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22화 (22/389)

◈22화 돌이킬 수 없는 (1)

서걱!

잘려 나간 목이 바닥을 데굴 구르고, 나는 그 피를 털었다. 문득 나와 눈이 마주친 다른 자들이 힉 소리를 냈다. 본인들 운명을 예상할 테니만큼 당연한 반응이었다.

“죗값을 치를 때다, 이 저열한 악마 새끼들!”

그렇지만 나만 생각해서 될 게 아닐 텐데. 인퀴지터도 나서고 있으니까.

“용사 새─!”

퍼억!

나는 김치만두의 손에 죽어 나가는 이들을 보고, 내 경험치바를 슬쩍 보았다.

예상은 했지만 인퀴지터가 죽이면 내쪽으로는 경험치가 아예 안 들어온다. 조금 아깝다.

“어우.”

그나마 다행인 건 아크메이지와 도적이 뒤로 물러나 있다는 것? 뭐, 사실 참여했어도 괜찮긴 했을 거다.

경험치야 다른 데서 채우면 그만이니까.

“저, 한 놈은 남겨 주실 수 있으십니까요?”

그런데 도적이 뜬금없이 그런 말을 꺼냈다. 아크메이지나 인퀴지터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무슨 의미지?”

나나 인퀴지터처럼 맹렬하게 활약하진 못했어도, 아크메이지를 보호하며 최소한 1인분은 한 도적이다.

그 덕분인지 인퀴지터의 목소리는 아까처럼 그렇게 적대적이진 않았다. 여전히 못마땅함이 섞여 있긴 했어도.

“별건 아니고…….”

도적은 제단에 쌓여 있었던, 그러나 소환에 쓰이고 너커에게 짓밟혀 으깨진 시체 더미 앞에 섰다. 피는 죄다 빨리고 살점은 뭉개져 멀쩡한 시신이 하나 없는 덩어리였다.

“동료 중에, 납치된 애의 가족이 있어서요. 그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친구를 살해한 귀족을 죽이고자 뒷골목에 투신한 도적의 과거 설정을 생각하면, 더없이 이해 가는 발언이었다.

하물며 원작에선 도적의 전직 갈래 중 하나가 어벤저Avenger(복수자)였지? 도적만 유독 직업명이 구려서 그것만은 기억난다.

“소중한 이를 돌려받을 수 없다면, 최소한 합당한 복수라도 할 수 있는 게 좋지 않습니까.”

“사적 보복은 법에서 금지한다.”

다만 우리 인퀴지터가 엄청난 벽창호라서.

나는 도적의 표정이 썩어 가는 걸 보다가, 바닥에 너저분히 엎어져 있던 악마계약자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놈이었다.

퍼억.

“커억!”

좋아. 도적 앞에 잘 던졌다.

“악마기사……?”

“…나리.”

“명심해라. 그 악마 새끼가 도망가거든 네놈의 목까지 함께 잘라 줄 테니.”

“…하, 감시는 이쪽 전문이라서 말입죠. 절대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사적 보복을 옹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공감 못 하는 것도 아닌지라.

더구나 악마기사는 복수할 기회마저 잃어버린 케이스다. 이런 식의 사소한 호의는 베풀지 않을까 싶다.

퀘스트도 전부 제거가 아니라 제압 포함이니까 이래도 허용해 줄 거고.

“악마기사!”

뭐, 인퀴지터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 듯하다. 쟤는 D&D 캐릭터였으면 무조건 질서 중립 성향일 거야.

“흐, 저주할 것이다…… 너를 내 피와 살을 바쳐……!”

서걱.

근데 네가 부른다고 내가 들을 것 같냐고.

“아크메이지님……!”

“악마계약자는 위험하네. 신성력으로 압송할 게 아니라면, 죽이는 것이 좋을 걸세.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혀가 잘리고 사지의 인대가 잘려도 일을 벌일 수 있습니까요?”

“…오래 두면 안 될 걸세. 악마의 힘은 일반적인 마법과 달라. 절대 방심해선 안 되네.”

“걱정 마십쇼. 나가자마자 죽일 거니까.”

경험치 아깝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뒤처리를 다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저주를 입에 담는 놈들을 일일이 찔러 죽였다. 인퀴지터가 도적과 입씨름을 하느라 몇 놈밖에 못 죽여서, 졸지에 내 경험치바만 절반 넘게 차올랐다.

“법은 지키라고……!”

아. 이제 산 놈 없지? 색적스킬로도 울리는 알람이 없으렷다. 퀘스트도 갱신됐고.

좋아. 이제 이 던전 나가면 될 것 같은데.

흠. 아니다. 차라리 여기서 로그아웃할까? 조금 더 비벼 봐야 한 시간도 안 돼서 풀다이브 종료 알림이 울릴 것 같고. 그사이에 퀘스트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중간에 퀘스트 끊기면 김빠지니만큼 깔끔할 때 종료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거기에 여기처럼 특징적인 곳이면 시간 두고 로그인했을 때 내가 어디까지 했었는지 기억 떠올리기도 편하다.

아무렴, 다른 게임이라면 모를까, 여기 NPC들 너무 현실적이서. 재로그인했을 때 우왕좌왕하면 이상하게 여길 것 같다. 그 순간의 컨셉 붕괴만은 막고 싶다.

“로그아웃.”

해서 나는 결정을 내렸고, 그것을 시행했다.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대체 뭘까.

“……? 로그아웃.”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

…설마 버그인가? 아니, 세상 어떤 게임이 로그아웃 기능에서 버그를 내?

게임사가 망하려고 작정했나. 아무리 잘 만든 게임도 로그아웃이 안 되는 순간 망겜으로 몰락하는 게 가상현실 게임인데.

“로그아웃.”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로그아웃!”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뭐지? 진짜 뭐지? 나는 반복되는 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내가 상정하지 못한 경우였고, 그 어떤 게이머도 상상하지 않을 장면이었다.

“악마기사?”

…아니야, 침착하자. 게임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 중대하고 심각한 버그를 고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장소 문제일 거다.

왜, 게임엔 드물게 로그아웃 불가능 지역이 있지 않은가. 이것도 그런 케이스일 거다. 멘트를 중의적으로 적어 놔서 사람 겁나게 만들 뿐인.

“…아니다.”

그보다 나, 생각보다 더 당황해 버렸나 보다. 컨셉에 살짝 삐끗한 발언을 해버렸네. 누군들 이런 메시지를 보면 아니 그렇게 되겠냐마는.

“자네, 어딜 가는가?”

나는 일순 조급해진 마음에 서둘러 바깥으로 향했다.

“악마와 내통한 타락자들을 참하러 간다.”

로그아웃 시도해 보러 나간다, 라고 대답할 순 없으므로 갱신된 퀘스트 내용을 읊는 건 당연지사였다.

「❖ 불길한 전조

∎ 모든 적 제압·제거하기

∎ 신전으로 이동

∎ 악마계약자와 내통한 배신자들 찾기」

물론 깰 생각은 없다. 숨겨진 지하도를 나가는 즉시 게임을 끌 거다.

“……!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인퀴지터가 다급히 나를 부르더니 곧 기도문을 중얼중얼 읊기 시작했다.

아마 정화를 위해서일 텐데, 그로 인해 내 등골이 살짝 서늘해졌다.

“나리.”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건 로그아웃이니까.

나는 기다려 달란 말 무시하고 들어왔던 통로로 들어갔다. 그러자 누군가가 후다닥 따라왔다.

인퀴지터는 아직 정화 중이고, 아크메이지는 그녀 곁에 있으니 남는 건 도적뿐이다.

“감사합니다.”

그 말은 다소 껄렁껄렁하던, 사람 약올리는 듯한 말투 대신 진지한 어조와 굳은 목소리로 전해졌다.

비록 그 뒤로 희미한 신음 소리─악마계약자의─가 계속 들려왔지만, 그 정돈 BGM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도적 새끼들은 원한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 은혜도 잊지 않죠.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필요 없다.”

은혜고 자시고 네 면상이 도적 직업군 대표 캐릭터인 이상 동료로 들어올 게 뻔한데, 무슨.

“…필요 없으셔도 갚을 겁니다요.”

“필요 없다 했을 텐데.”

여기 통로가 이렇게 깊었나? 나는 조금 더 걸음 속도를 높이며 나아갔다. 내 정신건강은 소중했다.

“거기 누군가!”

“어이쿠. 짭새들이.”

그러다 계단 아래로 막 내려오던 경비병과 맞닥뜨렸다. 적대적 대상이라고 하긴 애매한 까닭인가. 색적스킬은 안 울렸다.

“너, 넌 누구냐!”

“당장 투항해라!”

근데 내가 지금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런지, 경비병들이 덜덜 떨며 무기를 치켜들었다.

공격하고 싶진 않은데 무기를 안 들면 죽을 것 같으니 자기방어용으로 창과 검을 뽑는 게 너무 잘 보였다.

“투항?”

나는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악마와 관련없고 범죄자도 아닌 민간인한테 무기 휘두를 만큼 파탄난 인성으로 정하진 않았으니, 딱 거기까지가 허용선이었다.

솟구친 짜증까진 굳이 가리지 않아도 되겠지만.

“악마기사!”

“거기, 기다리게!”

다행히 나와 경비병이 대치한 지 20초도 되지 않아, 뒤쪽에서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가 달려왔다.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다. 아크메이지는 도착하자마자 허리를 꺾는 게 꽤 힘겨운 눈치지만.

하기야 밤이 새도록 돌아다닌 것도 모자라 휴식 한 번 없이 전투에 돌입했다. 체력 약한 법사는 슬슬 지칠 만도 하다.

“너, 너흰 누구냐!”

“교단의 이단신문관이다!”

여기서 내가 자리를 지켜 봐야 귀찮고 배배 꼬일 뿐이다. 컨셉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테니, 이번엔 자리를 비켜도 되겠지.

나는 그렇게 치열하게 계산하며 한 발 비켜 섰다. 그건 도적도 마찬가지라, 인퀴지터는 빠르게 우리 앞열로 나올 수 있었다.

그 손엔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교단의 성물이 들려 있다.

“교, 교단……?”

“지하도에서 마기를 감지, 악마계약자들을 전부 참살하고 나오는 길이다. 그리고 이들은 나와 함께하는 조력자다. 무기를 거둬라.”

“아, 악마!”

“…그게 정말이십니까?”

인퀴지터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서 성스러운 빛이 흘러나오며 어둡던 통로를 따스하게 밝혔다.

서로 눈짓하던 병사들이 다급히 무기를 내렸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사제님.”

“그대들은 그대들의 일을 했을 뿐이다. 사과하지 마라.”

이단심문관이 생각보다 더 높은 계급인가 싶을 즈음, 옆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도적의 것이었다.

“사제는 무슨 깡패 새끼들이지…….”

…얘, 사제 직업으로 시작하면 동료에 안 들어오는 거 아니냐? 아니, 지금도 안 들어올 삘이긴 하다만.

악마기사가 제일 성격 더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도적 직업군도 까보면 꽤 만만찮을 것 같다. 원작에선 스토리 푸는 방식이 너무 짜증나서 스크립트 제대로 안 봤었는데.

“가시지요.”

그 생각을 잠깐 하는 사이, 경비병과 대화가 다 끝난 듯하다. 인퀴지터가 나가자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바라던 바였다.

“이봐, 범죄자를 넘겨라.”

“예에? 이건 제 겁니다만.”

“이단심문관께서 악마계약자를 회수하라 하셨다.”

“…아, 저 깡패 새끼가…….”

“방금 뭐라 했지?”

“여긴 좁으니 바깥에서 넘겨드리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만?”

“…그렇게 긴 문장이 아니었는데.”

“제가 말이 좀 빨라서 그렇습니다요.”

계단 위로 올라가, 채소 가게를 벗어났다. 정오를 넘긴 햇살이 쨍하게 눈을 찔렀다.

“아, 그런데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말입죠. 잠깐 가보겠습니다.”

“……! 잠깐, 멈춰!”

“잡아!”

“저 망종이─!”

“허이고.”

“앗, 아크메이지님, 괜찮으십니까?”

“허허…… 괜찮습니다. 다만, 이 정도의 행군은 늙은이에게 좀 부담이 되었나 봅니다.”

“아, 저, 아…….”

“그래도 아직 더 움직일 수 있으니 걱정 마시지요. 신전에 있을 타락자들을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나는 도적과 경비병, 인퀴지터가 아웅다웅거리고, 아크메이지가 도적을 위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인퀴지터의 시선을 끄는 걸 뒤로한 채, ‘둥’ 하고 울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소몬: 상업지구」

지역 갱신이다. 이젠 진짜 로그아웃할 수 있다.

…할 수 있어야 한다.

“로그아웃.”

나는 내 앞의 허공을 노려보며 커맨드를 읊조렸다. 그리고 창이 떠올랐다.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이, 미친……!”

시발, 이 게임 새끼가 돌았나……!

“악마기사?”

잇새로 새어 나간 외침에 인퀴지터가 저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나는 차마 표정을 수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어떤 이가 이 자리에 대신 있어도 나와 똑같을 것이다. 이제는 도저히 커버 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건 중간에 끊기면 안 되는 퀘스트도 아니었고, 지역 또한 그럴 만한 이유가 없다. 로그아웃이 막힐 원인 따위 하나도 없단 소리다.

그런데도 안 돼? 이건, 게임사 고소해도 내가 무조건 이길 수 있다. 빌어먹을.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설정.”

하다못해 창을 직접 띄워 수동으로 로그아웃 버튼을 연타도 해보았다.

NPC들 지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이상하게 볼까 봐─그들 눈엔 이 창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그렇지만 계속 같은 창만 겹겹이 뜰 뿐이었다.

“…뭐야.”

이럴, 이럴 순 없다. 나는 제 뺨의 온도가 뚝뚝 떨어짐을 느끼며 미친 사람처럼 로그아웃을 중얼거려 보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불가능하단 말만 뜰 뿐이었다.

“악마기사?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자네……?”

공포 게임이 별건가? 빌어먹을, 이게 진짜 호러지.

나는 치미는 두려움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머리를 쥐어뜯듯 붙잡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진짜 어떡해?

그 어떤 버그 망겜도 튕길지언정 로그아웃이 안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들어 본 적도 없다.

한 번도, 이딴 적 없단 말이다…….

“……! 긴급 프로토콜.”

그러다 떠오르는 기능이 하나 있어, 나는 다급히 외쳐 보았다. 캡슐 자체에 내장된 기능이었다.

사용할 일 없을 것 같다며 반쯤 잊고 있던 시스템이었는데 진짜 위기가 닥치니 어떻게든 떠올리게 된다.

“캡슐 강제 종료.”

“예?”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긴급 프로토콜, 캡슐 강제 종료!”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시발!”

그렇지만 그것도 먹히지 않는다. 나는 20대 이후로 담아 본 적 없던 욕설을 연신 지껄이며 다급히 로그아웃과 강종을 번갈아 외쳤다.

불행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발동되는 기능은 하나도 없었다.

“악마기사, 무슨 일인가!”

“대체 왜 그러십니까?”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로그아웃도 안 되고, 캡슐 긴급 시스템도 안 먹히면, 나는 게임을 어떻게 끄냐고. 어떻게 나가냐고!

게임사 이 개자식들이 게임을 어떻게 만들었으면 이딴 개X같은 버그를……!

“악마기사.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혹시, 악마가……!”

인퀴지터가 내 팔을 붙잡고 시선을 얽어 왔다. 그것에 지독한 불쾌함과, 소름끼치는 불안이 내 살갗 위를 기어다녔다.

“안 돼…….”

“네?”

“로그아웃이…….”

아냐, 아냐. 침착해. 풀다이브 기간에 맞춰 주입해 둔 영양제가 다 떨어지면 풀다이브가 자동으로 종료된다. 당연히 게임도 꺼지고.

영양제가 다 떨어졌는데도 게임을 계속하다가 굶어 죽은 이 때문에 필수로 정착된 기능이니, 이건 무조건 발동할 거다. 꼭 그럴 거라고.

그러니까 진정해. 진정하자. 나는, 그냥, 딱 몇 시간만 더하는 거다. 풀다이브가 종료되는 때까지 딱 몇 시간만─.

“정신 차리십시오!”

퍼억!

엄청난 통증이 명치를 후려쳤다. HP 깎이는 소리가 아주 우렁찼다.

“커억!”

아니, 미친. 나 통각 수치 조절했는데 이거 왜 이렇게 아파……!

“너……!”

반사적으로 명치에 손을 얹으며 날 친 이를 노려보았다. 인퀴지터였다.

“핫! 드디어 정신이 드십니까!”

김치만두, 넌 사람 명치를 후려쳐 놓고 뭐가 그리 당당해……! 그리고 웃기는 또 왜 웃어! 진짜 김치만두가 될 거냐!

“지금 장난─!”

“급소를 친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 도움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뭐?”

잘못 한 점 없다는 양 꼿꼿하게 반짝이는 녹안을 보며 나는 어이가 경례하는 걸 느꼈다. 로그아웃이 안 된다는 심각한 사항마저 잠시간 아무 고민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오른팔의 마기가 준동하는 걸 느꼈습니다. 억누르고 계시던 악마가 날뛴 것 아닙니까?”

“……?”

얜 뭔 뚱딴지 같은 소리야.

“걱정 마십시오. 저는 당신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잠시 동안은 흔들릴 수 있어도, 당신이 끝내 악마를 이겨 낼 것을, 악마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는 겁니다!”

“……?”

“그러니 악마기사! 만약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거든 언제든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드리겠습니다!”

“……??”

“반드시 벌어 보이겠습니다!”

…김치만두야, 네가 널 애정하긴 하지만 너 지금 헛소리한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