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선택의 결실 앞에서 (9)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할까. 일단, 플레이 영상을 항상 녹화해 두는 편인지라, 이걸 누가 볼 수도 있겠다 싶어 말 한번 남겨 봅니다.
배경이 좀 살벌하긴 한데…… 그 부분은 좀 봐주세요. 혼자가 될 상황이 별로 없었어서. 나중에 남기기엔…… 과연 그럴 기회가 올 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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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영상을 남기는 이유는…… 별건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혼자 있을 때가 없기도 했고…… 그냥, 이렇게 말을 남기면 그땐 정말 죽는단 게 실감날 것 같아서,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요.
근데…… 다르게 생각해 보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혼자가 되는 대로 틈틈히 이런 영상을 남겨 볼까 합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전하고 싶은 말도 많고…….
아, 그래. 괜찮다면 제 부모님께도 영상의 존재를 알려 주시겠어요? 그분들께도 하고 싶은 말이 많거든요. 요즘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했다는 거나,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질러서 죄송하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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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내 꼴이 우스꽝스럽다는 건 알아. 죽음을 앞두고 괴상한 연기나 하고 있는 거 좀 그렇지? 미친 것 같고.
그렇지만 엄마, 아빠. 나는 미친 게 아니야. 그냥, 단지…… 살고 싶은 거지.
왜, 엄마랑 아빠는 소설이나 만화를 싫어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데선 이런 소재가 종종 나오거든. 게임 속에 갇힌 줄 알았는데 사실 이세계였다거나…… 그래서 계속 살아간다거나.
그래서야. 바보 같은 짓인 건 알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이렇게 하면 정말 살 수 있을까 봐. 정말 다른 세계에 떨어지기라도 해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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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죽는다면 아프게 죽을까?
아니면 내가 죽어 간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사고가 끊길까?
기왕이면 후자가 좋겠어. 아픈 건 별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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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싫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은데.
죽기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아직 더 살고 싶어.
나는, 조금만 더…….
* * *
멍하니 눈을 떴다. 하수도를 헤집을 때, 잠시 쉬려고 앉았을 때 남겼던 편지가 꿈의 형식으로 저를 찾아왔다.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이걸 봐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
“악마기사!”
내가 있어야 할 곳도 이곳이 아니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부연 시야를 껌뻑이며 소리를 좇았다.
익숙한, 익숙해진 얼굴이 보였다. 제 시야 문제로 이목구비가 다소 뭉그러져 보이긴 했지만 빨간 머리색만은 헷갈리려야 헷갈릴 수 없다.
“나리 깨셨습니까?”
데브도 있나 본데.
나는 눈을 느릿하게 껌뻑거리다가 입을 벌렸다. 상황이 어찌되었는지 묻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제법 심한 갈증이 내 목을 점령하므로써 그 바람은 실패했다. 마른기침과 숨소리가 말 대신 나왔다.
“물도 안 준 겁니까!”
“지, 지금 드리려 했다!”
싸우는 건 뒤로 미루고 물부터 줘…….
“여기 있습니다.”
그래도 둘 다 싸움에 몰두하여 나를 잊거나 하진 않았다. 나는 데브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물잔은 김치만두가 건네 주었다.
“제가 기울여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극진히 대해 줄 필요는 없는데. 도움 받아 마시는 것도 컨셉에 어울리지 않고.
그러나 도움을 외면한 채 혼자 마시기엔 몸이 너무도 천근만근이었다. 솔직히 아직도 시야가 부옇다. 내 등과 어깨를 잡은 손이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기사 나리 정말 힘드신가 봅니다.”
그런 건 모른 척해 주는 게 국룰인 거 몰라? 나는 그런 불만을 꿍얼대며 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물이 달게 느껴진 건 오랜만이었다.
“…상황, 은.”
물 두 잔을 비우고 나서야 갈증이 좀 덜어졌다. 목소리는 여전히 갈라진 채지만, 아예 안 나오던 아까보단 나았다.
“당신이란 분은…….”
“나리, 정말…….”
근데 왜 둘 다 울컥하는 얼굴이야. 상황 어떻게 됐냐고 물어본 게 그렇게 이상해?
“이봐요, 나리. 당신 지금 2주 만에 일어났거든요?”
…농담이지?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당신. 당장 숨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에, 그걸 악화시키는 저주에. 저주라도 해결할라치면 신성력에 오히려 피만 토해서……!”
나는 데브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떨떠름해졌다. 너무 허황되게 느껴진달지, 잘 믿기지가 않았다.
2주가? 삭제돼?? 현실로 닷새 좀 안 되게 날아간 거야??
아니, 그보다 현실 시간 닷새나 흘렀는데 내가 살아 있다고? 그럼 정말 여기가…….
아니, 아닌가. 게임 시간만 흘러가고 현실 시간은 안 흘렀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나는 믿고 싶은 마음과 믿기 힘든 마음을 둘다 억눌렀다. 모든 가능성은 열어 둬야 한다. 낙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견뎌 내기 위해서라도.
“듣고 있습니까?”
“관심 없다.”
물론 그걸 고려해도 게임 내 시간이 2주나 흘렀단 건 어이없다.
정말이지 게임 캐릭터는 HP 꽉 차면 다 낫는 게 규칙 아니었냐고. 부상 페널티라고 해도 그래. 2주는 너무 긴데.
나는 혹시 몰라 HP를 슬쩍 확인해 보았다. 풀피였다. 피로도는 아직도 안 떨어진 상황이지만.
“상황은?”
와, 이제 보니 피로도 페널티가 없는 게 아니었네. 피로도 떨어지는 속도가 페널티였네.
아직도 안 떨어졌을 정도면, 피로도가 꽉 찬 채로 움직인 기간만큼 회복속도가 더뎌지는 구조일까? 미치겠다.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
그렇게 시스템에 대해 사고하고 있자니, 데브랑 김치만두가 주먹을 꽉 쥔 게 보였다.
진짜 뭐가 문젠데. 여기서 제일 심란한 건 나거든? 단지 거기에 집착해 봤자 아무 의미 없으니까 놓아두는 거지.
“내가, 세 번까지 물어야 하나?”
그리고, 이건 애초에 너희가 선택한 컨셉이다! 여기서 내 안위 우선하면 그건 그것대로 뭐라 할 주제에 뭘 기대하는 거냐!
“…일단, 도시는 안전합니다.”
다행히 두 녀석은 내가 성질 부리게 만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기운 없는 몸으로 패악 부릴 자신 없었는데, 일이 잘 풀렸다.
“악마기사께서 상대하던 그 악마는 역병귀로 명명, 완전히 구제되었습니다. 또한 신관들이 나서 일대를 전부 정화하므로써 추가 감염자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인퀴지터는 또박또박 사건을 요약해 전달했다. 다른 건 못해도 이런 보고만은 참 잘하는 김치만두였다.
“이후 제가 모험가들을 이끌고 돌파를 감행, 그 과정에서 도시 포위가 사라진 걸 확인했습니다. 지원도 따로 요청했고요. 어제부로 지원병이 도착해 본격적으로 구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기절한 사이 꽤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차라리 2주 기절은 나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 깨어 있었으면 저중 절반을 도와야했을 거 아냐. 물론 돕기 싫다는 건 아닌데, 몸이 정상이어야 말이지.
목숨을 도외시하고 악마 사냥한다거나 하는 설정은 괜히 잡았나 싶다. 캐릭터 조건상 당연히 들어가야 할 부분이고 이제 와선 돌이킬 수도 없긴 하지만, 어쨌든.
“더 궁금한 것이 있으십니까?”
자, 그럼 대략적인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은데. 굴러라, 머리! 컨셉이 물어볼 만한 걸 어서 떠올려!
“악마계약자들은? 다 잡았나?”
“도시 내에 있던 자들은…….”
“다 잡았습니다요.”
“…예, 저 자의 도움을 받아 다 잡아 냈습니다. 더불어 도시 바깥에 존재했던 의식의 잔재도…… 저자를 필두로 한 모험가가 찾아냈습니다. 비록 그들까진 잡지 못했지만요.”
오. 왜 아직도 남아 있나 했더니 생각보다 데브가 활약할 구간이 많았나 보다.
나는 그를 힐끗 보았다. 아까보다 깨끗해진 시야가 여전히 후드를 뒤집어쓴 청년을 비추었다.
“뭐, 할 만해서 한 겁니다.”
청년이 머쓱한 듯 드러난 하관을 살짝 긁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코를 찡긋거리는 게 뭐라도 떠오른 게 있는 모양이다.
“왜요, 약한 놈이 방해하지 않고 해낸 게 신기합니까?”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 혹시 지하도 갈 때 떨쳐 내려고 한 말 때문에 저러는 건가? 그거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어?
“아니.”
데브가 뒤끝이 긴 건지, 그냥 낯부끄러워서 저리 틱틱대는 건지 도통 모를 일이라.
나는 단정히 뇌까렸다.
“그 말은 취소하지. 넌 방해가 아니다.”
퉁..
김치만두의 손에 들린 나무잔이 떨어지고, 데브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무래도 내가 캐붕 낸 모양이다. 망했다.
“…다, 다, 당연, 하죠.”
메이스나 단검이 날아올까 노심초사하며 내 무기 위치를 찾았을까. 데브가 어쩐지 망가진 상태로 대답했다. 김치만두는 나무잔을 다시 집어올리는 상태지만 손이 덜덜 떨리는 게 이쪽도 영 정상은 아니다.
“…지하도는.”
눈치를 보니 내 머리통 부술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무섭긴 해서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김치만두가 어쩐지 빛나는 눈으로 고개를 확 치켜들었다.
“인력 부족으로 폐쇄 및 감시만 진행했습니다. 지원병이 도착한 이상 며칠 내로 정화작업에 진입할 것이고요. 아, 저도 그 병력에 포함된 상태입니다.”
어, 어 그래. 며칠 내로 간다니까 아무래도 그때까진 이 도시에 있어야겠네. 그동안 뭐 한다냐.
“저, 저도 정화…… 하는데.”
그거야…… 네가 사제니까 당연히 하겠지……?
나는 인퀴지터가 왜 당연한 말을 지껄이며 왜 저리 반짝거리는 눈을 하나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 하나를 퍼득해 냈다.
설마, 데브한테 해준 말을 본인도 듣고 싶어서……? 그러니까 인정해 주는 말 듣고 싶어서?
그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나는 눈과 주먹에 힘을 주었다. 성격 더러워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건 컨셉에 맞기라도 하지, 여기서 웃으면 망했다.
“내, 무기.”
이 귀여움 실화냐? 인정받았다고 고장나서 어버버거리는 놈도, 그놈 인정받았다고 자기도 받고 싶어서 들이대는 애도. 이게, 이게 진짜라고?
“어디다 놨지.”
김치만두 때문에 폭력성이 너무 증가한다. 당장이라도 악마를 때려잡아야 했다.
“잠깐, 일어서시려는 겁니까?”
“아, 안 됩니다! 아직 더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뭐래!! 지금 날 괴롭힌 건 너희거든?! 나 당장 뭐라도 휘둘러야 살 것 같거든?! 각각 김치랑 고기만두 같은 놈들이……! 다 큰 주제에 깜찍하게 굴어!
“으악, 안 잡고 뭐 하는 겁니까, 샌님!”
“내, 내가 잡았다가 다치시기라도 하면!”
“놔라……!”
“이게 다칠 양반 같아요!?”
“헉,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힘이 너무 세더라. 나는 결국 강제로 침대에 눕혀졌다. 잠깐 힘 썼다고 피로도가 순식간에 치솟아서, 반강제로 눈감게 된 건 덤이었다.
* * *
“몸은 좀 나아졌나?”
하루를 꼬박 더 잠으로 보내니 몸 상태가 거의 돌아왔다. 피로도도 0으로 화하고, 부상 페널티도 끝난 거다.
오랜만에 움직이는 듯한 뻐근함을 제외하면 더이상의 불편함이 없었다.
“조금 더 쉬어도 될 것이네만.”
“필요 없다.”
해서 지하도 정화 작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정화 자체는 내가 할 수 없지만, 폐쇄 조치한 동안 불어난 악마 처리는 또 다르지 않은가.
물론 보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땐 조금 흔들리긴 했다. 컨셉이 컨셉인지라 물러나지 못했을 뿐.
“악마기사.”
그러고 보니 나, 역병 의식 저지 및 역병귀 처치 대가도 못 받았네.
보상이 없을 수 있다고 미리 예고한 건 기억하는데, 정말 안 줄 줄은 몰랐다. 최소한 보스몹이 드랍한 소재라거나 장비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면 역병귀 막타를 못 친 게 문제였나? 아니면 도축스킬의 부재?
항의도 못 한다는 게 그저 서럽다. 엄청까지는 아니고, ‘아 X망겜이네’ 정도.
“고맙네.”
하여간 이런저런 잡념과 함께 롱소드를 이리저리 휘둘러 보고 있자니 아크메이지가 감사를 표해 왔다.
나로선 퍽 뜬금없는 감사였다.
“자네는 필요 없다고 하겠지. 아네. 하지만, 자네가 아니었다면 아주 큰일이 벌어졌을 걸세.”
그으…… 내가 무리해서 움직인 덕에 이걸 막을 수 있었던 건 맞지만, 어쩌면 내가 가쁘게 움직인 까닭에 이리 고생한 걸지도 모르는데.
플레이어가 타타라에 도착한 걸 기점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거면 사실 천천히 왔어도 지금처럼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잘한 게 맞을 테고.
“자네는, 이번 일의 중대성을 알고 있나?”
그런데 내 묵묵한 반응을 뭐라 여긴 건지, 아크메이지가 말을 끝내지 않고 바로 이어 버렸다. 물론 내 답을 구하고자 던진 질문은 여전히 아닐 것이다.
“변경에서, 이만한 규모의 일이 벌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아나?”
그걸 알면 내가 게이머가 아니라 세계관 작가였겠지……? 단서를 주면 추론할 머리는 있어도 설정 자체를 모르면 어리둥절할 뿐이다.
“단기간에 도시를 고립시키고, 지하도를 전부 메울 만한 수의 악마를 소환하고, 역병의식까지 준비하는 데에 드는 제물은 상상을 초월하네. 그것을 주도할 이 역시도 많이 필요하지. 더구나 탄생 확률이 5%도 채 되지 않는 뱀파이어마저 동원됐다는 건…….”
그건…… 그렇지. 인력 수급 같은 거, 리젠이란 개념이 있는 게임에선 보통 신경 쓰지 않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좀 이상한 일이긴 했다.
어떤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걸리는 시간과 소모되는 인력은 언제나 반비례 관계였다.
“즉, 이번 일에 악마숭배자들이 들인 노력은 상상 이상이라는 걸세. 변경의 도시 하나를 무너트리는 데 쓰이긴 너무 과분할 정도로.”
나는 그쯤 되어서 아크메이지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차렸다.
“하물며 놈들은 저 바깥에 도시 전체를 포격할 진마저 그려 놨네. 제물이 부족해서 시행되지 않았지만, 최종 목적은 그거였단 말일세.”
도시 하나에 쓰이긴 아까울 정도의 인력이, 그럼에도 쓰였다면 결국 그만한 가치가 있었단 소리지.
그리고 그만한 가치를 가지게 만들 만한 건…….
“말하고 싶은 바를 명확히 해라.”
“놈들이 노린 건 높은 확률로 용사일세.”
역시 용사 자체를 노렸던 걸까. 지하도의 속박도, 방금 말한 포격 마법진도.
“인퀴지터가 진정 재능을 개화하기 전에, 경험을 쌓아 노련한 사냥꾼이 되기 전에. 그들의 왕에게 도전하기 전에 죽여 버리기 위해서 무리해서라도 이 일을 벌였단 소릴세.”
의외라면 의외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게임이나 소설, 만화에선 어째서인지 레벨에 맞춰 적을 보내 주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최종보스는 그럴 이유가 없다. 싹은 나기 전에 뽑아 버리는 것이 제일 힘 안 들고 깔끔했다.
“다시 말하면 자네 덕에 그런 위험을 피해 낸 것이고.”
뭐, 메타적인 요소로 보면 이미 레벨 맞춰 보내 주고 있긴 하다. 용사가 아닌 플레이어에게 게임시스템이 맞춰 주는 거긴 해도.
“재차 전하지만,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용사를 잃었을지도 몰랐으니.”
각설하고, 나는 그 진중한 말을 두고 내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옳은 반응을 보였다.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였군.”
대충 중요한 정보인 줄 알고 들어줬더니 아무런 쓸모도 없어서 이제부턴 귓등으로 흘려 듣겠단 소리다.
“한결같아서 좋네.”
비꼬는 건가……? 물론 의도한 바일 리는 없겠지만. 크으윽. 한결같기 싫다.
“그렇지. 이번 일이 끝나면 다 같이 모여 이야기 좀 함세. 차후 향방을 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보다 굵직한 사건이 끝남에 따라 슬슬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려는가 보다.
나는 알았다는 대답을 목구멍 너머로 삼키며 휘두르던 검을 집어넣었다.
만두 닮은 똥강아지들이 칠렐레팔렐레 달려오는 걸 보아, 슬슬 출발할 시간이 됐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 때가 됐나 보군. 그만 가세.”
아크메이지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손짓했다.
뒤처리를 하러 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