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9화 (19/389)

◈19화 무지의 대가로 (5)

가끔 게임을 하다보면 NPC와 몬스터가 동시에 존재하는 맵 내지 장소를 볼 수 있다.

‘영웅전설’ 원작의 ‘빈민가’도 그런 곳이었다. 소매치기 NPC와 소매치기란 이름의 인간형 몬스터가 공존했다. 사냥터라고 부르긴 몬스터 수가 너무 적고, 안전지대라 여기기엔 선공몹이 존재하는 형식으로.

한데 이 이야길 지금 왜 꺼내느냐 묻는다면.

“으악!”

“용기는 가상하군.”

원작과 달리 리메판은 머리통 위에 아무것도 안 떠서 몹인지 NPC인지 구분이 안 간단 소릴 하고 싶어서다. 제에에엔장.

NPC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소매치기당할 뻔했네.

“신께서 금지하신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도둑질이지.”

별개로 빈민가로 향하는 내내 인퀴지터가 다소 떨떠름한…… 그보단 떫은 표정이었던 이유를 알겠다.

꽉 막힌 우리의 김치만두는 신의 말씀을 어긴 작자들을 만나야 했던 게 다소 불편했던 모양이다.

“시발, 재수도 없네…….”

제 허리춤에 손을 넣었다가 발에 차여 나동그라졌던 이가 욕설을 지껄였다. 그에 인퀴지터의 표정이 사늘해지며 메이스를 움켜쥐었다.

“도둑질을 한 자는 손목을─.”

“거기까지 하시지요, 인퀴지터.”

“예?”

“교리와 규율을 지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나, 모든 순간에 그래선 안 됩니다.”

“하지만 저건 죄인입니다.”

“때론 자비도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자비 말입니까.”

“예, 자비 말입니다.”

“…….”

아크메이지의 말에도 인퀴지터는 별로 이해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의 우직함이 그 몰이해에서 슬슬 선명히 비치는 듯하다.

뭐, 내가 케어할 부분은 아니니까 상관없지만.

“요 근래 소매치기가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가?”

소매치기를 시도한 걸 보아 몹으로 분류될 것 같긴 한데, 혹시 몰라서 대화를 시도해봤다. 몬스터로 매듭지었던 원작과 달리, 적대적NPC 정도로 승격됐을 수도 있겠다 판단한 까닭이다. 아니면 이것도 스토리─플레이어가 잡으면 심문으로 이어지고, 놓치면 추적으로 이어지는?─일 수 있고.

다 아니라면 뭐, 상황에 맞게 처리하지 뭐.

“뭐, 뭐라는 거야.”

근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와?

“두 번 묻지 않는다.”

인퀴지터가 하려던 행동 보니까 여긴 도둑질한 사람은 손목절단형인가 본데, 얻은 정보는 잘 써먹어 줘야 하는 법이다.

나는 거침없이 롱소드를 빼들었다. 뒤에서 인퀴지터를 살살 달래고 타이르던 아크메이지가 기함했으나 알 바 아니었다.

“네 손목이냐, 대답이냐.”

소매치기의 가슴팍을 발로 지그시 밟고, 목울대를 향했던 검 끝을 손목으로 옮겼다.

막 터오르던 햇살이 목젖의 움직임을 생생히 표현해 주었다.

“힉! 모, 몰라! 영역이 널널해진 건 사실이지만……!”

“정확히 말해라. 왜 널널해졌지.”

“주, 주름잡던 소매치기 몇 놈이 구역을 비웠어. 그, 그래서야.”

“행방.”

“그건 몰라. 애초에 이 바닥에서 한두 놈 몸을 감추는 건 일상이란 말이야!”

「❖ 불길한 전조

∎ 소매치기와 대화하기 1 / ?

∎ 비렁뱅이와 대화하기 0 / ?」

아는 게 뭐 이리 없어. 그렇게 판단하는 순간 카운트가 하나 올라갔다.

물어볼 사람 숫자가 정해지지 않은 걸 보면 몇 놈이고 대화하면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 내기만 하면 되는 모양이다.

더불어 몹인지 적대적NPC인지 모를 놈에게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너보다 자세히 알 놈은 없나.”

아, 그래도 이건 묻고 가야지.

“와, 왕개라면, 알지도 몰라. 이 구역 소매치기들은 다 그놈에게 돈을 상납하니까.”

“위치.”

“뭐, 뭐?”

“위치.”

크으. 이것도 물을 수 있단 말이지? 놈이 원하는 답을 안 내놓는 것과 별개로 취조 재밌다.

나는 컨셉에 맞춰 냉한 목소리로 심문하며 짜릿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다른 게임에선 주어진 선택지로만 캐물을 수 있었는데, 여긴 내가 바라는데로 가능하니 그게 색다른 재미 포인트였다.

물론 키워드를 지정해 준 것보다 더 정확히 물어봤다는 자신감은 안 들지만.

“그걸 말하면 난 죽어!”

“그럼 손목을 베겠다.”

“시발!”

소매치기 NPC가 저항하려는 듯 몸을 들썩였지만, 가슴팍을 짓누른 내 발이 좀 더 강했다.

그리고 남의 손목을 벤다는 죄책감보다 컨셉에 취한 채로 NPC를 취조한다는 내 즐거움이 더 컸기에, 칼날은 망설임 없이 손목을 향했다.

혀와 달리 손목 자르기는 그다지 거부감이 없기에─몬스터 잡다 보면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라─더욱 그러했다.

“젠장, 젠장젠장…….”

베는 게 단칼에 절단되려나. 그런데 바닥을 긁으면 날이 더 많이 상할 것 같은데.

차라리 찌르는 식이 낫겠다. 나는 검을 쥔 팔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단번에 손목 중심을 찔러 잘라 낼 심산이었다.

“말할게, 말하면 되잖아!”

그리고 내가 칼날을 내리려던 순간, 눈을 질끈 감은 NPC가 결국 항복을 외쳤다.

콱!

나는 손목 바로 옆부분 바닥을 내려찍었다.

“안내해라.”

“씨발, 아침부터 좀 버나 했더니…….”

그러게 누가 개시 손님으로 나를 고르랬나.

스릉.

어쨌거나 약속은 받아 냈다. 나는 롱소드를 검집에 집어넣고 발을 치워 주었다. 물론 녀석이 도망가거든 바로 잡을 수 있게 몸의 긴장을 풀지는 않았다.

“그는 도둑입니다.”

그걸 지켜보던 인퀴지터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를 붙였다.

“알 바 아니다.”

물론 내겐 별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내 물건을 훔쳐 가려 한 게 괘씸하긴 하지만, 그보단 있을지도 모르는 악마의 꼬리를 찾는 게(컨셉상) 우선 아니겠나.

“그리고, 내 칼이 네놈을 꿰뚫는 속도를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렇지만 그게 괘씸함을 다 덜었단 소린 아니라, 나는 소매치기에게 경고했다.

“알…… 알았다고.”

혹시 몰라서 찔러 본 건데 진짜 튈 생각이었나. 난 막 일어나다 말고 움찔거리는 소매치기를 보며 눈을 가늘게 접었다.

보아하니 저거 골목 들어가면 지금 경고 개무시하고 또 튈 각인데. 내가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건 없고, 아, 추적마법?

그렇지만 내가 먼저 부탁하긴 좀 그런데. 아직은 좀 더 내외해야 한다고. 말 그래도 길만 같이 걷는, 다른 무리의 사람처럼.

“아크메이지님. 그 마법을 걸으심은 어떻습니까.”

“…추적마법 말입니까?”

“예. 도망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악마계약자 잡은 후, 미처 찍지 않은 스킬포인트로 추적이라도 찍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한데 그사이 인퀴지터가 해냈다. 제 마음을 읽은 건 물론 아니고, 그냥 소매치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건 조건 같다.

그도 아니면 그냥 스토리라서 놓인 안배거나.

“뭐?”

“…이게 옳은지는 모르겠군.”

추적마법이란 소리에 NPC가 펄쩍 뛰고 아크메이지가 옅은 숨을 흘렸다.

“추적마법을 걸었네. 도망쳐도 붙잡을 수 있을 걸세.”

그러나 끝내 거절하진 않더라.

그녀의 지팡이가 한 번 흔들리고, 소매치기NPC에게 낙인이 찍혔다. 본인이 당황하며 지우려고 했지만 마법이 물리적인 힘으로 지워질 리 없었다.

“출발해라.”

“씨……앙.”

* * *

“뭔데 다시 기어들─?”

마법이라는 확실한 족쇄가 채워지자, 소매치기는 체념한 얼굴로 왕개에게 안내해 주었다.

“너, 넌 뭐야!”

도둑놈답지 않게 몸집이 퉁퉁한 NPC가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격도 그렇고 주변에 놓인 먹거리도 그렇고, 관리자로서 정말 제대로 해 처먹는 듯한 놈이었다.

“대체 뭘 데려온─.”

“네가 어떤 답을 내놓는지에 따라 달라질 거다.”

“컥.”

뭐, 그가 얼마나 착복하는지는 제 관심사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가볍게 신경을 껐다. 대신 그 불룩 나온 배를 발로 뻥 찼다. 그 놈이 탁자에 있던 단검을 들어올린 까닭이다.

“인사로 썩 좋아 보이는 방법은 아닌 듯하네만.”

“내 방식에 불만이 있다면 당장 뒤돌아 나가 네놈의 방식대로 처리해라.”

아크메이지는 슬슬 동행자들의 인성에 회의감이 드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내 컨셉은 원래부터 이랬다. 으하학. 컨셉질 개꿀잼.

“말은 짧아도 문장은 길 수 있겠지.”

나는 넘어진 놈의 손을 걷어차 단검을 치워 내고, 정작 내 품에 마련되어 있던 나이프를 빼들었다.

발리송을 돌려본 경험과 보정이 합쳐지니 픽시드나이프라도 나름 손가락에서 부드럽게 돌아갔다.

“무, 무엇을 물으시려고.”

어째 우두머리란 놈이 지가 부리는 놈보다 깡이 없는지.

그래도 저리 겁먹어 주면 신문하긴 편하다. 나는 평화로운 자세로 천천히 놈에게 묻고 싶은 것들을 물었다.

해서 나온 결과는 형편없다면 형편없고, 얻는 게 있다면 나름 있었다.

“제, 제게 묻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이 일은 이단신문관께서 더 잘 아시잖습니까. 교화를 목적으로 그들을 신전에 데려가셨으면서.”

“…지금 뭐라고 했나?”

질은 형편없을지언정 최소한 다음 나아갈 방향은 얻었으니까, 그럴 것이다.

“신께 맹세해라! 그들을 신전에서 데려간 것이 확실한가?”

불쑥 끼어들었던 인퀴지터가 성내듯 채근했다. 제 컨셉의 말투나 성질머리가 겹쳐서 조금 편찮으나 저건 범죄자 한정임을 상기하니 괜찮아졌다.

“예, 예에……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 말엔 한 점 거짓이 없습니다.”

“기간은?”

“제, 제대로 파악한 건 한 달 전부터…… 였습니다…… 추측하기론 그보다 더 전부터 벌어졌고요.”

“…불경이다!”

그리고 인퀴지터가 불덩이를 토해 냈다.

“범죄자들의 교화는 대신전에서 허락한 기간에만 가능한 터! 한데 그런 기간도 아닐 때 멋대로 교화를 자청하다니!”

…그것 참 굉장히 거슬릴 이유였다. 난 또 뭐 엄청나게 수상한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이보다 중요한 게 무어가 있습니까?!”

나는 어쩐지 더 하얘진 백사자─메이지─와 인퀴지터를 뒤로하고 왕개를 지그시 내려보았다.

“한 달 전부터 사람을 끌고 갔다고.”

“예, 예.”

“끌고 갈 때 사람을 많이 끌고 갔나?”

“아뇨…… 애들 말로는 한둘 정도만 조용히 끌고 갔다 했습니다.”

왕개는 그 말을 하며 슬쩍 눈치를 보았다.

“꼭, 인신매매하는 놈들이 사람 끌고 가듯 조용히, 몰래요. 아, 실제로 그러했다는 건 아닙니다. 어찌 신전에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냥 비유가…….”

와오. 이쯤 되면 내가 원작을 한 기억이 아니더라도 빼박인데. 너무 뻔한 전개에 슬슬 숙연해질 지경이다. 게임 시스템이 워낙 재밌어서 상관없지만.

“지금 뭐라고─.”

“사람을 끌고 가는 건, 정기적으로 이뤄졌나?”

인퀴지터가 노한 얼굴로 무어라 지껄이기 전, 엄한 목소리가 먼저 선타를 쳤다. 심각한 얼굴의 아크메이지였다.

“예, 예. 일주일에 두세 번씩, 정해진 시간이 되면 이단심문관이 돌아다닙니다. 해서 그 시간엔 아무도 나가지 않도록 제한한 참입니다.”

2m가 넘는 체구의 2족 보행 백사자는 표정을 조금만 굳혀도 섬찟해지는 느낌이 있으니. NPC가 파들파들 떨며 긍정했다. 아크메이지의 안면인 단번에 사나워졌다.

“설마…… 악마에게 제물을……?”

그녀는 이 증언만으로도 최악의 상황이 적당히 그려지는가 보다. 뭐, 그건 나도 비슷하지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물이라니요!”

“…그저 가설입니다. 그렇지만…….”

“교단에서 그럴 리 없습니다!”

아무튼 나는 아직도 들고 있던 단검을 품속 고정대에 박아 넣었다.

“그럴 리 없다는 말만큼 무용한 것도 없지.”

“……!”

참고로 이 말은 꼭 컨셉이 아니라 내 인생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럴 리 없다는 말만큼 정말 못 믿을 말도 없더라고.

그래도 컨셉은 지켜야 하므로 나는 오른팔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뒤에서 들려온 숨 삼키는 소리는 매우 흡족한 종류의 것이다.

“어디로 끌고 갔는지 아는 자 있나?”

“그, 저는 모르는데…….”

얼음장에 빙의한 채로 물으니 돌아온 답이었다. 정말이지 이 새끼는 아는 게 뭔가 싶다. 뭐, 퀘스트들이 다 이렇긴 하지만.

“나, 나 알아!”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이곳까지 우릴 안내해 줬던 소매치기였다.

바로 내뺐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기다린 게 좀 신기하다. 역시 스토리란 거지?

“정확힌 내가 아는 게 아니라, 알 만한 사람을 아는 거지만…… 악마가 나온 걸 보면, 이거 중요한 일인 거 맞지?”

시선을 받은 녀석은 일순 말을 더듬으면서도 꿋꿋이 말했다. 초면 인상이 개판이어서 그렇지 정말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삐걱삐걱.

나는 왕개로부터 등을 돌려 그 녀석에게로 걸어갔다. 그때마다 오래된 나무 바닥이 기이한 소리를 냈지만 그게 외려 은근한 공기를 만들어 냈다.

용기 내서 외쳤던 녀석이 뒷걸음질 치며 침을 꿀꺽 삼켰다.

“뭐, 뭐야.”

분위기를 너무 잡았나? 그렇지만 그게 ‘컨.셉’이니까.

“안내해라.”

“…따라와.”

나는 녀석을 따라갔다. 배배 꼬인 골목이 다시 나를 반겼다.

“갑시다, 인퀴지터.”

“…예.”

아크메이지와 인퀴지터도 당연히 나를 따라나섰다.

* * *

“내가, 너흴 데려갈 곳은 여기서도 제일 험한 뒷골목이야.”

골목 한 두어 개를 지나쳤을까. 소매치기NPC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예상치 못한 행동이라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그러니까…… 그곳에선 칼 꺼내지 않도록 주의해. 거기 사람들은 엄청 예민하니까. 특히 저 이단심문관은 더! 신전 사람을 엄청 싫어하니까 꼭 주의시키라고.”

충고는 고마운데 뒷부분은 나한테 말해서 될 게 아닌 것 같다, 야. 그래도 아크메이지가 들은 듯하니 괜찮을 듯하지만.

“나도 도적 따위완 상종─.”

“인퀴지터.”

저 봐.

“괜히 헛짓거리해서 나까지 위험에 빠트리지 말란 거야! 알았어? 난, 난 그냥 모두에게 중요한 일 같으니까 도와주려는 것뿐이니까!”

그보다 이 소매치기, 이제 보니 츤데레 끼가 좀 있는 것 같고 그렇다. 싸가지 밥 말아먹었지만 귀엽던 사촌 동생 생각나네.

“일이 안 좋게 돌아가도 네놈은 살려 보내 줄 테니 토달지 말고 안내해라.”

“흥, 꼴에 실력 있다고 자랑하는 모양인데, 네가 기사라도 되지 않는 한 못 살아남을걸?”

그러냐. 근데 우연히도 내가 전 기사라서 말이다.

나는 어떻게 참았는지 조잘조잘 떠들기 시작하는 소매치기를 보며 미간을 구겼다. 솔직한 마음으론 수다를 계속 듣고 싶긴 한데, 컨셉은 시끄러운 거 싫어하거든. 이렇게 심기를 표현해 둬야 캐붕이 안 나지.

바스락.

“이곳부턴 조심해야해. 혹시라도 칼 빼들지 말고…….”

한데 녀석이 안내한 어떤 길목에 들어간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적의를 품은 대상이 반경 20m 이내에 존재합니다.」

“시발, 너 뭐해! 칼 뽑지 말라고!”

“내가 이걸 뽑지 않길 바란다면, 전해라. 네놈들이 품은 칼부터 집어넣으라고.”

색적 한 단계 올려 두길 잘했지. 늘어난 반경도 반경이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은 내게만 보이는 표식으로 위치까지 알려 준다는 게.

“뭐?”

“나와라.”

나는 선명히 보이는 하나의 표적과, 귀 기울이면 희미하게 들리는 숨소리 갯수를 세며 일일이 시선을 던졌다.

“…이곳에 있나?”

아크메이지나 인퀴지터는 저 숨소리가 안 들리는 모양이다.

근데 힐탱인 인퀴지터야 그렇다쳐도 아크메이지는 사플 잘해야 하는 거 아니냐. 직업도 직업이지만, 샤기 종족이잖아. 귀 더 좋아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가길 바라는 건가?”

그리고 얘네는 눈치를 줬는데도 왜 안 나와.

“…후.”

내가 단검이라도 쏘아 보낼까, 하며 품에 손 넣으려는 찰나 누군가가 판잣집 옥상에서 일어났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던 적대적 대상이자, 푹 눌러쓴 후드 사이로 암녹색 고양이 귀가 퐁 튀어나온 작자였다.

동물귀가 달렸는데 하관은 인간의 이목구비인 걸 보면 종족은 아마 ‘큐어티’족일까? 샤기였다면 하관도 동물형이었을 테니까.

“너 같은 놈에 대해서 언제 이야길 들어 본 적 있단 말이죠.”

근데 그 형상이 어째 익숙하다면, 그건 그저 기분탓이기만 할는지.

“두 가지 색의 머리카락. 한쪽 팔에만 낀 건틀릿. 가려진 오른눈.”

아마 아닐 거다.

큐어티족에다가, 털의 빛깔은 암녹색이며, 턱에는 정리 안 한 수염을 삐죽삐죽 달고 있는 도적이 흔할 리 없으니까.

하물며 껄렁껄렁한 말투까지 더해지면.

“악마기사, 맞죠?”

저거, 높은 확률로 도적 직업군 대표 캐릭터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