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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6화 (16/389)

◈16화 무지의 대가로 (2)

“하, 하지만 밤인데…….”

“희생된 자에게도 그 말을 해보지 그래.”

뒤돈 상태라 만두나 마법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숨 삼키는 소리는 언뜻 들린 것 같다.

“…저도 가겠습니다.”

“이런이런…… 늙은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군.”

음. 개별 활동했어도 난 괜찮았다마는. 역시 파티 캐릭터인가 보다. 어떻게든 같이 다니게 된다는 점이.

“용사님? 현자님……?”

“허허, 주교님의 배려에는 감사드리는 바입니다만…… 저 친구가 피로감을 이유 삼아 악마를 목전에 두고 쉴 만큼 ‘책임감 낮은’ 사람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와중에 현자님 은근슬쩍 돌려 까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저러면 본인들 체면도 조금 상할 텐데 거침없이 피곤함을 핑계 삼아 붙잡은 신관들 까 버리네.

“그런……!”

“늙은이가 발목을 잡아선 안 되겠지요. 자, 어서 출발합시다.”

“…네!”

아크메이지의 말에 인퀴지터가 허락받은 꼬맹이처럼 환한 얼굴로 제 옆에 따라붙었다. 어이없지만 귀여우니까 봐주기로 했다.

“자, 그럼…… 숨어든 악마부터 밝혀 내야겠군.”

조금 더 붙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셋은 신전을 벗어나 마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없다 보니 아직까지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꼴이었으나, 맵을 눈에 익힌다고 생각하면 마냥 쓸모없지도 않았다.

“목격자에게 이야기를 더 들어보─.”

“필요 없다.”

나는 아크메이지의 말을 잘라먹으며 냄새에 집중했다. 기억하기로 드라우거의 특징은 엄청난 악취였던 까닭이다.

물론 PC 시절에야 말풍선으로 ‘이상한 냄새가 난다’라며 표현하는 게 다였지만. VR인 지금은 직접 냄새를 맡아 가며 구분해야 할 테다.

“호, 혹 이번 악마가 어떤 종일지 감 잡았나?”

그 물음은 바로 무시하기 좀 애매했다. 일단 협력자인데 정보를 공유해야 하나? 그런데 컨셉의 성깔머리가 과연 공유해 줄까?

그보다 현자라면서 악마 하나 모르는 것도 좀 우습다. 물론 표정만 보면 알면서도 물어보는 느낌이긴 하지만.

뭐, 기반 지식 없는 플레이어를 따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 직접 알아내도록 유도하는 게 맞긴 하지. 게임은 어디까지나 플레이어 주도여야 하니까.

“이조차 모르는 지능과 놀아 줄 이유 없다.”

그러니 컨셉에 맞춰 대충 대사나 치기로 했다. 옆에서 만두가 헛, 한 것 같지만 넌 귀여우니까 봐준다.

“…고견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인퀴지터는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성직자였다.

그녀가 조금 우물쭈물하게, 그러다 곧 당당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머리에 박아 두겠다는 의지가 녹안 속에서 활활 불탔다.

“네놈이 용사란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제가 못 미더운 건 압니다만, 불경한 발언은 삼가 주십시오.”

아, 본인은 안 믿어도 신은 믿으라는 거냐고. 정말 융통성 없는 성직자잖아.

“그래서 숨어든 악마는 어떤 종입니까?”

심지어 집요하기까지 하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드라우거다.”

“드라우거…… 그렇군요! 확실히 드라우거라면 설명됩니다.”

드라우거 자체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인퀴지터의 눈이 곧장 초롱초롱해졌다.

“역시 악마 사냥 전문가다우십니다. 듣자마자 바로 파악하시다니…….”

아니, 뒤에서 흐뭇하게 웃는 거 보니까 마법사도 아는 눈치인데. 이러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저절로 동료NPC 되겠어?

그런 생각과 함께 씰룩이려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렇지만 웃음을 참는 건 제법 어렵고, 그것을 티나지 않게 참는 건 더 어려운 법이니.

나는 급하게 암울하거나 심각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면 웃음이 바로 들어가는 까닭이다.

“하면 악취가 심하게 나는 곳을 찾아야겠군. 안 그런가?”

마침 가볍게 생각하기 좋은 주제가 있었다.

“묘지가 있다면 그곳을 조사해도 좋을 것입니다. 드라우거는 묘지에서 탄생한다고 들었으니까요.”

“인퀴지터께서도 잘 아시는군요.”

“현자님과 악마기사께 비할 바겠습니까.”

원작에서 나왔던 드라우거 사건은 해당 교구의 부패와 악마숭배자까지 이어졌다.

하면 리메이크판에선 어떨까?

“앗, 이상한 냄새가 납니다!”

나보다는 사제님의 코가 더 좋은가 싶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후각 자체는 내가 더 좋은데 냄새 구분을 영 못 해서.

“냄새가 썩 좋진 않군요.”

사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지금껏 맡아 온 냄새가 몇십 배는 짙어진 형태로 등장했다.

난 이게 거리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게 드라우거의……!”

더불어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밤 시야도 내가 인퀴지터보다 좋았다.

나는 인퀴지터의 갑옷을 잡고 뒤로 당겼다. 고양이처럼 쭈뼛 선 얼굴의 인퀴지터가 억지로 끌어당겨지고, 제가 그녀보다 앞섰다.

“악마기사……?”

나는 골목에 남은 냄새를 가능한 외면하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달칵. 허리춤의 등불이 켜지고 어둠에 휩싸였던 골목이 밝아졌다.

“…신이시여.”

“늦었나…….”

그 안쪽엔 물기 하나 느껴지지 않도록 바싹 마른 시체가 한 구 있다. 으깨지거나 잡아먹히고 남은 흔적보단 낫지만 이쪽도 익숙하지 않은 눈엔 징그럽긴 매한가지다.

나는 탄식하는 둘을 두고 시체에 척척 다가갔다. 골목 안을 채우던 악취는 시체에게서 가장 짙게 묻어 났다.

그럼 이게 드라우거의 냄새가 확실하단 건데.

냄새의 근원인 드라우거도 자리에 없다. 한데 잔흔만으로도 이런 구리구리한 냄새라니. 맞닥뜨리면 꽤 괴롭겠다 싶다.

까드득.

근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나는 컨셉에 맞는 행동을 고민하다가 금방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로서 또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움직이는 캐릭터가, 미처 구하지 못한 피해자를 봤을 때 가질 감상은 뻔하다.

“…복수는 내게 맡겨도 좋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따위의 자책. 역시 악마는 전부 없어져야 한다는 적개심. 그에서 비롯될 분노.

“하니 편히 눈감아라.”

그 순간에도 피해자에게 제 가족을 투영하며 느끼는 슬픔과 그들이 편안했으면 하는 욕심.

자, 그럼 이제 나를 캐해석 천재라 불러라. 아하학.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내 옆까지 다가온 인퀴지터가 두 손을 그러모았다. 그 입술에서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기도문이 신성한 빛과 함께 흘러나왔다.

무신론자인 나지만, 그건 꽤 괜찮아 보였다.

“경비병을 불렀네.”

아크메이지는 뭐 하나 했더니 그새 경비병에 연락을 보낸 듯하다. 이 또한 좋은 센스였다.

사실 게임에서 이런 시체가 발생할 때마다 방치하고 가는 거 좀 미묘한 기분이었거든. 어떤 게임은 순식간에 경비병 소환되기도 했지만.

“냄새가 짙은 걸 보니 살해당한 지 얼마 안 됐을 터. 그렇다면 드라우거도 아직 가까운 곳에 있을걸세. 다음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얼른 찾도록 하세.”

“기본을 주절거리는 건 제가 잘났노라 뽐내기 위함인가? 나불댈 시간에 추적이나 하는 게 효율적이라 보는데.”

플레이어에게 다음 할 일을 고지해 주는 건 고맙지만, 컨셉은 그게 싫은 모양이다. 나는 쓸데없이 날카롭게 반응하며 시체 너머로 건너갔다.

고인을 능욕하려던 건 아니고, 그쪽에서 악취가 이어져서 어쩔 수 없었다.

“허허, 그렇지.”

한데 넉살도 좋은 마법사께선 제 비아냥에도 손뼉을 짝짝 치셨다. 그러자 공기 중에 떠돌던 악취가 눈에 보이는 형광색으로 변했다.

“추적마법일세. 오래가진 않아.”

아직 추적스킬도 못 찍은지라 이대로 후각에 의존해 쫓아야 하나 싶긴 했는데. 이걸 또 이런 식으로 구현해 주네.

나는 드디어 제공되는 편의성에 알쏭달쏭한 얼굴을 했다. 이러면 추적스킬은 안 찍어도 되나……? 그보다 이거, 마법사 직업으로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

일단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쫓기나 하기로 했다.

나는 골목 안쪽으로 앞장서 걸었다. 그러자 이번엔 뒤쪽에서 흰빛이 터져 나왔다.

“마기를 정화하며 가겠습니다.”

신성력이 은은히 골목을 비추자 인퀴지터 근처의 형광빛 안개는 사그라들었다.

덕분에 나중에 길 꼬였을 때 여긴가?? 하면서 헷갈릴 일은 없을 성싶다. 그녀가 가장 뒤쪽 열이라 따라갈 흔적이 지워지는 일도 없을 테고.

콱.

하면 뛰어도 되겠지. 나는 그런 생각으로 발에 힘을 주었다. 팔락. 세 갈래로 갈라진 코트깃이 공작의 꽁지깃처럼 펼쳐졌다.

“으음, 바람이여 우리의 걸음을 가볍게 해주소서!”

제가 달리기 시작하자, 아크메이지가 황급히 주문을 외웠다. 슬쩍 본 이펙트와 가물가물한 주문을 고려하면 대충 이동속도 버프인 헤이스트Haste가 아닐까 싶다.

근데 왜 둘만 걸고 난 안 걸어 주지. 이게 업보인가?

“막다른 길인가!”

그렇게 조금 달리니, 골목길에 이어지던 드라우거의 흔적이 건물벽을 관통했다. 드라우거가 사물을 관통하며 다닐 수 있는 부정형 악마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

어쩔까. 옆길로 돌아갈까? 근데 그러면 흔적 놓칠 것 같단 말이지. 멋도 안 살고.

하면, 이번에도 가상현실 게임이란 이점 살려 볼까?

“악마기사?!”

나는 달리던 속도를 늦추는 대신 옆으로 살짝 틀었다. 마침 오밀조밀 모인 건물은 내가 잡고 밟을 돌출물들이 많았다.

쿵!

벽 위를 달린 몸이 창틀에 손을 걸고 몸을 끌어올렸다. 이게 되나 싶긴 했는데, 정말로 파쿠르가 됐다. 심지어 게임 속 육체라 성능도 좋아서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편하기까지 했다.

상상만으로 그쳤던 것이 정말 이뤄지는 이상 건물 옥상에 오르는 건 삽시간이었다. 나무껍질로 만든 지붕이 구둣발에 살짝 짓이겨지며 미약하게 꺼지는 소릴 냈다.

“거침없는 사내로군…….”

파티원들이야 거리 너무 벌어지면 순간이동하며 따라오게 프로그래밍된 경우가 많으니 신경 쓸 필요 없겠고. 냄새는 어디로 이어졌으려나.

나는 건물 위를 달려 아래쪽 길목을 살폈다. 건물-길목-건물 순으로 통과한 건지 드문드문 형광색 안개가 보였다.

콰직. 콰직. 콰직.

나는 건조된 나무껍질 지붕을 으스러트리며 그 위를 뛰어넘었다. 안 될 줄 알았던 건물 뛰어넘기가 되는 이상, 이게 더 빨랐다.

그런데 어째 뒤가 조용하네. 설마 파티원이랑 거리 벌어져도 순간이동 안 시켜 주는 시스템인가?

힐끔.

나는 텅텅 빈 뒤를 확인한 후에야 확정 지었다.

동료와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아웃되는 게임도 왕왕 있어 조금 불안했으나 관련 창은 안 뜬다. 그러니까, 몇 초 내에 동료에게 합류하세요, 따위의 창 같은 거.

그럼 개별 활동도 지원한단 소린가. 아니면 개발자 실수? 이 정도면 기발한 일 축에도 안 들 테니 미리 대처해 둘 법한데. 그럼 그냥 파티원과 속력 맞추라는 의도인가…….

안타깝지만 그건 거절이다. 나는 느린 거 싫어하는 토종 한국인이었다!

“찾았다.”

마법이 효과를 다했는지 형광빛은 사라졌지만, 대신 악취의 근원을 목도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게 난 공터였다.

새까만 안개 사이로 번뜩이는 붉은 안광이 2D에서 3D로 변해도 딱 드라우거였다.

「드라우거│사람의 눈을 속여 제 입속으로 밀어 넣는 망령. 무덤에서 피어오른 그것은 바위 속을 헤엄치듯 이동하여 먹잇감을 찾는다.」

「❖ 마을에 숨어든 악

∎ 마을에 숨어든 악마 추적

∎ 드라우거 제거 0 / 1」

펄럭!

퀘스트 갱신과 함께, 나는 달을 등지고 공터에 가까운 공간으로 뛰어내렸다.

그 과정에 코트 자락이 펼쳐졌으나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내 손은 등에서 달칵거리던 투헨더를 꺼내 쥐는 중이다.

우우우우─!

드라우거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흘리고, 아슬아슬하게 녀석이 비켜난 자리에 투헨더가 박혔다. 꺼내자마자 양손으로 단단히 붙들고 내려찍은 건데, 빗나가서 조금은 아쉽다.

사실 제대로 맞았어도 물리공격 무효라는 부정형의 특성상 대미지는 안 들어갔겠지만.

“…하늘에 영광을.”

됐고, 진정한 컨셉충은 아무도 없을 때조차 완벽해야 한다고 내가 말했던가?

“죽은 자에게 복수를.”

바닥에 꽂힌 검을 우악스럽게 뽑아들며 드라우거에게 다시 겨눴다.

공터에 검은 안개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악취는 덤이었다.

흐우우우우.

그보다 부정형은 기억상 쳐내기가 절대 불가능했던가. 아쉽네. 쳐내기가 공격 타이밍 잡기 제일 편한─.

우우우!

“이단자를 어찌 떼어 낼까 고민했는데…… 역시 그레첸이시군요.”

─데, 변수가 등장했다.

“그레첸이시여, 왕께서 그대를 찾으십니다.”

드라우거의 안개 속에서 로브인이 몸을 일으켰다.

음침한 검은 로브에 붉은 보석 장식. 원작 생각 안 해도 딱 정체가 보인다.

「악마계약자│악마와 계약하여 스스로의 영혼을 내다판 자들. 그들이 정말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인지, 스스로의 욕망에 팔아넘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악마계약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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