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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1화 (31/389)

◈31화 선택의 결실 앞에서 (6)

나는 자유로워진 오른팔로 롱소드를 뽑았다. 다른 사슬도 끊어 버리고 싶지만 악마들이 너무 가까웠다.

나는 먼저 내 목덜미를 물고자 뛰어드는 삼목구의 목을 꿰뚫고, 빠르게 한쪽으로 던져 냈다. 스켈레톤 한 마리가 날아간 삼목구에 맞고 뒤로 넘어갔다.

그렇지만 다른 삼목구 한 마리를 놓쳤다. 나는 종아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꽉 깨물며─물론 연기였다. 통각 수치 다시 낮춰 놔서 별로 안 아팠다─나를 문 똥강아지의 미간을 찔렀다.

서걱!

따닥!

그때 등에서 이물감이 느껴져 왔다. 이빨을 딱딱거리던 스켈레톤이 뒤쪽에서 날 벤 것이었다. 콱! 이어 도끼 하나가 내 어깨에 박혔다. 이건 좀 따끔거림이 강했다.

삐이이이.

스트레스 한창 받을 때나 들었던 이명이 귀에 가득 들어찼다.

그렇지만 이렇게 포기할 거냐면 글쎄. 나는 근성 있는 게이머였다.

채앵!

나는 앞에서 다가오던 녹슨검을 완벽히 튕겨 내며 스킬에 쓰이는 마력을 끌어모았다. 이미 맞은 건 어쩔 수 없으니 내버려 두고, 다음 공격이라도 안 맞기 위한 수작이었다.

다리에 기운이 모여들며 기어코 그곳에 얽혀있던 사슬을 끊어 냈다.

“죽인다……!”

목이랑 허리가 아직 묶인 채긴 한데, 뒤돌 수만 있으면 당장은 시급하지 않다. 방금 등의 공격을 허용한 건 결국 내가 그쪽 방향으로 틀 수 없어서니까.

나는 절반 이하로 내려간 HP창을 확인하며 허리를 뒤틀었다. 그와 함께 돌아간 검이 허리보다 더 많이 돌아가며 가로베기 참격을 날렸다.

콰직!

뒤에 있던 스켈레톤 두 마리의 척추뼈가 동강나며 상체와 하체를 분리했다.

푸욱!

와중에 가장 조그맣던 스켈레톤에게 배를 찔렸다. 녹슨 검들이 이렇게 피부 안을 들쑤셔도 괜찮은가 싶었지만 이내 뭔 상관인가 싶었다.

게임을 아무리 현실적으로 만들어도 감염까지 구현하는 경우는 아직 못 봤다.

콱!

하여튼 한 번이라면 몰라 두 번 이상 쑤셔지긴 싫었으므로, 나는 그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부쉈다. 또한 작은 스켈레톤의 머리를 박살 낸 공격을 유연하게 이어 나가 마지막 스켈레톤의 공격을 튕겨 냈다.

“…하소서!”

근데 이 빌어먹을 악마계약자 놈 중 얼굴에 검은 핏줄이 돋은 녀석이, 내게 마법을 썼다. 기존에 입었던 상처에 검붉은 기운이 스며들더니 기묘한 감각이 일기 시작했다.

아프진 않았는데…… 살점이 무언가에 갉아먹힌다는 느낌은 선명했다. 특히 복부. 단검에 찔렸던 곳 안쪽에서 무언가가 드글드글 차며 내장을 파먹는 감각이 들었다.

“컥…….”

원치 않았음에도 핏줄기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피로감과 졸림에 이어 이명과 피 토할 때의 느낌까지 재현된 게임이라니. 정말이지 너무할 정도로 현실 같다.

이런 쓸데없는 건 제발 뺐어도 좋았는데.

“제발 죽어라, 이 괴물……!”

거기에…… 피로도가 100까지 찬 상태로 계속 움직여서 그런가? 아니면 HP가 바닥을 치기 직전이라서?

어찌 되었건 시야 가장자리가 부예졌다. 앞이, 잘 구분이 안 갔다. 안 그래도 피로감에 둔했던 머리가 빠져나가는 피의 양만큼 더욱 무거워졌다.

“악마기사!!”

그래도 이걸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생각하면, 그땐 없는 힘도 다시 생겨서.

나는 우렁찬 외침을 들으며 검을 휘둘렀다. 마지막 스켈레톤의 모가지가 똑 떨어지고, 내 무릎이 강제로 접혔다.

「불굴의 정신 발동!」

“젠장!”

“오, 오히려 잘됐어! 우리의 희생이─!”

“심판을 받아라, 이 악독한 반역자들아!!”

나는 예전에 찍어 둔 스킬이 발동됨을 알리는 창을 가만 보았다. 저게 무슨 스킬이었더라?

「불굴의 정신│강인한 전사는 치명적인 위기에도 굴복하지 않으니. 죽음의 위기에서 한 번 벗어난다.

효과: 사망에 이르렀을 때 체력의 5%를 가지고 1회 회복.

재사용 대기 시간 1시간(00: 59: 56)」

아아, 창 보니 기억났다. 방어력과 체력을 상승시켜 주는 패시브 계열 스킬 최종 트리였지. 저 죽음 무효 때문에 초반에 미리 다 찍어 뒀었다.

이게 여기서 빛을 볼 줄은 몰랐지만.

나는 회복된 HP바를 힐끔보다가 눈꺼풀을 잠시 내렸다. 시야가 잠시 동안 ‘껌뻑’하고 까매졌다.

“──!”

얼마 안 가, 귀에서 무언가가 웅웅 울렸다.

“─기사!”

익숙한 목소리였다. 같이 다니면서 귀에 완전히 익어 버린…….

“악마기사!”

환청인가?

“정신 차리십시오!”

어, 어. 환청 아니고 진짠가?

“악마기사!”

커다란 부름이 기어코 정신을 일깨웠다. 그제야 머리가 좀 맑아지는 듯했다.

마치 물웅덩이에 강제로 얼굴을 처박혔다가 숨 못 쉴 때쯤 꺼내진 듯한 후련함이, 그럼에도 숨이 부족해 갑갑한 자극이 목구멍을 벅벅 긁었다.

“악마기사!”

먹먹한 귀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세 박자나 늦게 그 목소리의 주인을 다시금 깨달았다.

“너.”

“출혈을 잡고 있습니다! 힘드시더라도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1초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사이에 분 단위의 시간이라도 흘렀나 보다. 갑자기 인퀴지터가 눈앞에 있다.

“단단히 정신 붙잡으십시오.”

어, 어.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하는데…….

나는 바닥에 눕혀진 채로 헐떡였다.

쿨럭, 쿨럭. 입에서 계속 피가 올라왔다. 통각 수치 설정 덕에 아픔은 없는데 별개로 말할 때 방해가 됐다. 나는 기침과 함께 피를 뱉어 냈다.

“조금만 더 힘내게. 조금만 더 힘내면 되네.”

아크메이지도 자리에 있었나. 하기야 둘이 거의 세트니까.

나는 그런 잡념과 함께 슬쩍 HP바를 확인해 보았다. 아크메이지의 말보단 명확한 수치가 상황 파악에 편한 까닭이다.

그리고 HP가 바닥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걸 발견했다. 대충 아슬아슬하게 죽음은 피한 듯하다.

하면 출혈이 잡히는 순간 회복량이 이길 테니 목숨 걱정은 없으려나.

“이곳이, 아니다.”

“예?”

좋아, 살았다면 그걸로 됐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하기로 했다.

「❖ 뒷면에 숨은 것

∎ 하수도 수색하기

∎ 악마숭배자들의 계획 저지하기

∎ 보너스: 악마 제거 221 / ?? 」

“바깥이다.”

퀘스트까지 갱신됐으니 이건 빼박이지.

“이곳이 아니라, 바깥, 에.”

아오씨. 입안의 피가 고여서 말하기가 너무 힘들다. 안 그래도 머리가 멍해서 말해야 할 것도 그려 내기 힘든데.

그래도 이거 말 안 하면 또 재시작하게 될 것 같아서.

나는 내가 지금 제대로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혀를 움직였다.

“놈들의 목적은, 우릴, 끌어들이는.”

“네?”

“그 무슨…….”

“진짜는 바, 깥이.”

쓰읍. 이대론 안 되겠다.

왜 이 게임은 전투 불능된 이를 몇 초짜리 처치로 일으킬 수 없는가 싶지만, 매번 갖던 불만과 비슷한 결이니 이만 제치고.

나는 가물거리는 시야로 스킬창을 띄웠다.

「치료│전투의 기본은 부상을 다스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효과: 치료용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정식처치│더 깊은 부상에 대응할 수 있다면 생존은 더욱 쉬워진다. 상처를 돌보는 솜씨가 좀 더 좋아진다.

효과: 치료용 아이템의 효과가 10% 상승한다.」

치료는 오래전에 찍어 둔 스킬이고, 정식처치는 방금 전 전투로 레벨업하며 얻은 포인트로 당장 찍은 거다.

출혈 잡는 게 시급한 이상, 붕대질 효과를 더 높이려면 이게 최선이었다.

“진짜가 바깥에……?”

“…인퀴지터, 당장 지하도 밖으로 나가십시오!”

“예?”

“시체가 부족합니다! 희생된 자는 최소 세 자릿수일 터, 한데 이곳엔 그 정도 수의 시신이 없습니다!”

“……!”

근데 스킬을 찍으면 뭐하냐. 팔이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데.

나는 이를 악물고 손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몇 개 안 남은 붕대가 끄집어내졌다.

“저는 악마기사를 처치하고 갈 테니, 먼저 가십시오!”

“예!”

어휴, 그래도 두 사람 머리가 똘똘해서 다행이지. 그놈들 말본새 생각하면 아마 늦었을 것 같긴 한데.

그러나 거기까진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므로 나는 붕대질이나 시도했다.

“내가 하겠네.”

아니, 님이 하면 스킬 찍은 보람이.

스윽.

나는 허망하게 붕대를 빼앗겼다. 몸이 도통 안 움직여서 도로 뺏어오는 것도 불가능했다. 열받는 일이었다.

“내가. 쿨럭.”

“더는 말하지 말게.”

말하고 싶어도 올라오는 피 때문에 말 못한다. 아씨, 이러다 피 토하는 걸로 질식하게 생겼네. 이 게임은 진짜 왜 이따위 것까지 구현한 거지?

나는 상처 부위에 약초와 연고가 치덕치덕 발리는─혹은 쑤셔 넣어지는─걸 가만 보다가 눈꺼풀을 바르르 떨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만 자고 싶었다.

‘그러면 죽을 것 같은데.’

그래. 그래서 힘든데도 차마 못 잠들겠다. 죽었을 때 로그아웃이 된다면 백 번이고 죽어 주겠지만…… 세상이 바라는 대로 이뤄지면 그게 뭐 세상인가.

“생명이여, 상처를 메우고 삶을 이어 붙이소서.”

그사이 아크메이지가 다시 한번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오던 빛이 한층 더 강해졌다. 상처 부위가 약간 간질간질해졌다.

“왜 혼자, 상의조차 하지 않고 들어갔는지는 묻지 않겠네.”

동시에 HP가 느리게나마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젠 진짜 안정권이다.

“다만 알아 두게. 우리가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으면, 해주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자네는 필시 죽었을 것임을.”

음, 그건 맞는 말이다. 인퀴지터랑 아크메이지가 조금만 더 늦었어도 난 죽었을 거다.

근데 이게 뭐,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그랬나? 패턴이랄지 함정의 존재를 몰라서 위기를 겪었을 뿐이다. 객관적으로 난이도 자체는 못 해 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애초에 다시 하라 하면 이렇게 다칠 일도 없을걸. 마법진 안 밟고 변두리에서 놈들 잡으면 되니까.

그리고 웃기지만, 이게 만일 현실이었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아니, 현실이었다면 더 그래야 했겠지. 내가 몸 사린다고 쟤네가 멈춰 주는 건 아니니까.

“…아니면, 죽는 게 목적이었나?”

그럴 리가. 나도 나름 살고 싶어서 이러는 건데.

그렇지만 그걸 고할 수는 없다. 컨셉을 유지하는 것도 이젠 내 생존을 위한 필수적 요인이었다. 아주, 매우,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크르륵.

시간이 좀 흘렀을까. HP가 절반 좀 안 되게 차올랐을 때, 이갈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사람 기분 좋아지는 소리였다.

“피냄새를 맡고 온 것인가…….”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그렇다고 원거리 딜러를 방치해서야 쓰나.

근거리 딜러도 탱커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그래도 원거리 딜러가 맞는 것보단 낫다.

“벌써 일어나면 안 되네!”

“…이제 필요 없다.”

나는 무거운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상처가 조금 당기는 듯했지만 어떻게든 힘주니 일어서지긴 했다.

조금 어이없다. 피로야 그렇다 쳐도 상처는 HP 회복되면 같이 나아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풀피 되어야 나아질 심산인가? 아니면 부상은 HP와 별개로 회복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정?

쉐엑쉐엑.

또, 이 거친 숨소리. 설마 했는데 아무래도 내 건가 싶다.

나는 저 스스로의 숨소리에 괜히 놀랐다. 통증이 없는데 중환자 같은 숨소리가 입에서 나오면 누구나 이럴 터였다.

그래도 숨소리 하나 바꾸자고 그쪽에만 신경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검을 들었다.

지금껏 가볍기 그지없었던 검이 지금은 더럽게도 무거웠다. 투헨더는 아예 바닥에 내려두고 롱소드만 들었는데도 그랬다.

와, HP는 회복되고 있으니까 HP 탓은 아닐거고. 설마 이거 피로도 탓이냐. 피로도 100 찍은 채로 계속 움직이면 안 되겠네.

“그러다 죽어!”

“난 죽지 않는다.”

앞이 어질어질한 건 맞는데 HP가 0이 되지 않는 이상 죽지는 않는다.

나는 그 메타적 근거를 쏙 뺀 채 한 걸음 나아갔다. 어둠 속에서 삼목구가 마침 달려왔다.

“절대로.”

내딛은 한 걸음에 균형을 잃은 채 무너지려 했을까.

“악마기사!”

쿵!

아크메이지의 손이 내 팔을 잡기 전에 내가 어떻게든 균형을 되찾았다. 무너지려던 다리에 억지로 힘을 밀어 넣어 넘어지는 걸 기어코 막아 낸 거다.

서걱!

그와 함께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어진 검이 달려온 악마견을 정확히 2등분했다.

“알았다면…… 따라오기나 해라.”

하아. 진짜 악마견이 안 왔으면 좀 더 쉬었을 텐데.

몸 상태가 거지면 뭐하나. 움직이는 걸 확인한 이상 가만히 있을 컨셉이 아닌데.

뭐, 그렇다고 꼭 컨셉 때문에 움직이느냐면 그것도 아니긴 하다. 컨셉이 아니더라도 올라갈 필요가 있긴 하니까.

아무렴, 인퀴지터를 보냈다곤 하나 영 찜찜해서 말이지.

이 고생을 해놓고 여기까지 왔는데, 만약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시가 붕괴되서 GAME OVER되고 강제 리트된다?

나 운다 울어. 심지어 여기에 있으면 원인도 파악 못 할 거 아냐. 그땐 진짜 억울해서 더 화날 거라고!

“뒤처지면 버리고 가겠다……!”

그러니 쉬더라도 절대 위에서 쉬어! 리트하거든 바로 상황 파악하고 움직일 수 있게!

* * *

세상에 대가 없는 힘은 없다. 신께서 빌려주시는 신성력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신이시여.”

호사가들은 노력 없이도 신의 눈에만 든다면 얻는 힘이라며 말하던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신의 눈에만 든다면 아침기도만 드리다가도 얻을 수 있고, 더한 신실함을 증명한 이보다 더 많은 힘을 사용할 수도 있다.

오롯이 신의 기준에 따른, 불공평의 극치를 달리는 힘이었다.

“저를 도구로 삼으소서.”

그러나 정작 신성력을 한 번이라도 다뤄 본 자는 알았다.

“저를 무기 삼으소서.”

신성력만큼 세상에 공평한 힘은 없음을, 신께서 힘을 한정된 이에게만 나눠 주는 것엔 이유가 있음을.

“그리하여.”

그들은 알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뜻을 이곳에 세우소서.”

신의 힘을 인간이 사용하는 대가라는 양, 사용하는 만큼의 고통이 육신을 갉아먹고 몸 내부를 불태우는데, 절대 모를 리 없다.

콰앙!

인퀴지터는 익숙한 고통을 잇새 너머로 삼키며 메이스를 추켜세웠다. 진입할 때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든 악마들이 그 짙은 빛에 괴성을 지르며 도주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것들을 전부 찾아내어 도륙하고 싶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그녀는 그들이 쌓아 온 시체를 따라 달렸다. 추적이란 과정 없이 질주하는데도 출구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넓은 장소였다.

“후우.”

그렇지만 아무리 넓어 봐야 고작 달리는 일이다. 이곳을 정리하다시피 한 이도 있는데 이따위 것으로 고됨을 논할 순 없었다.

온몸이 엉망이 되도록 싸운 이가 있는데, 그녀가 지침을 말할 순 없단 말이다.

콰앙!

인퀴지터는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막아서는 악마의 머리통을 벽에 처박아 넣으며 발을 놀렸다. 사악한 자들의 진짜 노림수. 바깥. 단편적인 단서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그녀의 발을 재촉했다.

“제발, 늦지 않았길.”

그러나 이리 기도한들 정말 그리될 수 있을까? 이미 저들의 노림수에 보기 좋게 넘어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는데, 그런 그녀에게 돌이킬 기회는 있나.

“사제님!”

있다 해도 그녀 혼자서 간악한 악마추종자들의 목적을 알아낼 수는 있어?

“도, 동료분은…….”

인퀴지터는 하수도 바깥에 포진한 이들을 보며 숨을 턱 들이켰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용사의 문장을 가져도, 아주 많은 신성력을 감당할 수 있어도. 그녀는 여전히 무지하고 어리석은 신의 종에 불과했다.

악마기사를 조금도 도울 수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아직 안에 있습니다. 조금 늦게 나오는 것뿐입니다.”

“아, 그런 겁니까?”

“그보다, 저를 도와주실 분 계십니까?”

하므로 그녀는 자만하지 않기로 했다. 더구나 신께서도 그리 말씀하셨지 않았나. 혼자로는 역부족이라고.

그녀가 혼자 알아낼 수 없다면 다른 이들의 머리를 빌리면 될 일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됩니까?”

“지하도에 머무르고 있던 자들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한데 그들의 진짜 목적이 이 위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알아내야……?”

인퀴지터는 강둑을 오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저건……?”

아주 두꺼운 연기가 도시 한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도 붉은색과 녹색이 섞인 안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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