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빌고 또 빌어 (1)
─이게 정말이라면 용을 죽여야 한다는 소리 아닌가?
용사와 악마기사, 어린 도적이 해적 소탕을 위해 떠난 후, 아크메이지는 그녀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명백한 증거를 두고도 손해를 감수하기 싫어 미적거리는 마탑을 독촉하는 작업이었다.
─용을 죽일 수 있는 실력자가 있긴 해?
그녀는 통신구를 통해 한마디씩 얹는 자들을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실력자는커녕 용에게 접근할 수단부터 논의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해룡은 바다에 살잖아.
─나는 빼 줘. 머맨이랑 손자 문제로도 충분히 골치 아프니까.
─너만 그런 줄 알아? 우리도 지금 겨우 시간 낸 거든?
일행에겐 마탑이 실리로 돌아간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마탑은 그보다 더했다. 실리를 넘어, 결정권자인 대현자들의 흥미를 끌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 그래. 용사는? 용사가 있잖아. 용사론 안 돼?
─그뤼 텔츠면 대신전이랑 가깝잖아. 거기한테 떠맡기자.
그리고 그건, 용사를 지원하는 대현자가 그녀 혼자인 이유기도 했다.
“용사는 당연히 나설 것이네. 그들의 동료들 또한 의무를 저버리지 않겠지. 대신전 또한 이 이야기를 무시하지 않을 테고 말일세.”
아크메이지는 때때로 세상이 너무 오래 사탄과 대치했다고 생각했다.
대게 치열한 전쟁으로 겨우 생성했던 방어선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질 때. 혹은 목숨 바쳐 악마를 막아 낸 전사들에게 더이상 감사하지 않는 자들을 목격할 때.
─뭐야, 그럼 된 거 아니야?
그리고…… 전사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마법 대신, 저들의 흥미를 채우는 데 급급한 마법사들을 직시하게 될 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럴 리가 있나. 흰바람의 지적대로 용에게 접근할 수단이 있어야 용사도 힘을 쓰는 법일세.”
하나 그렇다고 절망해서야 쓰나.
“그러니 작작들 빼고 협력하게.”
젋은 이들이 한시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데, 그녀라고 놀 수는 없었다.
─아, 잠깐 잠깐. 이번에 합류했다는 용사의 동료 말이야. 정말이야? 악마를 몸에 담은 것도 모자라 마기를 마력으로 치환할 줄 안다는 게.
─뭐?? 난 그런 말 못 들었어!
─그거 괜찮은 거야? 죽여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다면 신체 일부 좀 표본으로 받고 싶은데.
“그건 자네들 알 바 아니니 닥치고 협력이나 하게. 제발.”
…그들과 함께하게 된 이의 안위를 챙기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 * *
“나리, 정말 괜찮은 거 맞습니까?”
시끄러워…… 나도 알고 있으니까…….
“허참.”
나는 갑판실에 기댄 채 들어 올린 손으로 눈가 주변을 전부 가렸다. 그럼에도 보이는 하관이 어지간히 창백했는지, 데브와 인퀴지터가 도저히 곁을 떠나질 않았다.
그게 더 거슬렸다. 쟤네 때문에 안 그래도 없는 기력으로 계속 주변을 의식하게 됐다.
“많이 힘들면 약 가져올까요?”
이 자식들이 정말, 나 힘든데 여기서 연기까지 하게 하지 말라고……!
“…라.”
“예?”
“시끄럽게 굴지 말고, 꺼지라 했다……!”
진짜 패악 한번 부려야 말을 듣지! 나는 손을 내리고 한껏 구긴 얼굴로 성대를 긁어 가며 경고했다. 그것은 그래도 먹혔는지, 두 사람이 찔끔한 채로 물러났다. 똥강아지들이 따로 없었다.
“지금은 좀 괜찮아졌나 봅니다.”
“어제 탔던 것보다 배가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군.”
“작은 배가 큰 배보다 멀미가 잘 납니까?”
“…아닌가?”
“당연히 파도에 더 흔들리니까 멀미가 잘 나겠죠. 그걸 또 모르고 되묻는 거 봐라.”
“…네놈!”
물러나다 못해 둘이 다시 투닥투닥거린다. 친구 놈이 제 여동생이랑 저러고 다녔는데. 잠시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가 말았다.
걔가 여동생을 막 대해서 그렇지, 진짜 남매는 저러지 않을 거야. 음음. 그렇고 말고.
“이봐, 조용히 안 해?”
내가 외동의 환상을 가지고 멀미를 이겨 내니, 누군가 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뺨에 칼자국이 있는 게, 통일된 병사 복장이 아니었다면 해적으로 오인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외모였다.
“아, 사과하겠습니다.”
“까칠하시기는.”
별개로 적이 발견된 것도 아닌데 좀 떠들 수 있지, 예민하기가 보통이 아니란 생각도 좀 들었다. 저 얄미운 두 놈이 기죽어서 그렇게 여긴 건 절대 아니다.
“교전 중인 함선이 보인다!”
그래도 얼마 안가 사 건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어질어질한 시야를 어떻게든 좁혀 보면 지평선에 배 두 척이 걸쳐 있다.
작은 쪽이 큰 쪽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 교전보단 추격전에 가깝다.
“쫓아!”
쾌속선 세 척이 돛을 가쁘게 바꾸며 그쪽으로 향했다. 이러면 저쪽에서 도망가지 않나 싶었으나 뱃사람 나름의 방법이 있겠거니 했다.
“해적이 맞나?”
“캐럭 쪽은 비푸릿 해적단이 확실하고, 캐러벨 쪽은…… 민간함 같습니다!”
그렇지만 순풍이 내 멀미를 덜어 주진 않았다. 나는 메스꺼움을 억지로 삼켰다.
뇌를 곤죽으로 만들어 흔들면 지금과 비슷한 느낌일 거야. 그따위 불평은 벌써 다섯 번 넘게 삼키고 있다.
“나리, 싸울 수 있는 거 맞죠?”
나도 이젠 모르겠다. 지금도 이런데 용은 정말 어떻게 잡냐.
나는 슬슬 내 주제를 깨달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소금기 있는 짠 공기가 코를 타고 폐에 다다르니 조금은 나아졌다가, 이어지는 출렁거림에 바로 안 좋아졌다.
저 바다의 해초가 되고 싶다.
“…네놈, 몸뚱이나 챙기지.”
그래도 어제처럼 못 일어날 정도는 아니니까.
배가 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북쪽 해안보단 풍랑이 덜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이상, 움직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해서 나는 컨셉에 맞는 대사를 치며─근데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검토할 정신머리가 없어서─기댔던 등을 떼어 냈다.
쿵.
일순 다리에 힘 풀릴 뻔했다. 잽싸게 벽에 다시 등 대지 않았더라면 또 무릎 꿇었을지도 모르겠다.
“…….”
후드로 눈이 가려진 상태인데도, 어쩐지 데브가 짠한 눈을 하고 있음을 알 것 같다.
“…눈, 돌려.”
“옙.”
…컨셉을 좀 더 가볍게 바꾸고 싶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깨지고 싶진 않았어…….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30m 이내에 존재합니다.」
“전투 준비!”
그사이, 교전 중이던 배와 군함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캐럭은 기어코 캐러밸을 놓쳤는지 덩그러니 남아 우리를 피해 우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캐러밸은 좌향으로 우리와 멀어지고 있었고.
“도망가는 걸 보니 저쪽도 해적일지 모르겠군.”
“속도나 배 모양을 보니까 바람손인 것 같습니다.”
“사략선도 해적이야. 쯧. 거리만 가까웠어도.”
“뒤쪽 배에 쫓으라고 신호할까요?”
“배 하나만 보내 봐. 정말 바람손이면 잡지도 못하겠지만.”
민간함인 줄 알았던 배가 사실 악명 있는 무언가였는지, 군함을 지휘하던 이가 욕설을 짓씹었다.
물론 그는 그렇다고 눈앞에 굴러 들어온 해적을 외면하지 않았다.
“저 캐럭 잡아!”
세 척의 군함 중 하나만 자리에서 이탈한 채, 남은 두 척의 배가 본격적으로 캐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던져!”
선두에 있던 우리 배가 가장 먼저 갈고리를 던졌다. 밧줄 끝에 달린 갈고리는 노련한 해군들에 의해 허공을 날아 해적선의 난간에 걸쳐진다.
「해적│바다를 떠도는 약탈자들. 자유와 낭만은 탐욕 앞에 몰락했다.」
용아병 땐 일 안 했던 시스템이 오늘은 또 일했다.
“응원군이다!”
“죽여!”
“버티면 우리가 이겨!”
“어차피 잡히면 교수형이야!”
“맞서 싸워!”
해적들이라고 그것을 두고 보진 않았다. 무딘 칼날로 로프를 끊으며 어떻게든 합류를 막으려 들었다.
해적들은 재판 없이 자리에서 처형─교수형이나 참수─한다 하니, 저 무의미한 발버둥도 딴에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테다.
그러나 배와 배가 줄로나마 완벽히 연결되었다. 해적선은 더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휘유. 드디어 싸움이구만요.”
“반드시 벌하고 말겠습니다”
둘의 말마따나 이제 우리들의 차례다. 싸우려 온 거니까. 하면 나도 이제 건너가서 싸워야 하는데…….
나는 입을 막으며 갑판실 벽을 짚었다. 살짝 비틀거리는 다리에 데브가 욕을 하며 부축하려 들었다.
“뭐야, 나리 안 괜찮잖습니까!”
그래. 사실 파랗게 뜬 얼굴로 싸우는 게 현명한 선택은 아니겠지.
그런데 여기서 물러나면, 그건 좀 아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뱃멀미에 패배하는 건 모양이 안 살았다.
더불어 메인 퀘스트에 바다 얽혀 있으면 그땐 진행 어떻게 하게. 노력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밖에 수가 없다면 해봐야지.
나는 부축하려는 손을 쳐내며 두 다리로 어떻게든 단단히 섰다. 그리곤 크게 숨을 들이쉬어 폐를 깨끗히 하고, 그대로 발을 뻗었다.
퉁, 하고 한 발. 쿵, 하면 두 발. 탁, 하면 세 번째 발걸음이자 내가 난간을 밟는 소리.
“……!”
“악마기사!”
‘콰직’하고 내 발돋음을 버티지 못한 난간이 으스러졌다. 그 대가로 내 몸은 허공을 날듯 떠오른 채다.
퉁.
배와 배의 중간 거리를 한 번에 뛰어넘은 뒤엔 밧줄을 밟는다. 균형은 한쪽으로 과도하게 무너지지만 않으면 된다. 가속력이 붙으면 중심은 의외로 잘 지켜진다.
끼익.
갑자기 무게와 충격이 더해진 까닭에 로프를 지탱하던 갈고리가 비틀렸지만 쉽게 풀리진 않았다. 내 몸이 밧줄 위를 내달려 순식간에 해적선에 다다랐다.
“죽여─?!”
크게 움직이니 차라리 나은 것 같기도 하네. 최소한 내 것 같지 않던 몸이 내 유도대로 움직이긴 하니까.
나는 그런 잡념을 적당히 흘린 후 가볍게 튀어 올랐다. 콱! 내가 밟았던 난간에 해적의 칼날이 박히고, 튀어 오른 내몸이 칼 휘두른 해적의 안면을 짓밟았다.
그리고 높게 점프한 상태에서 그대로 내려찍기. 검은 쓰지 않는다. 몸에도 기운을 두르면, 스킬의 형식은 따라할 수 있다.
브레이커. 다리로 행해진 스킬이 해적선 갑판 중앙을 타격했다.
와지끈!
나무 갑판에 화려한 금이, 혹은 호화로운 균열이 새겨졌다. 얻어맞은 부분부터 차근차근 층지듯 함몰되는 균열이었다.
배가 두어 차례 크게 요동쳤다.
“후.”
아, 흔들리니까 또 욕지기가.
나는 입에 손등을 댄 채 발을 최대한 크게 벌려 섰다. 갑판 사이에 낀 먼지와 나무판자가 부서지며 인 톱밥이 발목 부근에서 뿌옇게 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기, 기사인가?!”
“젠자아앙! 뭐 해! 죽이란 말이야!”
아군들은 아직 건너오기 전이니 이 배엔 아직 해적들뿐인 건가.
좋아. 솔직히 난전에서 피아 구분 잘할 자신 없었는데 잘됐다.
나는 쏠리는 구역감을 외면하기 위해 당장의 일에 집중했다. 가장 우선된 일은 다가온 칼날을 피하는 것이다.
어지러움도 생존 본능 앞에선 나름 무뎌지는지 첫 칼날은 수월히 피해 냈다.
회전하며 피한 까닭에 빙그르르 피어난 옷자락이 해적을 스치고 내 팔뚝이 대상의 뒷덜미를 그대로 후려쳤다.
쿵!
한 놈이 넘어지면 다음 적이 다가온다. 칼날이 나를 가르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지는 중이었다.
빠르게 오른팔로 검을 뽑아─역수더라도─대각선으로 기울인 채 칼날을 막았다. 까앙! 서슬 퍼런 금속음이 시원하게 퍼지고 측면에서 찌르기 형태의 공격이 쳐들어왔다.
“흡!”
피할 각이 없거든 만들면 그만이다. 나는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적을 밀어냈다. 다리에 마력을 부어 강화하면 상대를 밀어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검 또한 위로 쳐내 적의 검을 날려 버리고, 해서 열린 몸에 정확히 왼주먹을 먹였다.
퍼억!
명치 얻어맞은 적이 폴더폰처럼 접혀서 날아갔다.
채앵!
연이어 정수로 검을 되잡고, 빠르게 팔을 내려 다가오는 공격을 또 한 번 막는다.
별안간 배가 출렁이며 균형이 무너졌지만 내겐 호재였다. 통통 뛰듯 기운 쪽 발로 한 걸음 더 걸어서 해적의 머리에 주먹을 박았다.
통렬한 일격이었다.
“욱.”
멀미감이 바로 들이닥치지만 았았어도 더 좋았을 텐데. 크아악.
나는 입을 다급히 막으며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잠깐의 틈을 다른 해적들이 노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해서 일단 뛰어올랐다가 다시 착지하며 그라운드 크래쉬라도 시도할까 했는데…….
서걱.
“나리는 매번 등을 비워 두시는 것 같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언제 넘어왔는지 모를 데브가 쿠크리로 해적의 목을 땄다.
챙!
“아니면, 쓸데없는 일이었습니까?”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칭찬할 만한 것도 아닌지라.
나는 대답 대신 다가오는 적에게로 다시 튀어나갔다. 거추장스러운 롱소드는 잠시 검집에 들어갈 시간이다.
휙.
나는 가볍게 뛰어 적의 팔을 밟았다.
검을 앞으로 내지르던 적의 손이 내 군화에 짓이겨지며 아래로 추락했다가,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찍혔다.
기우뚱. 적과 내 몸이 동시에 넘어갔다.
연이어 가로베기 형식으로 다가오는 칼날은 허리 굽혀 피하고, 주먹으로 옆구리를 쳤다. 그것으로 적의 허리가 약간 굽어지면 내가 상체를 들면서 적의 머리를 가격하기 딱 좋은 각도가 나온다.
퍼억!
주먹 한 번에 해적이 바로 나동그라졌다.
“이 자식들!”
그런 식으로 몇 놈을 더 처치하니 슬슬 해적선과 군함이 거의 붙었다. 무게 때문이랄지, 몸이 상대적으로 둔해서 넘어오질 못하던 인퀴지터가 이쪽으로 건너오려든 건 당연지사였다.
“심판을, 받아라!”
인퀴지터가 넘어옴으로써 전세는 완전히 이쪽으로 기울었다. 신의 광휘가 해적들 위로 떨어져 내렸다.
도시군이나 의뢰에 참가한 다른 모험가는 재미도 제대로 보지 못한 순간이었다.
* * *
“하여간 힘만 무식하게 세서는.”
안 그래도 내 발차기로 반파되었던 갑판은 인퀴지터의 화끈한 메이스질에 구멍이 뻥 뚫려 버렸다.
배가 침몰하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그 지경까진 가지 않더라.
“뭐라 했나?”
“힘 세다고 했습니다?”
데브는 슬슬 인퀴지터 놀려먹는 맛으로 사는 거 아닐까. 그런 합리적인 의심이 들 즈음, 참수 직전의 해적이 악을 쓰며 외쳤다.
“비푸릿 님께서 언젠가 네놈들의 손목을 자르고 저 바다의 고기밥으로 던져 주실 거다!”
그 말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비푸릿이 뭐? 우리의 손목을 자르고 고기밥으로 내줘?”
“그럴 능력이 있으면 형제에게 빼앗긴 섬부터 되찾아 보라지!”
“으하하하!”
와하하. 해군들의 비아냥이 바로 잇따랐다.
“비푸릿? 그게 누구지?”
“뭐야, 댁은 그것도 모릅니까?”
“…그래, 모른다. 네놈은 뭐 아나?”
“하, 저야 당연히 알죠. 모르는 게 바보 아냐?”
데브의 일침에 인퀴지터가 분한 기색을 했다. 문제는…… 나도 몰랐다. 뭔데 그게.
“본토와 분리된 거대한 섬, 야바드 지방의 전前 성주지 않습니까.”
…야바드 지방은 또 어딘데?
저번에 아크메이지 지도를 훔쳐 볼 때 시계 방향으로 일고여덟 시쯤 방향에 거대한 섬이 하나 있긴 했는데. 혹시 그건가?
“그쪽 성주들이 암암리에 사략선을 허용하긴 하는데, 그쪽은 너무 대놓고 해적들을 운용해서 사람들의 반발을 샀죠. 형제에게 성을 빼앗긴 것도 그 때문이고.”
내가 야바드의 위치를 궁리하는 사이, 데브가 설명을 이었다. 해군의 비아냥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 지식이었다.
“그래서 내쫓겼다는 건가.”
“그 뒤론 아예 해적왕을 칭하면서 상선은 죄다 털고 다니는 중입니다.”
“야바드 지방은 이곳보다 훨씬 남쪽이다. 여기까지 올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해적들 심리를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해룡 문제 때문에 먹을 게 부족해졌나 보지.”
글쎄. 북쪽 해안가와 달리 그뤼 텔츠엔 아직 큰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 그걸 보면 더 남쪽인─아마도─야바드 지방은 더 멀쩡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니면 아까 그 배를 노렸는지도 모르죠. 바람손은 유명한 사략선 선장이니까.”
“하, 쓰레기가 유명할 수도 있나?”
“바다를 다룬다는 말이 돌 정도로 항해술이 뛰어나다는데 유명할 수도 있겠죠. 뱃사람들 속에선 바다의 전신이라는 솔디니의 후예로 여겨지는 것 같던데.”
데브는 그리 말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아까 명령을 받고 대열에서 이탈해 캐러벨을 쫓아갔던 우리측 군함이었다.
배에 아무런 상해도 없는 게 아무래도 놓친 것 같다.
“최소한 군함은 따돌릴 만한 실력자 같네요. 그 캐러밸이 바람손의 것이 맞다는 가정하에.”
“그래 봤자 쓰레기는 쓰레기다.”
인퀴지터의 강경한 말에 데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만 으쓱였다. 다만 나는, 데브의 말 중 한쪽에 관심이 쏠렸다.
바다를 다룬다는 말이 돌 정도로 항해술이 뛰어난 선장. 솔디니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바다의 전신이라는 이의 후예로 여겨지는 인물.
이거 어째, 딱 봐도 해룡 레이드에 필요할 것 같지 않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