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빌고 또 빌어 (5)
“잠깐, 이건 말이 다르잖아!”
당연히 바람손이 격하게 분노를 토해 냈다. 바람손의 뒤쪽에서 설명을 같이 들은 바람손의 수하들도 당했다는 얼굴이다.
“하루는 무슨, 이 상황으로 무슨 용을 잡겠다는 거야!!”
그는 우리가 통째로 빌린 여관의 주점 테이블을 탕탕 내려쳤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반나절이란 말을 완전히 믿진 않았겠지만, 그렇게까지 자신할 정도면 보통 계획은 다 짜뒀을 거라 생각했을 테니.
근데 우리 쪽 세력들이 완전 콩가루여서 말이지.
배만 일찍 왔을 뿐, 여전히 세 집단의 협조는 지지부진했다.
그나마 신전만 다른 도시에 연락해서 쓸 만한 인력을 불러들였을걸?
아크메이지의 말에 따르면 마탑은 아직도 징징대고 있고. 성주는 여전히 해룡이 그럴 리 없다며 현실 도피 중이라 하고.
“이건 계약 위반이야!”
“음, 계약 위반은 아닐세.”
“사기잖아!”
아크메이지가 친절히 계약 조항을 풀어 해석해 주니, 바람손이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비열한 마법사랑 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아니었어!”
내가 봐도 진짜 이쪽에서 인성질 거하게 해먹는다 싶은 계약서였지만…… 어쩌겠나. 이미 서명한 것을.
모험가 길드에서 공증한 이상, 일방적으로 취소한다 한들 막대한 배상금만 기다릴 뿐이다. 배 째보란 태도로 나가거든 모험가 길드가 채권 추심하는 사채업자처럼 칼들고 나설 테고.
바람손은 이제 진짜 뒤가 없다.
“너무 상심 말게. 용아병이 가막만에서 목격된 이상, 이쪽도 더이상 꾸물거리지 못할 테니.”
“나는 한시가 급하다고…….”
마음 같아서는 등 두들두들하면서 다독여 주고 싶지만 내 컨셉이 허락을 안 한다. 나는 벽에 기댄 채 진행되는 대화만 가만히 감상했다.
“아니, 이봐. 양심이 있으면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냐? 하다못해 배나 병력은 준비해 놨어야지!”
“으음. 그래도 배는 준비된 게 하나 있네.”
“하나? 하나아아?”
“너무 화내지 말게. 용아병의 존재가 목격된 이상 하나 이상 준비해도 별 소용이 없으니.”
분노한 바람손을 달래기 위해 아크메이지가 황급히 제 말의 근거를 쏟아 냈다.
“용아병이 돌아다니는 걸 확인한 이상, 배를 동원해 봐야 피해자만 늘리는 꼴에 불과하네. 어떤 실력자가 승선했던 간에 바다 위에서 배에 구멍이 뚫린 순간 가라앉을 뿐이지 않은가.”
“그래서, 배 하나로 용을 잡자고?”
“용을 꼭 바다에서 잡으란 법은 없지. 용을 뭍으로 유인할 걸세. 다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용울문에 한 번은 들어갈 필요가 있지. 그래서 자네를 영입한 것이고.”
급하게 준비한 의견치고 꽤 그럴싸한 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예전에 세워 둔 대안 중 하나를 상황에 맞춰 꾸며 말한 것이긴 하지만.
뭐, 듣는 바람손 입장에선 어느 쪽이든 뒷목 잡을 일이니 상관 없기는 하겠다.
“어이가 없네. 해룡을 꼬리에 달고 뭍까지 오자고? 배로? 그게 될 것 같아?”
“위험성이라고 하면 바다에서 해룡을 상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걸세.”
“말이야 그렇지……! 아냐, 그래. 바다에서 해룡을 상대하는 것보단 확실히 낫지. 하지만 그 배는 뭐, 용아병에게 격침당하지 않으리란 보장 있나?”
“마탑에선 버틸 수 있으리라 판단했네.”
“대체 무슨 배길래?”
너무 당당하게 답한 까닭일까. 바람손이 진정한 채 물었고, 아크메이지는 준비해 둔 배의 정보로 화답했다.
앞서 스펙을 들어 본 입장으로써, 배 자체는 사실 꽤 괜찮았다. 이제 저게 용에게도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지.
“빌어먹을, 최소한 그 용아병인지 악어병인지에게 수장당하는 일은 없겠군. 용울목까지는 확실히 갈 수 있겠어.”
“자네 실력이라면 돌아오는 것도 문제없으리라 믿네.”
“하, 아부라면 필요 없어.”
“아부는 아니네만.”
“됐고…… 거기에 탑재된 마법을 쓴다면…… 쯧. 배라면 모를까 상대가 용이라서 속도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기가 좀 그렇네.”
“그 배를 아는가?”
“추격전도 해봤지. 거대한 주제에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스릴 넘치더라고.”
그 말에 한동안 조용했던 인퀴지터가 몸을 살짝 떨었다.
다행히도 옆에 있던 데브가 그녀를 제지했다. 그 대가로 명치를 좀 얻어맞는 듯했지만, 저 둘은 신경 안 쓰는 눈치니 괜찮지 않을까.
“많이 빠른가?”
“내가 봐왔던 배 중에서는 제일. 그렇지만 너무 빨라서 방향 틀기는 좀 어려워 보이던데. 그것도 장치를 끄면 해결될 일이니 별 문제는 아니겠지만.”
바람손은 아까보다 누그러진 표정을 했다. 여전히 화는 나지만 최소한 제가 탈 배의 성능은 최선임을 알아본 듯하다.
“도발은 아마 거기에 실린 포격장치로 하겠고.”
“맞네. 용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면 좋겠으나, 최소한 신경이라도 긁는 데 성공하면 따라오게 할 수는 있겠지.”
“하, 그게 정말 좋은 일인진 모르겠군.”
가능하면 전자가 좋겠다. 보통 게임은 안 해주는 경우가 많긴 한데, 솔직히 그렇게라도 해주지 않으면 근딜러는 할 게 없었다.
정작 포격장치도 내가 가동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근데 그럼 선원도 원래 운행하던 녀석들이 오나?”
“그건 아닐 걸세. 선원을 제공해 주겠다고 한 적 없으니까.”
“뭐? 그럼 배를 못 써먹잖아!”
“장치의 경우 사용은 가능하네. 작동법도 전수받았고 작동시킬 마법사는 마탑에서 데려올 테니까.”
“그 점은 다행인데, 그럼 배 자체를 조종할 인원은?”
“그건…….”
아크메이지는 말을 흐렸고, 그건 충분한 대답이었다. 바람손이 책상을 쾅 내려쳤다.
“이봐, 그 함선이 얼마나 큰진 알고 있어? 소형선을 가져다 대면 길이만 근 3배나 차이 날 정도로 크다고!”
“그게 문제가 되나?”
“이래서 육지인은!”
바람손은 머리를 쥐어뜯곤 최대한 침착히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소형선에 평균 이삼십 명의 뱃사람이 타. 그럼 길이만 3배 차이나는 배는 선원이 얼마나 필요하겠어?”
“…그렇군, 인력의 문제인가.”
“전투 인원을 제해도 배를 운영할 줄 아는 뱃사람이 서른은 필요해. 이것도 상황을 고려해서 최소로 잡은 거고.”
“일단 우리 측에서 구한 선원이 있긴 하네.”
아크메이지가 데브에게 신호를 주니, 그가 슬쩍 입을 열었다.
“일곱 정돈 구했습니다요. 일반 선원으로.”
“겨우 일곱…… 설마 새내기는 아니지?”
“그 부분은 걱정 놓으시죠. 급하다고 아무나 뽑진 않았다고요.”
“그건 내가 다시 확인해 볼 일이고. 그래도 수가 좀 부족한데.”
“그쪽은 데려온 인원은 없습니까?”
“너무 당연하게 내 사람들을 포함하는군?”
데브는 할 말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바람손도 그런 이를 더이상 문초하지 않았다.
“우리 애들을 더해도 스물셋이야. 못해도 열 명은 더 구해야 해. 그나마 항해사나 조타수 같은 필수 직급은 우리 쪽에 다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만 캐묻는 걸 그만둔다는 게 꼭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답 없는 상황인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스물셋으론 무리입니까?”
“단순히 하루 거리를 이동하는 거라면 스물로도 되겠지만…… 우리가 갈 땐 용울목이잖아. 가막만만 해도 날씨가 장난 아니었는데, 해룡이 날뛰고 있는 중심은 어떻겠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이상 대처할 선원이 필요해.”
그런가. 배에 대해 잘 모르다보니 저런 말을 해도 잘 와닿진 않다. 바람손의 말에 뱃사람인 그의 부하들이 고럼고럼하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지.
“음, 선원이 안 구해지는 이유가 결정적으로 해룡을 건드릴 수 없다는 신앙심 때문이니까 신전에 부탁하면…….”
“지금 야바드 출신 앞에서 신전 이야길 꺼낸 거야?”
“……그쪽 사람들이 신전 싫어하는 건 저도 압니다. 저도 신전에 당한 게 있어서 별로 안 좋아하고. 그렇지만 별 방도가 없잖습니까?”
한층 올라간 바람손의 목소리에 데브가 살살 달래듯 말했다. 야바드 지방과 신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입장에선 다소 답답한 일이었다.
대체 뭐 때문에 저리 싫어하는지. 그보다 이 정도쯤 되면 인퀴지터 빠져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이 일은 신전이 가장 앞서서 조력해 주고 있습니다. 마음은 알겠지만, 일 빨리 끝내기 위해서라도 조금만 참으십쇼.”
“빌어먹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짜증 나는지, 바람손이 이를 악물고 이마를 짚었다. 짤랑. 그의 귀에 늘어진 드롭형 귀걸이가 맑은 소리를 내었다.
“그래, 젠장. 어쩔 수 없지. 그 개자식들이 자크라티의 땅을 밟는 것도 아니고, 형제들을 빨리 구해야 하니까…….”
곧 수긍과 타협의 문장이 작게 흘러나왔다. 까드득. 고개 돌린 인퀴지터의 팔짱 새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선원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니만큼 그쪽에도 부탁을…….”
끼익.
여관 겸 주점의 문이 열리는 순간 대화가 뚝 끊겼다.
여관 주인이 보석을 대가로 자리를 비워 줄 때, 분명 입구에 X자 새겨 둔 천을 걸어 두고 떠나갔음에도 눈치 없는 누군가가 문을 연 모양이다.
“저, 계십니까?”
다행히 방문객은 고개만 슬쩍 내밀뿐 완전히 들어올 생각은 안 했다.
“영업 안 합니다.”
빠르게 데브가 나서서 응대를 시작했다.
“나참, 창문에도 천을 쳐놨는데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그사이 해적 하나가 투덜거렸다. 그럴 만했다. 해적들의 입장을 고려해 바깥에서 볼 수 없도록 창가에도 죄다 천을 쳐놨으니까.
한데도 이런 가게에 들어올 생각을 다하다니, 배짱이 두둑하다. 혹은 그만큼 절박하든가.
“어라?”
근데 데브의 반응이 어째 좀 이상하다.
“저, 나리.”
“……?”
“선원, 잘하면 신전 도움 없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뎁쇼?”
…아무래도 방문자가 그냥 손님이 아닌 듯하다.
“뭐야, 선원 희망자야?”
당연하지만 지휘자 입장인 바람손이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데브가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용울목으로 향하는 배의 선원, 아직도 구하면 본인들도 괜찮겠냐고 물어보긴 합니다.”
“실력은?”
“…제가 이 도시 출신이 아니라서 그것까진 모르겠고, 전직 해적도 되냐고 물어봐 달랍니다.”
“해적?”
바람손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일단 로브들 쓰고…… 데리고 들어와 봐.”
바람손의 지시에 해적들이 주섬주섬 천자락을 뒤집어썼다.
그리곤 모든 해적이 얼굴을 가렸을 때, 데브가 방문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중 하나는 우연찮게도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여, 또 보는군.”
저번에 나와 데브를 길드로 안내해 줬던 수다쟁이 모험가다.
“전직 모험가 말고 전직 해적도 봐주는 것 맞소?”
“나참, 저 떠벌이를 믿고 오는 게 맞나 싶네. 돈보다 목숨인데.”
“난 선장 없다고 하면 빠질 거요.”
“전직 해적이라고 자원 못 하는 건 아니죠?”
뒤이어 곧 여관 입구 근처가 건장한 선원들로 꽉 찼다. 남녀노소 청년 장년 할 것 없이 근육으로 꽉 찬 이들이었다.
외형만 보면 뭐 노련한 뱃사람들이 따로 없다.
“뭐야. 바람손이 여기 왜 있어?”
“뭐?! 바람손?”
“……?”
한데 그중 하나가 바람손을 바로 알아보았다. 비록 앞섶을 여미지 않았다고는 하나 얼굴 전반이 가려졌는데도 그랬다.
이쯤 되면 눈썰미로 넘어갈 게 아니다.
“뭐야, 어떻게 안 거야?”
“아니 시벌, 그럼 댁 때문에 해적질 관뒀는데 모르겠수?”
“뭐? 내가 뭘 했다고?”
“당한 놈만 기억한다더니 딱 그짝이지.”
선원은 툴툴대면서도 본인이 바로 알아본 사연을 쉽게 토로했다.
“슬라웨시 선장이라고, 길을 막았다면서 당신네가 모가지를 싹둑 잘라 버린 사람이 있수다.”
“슬라웨시……? 아, 아아! 가시수염!”
“얼씨구, 별명은 또 기억하네.”
“그 양반 선원이 내 가슴팍에 상처를 냈는데 어떻게 잊겠어!”
그거라며 단번에 알아본 것도 이상하진 않다며 바람손이 낄낄 웃었다. 그러다 말고 무릎을 탁 치면서 하는 말은 또 다음과 같다.
“가시수염의 선원이면 나름 믿을 만하지! 항해 실력은 정평 난 해적이었으니까. 근데 혹시 당신들 전부가?”
“그렇수다. 나참, 그때 후로 다신 볼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바람손을 또 볼 줄이야. 세상은 역시 살고 볼 일인가.”
“근데 바람손이 여기 있다는 건, 설마 바람손도 용잡이에 합류하는 거요?”
“뭐?! 바람손이 합류한다고? 짜증은 좀 나지만 그래도 바람손이 선장이면 할 만하지!”
“최소한 급류로 죽진 않겠구만.”
뱃사람 아니랄까 봐 썰물처럼 몰아치고 해일처럼 말을 쏟아 낸다. 또한 한때 악연임에도 실력 하난 서로 인정하는지, 같이 움직이게 될지도 모르는 지금 선원들은 매우 만족해했다.
“좋아. 이렇게 되면 꽤 할 만하겠는데.”
그건 바람손도 비슷했다.
“부선장, 넌 어떻게 생각해.”
“용잡이 자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외엔…… 예, 용울목 다녀오는 것 자체만 생각하면 꽤 할 만하죠.”
부선장이란 쪽도 이 선원 희망자들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단번에 OK사인을 내렸다.
선원 부족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 바다에서 떠내려온 부패
∎ 해룡에게 접근할 방법 찾기
∎ 용울목으로 이동하기
∎ 부정의 근원을 찾아 정화하기」
퀘스트가 드디어 갱신됐다.
“와하핫, 어떻게 사람이 안 모인다는 소리를 듣고 옛 동료들을 설득해 봤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이군. 이걸로 목숨값은 정말 갚았다고 봐도 되나?”
그리고 그 1등공신은 아무래도 수다쟁이 전 모험가 같다.
나참, 떠들었던 본인의 파란만장한 직업 변경기가 설마 여기까지 도움이 될 줄이야. 그때 타타라에서 약을 나눠 줬던 스노우볼이 이렇게까지 굴러올 줄은 나도 몰랐다.
인생은 정말이지.
“…목숨값 갚겠다고 용잡이에 끼어든 댁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으하핫! 그렇게 치면 타타라에서 악마와 싸우지도 않았지!”
전 모험가는 호탕하게 웃었다.
“무엇보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공멸뿐인데 어찌 가만히 있겠나? 지금 살자고 도망치는 건 그저 미루는 행위에 불과해. 아주 멍청한 짓이지. 당장 피해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꽤나 훌륭한 금언이었다. 백이면 백 다 동의할 수 있는, 컨셉만 아니었다면 님 좀 아시는 듯하며 떠들었을 가치관이기도 했다.
“타타라란 말이지.”
비록 바람손은 다른 부분에 집중한 듯하지만.
“어쨌든, 온 김에 우리 애들이랑 대화 좀 나눠. 최소한 누구 명령에 따라야 할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예엡.”
“선장 말은 따라야지.”
“마음 같아선 고용했다는 다른 선원도 부르고 싶지만…… 그쪽까지 지금 불러오면 시선이 끌리니까.”
그래도 바람손은 확인보단 본인 일에 더 주력했다. 이미 합류한 이상 제 전적을 들어도 의미 없단 게 그 판단의 큰몫을 차지할 테다.
“그리고 그쪽은 마저 이야기하지. 선원 모집은 최소한의 조건이 달성된 것뿐이니까. 대략적인 해로와 가막만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배에 내릴 때까지 시간 끌어 줄 인력, 용이 가막만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 등등! 이야기할 게 너무 많다고.”
근데 그쯤 돼서 나는 의문이 하나 들었다.
나, 지상에 남아 있으면 안 되나?
“걱정 말게. 자네가 합류한 이상, 이제 밀어붙일 근거가 생겼으니. 아, 그래. 괜찮다면 회의에서 직접 말하겠는가? 내가 최대한 바라는 바를 얻어 오긴 하겠네만, 뱃사람이 아닌 이상 놓치는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아니, 어차피 가막만으로 용을 유인해 잡을 거면, 나 가막만에서 대기해도 되는 거 아냐? 배에 타 있어 봤자 할 것도 없을 텐데.
“그거 좋네! 윗대가리 놈들에게 제대로 뜯어 주지! 아, 대신 성주한테만 내 존재를 알릴 거니까 그 전까진 당신이 알아서 설명해.”
“걱정 말게나.”
그렇지만 역시 안 되겠지. 컨셉이 절대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겠지.
하, 진짜 컨셉에 매몰돼서 안 해도 될 고생까지 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닌데.
“항구의 배가 가라앉는다!!”
그때 항구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달리면서 말을 하는지 말소리가 첨첨 가까워졌다.
“항구의 배가 가라앉고 있다!!”
말은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뜻을 품고 있다.
스윽.
나는 벽에 기댔던 몸을 떼어 냈다.
꽈악.
인퀴지터는 바로 옆에서 메이스를 집어들었다.
“가십니까.”
누가 범인인지는 몰라도─사실 예상 가지만─, 사냥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