나는 기절한 아크메이지가 제발 일찍 일어나길 바라며 배에서 뛰어내렸다.
“악마기사니이이임─!”
나를 따라잡기엔 허약한 작대기─마법사─들의 절절한 외침이 이어졌다.
“이야, 자네 인기가 어마어마하군.”
내가 신경질적으로 뭍에 다다라 자리를 잡았을까. 선원 한 명이 낄낄대며 내게 다가왔다. 신세졌다며 친구들 포섭해 왔던 전직 모험가 양반이었다.
“닥쳐라.”
“하하. 마법사들이 저렇게 괴짜인 줄 몰랐어. 마법사 출신 모험가를 본 적 있어야 말이지.”
그는 그리 떠들며 내가 앉은 바위에 근처에 털썩 앉았다. 마법사들만 간을 배 밖으로 내놓았나 했더니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그것인가? 우리 배를 괴롭혔던 용이?”
그러다 전직 모험가가 내가 끌고 온 용 머리에 시선을 주었다. 반으로 쪼개졌다곤 하나 내 키만 한 머리통이 모래밭에 엎어져 존재감을 발했다.
솔직히 저게 가볍지 않았다면 뿔이나 이빨만 쏙 잘라왔었을 거다.
“정말 비루하군.”
반으로 잘려 뇌와 안구는 바다에 흘리고 핏물은 죄다 빠졌으며 단면의 근육도 흐물흐물 거리고 있으니 비참한 형상은 맞다. 그렇지만 전직 모험가가 가리키는 건 꼭 그런 게 아닐 테다.
“너무…… 비루해.”
그는 오늘 네 친구를 잃었다.
“담배 피워도 되나?”
그 말은 허락보단 통보에 가까웠다. 전직 모험가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때 흡연했던 사람으로서 심히 땡겼다.
“막내, 부탁한다!”
“걱정 마십쇼!”
그러다 문득, 마을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사람 하나가 보였다. 가막만에 대기하고 있을 인력에게 연락할 사람일 테다.
“돌아가면…… 자넨 이번에도 수훈장을 받겠군.”
그것을 나와 같이 보던 전직 모험가가 툭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 사항이었다. 이건 모험가 길드를 통해 받은 의뢰가 아닌데 과연 줄까?
“성주가 자넬 부를지도 모르겠고.”
오…… 그건 좀, 많이 귀찮을 것 같다. 이쪽의 예식도 잘 모르는 데다가 컨셉상 그런 거 갖출 것 같지도 않아서.
성질 부리다가 오히려 쫓기는 엔딩 나오면 어떡하지.
“푸흐. 이런 거대한 사건을 연달아 해결하다니. 용사가 있다면 자네 같을까?”
그 말에선 기분이 조금 기묘해졌다.
보아하니 인퀴지터가 용사인 걸 모르는 것 같은데, 본의 아니게 사실을 엇비슷하게 맞춘 양반이었다.
“만약 자네가 용사라면…… 죽은 녀석들은 용사와 함께했던 게 될 테고.”
거의 다 탄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매캐한 향 속에서 새로이 추켜세워지는 것은 또 다른 담배다.
줄담배 자비 없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용사든 뭐든 아무래도 좋지. 대신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이름 좀 많이 날려 주게. 죽은 녀석들의 가족들이 자부심 가질 수 있도록.”
담배가 불씨를 머금고 흰 연기가 아질아질 피어올랐다. 마치 향초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방금 한 말은 잊게. 자네는 충분히 해주었으니. 이만 쉬게.”
끊임없이 사고에 연루되라고 저주한 사람이 이제 와서 상냥하게 말해 봐야.
나는 다리를 꼰 채 대답 한 번 않았다. 예상했다는 듯 전직 모험가가 푸흐흐 웃으며 떠났다.
남은 건 이제 달과, 별과, 파도 소리뿐이다.
쏴아아아.
나는 여전히 소란스러운 마을을 두고 조용히 시끄러운 적막을 즐겼다. 데브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소리가 살짝 들리긴 했지만 알 바 아니었다.
내 컨셉은 절대 돕지 않아!
“앗 저기 있─.”
“댁들은 좀 꺼지랬잖습니까! 검에 베여 죽고 싶습니까!!”
…마법사들 때문에 더 안 도와!
“야, 마법사들 저리 치워.”
“우두머리가 사라졌다고 이리 천박하게 굴다니, 마탑의 마법사들이란…….”
“지금 말 다했냐, 사제 양반?!”
천만다행히도, 다른 이들이 마법사들을 대신 막아 주었다. 내게 무언갈 챙겨 줄까 하는 사람들도 저들끼리 그냥 혼자 두자고 이야기했고.
바람손이 지시한 거라면 아주 좋은 판단이었다.
덕분에 내 몸 상태와 앞으로의 일, 그리고 이번 레이드로 얻게 된 의문점 등등을 아주 편하게 사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철썩철썩.
나는 근처까지 몰려오는 파도를 보며 HP나 피로도 따위를 확인해 보았다.
전부 괜찮았다. 오는 길에 세 시간 정도 자서 그런지 HP도 다 찼고 피로도도 20선으로 떨어졌으니까.
용아병에게 물렸던 팔과 발목도 부상 페널티 생길 만큼 상처가 심각하지 않았다. 그보다 많이 아물어서 붕대 감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뭐,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아직도 속이 거북하단 점인데…… 이건 멀미 탓이 크니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다.
너덜너덜해졌던 타타라 때에 비하면 아주 달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나와 다르게 아크메이지랑 인퀴지터는 완전히 뻗어 버렸지만, 목숨 위험한 거 아니면 된 거지.
“…….”
그럼 다음 고민거리는 사건의 전말과 사후 처리인데.
이건 솔직히…… 고민할 게 있긴 한가?
물론 궁금증이 없던 건 아니다. 그러나 용이 마지막 남기고 간 말 덕에 꽤 많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순환이나 내 아이나, 먹는다라는 발언 덕에 판타지 독자 짬밥이 열일했다고.
그러니 전말을 대강 예상한다면, 해룡과 검은 용은 부모 자식 간이고, 낳은 자식에게 먹히는 것으로 주인의 자리를 넘겨주는 게 순환이며, 이번 일로 그 순환이 깨져 버린 거겠지.
타락한 연유는 아직 모르겠다만, 그건 알아낼 단서가 영 없다. 굳이 부득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암, 스토리 관련이라면 나중에 알려 줄 테고, 아니라면 자기만족일 뿐인데 꼭 알 필요 있나. 나는 세세한 거 다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부류는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이 일의 원인보다는 앞으로의 일이 더 의문이었다.
예컨데 검은 용이 퍼트린 부정이 언제 사라질까. 그것이 퍼트렸을 용아병을 찾아서 다 제거해야 할까. 이 일이 또 반복되진 않을까 따위의.
일종의, 추가 퀘스트 여부에 신경 쓰는 게이머 마인드라고 보면 되겠다. 만약 나와도 다른 퀘스트─바람손의─가 강제되어 있어서 깨진 못하겠지만.
아, 보상 부분도 중요하다. 해룡이 이상한 구슬을 줬다곤 하지만 그건 용이 준 거잖아.
보수라거나, 아니면 기여도에 따른 용 사체 분배가 다분히 신경 쓰인단 말이지.
해안에서 잡았다면 대부분은 마탑과 성주가 가져갔겠지만…… 지금은 내가 기여도가 굉장히 높다고 보거든.
내가 다 가질 건 바라지 않으니, 최소한 검을 만들 수 있을 만큼은 줬으면 좋겠다. 애당초 용의 사체로 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가 좀 문제긴 하지만, 어쨌든.
“시스템.”
자, 그럼 마지막으로…… 대망의 신 스킬 이야기를 해볼까. 조금 더 간다면 이 게임 자체에 대해서.
이젠 미뤄 두는 것도 한계에 달했으니까.
“대화 좀 해보죠, 우리.”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서로를 속이는 건 그만하자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