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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50화 (50/389)

◈50화 빌고 또 빌어 (8)

“제길, 일단 빠져나간다!”

양쪽에 용을 두고 움직일 만한 배짱은 배의 인간들에게 없었다. 아무렴, 유인도 선체와 목숨이 멀쩡해야 할 수 있는 법이었다.

철썩!

근데 배에 물이 너무 많이 찬 것 같지 않아?

갑판 위에 돌아다니는 물이 내 발목을 때리고 다닌다. 이거 괜찮은 건가 싶다.

“물을 버려!”

음, 안 괜찮은 걸로.

갑판장의 명령에 선원들 일부가 양동이로 물을 퍼올리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이제 시야를 막다 못해 이러다 바위도 쪼개 버릴 기세다.

“작살은 그만 던지고 물 버리는 거나 도와!”

물이 너무 들이차긴 했는지, 뱃사람들은 모험가들도 붙잡고 일을 시켰다.

데브도 얼떨결에 양동이를 받았는데, 바로 옆에 있던 나에겐 다행히 나무통이 들이밀어지지 않았다.

아마 용아병 상대할 인력도 남겨 두겠다는 판단이 아닐까 싶다. 특히 나는 이 배에서 용아병 킬 수가 제일 높으니까.

“용아병이 온다!”

근데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 멀미 때문에 놓친 게 몇 마리 있다. 그런데도 킬 수가 제일 높은 게 나라니, 이걸 뭐라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인퀴지터랑 채찍 쓰는 모험가가 나한테 어시해 줘서 그런 거라고 정신 승리하면 될 부분인가? 이게 과연 정신 승리할 부분인진 모르겠지만.

퍼엉!

나는 던지면 던질수록 익숙해지는 작살을 또 하나 꼬나쥐며, 슬그머니 괴수 대전의 진행 상황을 살펴보았다.

해룡과 검은 용은 서로를 물어뜯으려 들며 날뛰는 중이었다.

만약 이대로 해룡이 검은 용을 죽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현실적으론 영 가능성이 낮아보인단 말이지.

죽일 딜이 안 나오면, 그건 그냥 어그로 빼앗기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서 창을 던진다고 해도 목에 이빨 박힌 입장에서 몸 어딘가에 박힌 이쑤시개를 신경 쓸 리 없고.

아무래도 나중에 배 돌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해일이다!”

“젠장, 보호막엔 왜 파도를 막는 기능이 없는 거야?!”

와중에 검은 용의 꼬리가 우리 근처 수면을 후려치며 거대한 너울을 일으켰다. 해룡이 튀어나올 때처럼, 아니 이번엔 확실히 배가 옆으로 뒤집어질 만한 크기였다.

파랑에 휩쓸린 용아병들이 앞서 튕겨져 나왔다가 방어막에 찌부가 되어 그대로 흘러내렸다.

“신이시여, 저희를 가호하소서!”

그때 일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던 사제들이 나섰다. 손을 깍지 껴 기도를 올리든, 들고 있던 무기를 추켜세우든 각자의 방식으로 신성력을 발휘한 것이다.

방어막보다 더 바깥에, 금빛이 흐르는 막이 덧씌워졌다. 성스러운 막에 해일이 막히며 양방향으로 갈라졌다.

사제들이 왜 탔나 싶더니 다 이것을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레이드에서 내 HP를 최초로 깎는 존재가 아군이 될 줄은 설마 몰랐지만.

“빌어먹을, 저 미친놈들이 처음으로 예뻐 보이는군.”

참고로 이건 바람손이 아니라 바람손이 데려온 누군가의 말이다.

“이봐, 용은!?”

바람손이 물었다. 그에 들려줄 말은 사실 없었다. 괴수 대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창을 던지기엔 거리가 좀 벌어져 버렸다. 가까이서 던져도 시선 끌까 말까인데 여기서 던지면 비늘에 박히긴 하려나 모르겠다.

“포격을 가할 걸세.”

엇 씨, 깜짝아. 맞아, 아크메이지도 배에 타고 있었지? 출발한 이래 얼굴 본 적이 없어서 잠시 존재를 까먹고 있었다.

“언제?”

“지금.”

별안간, 중앙 마스트에서 위잉 소리가 들리며 마련된 무언가가 가동을 시작했다.

중앙 마스트가 유난히 철판도 덧대어져 있고 하길래 튼튼하게 만들었구나 했는데, 이제 보니 안쪽에 장치가 있었나 보다.

“우, 우와아.”

철없는 선원 하나가 물을 쉴 새 없이 퍼올리면서도 마스트 위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도 살짝 훔쳐봤다가 좀 놀랐다. 구 형태로 마력이 지글지글 모이더니, 곧 빔 비슷한 걸 사출했다.

그리고 검은 용이 막 해룡을 떨궈 낸 순간, 마력포가 그 낭창한 몸뚱이에 적중했다. 콰앙!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끼아아아아아!

나는 난간을 붙잡은 채 검은 용의 상황을 확인했다. 탱고 추는 시야 사이로 검은 용이 머리 뒤흔드는 게 보였다.

포격에 당한 부분을 가늘게 떠서 보면, 비늘이 조금 깨진…… 깨진 건가? 새까매서 뭐 보이는 게 없다. 어그로가 끌리긴 한 건지도 잘 모르겠고.

“흐하합!”

어어, 그래. 기합 소리 내는 거 보니 김치만두 힘내고 있다는 건 알겠고. 그래서 검은 용은…… 이쪽 보나? 어그로 끌렸나?

캬아아아!!

끌렸다.

“용이 온다!”

너무 잘 끌렸다.

쟤 지금 일직선으로 온다! 해일을 동반한 채로!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거 맞는 거냐? 이거 정말 맞는 거냐? 이렇게 유인하는 거 정말 맞냐고.

그렇지만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내가 처한 입장이 바뀌냐면 그건 아닌지라.

결국 나는 선미로 후다닥 달렸다. 용아병에 대처하기 쉽도록 중앙 갑판에 있었지만, 지금은 용이 우선이었다.

“오, 온다!”

“방어막에 집중해!”

아까 공격 직전에 카운터 먹여서 스쳐 맞았는데도 1/4 까였지. 그러면 뒤꽁무니 정면으로 처맞았을 땐 얼마나 달까.

츠즈즈즛.

얼마가 달든 간에, 절대 좋은 소식은 안 들려올 거다.

해서 나는 작살에 마력을 있는 대로 처부었다. 아까와 비슷하게─공격으로 경직 먹이면 스쳐 맞을지도 모르니까─가기 위해서였다.

키아아아아!!!

그런데 용이 파도를 더욱 부풀리며 그 해일을 타고 더 상공으로 올라가 버렸다. 이건 반칙이었다!

“신이시여!!”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신앙심으로 무장한 예비 방어막들이 있었다.

“이 미욱한 종이 스스로를 바치니.”

인퀴지터를 중심으로 금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다를 가르고 불쌍한 양을 구하소서.”

기어코 몰려온 파랑이 배를 삼키려 들었다가 금빛 막에 막혀 수중 아쿠아리움을 만들었다.

“당신의 영광을 이 바다에 세우소서.”

더불어 내 HP가 쭉 깎였다.

“으아아악!”

“해룡이시여!”

“우악, 우아아악!!”

아니, 야, 잠깐. 바닷물이 잠겨 죽을 게 아니라 신성력에 잠겨 죽게 생겼는데.

아무리 제가 신성력과 상극인 사람이라지만, 팀킬은 너무 에바잖아요! 흐아아악!!

파앙!

그나마 내 HP가 바닥을 치기 전, 배가 솟구쳐 오르며 수면 위로 올라갔다. 십년감수할 일이었다. 물보라와 함께 신성력이 흩어졌다.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30m 이내에 존재합니다.」

퍼엉!

하지만 검은 용은 우리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선수 바로 앞쪽에서 솟구쳐 오른 것이다.

우리가 그대로 수장되기를 기대했는데 안 돼서 성질이 뻗친 게 분명하다. 배가 미친듯이 기울었다.

마음 같아선 그 몸뚱이에 창을 박아 넣어 복수하고 싶다마는.

HP가 갑자기 쭉 달아서 그런 건지, 배가 수직 상승한 충격인 건지, 시야 변두리가 검고 희어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선미와 선수의 거리차도 문제였고.

해서 나는 머리를 짚은 채 어지러움을 삭혔다.

“다들 버텨!”

정말 짜증나게도, 선수에서 머리를 내민 용이 몸을 U자로 꺾어 배 측면 바다로 뛰어든 바람에 또 한 번 배가 흔들렸다. 위액이 울컥 올라왔다.

키아아!

그때 해룡이 구원해 주겠다는 양 이쪽으로 달려왔다.

아, 물론 그다지 좋은 도움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난장판인 수면에 또 너울이 일었으니까.

덜컹!

차가 급정거했을 때 앞으로 몸이 쏠리듯, 내 몸이 자의를 벗어나 흔들렸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었다.

“웩.”

덩어리진 무언가가 목구멍을 넘어 쏟아져 나왔다.

색이 조금 어두웠다. 내가 아는 위액은 밝은 색상인데도.

주르륵

빗물과 섞여 눈에서도 무언가가 나왔다. 가능하면 눈물이길 바라는데, 갑판에 떨어지는 물방울 색이 영 눈물 같지가 않다. 시야 일부는 붉어지기까지 한 채다.

그래도 부상 페널티만 아니면 별로 상관없으니까.

시야 좀 붉어지고 피 좀 흘린다고 안 죽는다.

캬아아악!

쾅!

“……!”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려니 방어막이 무언가에 얻어맞았다. 쨍그랑!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이런!”

“신이시여!”

나는 불길함에 고개를 서둘러 들었다. 검은 꼬리가 방어막을 깨부수고 뒤 돛대 일부를 꺾었다. 그나마 인퀴지터가 이 악물고 막을 펼쳐서 그 정도 피해만 입은 것이었다.

아크메이지가 기함하며 아래로 다시 내려갔다.

그러나 꼬리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 해룡과 으르렁대는 와중에도 검은 용은 우리 쪽으로 꼬리를 매섭게 내리치고 흔들어댔다.

그것이 집요하게 노리는 건 중앙 돛대였다.

주르륵.

이를 지르문 사제들의 입술 새로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인퀴지터도 비슷했다. 광휘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꼬리 공격에 버틸 막을 형성하면 형성할수록 그녀의 몸은 빗줄기를 바로 증발시킬 만한 열기를 뿜어 댔다.

그다지 건강에 좋아 보이는 광경은 아니었다. 덩달아 내 HP가 수직 하락하는 것도 그렇고.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순 없어.’

꽈악.

나는 난간을 굳게 잡고 등에 걸려 있던 투헨더를 쥐었다.

아무렴 주 돛대가 당하지 않은 건 감사할 일이나, 돛대 하나가 부러진 시점에서 꼭 좋아만 할 수도 없지 않나.

컨셉의 성질머리가 이걸 넘길 수 있을 리 없다.

“……? 당신?”

더불어, 나는 이 막 계속 치고 있으면 그대로 급사할 운명이다. 아군한테 죽는 것만은 반대! 절대 반대다!

본래 계획이고 뭐고 나는 당장 살아야겠다!

탁.

내 몸이 또 한 번 난간에 올랐다.

“채찍!”

“에, 에?!”

난간 위에서 쏴봤자 검만 흔들린다. 나는 난간을 밟고 또 한 번 배로 떨어지려는 꼬리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내 위치가 꼬리와 엇비슷해졌을 때, 그대로 대양에 뛰어들려는 양 점프했다.

스릉!

뽑혀 나온 투헨더가 두 손에 단단히 쥐어진 채 새까만 기운을 머금었다.

서걱!

검에서 뻗어 나온 새까만 반월이 몸집을 불리며 용의 꼬리를 베었다. 촤악! 검은 핏줄기가 비산하며 기어코 몇 미터의 꼬리가 잘려 나갔다.

캬아아아악!

용의 비명 소리가 그렇게 통쾌할 수 없었다.

“어, 어어!”

그러나 한 방 먹인 대가로 나는 내 몸을 중력에게 바칠 수밖에 없었으니.

휘리릭!

내 몸이 해수에 빠지려던 찰나, 채찍이 내 몸통을 빠르게 휘감았다. 어쩔 수 없이 얼얼한 느낌이 들고 가죽끈에 감겼을 땐 몸통이 조여지는 느낌도 들었으나 최소한 바다에 빠지는 건 면했다.

모험가 여럿이 끌은 덕에 내 몸이 채찍을 안전줄 삼아 갑판으로 당겨졌다.

쿵.

낙법을 취하려다가 오히려 굴렀다.

씁. 그래도 착지 실패에 당황하지 않고 한 바퀴 더 굴러서 간지나는 자세─무릎 한쪽 꿇고 한 손으로 땅을 짚은─한 나, 칭찬해요. 비록 속이 뒤집어져서 입에 있던 걸쭉한 걸 더 토해야 했지만.

“악마기사!”

나는 다급히 입을 막고 기침했다가, 건틀릿에 묻어난 걸 보고 안도 아닌 안도를 했다.

와, 피여서 다행이다. 위액이었으면 분위기 작살났을 뻔.

아니, 물론 아무도 비난하진 않을 건 안다. 단지 그냥…… 어차피 컨셉에서 탈출 못 한 거면 멋이라도 챙기고 싶었을 뿐이다. 이렇게까지 활약해 놓고 끝에서 위액 쏟는 거랑 피 쏟는 건 느낌이 전혀 다르잖아.

“으아악! 나리 괜찮습니까!”

안쪽에서 고개를 내밀었던 데브가 기겁하며 달려왔다. 머리가 핑핑 돌던 와중에 데브가 부축을 명목으로 몸을 들어 올려 버리니 더욱 어지러웠다.

“용, 은.”

나는 눈을 꾹 감았다가 다시 떴다.

“모릅니다요, 둘다 바다 안에 들어가 버렸는데…….”

시야는 아까보다 더 붉어졌지만, 어지러움은 그래도 나아졌다. 그러니까 아마도?

배가 여전히 기우뚱기우뚱해서 나아진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다시 용울목이다! 다들 각오해!”

그래도 꼬리를 그만큼 잘라냈는데 어그로가 풀리진 않겠지. 용울목에 들어가면 암초의 존재로 물의 깊이가 들쭉날쭉할 테니 아래서 급습하기도 어려울 테고─.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30m 이내에 존재합니다.」

“어?”

나는 바다 아래의 얕은 진동과 배 아래쪽에 박힌 채 다가오는 스킬표식을 발견했다. 곧, 수면이 높아지는가 싶더니 배 왼편에서 무언가가 치솟아 오른다.

“으아아아악!”

언제 다시 생성됐는지 모를 방어막이 또 한 번 깨졌다. 배가 엄청나게 기울어지며 사람들을 한쪽으로 미끄러트렸다.

콰직!

검은 용의 이가 마스트를 그대로 물어뜯었다.

쾅! 콰쾅! 쾅!

연이어 배 밑판에서 불길한 진동이 전해져온다.

콰직!

“구멍이 났다!!”

“용아병이, 흐아아악!”

파국을 알리는 소리였다.

“신이시여, 저희의 기도를 들으소서. 간청을 들으소서.”

“당황하지 마! 당장 아래로 내려가 물부터 막아! 모험가들! 용아병 처리를!”

아, 괜히 꼬리 건드렸나? 그냥 배가 꼬리 반경을 빠져나가길 기다렸어야 했나?

HP가 바닥을 치더라도, 다 죽는 것보단 나 하나만 목숨 간당간당해지는 게…….

캬아아악!

나는 겨우 오뚜기처럼 균형을 되찾은 배에서, 파도로 거리가 좀 벌어진 용과 시선을 마주했다.

투둑

그 입에 물려 있던 마스트가 두 조각 나며 바다로 추락하고, 새빨간 눈이 나를 정확히 직시했다.

“어서 물 퍼올려! 여기서 가라앉으면 다 죽어! 앞 돛대는 아직 살아 있다고!”

그 순간 깨달았다.

저건 내가 꼬리를 자르지 않았어도 우릴 죽이려 들었을 거다. 꼬리 그 이전에 포격을 박아 넣었으니까. 내지 작살을 박아 넣은 전적이 있으니까.

혹은 우리가 그 영역을 침범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또는 우리가 멀쩡히 산 생명이란 이유만으로.

그것이 ‘부정’이란 이유만으로.

“당장─!”

콰앙!

그때 미처 복구되지 못한 방어막과, 기도를 외지 못한 사제들의 빈틈 새로 무언가가 배에 부딪쳤다.

지금까지 봤던 어떤 놈보다 커다란 용아병이었다.

다만 아직 만들어지는 중인지, 놈은 이제 막 다리가 나오고 얼굴이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미처 변하지 못한 몸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녀석의 몸뚱이가 어째 잘려 나간 검은 용의 꼬리와 닮았단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놈은 정말 운이 좋았다. 꼭 빈틈을 노려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운이 좋았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우리에게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을 빼앗아갈 뻔했으니 분명 그럴 것이다.

“선장!”

“커억!”

키를 붙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던 바람손이 용아병의 물 세례를 맞고 바다 너머로 튕겨져 나갔다.

“선장!”

선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내 다리에 무심코 마력이 맺힌 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다, 당신!”

“잠깐!”

하, 정말이지. 마스트도 박살 나, 밑판엔 구멍도 뚫려. 이번 레이드는 아무래도 망한 판 같다.

그러니까 리트 각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순순히 순응해 주려는가?

“배로 돌아가라.”

“큽?!”

나는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던 바람손을 따라잡았다. 그의 멱이 내 손에 쥐어지며 이내 뒤로 던져졌다.

“기사 나리─!”

저 상태로 갑판에 부딪치면 엄청 아프겠지만, 그건 알 바 아니다. 그래도 바다에 빠질 상황인 나보단 낫잖아? 하물며 나는 바로 앞에 검은 용까지 있는데.

카아아아악!

용이 좋아라 입을 벌리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거대한 몸체 덕에 속도는 조금 느렸다.

그러나 빠진 직후 헤엄을 아무리 친들 그 입의 반경에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나의 검에게 승리를.”

그렇지만,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아서 말이다.

어차피 망한 계획, 상상으로만 그쳤던 싸움이나 시도해 보련다.

“저 하늘에 영광을……!”

스킬 ‘생존본능’이 아까 놈이 뜯어가, 바다에 아무렇게나 뱉은 마스트의 파편을 가리켰다.

아주 운이 좋았다. 이 너울을 견뎌 낸 채로 수면 위에 파편이 남아 있기란 심히 어려운 조건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 우연을 붙잡았고, 발판을 얻었다.

퍼엉!

밟힌 파편이 충격으로 주변에 원형의 물보라를 일으켰다.

내 몸이 상공으로 떠올랐다.

콱!

발아래, 검은 용의 머리가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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