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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40화 (40/389)

◈40화 보다 나은 다음을 (5)

이번 새벽 출항엔 나도 참여하기로 했다. 지상은 충분히 찾아보았고, 솔직히 뭍보단 바다에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컸던 탓이다.

무엇보다 이번엔 용이 목격된 곳까지 나가야 했다.

바다가 허락할진 미지수이나, 만약 도달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만큼 대항할 인력을 더 데려가는 게 맞다.

데브야 뭐, 무력도 약한 편이고 물은 질색이라며 끝끝내 마을에 남았지만.

“아직 준비가 다 안 됐는데…….”

한데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이 내준 집─은인들 편히 자라고 집을 통째로 비워 줬다─에서 나와 해변가로 나가니 주민들과 딱 맞닥뜨렸다. 출항을 준비하던 이들이었다.

“저, 아직 출발까진 시간이 좀 남았습니다.”

주민 한 명이 대표로 나와 고했다. 그 얼굴은 당황과 두려움으로 물들어있다.

다른 세 사람은 편히 대하면서 나만 무서워하는 게 컨셉이 잘 먹힌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빨리 배를 띄워도 파도가 말썽이라서…….”

별개로 딱히 재촉하려던 건 아닌데. 졸지에 눈치라도 줘버린 듯하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여기 있어 봐야 양쪽 다 불편할 테고. 애초에 산책하러 나온 거니까 그냥 해변이나 거닐까.

나는 배를 준비하는 곳을 떠나 모래를 밟고 다녔다. 진주 하나만 더 발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양심 없는 심정은 여담이다.

쏴아아.

파도 소리가 들리는데 어둠 덕에 정작 시야에 잡히는 건 별로 없다. 바다 쪽을 돌아보아도 달마저 구름에 가려진 까닭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알아볼 수 없다.

나는 전등을 켤까 말까 하다가 그냥 포기했다. 이 고즈넉함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밤눈이 밝아서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기도 하고.

“흐윽, 흐으으…….”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해변을 계속 걷다 보니,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색적스킬이 안 울린 걸 보면 악마나 몬스터는 아닌 듯한데. 나는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로 빠르게 소리를 좇았다.

곧 해볕의 끝, 갯바위 사이에 숨은 머리통이 보였다. 크기가 좀 쬐그만 게 성인보단 아이의 것 같다. 우는 소리가 유달리 젊은 것도 추측에 힘을 싣는다.

“엄마아…….”

그러나 울음에 담긴 통한은 아이답지 못하게 절절하다.

나는 아이가 제 존재를 눈치 못 채게 숨죽이며 걸음을 돌리고자 했다.

바스락.

하필 그 자리에 갯바위를 위장한 조개가 있었다.

“……?!”

파도 소리나 통곡하는 목소리에 묻힐 법도 하건만 그걸 또 듣네.

아이가 제 눈물을 가리려는 듯 숨마저 삼키고, 나는 이렇게 된 거 기척을 대놓고 내며 걸었다.

내가 여기 있되, 아직 너는 못 발견했다는 신호를 주기 위함이었다.

좋아. 이대로 애 있는 곳을 지나쳐서 그 너머로 가자. 우는 모습 들키기 싫으면 그 사이에 마을로 가거나 하겠지.

그러나 참 재수도 없지. 내가 아이의 정면─거리가 좀 있었지만─을 지나칠 즈음 달을 가리던 구름이 걷혔다.

바다 위에 은빛 길이 나며 제 머리와 뺨, 팔과 다리 따위에 희미한 윤곽이 더해졌다.

펄럭.

바닷바람에 머리카락과 코트 자락이 유난히 크게 부풀었다.

“…….”

아이의 시선이 정확히 내게 맺혔다. 제법 열렬하여 뺨이 간지러울 지경이었지만 나는 절대 그곳을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서 아는 척하면 더 어색해질 뿐이었다.

“들었어요.”

근데 이걸 먼저 말 거네. 난 절대 안 걸 줄 알았는데.

“아줌마 아저씨들을 구해 주셨다는 거.”

이젠 더는 모른 척할 수 없다. 나는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달빛은 아주 공평해서, 나뿐 아니라 아이 또한 그 윤곽을 비쳤다. 상복을 연상시키는 까만 옷이 유난히 잘 보였다.

“그런데 왜 우리 엄마는 못 구했어요?”

아이의 마른 뺨에 흐르는 눈물도 유독 눈에 잘 들어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우리 엄마가 죽은 사람에 껴야 했어요?”

나는 갯바위의 굴곡을 고려해도 명치 어림쯤 올 아이를 두고 입을 다물었다.

“왜, 왜 하필 우리 엄마가…….”

내 잘못은 아니나, 인간이고 또 어른이라서 느끼고 마는 죄책감이 양심을 콕콕 찔렀다.

왜, 나를 절망으로 빠트릴 그런 수준의 죄책감은 아니지만 마냥 외면하기엔 영 꺼림직한 그런 마음 있지 않나.

마지막 남은 닭꼬치를 사다가 반쯤 먹었는데, 초등학생 한 명이 후다닥 가게에 왔다가 빈 매대만 보고 허망히 돌아가는 걸 보는 느낌.

“왜…….”

다만 그런 상황에선 내가 다른 무언갈 사주는 것으로 마음을 덜 수라도 있지, 이건 해결 방법이 없다.

나는 고개 숙여 곡하는 아이에게 반사적으로 손을 뻗을 뻔하다가 그만 내려놨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아이에겐 닿지 않을 거고 기분 나아지지도 않을 거다. 애초에 저 아이가 몰라서 나를 비난하는 게 아니니까.

쟤도 내 잘못이 아닌 거 아마 알걸. 알면서도 원망할 데가 없어서 혀에 가시를 달았을 뿐이지.

그렇지만 그게 나쁘냐면 그다지?

어른도 항거할 수 없는 절망에 휩쓸리면 무고한 이들에게 분노를 돌릴 때가 있다. 하물며 뇌도 다 자라지 않은 아이여서야.

어른으로서 그 정도 이해심도 베풀지 못하면 그건 덜 자란 거다. 그리고, 나는 다 자랐다고 말은 못 해도 저 정도는 품어 줄 수 있었다.

내가 정한 컨셉도 아이나 노인 같은 약자에겐 나름 상냥했다.

그러니, 그러하므로.

나는 바다로 추락할 듯 구는 달을 보며 자리를 가만히 지켰다. 해가 뜰 때까지. 태양이 온기를 쬐어 줄 때까지.

* * *

“오셨습니까, 악마기사.”

“어딜 갔었나? 조금 늦었군.”

동이 트는 걸 보고 나서야 왔더니 좀 늦은 듯하다. 나는 내 지각 사유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두고 사납게 일갈했다.

“네놈의 귀가 언제쯤 제 할 일을 해낼지 모르겠군.”

그 말에 아크메이지는 어깨만 으쓱였다.

“이유 없이 지각하는 편은 아니잖은가. 자네.”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걸 확신하시는지.

물론 나도 내 컨셉과 비슷한 캐릭터 보면 ‘쟨 자존심 때문에라도 시간 약속 잘 지킬듯’이라 생각하긴 할 텐데…… 그래도 반대로 오만해서 ‘난 시간 따위 안 지킨다!’일 수도 있잖아.

왜 확신해!

“말하기 싫으면 말게. 꼭 알아야 할 부분은 아니니.”

내가 새침하게 계속 입 닫으니 아크메이지가 턱짓을 했다.

“어서 가게나. 출발할 준비가 다 되었으니.”

그곳엔 준비된 배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으로 타시면 됩니다요.”

와, 배 타는 게임은 몇 번 해본 적 있지만 이렇게 애매한 사이즈의 배는 처음이다. 진짜 딱 어선 하면 떠올리는 크기라니.

심지어 철이 아닌 나무 재질이라 더 신기하다. 나무배야 RPG를 하다 보면 자주 접하긴 하는데 이 정도 사이즈는 접할 일이 없어서.

“악마기사께선 배를 타본 적 있으십니까?”

먼저 배에 오른 인퀴지터가 배 중간에 앉은 채로 물었다. 평소보다 단촐한, 체인메일에 파란 천옷을 추가로 덧입은 차림이었다. 방패도 두고갈 요량인지 메이스만 옆에 두고 있다.

체인메일의 무게도 만만치 않지만, 풀플레이트까지 착용하면 바다에 빠졌을 때 올라오기 여의치 않을 테니 저렇게 착용한 게 아닌가 싶다.

“처음 타보는 분들은 멀미가 심하다고 합니다. 저도 어제 호되게 당했고요.”

그런데 데브가 마을에 남아서 그런가. 데브 몫까지 조잘조잘 떠든다. 컨셉이 호응해 주지 않아서 그렇지, 본체 입장에선 좋았다.

아무렴, 배에서 할 게 뭐 있다고. 수다 떨어 주면 나야 좋지.

“뭐, 악마기사께선 문제없으시겠지요!”

나는 그따위 잡념이나 뇌에 담으며 인퀴지터의 말을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멀미 한 번 해본 적 없던 경험이 나를 그리 만들었다.

딱 10분 후 후회하게 될 일이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승차감 쓰레기인 마차 탔을 때도 괜찮았는데 왜 배 하나 탔다고 이러는지.

물론 너울이 거세서 배가 놀이동산 기구처럼 출렁출렁 대긴 하는데, 그래도 이 정도의 뱃멀미는 너무하잖아.

아니, 애시당초 대체 어떤 게임이 멀미를 구현하는데…… 피로감부터 졸림, 이젠 멀미냐고. 어이없어 돌아가시겠네 증말.

나는 올라오는 구역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표정은 간신히 지키고 있으나 안색은 이미 파리하지 않을까 싶다.

멀미를 못 이기고 난간에 기대어 빌빌대는 시점에서 가오고 뭐고 다 글러 먹긴 했지만.

“멀미약이라도 드릴까요?”

물결이 거센 와중에도 내 곁을 지키던 인퀴지터가 발을 동동 구르고, 선장의 손짓에 선원이 황급히 돛에서 내려와 물었다. 컨셉으로선 죽어도 거절할 제안이긴 한데, 솔직한 마음으로는 받고 싶다.

난, 내가─혹은 내가 쓰는 캐릭터가─이렇게 멀미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죽을 것 같다.

“자존심은 알겠네만, 만일을 대비해 먹게. 자네의 역할을 알지 않나.”

아크메이지의 캐해, 오늘만은 인정합니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가─눈에 힘이 들어갔을지는 의문이다만─억지로 손을 뻗었다.

주민이 서둘러 갑판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뭔지 모를 약초가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질겅질겅 씹으면 좀 나아지실 겁니다요.”

이걸 어떻게 씹냐는 마음보단 멀미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나는 시들어 말라 비틀어진 풀을 입에 넣고 이로 짓이겼다.

플라세보 효과인지 아까보다는 아주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 토하고 싶은 감각은 여전하지만.

“자네가 멀미를 할 줄이야.”

아크메이지가 안쓰럽지만 좀 깬다는 눈으로 보든 말든 나는 난간에 팔을 걸치고 그대로 기댄 채 고개를 수그렸다.

컨셉이고 뭐고, 차라리 피 쏟고 부상 페널티 짊어진 채 싸우는 게 낫지 멀미는 정말 아니다. 지옥이 이곳에 있었다.

“신성력이 통했다면 제가 도움드릴 수 있었을 텐데…… 죄송합니다.”

김치만두가 본인 잘못도 아닌 걸 두고 용서를 비는 건 알 바 아닌데 마음 같아선 HP를 대가로 멀미 좀 몰아내고 싶다.

누가 현대 멀미약 좀 여기 넣어 봐. 사람 하나 잡기 전에.

“싸울 수는 있겠는가?”

네 눈엔 그게 가능해 보이냐고 묻고 싶었으나, 여기서 더이상 컨셉을 깰 순 없다. 나는 영혼까지 짜내가며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올렸다.

“대상을 내 눈앞에 데려와라. 그 답을 알려 줄 테니.”

“그래. 알겠네.”

…죽일 수 있다는 소리로 이해한 거 맞지? 아니면 나 좀 슬퍼질 텐데.

그래도 내 대가리 안전하니까 캐붕은 안 났다고 믿어 본다.

“무리하진 마십시오.”

나는 인퀴지터의 말을 외면하며 난간에 머리를 기댔다. 출썩거리는 소리가 백색소음보다는 그저 짜증나는 불쾌함의 근원지로만 느껴졌다.

가혹한 인내의 시간이었다.

“이곳입니다, 어제 왔던 곳이.”

그래도 시간이 흐르긴 흘러서, 어찌저찌 저 둘이 탐색한 범위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일단 선장 말로는 그랬다.

“어제는 더 오래 걸렸던 것 같은데, 오늘은 일찍 도착했군.”

“새벽녘엔 풍랑이 좀 덜해서 그렇습니다.”

아까라고 파도가 얕지는 않았으나, 나는 선장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배의 높낮이가 수시로 바뀔 정도로 바다가 거칠었던 탓이다.

겨드랑이에 난간을 끼느라 바깥에 내밀었던 팔은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다. 난간에 기댔던 머리도 비산하는 물방울에 제법 촉촉해졌고.

“오늘은 용이 보이지 않는군요.”

“해가 떠서 그런지도 모르지요.”

너울이 거세긴 하지만 해는 떠 있다. 저들이 어제 이곳에 왔을 때와 다른 점이다. 그 밖의 차이점으로는 시간대나…… 시간대나…….

음, 모르겠다. 뇌가 어지러워서 머리가 안 돌아간다. 어째 피로도 100 찍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었다.

“선장, 파도가 높아졌는데, 더 가도 돌아오는 건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어제 안 된다고 했던 건 돌아올 때 해가 질 게 분명해서 그런 거니까요.”

해가 진다면 위험하지만, 해가 있을 때만은 이런 풍랑도 이겨 낼 수 있다며 선장이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사분란하게 돛줄을 당긴 선원들이 배가 파도의 흐름에 탈 수 있도록 어떻게든 조율했다.

“그렇다면 선장, 저기까지 가봅시다. 인퀴지터, 용이 보인 게 저곳 맞습니까?”

“예. 저곳입니다. 수면 위로 솟은 바위가 어제 본 것과 동일합니다.”

“저기…… 말입니까?”

아크메이지의 가리킴과 인퀴지터의 확언이 더해지자 선장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저곳은 용울문입니다.”

“용울문?”

“용이 우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저 바위를 기점으로 암초지대가 시작되며 그로 인해 물살이 기이하게 흘러가는 곳이지요.”

급류도 급류지만, 저 일대에만 들어서면 파도 소리가 꼭 용의 울음소리 같이 들린다고 해서 용울문이란 이름이 붙여졌노라. 선장은 그런 사설을 덧붙였다.

“위험한가?”

“예. 제정신이 박힌 뱃사람이라면 결코 들어갈 생각을 안 할 겁니다. 그만큼 위험합니다.”

“하면,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주시게.”

“예에.”

선장의 안색이 조금 꺼매졌으나 그는 끝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게 선장의 자존심이었는지, 아니면 은인에게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내 팔자도 충분히 안 좋았다.

“여기가 최선입니다. 이 이상 가면 배가 뒤집힙니다.”

“고생이 많네. 고맙네.”

“여기서도 딱히 특이점이 보이지 않는데…….”

급류 지대와 가까워져서 그런가. 배가 유난히 더 출렁거리는 기분이다. 나는 메스꺼움만 간신히 견디며 난간을 금동앗줄 삼아 겨우겨우 버텼다.

평소였다면 하 수상하다며 여기에 뭐가 숨겨져 있을 거라 궁예질을 했겠으나 지금은 도저히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

그러던 와중, 문득 그런 내 눈에 무언가가 담겼다. 아주 얕은…… 뭍이었다. 파도가 낮아졌을 때만 보이는 뭍. 미늘 무늬가 새겨져 있는 듯한.

“우욱.”

나는 입을 벌리려다가 솟구치는 토기에 손을 들어 입가를 틀어막았다. 사방을 둘러보던 인퀴지터가 다급히 내 안색을 살폈다.

“괜찮으십니까?”

“…저쪽.”

그나마 가까이 와서 다행이지.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인퀴지터가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뭍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나도 우연한 타이밍에 목격한 것이니 그녀가 못 볼 만도 하지만, 내게 여유가 퍽 없는 상황이라 괜히 한심하고 짜증 났다.

“그걸 못 보는…….”

나는 보다 명확히 가리키기 위해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

그러나 아까 분명 눈에 담았던 뭍은 더이상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으르렁대는 바다만이 가득할 따름이었다.

“악마기사?”

…멀미 때문에 잘못 봤나. 컨셉 오늘 제대로 깨지네.

“됐…….”

“어, 저기!”

나는 잘못 말했노라 대답하는 대신 그냥 말을 흐리려 했다. 누군가가 내가 가리켰던 곳─조금 어긋났지만?─을 손가락질만 하지 않았어도 그랬을 거다.

내 시선이 자연히 살짝 틀어졌다.

바닷물 아래로 무언가가 헤엄쳐 오는 게 보였다. 세 마리였고, 크기가 작지 않았다.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30m 이내에 존재합니다.」

시스템이 요란하게 울었다.

“설마 악마……?”

“부정은 느껴지나, 마기는 아닙니다!”

악마는 아닐지언정 부정이 느껴진 시점에서, 그보단 배로 다가오는 시점에서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

저것들이 우리에게 적의를 가졌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배에 구멍이라도 나면 죽는 건 우리니까.

“배로 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자네들은 갑판실에 들어가 있게!”

인퀴지터가 무기를 붙잡고, 아크메이지가 민간인들을 안으로 대피시켰다.

해서 나도 힘겹게나마 몸을 일으켰다. 욕지기가 바로 차올랐으나 안 일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후.”

배 한 번 더럽게 넘실거리네. 나는 욕을 삼키며 뱃간에 기대듯 검을 들었다.

균형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으나 이 악물고 정신머리를 붙잡으니 어떻게든 되었다.

“신이시여, 어린 양들을 지켜 주소서!”

인퀴지터가 한때 선보였던 구 형태의 보호막을 펼쳤다.

쾅쾅!

간발의 차로 배에 닿지 못한 것들이 화내듯 그 막에 몸을 부딪쳤다.

바닷물에 잠겨 있어 썩 잘 보이는 편은 아니었으나, 대략 물도마뱀 같이 생긴 듯했다. 다리가 네 개고 꼬리가 길었다.

배를 노리는 듯 물속을 유영하는 몸뚱이가 간간히 서로를 스쳐지났다.

어떤 몬스터인지는 시스템이 알려 줄 기색이 없다.

“천둥을 동반하여 나의 적을……”

아크메이지는 그를 두고 마법주문을 외웠다. 아무리 봐도 제거해야 할 대상 같으니 공격하려는 것 같다.

인퀴지터는 막도 막이지만 근접형이라 엄두도 못 낼 테고.

나? 나는 참격이라도 쏘아 내려고 검을 휘두르려다가 어지럼증에 패배했다. 칼을 갑판에 대고 잠시 한쪽 무릎을 꿇고 있다.

토 나올 것 같다.

“내려찍어라……!”

내가 그로기 상태에서 벗어나는 동안, 다소 범위가 넓은 전격계 마법이 쏟아졌다.

검푸른 색의 바닷물 일부가 밝게 빛나는 듯한 착각과 함께 배 주위를 맴돌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만 감전당했을 뿐 죽지는 않았는지 몸을 바르르 덜며 깨어나려는 기미를 보였다.

아크메이지의 다음 타격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후…….”

하면 여기서부턴 내 영역이지.

나는 무릎을 세우고 입술을 씹어 가며 검을 기어코 휘둘렀다. 분노가 담긴 일격이 쇳소리와 함께 평소보다 거센 출력을 내며 날아갔다.

서걱!

바다 일부가 일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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