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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7화 (37/389)

◈37화 보다 나은 다음을 (2)

바인딩에 전부 묶인 이상 한숨 돌렸다. 담도 큰 습격자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마법사가 빛의 구를 띄워 주변을 환히 밝혔다.

“자,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희가 귀한 분들을 몰라뵈었습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해룡이시여…….”

“저흴 가엽게 여기소서…….”

한데 들어난 몰골이 어째 심상치 않다.

「도적│스스로를 위해 남의 것을 빼앗기로 결심한 자들. 노략질을 업으로 삼음에 자랑스러워하는 자들이 많다.」

「사냥개│인간에게 길들여진 짐승. 충성스럽고 용맹하다.」

몬스터 분류는 똑같이 도적으로 되어 있는데, 비굴하게 자비를 구하는 부류는 체격이 좋거나 장비가 본격적인 반면, 해룡을 부르짖는 이들은 초라해도 너무 초라했다.

제대로 된 검조차 없어서 식칼이나 작살 따위를 들고 있다면 대충 감 잡힐 것이다.

“이놈들…….”

거기에 후자의 경우 목에는 가죽띠가 단단히 매여 있다. 같은 소속이라고 보기엔 어쩐지 꺼림칙한 부분이 많다.

“하! 사람을 죽이려 한 주제에 용서를 바라는가!”

와중에 인퀴지터가 메이스를 바닥에 내려찍은 채 한껏 분노를 표출했다. 도둑질에도 바로 손목을 자르려 들었던 이니 이상할 건 없었다.

“그들의 잘못을 덮을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중 일부는 아무래도 사정이 있어 보입니다. 인퀴지터.”

“저들은 우리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지나는 게 우리가 아닌 일반인들이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런데도 사정을 고려해 줘야 합니까?”

“이봐요. 댁은 눈이 없습니까? 저치들이랑 이 사람들이랑 같아 보여요?”

“그래 보았자 습격자임은 똑같지 않나?”

“아, 진짜 말이 안 통하네…….”

이건 좀 심한데. 나는 인퀴지터의 벽창호 기질을 새삼 확인하며 빌빌대는 포로를 보았다.

볼품없는 이들은 계속 기도만 올리고 있으나 제대로 된 도적 놈들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저놈들은 진짜 고쳐 쓰는 게 안 될 삘이다.

“인퀴지터, 억압과 강요로 인해 저지른 범죄마저 죄이겠습니까.”

“하지만…… 피해자가 발생할 뻔했습니다.”

“물론, 그렇지요. 피해자에겐 그것을 이해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 손해가 발생했습니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있었습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다행히 데브가 답답해서 돌아가시기 직전, 아크메이지가 그녀를 살살 타일렀다.

“당장 피해가 나지 않았다고 해서 용서하고 넘어가는 것은 후일의 사건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들은 타인의 강압으로 무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제하지만 않는다면 무기를 들지 않을 거란 이야기지요.”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무기를 들 거란 인퀴지터의 예상도 확신할 수 없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

“그 차이를 이해하고 기회를 주는 것을 우리는 자비라 부릅니다.”

역시 현자는 현자다. 아크메이지는 순식간에 인퀴지터를 꼬드기곤 시선을 돌렸다.

“오래 기다리게 했네. 자, 자네들에겐 사정이 있어 보이는데 내게 한 번 말해 줄 수 있는가?”

그녀의 물음에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기도를 읊던 이들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자네들 사정이 이해 범주에 든다면.”

기도하던 이들이 그 말에 조금의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눈동자가 힐끔힐끔 옆으로 향하는 게 진짜 산적 같은 이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또한 내가 그중 한 놈─산적 같던 쪽─의 입모양을 읽은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 제대로 말해. 눈치 보는가 했더니 진짜 눈치 보게 만들고 있었다.

“이 새끼가.”

그러나 내가 나서서 처벌하기도 전에 데브가 발로 그놈의 대가리를 깠다. 이빨이 나간 것 같은데 뭐 자업자득이니까 알 바 아니다.

“눈치 보지 말고 말해 주게.”

거기에 아크메이지가 한마디를 덧붙이니.

기도자들이 앞다투어 구구절절한 사연을 토해 냈다.

“저흰 본디 바다에 터잡아 생활하던 놈들입니다. 한데 바다가 미쳐 도저히 고기를 잡을 수가 없게 되는 바람에…….”

“하여 산에서라도 먹을 것을 구하려 했는데, 산에 터잡고 있던 산적들이 저희를…….”

“저희에게 여행자들을 털어 오지 않으면 죽인다고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산적에게 포로로 잡혀 일부는 산채에 갇히고, 일부는 습격에 동원됐단 이야기였다. 그게 정말이라면 참 기구한 팔자들이 아닐 수 없다.

“네, 네 분을 공격하는 게 처음입니다. 저흰 아직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다신 이러지 않겠습니다.”

처지가 저러하니 시스템이 도적으로 분류한단들 이들은 굳이 죽일 필요 없겠다 싶다.

습격을 주도한 건 저 산적놈들이거니와, 이들은 공격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않았으니까.

더구나 이건 악마와 관련된 것도 아니다. 오해 때문에 대판 싸웠던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마저 봐주고 넘어갔던 만큼, 이들 또한 충분히 컨셉의 참작 범주에 포함되었다.

“그걸 어떻게 믿지?”

그러나 이번에도 인퀴지터는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데브 핏대 서는 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댁은 눈이 없습니까?”

“뭐라?”

“옷가지부터 차이가 심하게 나잖습니까! 거기에 여기 목의 목줄이나, 손목의 밧줄 자국은 안 보입니까? 동료애가 없다고 해도 동업자에게 이딴 짓하는 도둑 새끼들은 없습니다.”

그는 그 외에도 기도자들만이 공통적으로 들고 있던 용 조각상, 옷에 묻은 소금기─바닷바람으로 인한─따위를 거론하며 진짜임을 증명했다.

정말 사람 파악하는 눈 하난 끝내주게 좋았다.

“음?”

그러면 뭐. 이렇게까지 확실해졌는데 안 움직이는 것도 좀 그렇지?

“자네 뭐하려는─.”

“악마기사?”

챙강!

나는 검을 내려쳐 사슬을 끊었다. 사람 살갗에 닿은 부분을 상처 없이 부술 자신이 없어서 바닥에서 솟아오른 부분을 노렸는데, 다행히 그쪽만 부숴도 전체가 박살 났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룡께서 축복하실 겁니다…….”

“감사는 필요 없다.”

감사는 내 알 바 아니고, 사람들이 산채에 더 잡혀 있다며?

“산적들의 위치나 말하도록.”

악마와 관련된 일은 아니지만 한때 기사였던 이가 이걸 놓치고 갈 리 없다. 당장 급한 일도 없고, 크게 돌아가야 할 일도 아니니까.

“……!”

풀려난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 따지려던 인퀴지터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

“…하여간, 기사 나리는.”

데브는 어째선지 실실 웃으며 그딴 말이나 지껄였고.

“구, 구해 주실 겁니까?”

“버러지들을 내버려 두는 취미는 없다.”

근데 아크메이지의 흐뭇한 얼굴은 좀.

컨셉의 죄가 너무 깊다. 캐붕으로 여겨 주지 않은 건 그래도 고맙지만.

* * *

“저긴가?”

“예, 예. 저기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사실 이 사람들도 길을 잘 몰라서 대부분 데브가 찾긴 했다─산을 올랐다. 곧 보인 건 하나의 굴을 가리는 나무 방벽과 초소다.

경사가 제법 진 구간에 있는 데다가 주변 나무를 싹 친 덕에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 건 힘들 성싶다.

애초에 바위지대라서 오르기도 조금 힘들 듯하고.

“굴이라니, 까다로운 곳에 자리 잡은 놈들이로군.”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있으니 연기를 흘려 넣을 수도 없고…….”

파티의 지능을 담당하는 아크메이지와 데브가 고민하는 사이,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고, 나리 또……!”

그것에 직감한 두 사람이 얕게 비명을 지르는 듯 했으나 날 막지는 못했다.

내 몸이 잡초만 무성한 땅에 닿았다. 당연스럽게도, 산적이 세워둔 초소가 수선을 떨더니 이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제가─.”

“아니, 인퀴지터는 뒤로 물러나십시오.”

나를 따라 수풀 너머로 뛰어나오려던 인퀴지터가 제지되었다. 덕분에 나만 화살 맞게 생겼으나, 애시당초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콰앙!

뭐, 악으로 깡으로 버틸 것까지 갈 필요는 없어 보이지마는.

쿠르르릉

나는 투헨더를 휘둘러 참격을 내보냈다. 초소가 대각선으로 베어지며 그대로 무너지고, 화살은 참격을 내보낼 때의 풍압으로 튕겨져 나갔다.

“끄아아악!”

무너지는 통나무와 사람이 같이 굴러떨어졌으나 내게 닿지 않으면 관심 없다. 나는 투헨더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별건 아니고, 신체에 검은 기운을 둘렀을 때의 전투법을 시험해 볼까 싶었다. 굴에서 투헨더같이 긴 무기는 휘두르기 불편하니까.

“뭔 소란이야!?”

“저건 또 뭐야!”

경사진 땅을 콱콱 오르자니 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이들이 있다. 내 발에 검은 기운이 맺힌 것도 같은 시각이었다.

경사진 구간이라 앞꿈치 부분만으로 돋움했을 뿐인데 몸이 단번에 굴 입구까지 다다랐다.

“무슨─.”

스킬로 따로 정의되진 않았으나, 만약 있었다면 점프력과 달리기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정도로 효과가 서술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굴 밖으로 고갤 내민 놈의 멱을 잡았다.

휘익

멱잡힌 놈이 그대로 뒤로 당겨지며 언덕 아래로 내던져졌다.

“이 새끼가─ 커억!”

연이어 그 뒤에 있던 녀석은 내 오른팔에 목이 움켜쥐어졌다. 오른팔로 남과 접촉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지금 잡은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범죄자니까.

쾅!

나는 녀석을 벽에 박아 현대 미술로 만들어 준 후 안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기운은 두르지 않았지만 원래 악력도 대단해서 이 정도로도 기절은 충분하다.

우드드득.

…충분하다못해 과하다. 힘조절이랄지 얼마나 힘을 써야 할지 가늠이 가끔 안 돼서, 경추를 박살 내 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지곤 할 정도로.

그래도 고의는 아니니까. 민간인도 아니고 범죄자고.

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합리화해 본다.

“무슨 일이야!”

“침입자냐?!”

컹컹!

그보다 이 굴, 너무 던전같이 생겼는데.

퍼억!

나는 손으로 나오는 놈들을 족족 패며 상념으로 도피했다. 나름 그럴 만했다.

기나긴, 평범한 바위 동굴 끝에는 깎아 만든 계단과 금가고 무너진 기둥 따위가 있었다. 벽면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윗더미들이 울퉁불퉁 보기 좋게 튀어나와 있다.

“…유적인가.”

전부 인위적으로 만든 것 같진 않고, 원래 존재하던 동굴을 한 차례 다듬어 유적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2차로 산적이 차지한 듯하고.

“이 자식─!”

퍼억!”

“컥!”

나는 코너 사이로 튀어나온 이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강아지를 발로 걷어차며 전등의 불을 켰다.

산적놈들이 달아 둔 횃불이 있긴 하지만 이게 더 밝았다.

“죽여!”

그렇지만 구경하기엔 날파리가 너무 많은 듯하다.

나는 날아오는 화살을 건틀릿 낀 손으로 쳐냈다. 하나, 둘, 둘 반의 박자로 손을 휘두르면 이제 화살은 전부 부러져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내서야 되겠는가?

나는 달려 나가며 활 쏜 녀석의 얼굴에 플라잉니킥을 갈겼다. 또한 그 뒤에 있던 이에겐 품의 단검을 빠르게 꺼내 그대로 던졌다.

에임이 좋은 편은 아니나 거리가 거리였던 까닭에, 단검이 정확히 칼 쥔 손등에 박혔다.

나는 무너지는 이의 몸과 함께 중력에 사로잡혀 바닥에 내려앉았다. 콱. 나보다 먼저 무너진 이─니킥에 맞은─의 가슴팍을 밟는 것도 잊지 않았다.

퍼억!

동시에 돌아간 내몸이 그대로 돌려차기를 감행했다. 손등에 박힌 검에 공격 타이밍을 빼앗긴 적이 관자놀이를 얻어맞고 바로 나자빠졌다.

나는 손으로 펄럭이는 코트 자락을 쳐내 거슬리지 않게 치우곤, 지금 치운 이들 뒤로 펼쳐진 공동에 진입했다.

측면엔 많이 무너지고 금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는 벽화가 존재하고, 공동 중심에는 바위 파편들이 장애물처럼 존재하는 공동이었다.

나는 바위를 엄폐물 삼아 숨은 것들을 확인하며 가장 가까운 곳부터 공략했다. 생존본능 스킬을 통해,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서 바위를 밟고 뛴 내 몸이 뱅글 돌았다.

탁.

180도 회전한 몸이 3m쯤 될 층고를 이겨 내고 천장에 발을 대었다. 뒤로 꺾듯 젖힘으로써 펼쳐진 시야엔 바위 뒤에 숨은 적 두 명이 보인다.

콱.

나는 그 상대로 발에 힘을 줘 천장에서 튕겨 나왔다. 물론 바닥에 머리 박을 의향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바로 회전하며 한 놈을 내려찍었다.

하필 목과 어깨 사이의 안 좋은 부위를 얻어맞은 적이 바닥에 넘어지며 등골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히익!”

나머지 한 놈은 그래도 반사신경이 좋은지 검을 휘둘렀다. 내 허리가 구부러지며 그 검을 피하고, 왼팔이 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콰앙!

대상의 몸이 저만치 날아갔다.

한데 그 타이밍에 화살 하나가 쇄도했다. 머리를 노리고 있었으나 어떻게 옆으로 최대한 까닥거리니 피해지긴 했다.

내 입술이 삐죽 올라갔다.

“버러지들이.”

바위 너머, 산적들이 소름 돋는단 얼굴로 나를 보았다.

“감히.”

내 다리가 공이에 맞은 총알처럼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주먹에도 둘러진 기운이 방금 화살을 날린 이의 자리를 정확히 두들겼다.

콰앙!

벽과 연결된 바위가 산산조각 났다. 대상이 다리에 힘을 풀고 주르륵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그 몸이 저 꼴 났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랬더라도 내가 피해서 벽을 쳤겠지만.

“괴, 괴물이야…….”

별개로, 이건 나도 상상 외의 공격력인데.

가벼운 점프나 달리기는 새벽녘에 많이 시험해 봐서 감을 잡았지만, 무언가를 타격하는 건 대상도 없고 소음도 심해서 연습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게 이런 파괴력을 내는지도 몰랐다. 알았다면 이렇게 세게 안 쳤을 거다.

“으으…….”

그래도 안 무너졌으니까. 그걸로 봐주자. 한 번만 봐주자.

나는 속으로 그딴 소리나 뇌까리며 바위에 꽂혔던 팔을 뽑았다. 내 아래에 널브러진 이는 나를 올려다보되, 그 가랑이가 짙은 색으로 젖어 들어가는 중이다.

탕.

팅팅.

땡그랑.

무기 떨어지는 소리가 합주처럼 이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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