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보다 나은 다음을 (6)
“나리 안색이 왜 저럽니까?”
“크게 다친 건 아니니 걱정 말게.”
바다 일부를 베어 낸 후, 나는 검게 물든 바다와 함께 그대로 뻗었다. 진짜 토하지 않은 게 내 최선이었다. 비록 토만 안 했을 뿐 젖은 걸레처럼 축축 늘어졌더래도.
“그럼 그건……?”
“우리가 얻은 유일한 단서일세.”
그래도 내가 날린 참격은 나름의 활약을 했다. 비록 인퀴지터의 막을 날리긴 했지만, 배를 노렸던 습격자들도 죄 싹둑 잘라 냈으니까.
더불어 그에 멈추지 않고 바다 일부를 가를 때 그 안도 살짝 볼 수 있었는데…….
“이건…… 뭡니까? 짐승? 악마?”
“그 또한, 지금부터 차차 알아갈 부분이겠지.”
난 아직도 모르겠다. 그 안쪽에서 본 게 암초였는지, 아니면 물이 반사된 걸 착각한 건지, 혹은 그 다른 것이었는지.
다만, 그저 확실한 건, 앞으로 배에 타라 하면 차라리 사흘 밤낮 지새는 걸 택할 거란 점이다.
“그럼 여기에 더 머무르겠습니다?”
“최소한 오늘만큼은 그래야 할 것 같네.”
나는 내 안색을 힐끔 살피는 아크메이지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의식하는 순간 컨셉에 맞게 패악을 부려야 하니, 그냥 처음부터 모르쇠로 구는 게 나았다. 기력도 없는 지금은 더더욱.
뱃멀미 진짜 싫어어억.
어떻게 뭍으로 돌아왔는데도 멀미가 안 가시는데에에!
“악마기사, 괜찮으십니까?”
나는 내가 씹어서 터진 입술을 꾹 다문 채 김치만두를 내려다보았다.
멀미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가. 걱정해주는 둥근 얼굴에 대고 괜찮노라 다독여 주고 싶다가도 거슬리니 꺼지라는 컨셉 언어가 번갈아 가며 혀 위를 굴러다녔다.
“괜찮지 않다면, 뭐가 달라지나?”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꺼져라.”
결국 승리한 건 컨셉이었다.
냅다 꺼지란 말은 좀 과한 것 같아서 순화하려곤 했는데…… 재고해 보니 잡은 캐릭터가 적당히 혐성이어야 말이지. 다짜고짜 그리 말해도 괜찮았을 거 같다. 본체 입장에선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지만.
나는 어질어질함을 참으며 숲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마음 같아선 침대에 누워 골골대고 싶은데 그랬다간 배 위에서 박살 난 가오, 조각도 안 남기고 증발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증발하면 난 또 메이스에 얻어맞을 위기에 처하겠지. 흑흑.
“저녁엔 돌아오게!”
몰라. 악마기사는 숲에서 잘 거야.
* * *
“당장 그뤼 텔츠로 가세.”
숲에서 잘 거였는데…….
“어지간하면 쉬자고 하겠네만, 이 일은 보통 사건이 아니야.”
양지바른 곳을 찾아 벌레 쫓는 향─받은 선물 보따리에 있었다─을 막 피운 참이었다. 등이 바위에 닿기도 전에 데브를 위시한 아크메이지가 나를 찾아왔다.
무언가를 알아냈다기에도 너무나 이른 방문이었다.
“타타라…… 어쩌면 그 이상의 사건이 될 수도 있네.”
잠 안 자고 있던 게 다행인 거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못 쉰 게 불운인 거냐.
그나마 멀미가 가셔서 망정이지.
“악마인가?”
“그와 비슷할지도 모르지.”
콱
나는 아크메이지의 답을 들으며 땅에 박아 두었던 투헨더를 뽑아 등에 맸다.
“안내해라.”
강압적이고 명령적인 어조로 지시하는 건 덤이었다. 비록 속내는 촉촉해진지 오래지만.
후, 그래도 울면 안 돼…… 난…… 악마기사 이전에 어른이니까……!
나는 되도 않는 말을 속으로 실없이 지껄이며 숲을 나갔다. 배 대신 밤샘이 낫겠다 평했더니, 졸지에 둘 다 하게 생긴 하루였다.
“그럼 이제 좀 들어봅시다. 급하다니 악마기사부터 찾아오긴 했는데,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그런데 데브도 정작 다급함의 원인을 못 들었나 보다. 숲을 빠져나가며 데브가 아크메이지를 캐물었다.
“내가 설명을 미처 못 했나. 미안함세.”
“사과는 됐고, 말이나 하라니까요.”
“음. 인퀴지터도 들어야 하니 일단 돌아가서 제대로 대화 나눔세.”
안타깝게도 설명은 더 늦어졌다. 아크메이지 딴에는 나름 여러 번 입 놀리기 싫어서 그런 것 같은데, 우리 입장에선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아무렴,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 두 가지중 첫번째가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두 번째가…….
뭐, 그렇다.
“아크메이지님!”
그래도 내가 숲 깊은 곳까진 안 들어간 덕에 금방 해변가가 보였다. 인퀴지터가 말 다섯 마리를 이끈 채 마을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준비는 했습니다만…….”
“잘하셨습니다. 바로 출발하지요.”
“네.”
내가 채비 갖출 게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아크메이지는 일행을 바로 몰아붙였다.
정말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타타라 때도─물론 그땐 돌아가는 상황을 몰랐지만─이렇게 급히 움직이진 않았는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해룡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네.”
우선 각자의 말에 올라 신호를 보냈다. 다섯 마리의 말이 머리를 흔들며 가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사항 아닙니까요?”
“예상과 확신은 조금 다른 법일세. 더불어 해룡 자체가 타락했다면 이야기가 좀 더 무거워지지 않겠나.”
“예?!”
“해룡이…… 타락했다는 말이십니까?”
그녀의 발언에 두 사람은 꽤나 놀란 듯하다. 다만 나는 외려 안도했다.
난 또 뭐라고. 그뤼 텔츠에서 무슨 습격이라도 벌어지나 했더니, 용에 대한 이야기라면 안심이다.
그 부분은 각오한 지 오래니까.
아, 물론 원작에 동일한 사건이 있어서 예상하고 감내하는 건 아니다. 비슷한 사건이 아예 없었냐면 그건 아니긴 한데, 솔직히 레이드의 배경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 근데 그게 적도 아군도 아니다? 그럼 타락이든 뭐든 붙어서 결국 레이드행인 거지 뭐.
오히려 걱정인 건 뱃멀미인데…… 그렇다고 게임에서 레이드 열어 주는 걸, 내가 막을 수 있나? 그냥 수긍하는 수밖에.
“이것을 보시게.”
그사이 아크메이지는 고삐를 잡고 있던 손 하나를 빼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쪼개진 듯 단면이 날카로운, 뼈 같은 질감의 물체였다.
“이건?”
말을 타는 도중이다 보니 두 사람은 직접 건네받아 물건을 확인했다. 나는 굳이 받아 보진 않았지만, 받아 본다고 해서 지금 내린 판단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용의 이빨입니다.”
“용의…….”
“그리고 아까 악마기사가 죽인 것들이기도 하지요.”
나는 순간 삐끗할 뻔했다. 내가 죽인 그 물도마뱀들이 저 이빨이라고.
“이게 아까 봤던 그거라고요?”
“그렇네. 흔히 용아병이라 부르는 것들이지.”
이빨이 물도마뱀이 되었다거나, 물도마뱀이 이빨로 돌아갔다거나. 그런 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다. 그런 설정은 많이 접하니까.
다만 내가 집중하는 건, 저거 아무래도 해룡전에서 쫄몹으로 등장할 것 같단 추측이다.
보스전 도중 쫄 패턴으로 나오든, 보스전 치르기 전 관문으로 나오든 뭐든 간에.
죽이면 용의 이빨이란 소재를 얻을 수 있다는 건 꽤 솔깃하지만, 역시 그런 식의 등장은 귀찮다.
“이걸 어찌 아셨습니까?
“마력을 주입한 순간 본래 형태로 돌아갔습니다. 용아병의 특징이지요. 마탑에 연락해, 기록을 통한 검증도 마쳤으니 확실합니다.”
아크메이지는 그쯤되어서 말을 돌렸다. 용아병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이.
“다만, 인퀴지터. 분명 마기는 아닐지언정 이것들에게서 부정을 느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에. 그건 지금도…… 아!”
“깨달으셨겠지만…… 어쩌면 해룡이 부정에 먹혔을지도 모릅니다.”
“잠깐, 그렇다는 건…… 이 일의 원인이 정말 해룡이라는 겁니까, 법사 나리?”
“자네 말이 맞네. 더해서 앞으론 서해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겠지. 해룡이 타락한다는 건 그런 의미니까. 다만 대체 왜 해룡이 부정 탔느냐는 것인데…….”
그거야 악마숭배자들이 무슨 짓을 했거나, 아니면 자연의 섭리가 어긋나서 우연히 그렇게 되었거나겠지. 별로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 본다.
레이드에 심오한 설정이 붙어 봐야 얼마나 심오하겠어. 무엇보다 이런 거 뒷설정 챙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야 뭐, 컨셉질할 때 필요하면 가끔 팠지만.
“원인도 결과도 둘 다 죽이면 해결되겠지.”
“…자네의 과격함은 가끔 회의감이 들 정도네만, 이번엔 자네가 맞을 듯하군.”
마법사는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해룡을 정화하여 정신 차리게 할 수 있다면 베스트지만, 부정의 정도에 따라 죽여야 할 수도 있으니.”
그에 맞춰 시스템 창이 내 시야를 가렸다.
「❖ 바다에서 떠내려온 부패
∎ 해룡에게 접근할 방법 찾기
∎ 부정의 근원을 찾아 정화하기」
덕분에 나는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좋아. 원인이 무엇이든 용과의 싸움은 당첨이다.
“그럼 속력을 올려야겠군.”
근데 싸움은 둘째치고 뱃멀미는 어떻게 견딘다냐. 하, 미래의 나야 고생해라.
* * *
촌장은 제 아들이 도시에 가는 데 엿새가 걸렸다고 했던가. 말을 타고 달리니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비록 달이 뜨는 걸 막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상황이 급한 만큼 바로 갈라져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네. 연락이야 미리 했다지만, 대면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 줄 필요가 있을 테니.”
아크메이지의 말을 듣다보니 퍼득 생각 하나가 들었다.
그러고보니 ‘영웅전설’엔 신전뿐 아니라 마탑도 존재했던가. 근데 왜 전 도시에선 못 봤지?
“해서 나는 마탑으로 가서 인력을 청해 볼 생각인데…….”
“저는 신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이빨 조각을 나눠 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지요. 부탁합니다, 인퀴지터.”
모르겠다. 내가 물어볼 처지도 못되고.
나는 그렇게 의구심을 정리하며 꼈던 팔짱을 풀었다. 나나 데브만 할 일이 없던 까닭이다.
신전을 따라가자니 나는 악마 이슈가 벌어질 게 뻔하고, 데브는 혼자서는 절대 인퀴지터를 따라갈 리 없고.
마탑에 동행하자니 그건 그것대로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솔직히 그렇잖아. 인력 요청하는데 내가 동행해서 뭐해. 구경만 하지.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 그래. 아크메이지가 봉인 수단을 논한 전적도 고려해야 한다. 마법사가 방법을 마련한다는데 설마 신전을 쓰겠어? 마탑의 연구 시설을 쓰지.
그런 이유에서 접근 안 할 핑계는 충분하다. 오히려 순순히 따라갔다면 오해받았을지도? 휴. 큰일 날 뻔했네.
“자넨…….”
별개로 할 일 없다 해서 지시를 듣고 싶진 않다!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퀘스트가 뭐라도 지시해 주면 편했겠지만 얘는 미동이 없어 보이고.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음, 내가 하면 좋을 일은……!
“모험가 길드를 말할 거면 입 다물어라. 그것 하나 모르진 않으니까.”
순수 모험가가 나밖에 없는데, 모험가 길드밖에 더 있겠어?
“그래. 그곳을 부탁함세.”
문제는 거기서 할 일을 모른다. 걍 동향만 파악하면 되나. 아닌가. 사무관에게 사건 귀띔해 줘야 하나. 모험가 바로 소집할 수 있도록?
“그럼 전 나리나 따라가겠습니다. 뒷골목 놈들이 끼어들 일도 아니고.”
“꺼져라.”
“기사 나리 혼자 설명할 자신은 있으시고요?”
팩트폭행 아파욧. 나 대신 설명해 주겠다면 본체는 쌩큐지만.
“그럼 어서 할 일을 하러 가지. 아, 볼일을 마치면 모험가 길드에 모이는 걸로 하세.”
“예! 나중에 뵙지요!”
아크메이지가 말하는 사이 나는 달빛을 등진 채 데브를 노려보았다. 당연히 데브는 휘파람만 불며 태연히 시선을 넘겼다.
하여간 도적의 뻔뻔함은 이길 수 없다.
“…….”
펄럭.
그래도 깐지는 포기할 수 없으니까.
나는 누구 하나 출발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자리를 이탈했다.
“같이 가자니까요.”
그런데, 나 한 발 딛고 나니까 깨달은 게 하나 있어.
나 이 도시 처음이라서 모험가 길드 위치를 몰라.
“근데 나리, 여기 도시 와보신 적 있으십니까?”
…데브를 어떻게든 아크메이지에게 떨궜어야 했는데! 나는 하염없이 흔들리는 눈을 일단 붙잡고, 뒤의 시나리오를 빠르게 떠올려 보았다.
왜 따라오냐고, 꺼지란 말 못 들었냐고 한 번 더 시도해 보기. 타이밍은 아직 늦지 않았다. 그렇지만 쟤가 그런다고 갈 애일까?
두 번째, 모른다고 인정하기. 캐붕이니까 따져 볼 필요도 없다.
세 번째, 그냥 달고 다닌 게 헤매기. 역시 내게 남은 길은 이것뿐인가……? 그래도 첫 번째는 시도해 보고 마지막 결말을 맞이하는 게 낫겠지?
“엇, 자네는?”
그런데 내가 뒤돌아 입을 떼기도 전에 누군가가 소리를 내었다. 밤거리라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기에, 우리가 대상이 아니겠거니 정신 승리도 못했다.
“악마기사 아닌가! 자넬 여기서 보게 될 줄 몰랐는데!”
“아는 사람입니까?”
아니, 모르는데.
나는 미간을 구기며 내게 다가오는 이를 살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모르는 쪽에 추가 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데, 대체 누구지?
“뭐냐, 넌.”
내가 모르는데 남은 날 아는 상황을 컨셉이 마음에 들어할 리가 있나. 썩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갖추고 물었다.
상대는 그것에 놀라기보다 으하핫 하고 웃기만 했다. 길게 자란 구레나룻 사이의 입이 벌어지며 누런 이와 설태가 낀 혀가 보였다.
가끔…… 아니 자주 디테일한 부분에 괴로워지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다. 양치 좀 해 이 양반아. 나도 비싼 소금과 버드나뭇잎 사서 매일 관리하고 있다고.
데브는 안 하다가 내가 챙기니까 슬쩍 따라 하고 있고.
“기억 못 하는 건가? 하긴, 자네 입장에선 그럴 만도 하군. 그래도 좀 섭한데.”
와중에 우리 정말 안면 있나 보다. 나는 없는데.
내 눈이 가늘어졌다.
“왜, 타타라에서, 자네가 하수도로 들어가던 걸 막으려다가 약을 받았지 않나. 불타던 집 앞에서 봤고. 내가 아크메이지님께 설명하는 자리에 자네도 있지 않았나?”
음, 아, 아아. 아아아!
이제야 기억났다. 사실 완전히 기억나는 건 아닌데 대충 어렴풋이 감 잡히는 정도는 됐다.
그러니까, 맛가기 전에 해독제 받은 놈이란 거 아냐?
“확실합니까요?”
데브가 은근슬쩍 내게 물었다. 도적 클래스다 보니 이런 거엔 좀 민감할 거다. 세상엔 위장, 변장이란 게 있는 법이고 그건 도적이 제일 잘 아니까.
“그래서, 용건.”
그에 나는 기억났다는 말 대신 싸가지 밥 말아먹은 태도로 대상을 대했다. 이것만으로 데브는 대충 알아들었을 것이다.
“용건이랄 건 없고, 그냥 반가워서 물어봤네. 자네 덕에 산 목숨 아닌가. 아 그래, 선물은 받아 봤나? 신세진 사람들끼리 이것저것 모아 자네에게 주기로 했는데. 나는 물건만 맡기고 떠나서 소식을 못 들어서 말이지.”
그보다, 이 사람. 말이 좀 많다.
“잘 받는 거 제가 봤으니 걱정 마십쇼.”
“오, 그런가? 그거 다행이군. 한데 자네는……?”
“기사 나리랑 한동안 같이 다니게 된 사람입니다요.”
“그렇구만. 아크메이지님이나 인퀴지터랑은 더이상 같이 안 다니나 보지.”
내 씰룩대는 입술과 눈꼬리─물론, 연기다─를 보았는지, 데브가 나서서 응대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시시콜콜 다 말해 줄 필요 없으므로 데브도 일행에 대해선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 미안하네. 말이 너무 길었군. 지금 도착한 거라면 여관이 급할 텐데. 아니면 주점을 찾고 있나?”
잠깐. 얘가 모험가 길드 위치 알고 있지 않을까? 근데 나 물어봐도 컨셉에 안 어긋나나?
“그런 거라면 추천해 줄 수 있네만.”
“아, 괜찮습니다요. 모험가 길드로 갈 거라.”
데브으으! 거기서 길까지 물어봐 주면 안 되겠냐!!
“이 야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뭐, 있다면 있겠죠.”
“그렇구만…….”
역시 물어봐 줄 리 없겠지. 나는 눈물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아, 잠깐. 길드가 건물을 이전해서 예전 위치로 가면 못 찾을 텐데. 내가 안내해 줘도 되나?”
근데 여기서 이런 우연이 터진다고?
내가 길 몰라서 헤매려던 와중에, 예전에 신세진 사람이 나타나서 컨셉 헤치는 것 없이 자연스레 길을 가르쳐 준다고?
“…앞장서라.”
스노우볼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