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난 그걸 몰랐고 (3)
“무슨…… 악마끼리, 다툰다고?”
인퀴지터는 가장 먼저 악마에게로 달려가는 이를 보았다. 당황스러웠다. 그는, 변절자였다. 악마와 계약하며 신을 배반한 자란 말이다.
“변절자가, 어째서…….”
악마와 계약한 자들은 악마의 시종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지능이 낮은 저급 악마에게까지 부려지진 않으나, 그들과 적대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한데 그런 악마들에게 스스럼없이 덤벼들어? 심지어 제 몸이 물어뜯기든 말든 본체를 집요하게 찾아?
이런 건, 이런 건 불가능했다. 이런 것은…….
“아니…… 아닙니다. 인퀴지터. 저자는 악마의 계약자가 아닙니다.”
그녀가 배운 것에 속하지 않는다.
“예?”
“…설마하던 가능성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마기가 마력으로…… 으음, 이게 앞으로 어떤 일을 불러올지…….”
인퀴지터는 아크메이지의 중얼거림과 심각한 표정에 메이스를 움켜쥐었다. 아크메이지라면 무언가 알고 있겠다 판단한 까닭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아크메이지님.”
“…아, 그렇지요. 학회에서도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가설이니 인퀴지터께선 모르실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크메이지는 두툼한 손가락으로 지팡이를 매만지며 그녀에게 답을 주었다.
“저 청년은…… 아마 악마와 계약하여 그 힘을 얻은 게 아니라, 악마의 숙주가 되며 그 힘을 다루게 된 걸 겁니다.”
“숙주…… 라면…… 설마 좀비가 되었단 말입니까?”
좀비라면 배운 바 있다. 악마에게 몸을 빼앗겨 더는 본인의 의지로 못 움직이는 자들이 바로 좀비였다.
기생하는 악마에게 조종될 뿐인,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시체들. 죽음만이 안식인, 그런.
“그렇지요. 다만 보통의 좀비가 기생악마에게 자아를 빼앗기는 반면, 저 청년은 악마를 억누르고 본인이 주도권을 잡은 모양입니다.”
“무슨!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습니다!”
“무어가 불가능합니까? 인퀴지터,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불가능하노라 여겨지는 것들이 있을 뿐이지요.”
아크메이지는 발악하듯 외치는 그녀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은 우는 것 같기도 한, 모호한 미소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이 앞의 청년을 무어라 불러야 합니까?”
그 순간, 기어코 악마의 본체를 찾아낸 사내가 그 뱀을 토막쳤다. 악마의 힘이 악마를 죽이고 만 때였다.
* * *
“그럼 이제 그 입, 약속한 대로 찢어 주지.”
즐거운 마음으로 컨셉에 몰입한 채 대사를 쳤다.
“잠깐,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 공격한 건 사과할 테니, 부디 말을 들어주지 않겠나?”
그러자 마법사가 다급히 나를 말렸다. 지금보니 참 풍채 좋은 사람이었다.
“오해? 그것 참 재밌는 말이군. 나를 저딴 버러지 새끼들과 같은 취급을 하며 덤벼든 게 오해인가?”
키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네. 정면을 직시했을 때 시선이 목선에 닿는 걸 보면 최소 2m쯤 되어 보이는데.
아니면 종족이 다른지도 모르겠다. ‘영웅전설’엔 미들, 슬랜드, 큐어티, 샤기. 총 4개의 종족이 존재하니까.
그리고 2족 보행 짐승에 가까운, 완전한 짐승형의 ‘샤기’족은 평균적으로 체격이 저리 컸다.
“부디, 용서하게. 자네의 팔에 마기가 얽혀 있어 악마에게 기생당한 좀비로 오인한 걸세. 악마사냥꾼이라면 알겠지만…… 좀비가 된 이가 자아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다소 전례없는 일이지 않은가.”
오…… 이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일단 스토리상 계속 덮어 주려는 것 같으니까 조금 더 화내도 되긴 할 듯하다.
나는 그런 계산 끝에 주먹을 빠드득 쥐었다. 얼굴도 형편없이 찌그러트렸는데, 대충 분노와 이해, 자기혐오가 얽힌 형상으로 보이길 바랐다.
“뭐……?”
그보다 좀비 설정이 기억 안 나. 뭐였지? 일반적인 좀비랑은 좀 궤가 달랐던 것 같은데.
‘악마에게 기생당한 좀비’라는 발언으로 유추하면 대충 숙주…… 같은 거려나? 이거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간에, 콤플렉스를 가진 입장에선 들어서 기분 좋을 대사는 아니었다. 정말로 인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테니까.
“자네가 보통의 사람처럼 자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았다면, 공격하지 않았을 걸세. 사과함세.”
빠드득.
어깨에 걸치고 있던 검을 아래로 툭 내리며 검 자루를 세게 쥐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안대 낀 오른눈을, 흘러내린 앞머리를 짚었다.
컨셉에 몰입하자 괜히 그것들이 증오스럽고, 불결하고, 끔찍해졌다.
그리고 딱 그만큼 오해한 저 작자들이 싫어졌다. 진짜로 싫어진 건 물론 아니고, 그럴 거란 감상이 들었다.
실제야 저쪽 입장을 이해하고 있고 어차피 NPC란 걸 아니까 별 감흥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이입한 컨셉은 그러지 못할 거라고.
“하, 좀비라…….”
가끔씩, 연기를 하다 보면 성대가 알아서 대사를 치고 몸이 멋대로 움직일 때가 있다.
컨셉이 내손을 떠나 멋대로 움직인다고 해야 할까.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다.
“감히…… 네깟 것들이 날 그따위 것으로 취급해.”
그런고로 평소보다 더 이입해서 검까지 들어 올렸다.
물론 한 손으로 든 게 조금 무거운 건지, 검든 손이 바들바들 떨리긴 했다. 제발 바라건대, 남들이 보기엔 화나서 그런 걸로 보이길.
“…명백히 우리의 실수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가능한 들어주겠네.”
아, 이 타이밍에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진짜 더럽게 재밌다. 반응해 주고 맞춰 주기까지 하는 상대─NPC─가 있으니까 더 재밌어.
대학생 시절 동기들과 합 맞춰 보는 기분이다.
“빌어먹을. 가능한 들어주겠다고? 네놈들 혀를 잘라 달라 하면 그럴 건가?”
“그건…….”
“그조차 못 할 거라면, 같잖은 사과는 집어치워.”
이제 다른 게임 어떻게 하지? 아냐, 다른 게임을 왜 생각해. ‘영웅전설’과 심해진주는 신인데.
그래도 이동 시스템이랑 유저 편의성만 패치해 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서는 네놈들의 턱을 뽑아 마을 어귀에 내걸고 싶지만, 그래서야 악마 새끼와 내가 다를 게 없겠지.”
“…으음.”
“꺼져라.”
하여간 신나는 마음으로 겉으로 내뱉었던 분노를 삼키는 척했다. 검도 거둬들였다.
‘이대로 물러나는 게 옳아?’
내린 판단을 두고 의문이 잠깐 들었으나, 그 또한 답을 금방 내렸다.
꼭 스토리를 의식하지 않아도 이게 맞다. 악마를 증오하는 거지, 악마처럼 굴고 싶진 않을 거니까.
솔직히 그래. 악마기사의 공식 설정 중 예민하고 날카롭다는 성미는, 팔에 깃든 악마가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나오는 거라 생각한다.
즉, 내가 언제 다시 악마가 되어 사람을 죽일지 모르니까, 처음부터 곁에 사람을 두지 않고자 사납게 군단 소리다.
그런데 그런 성격이 오해 한 번 당했다고 진심으로 빡쳐서 너 죽고 나 죽자를 찍을까? 악마도 아닌 인간을 대상으로?
열이야 많이 받겠지만, 그게 오해인 이상 꼭 죽이려 들지도 않을 거다. 인간을 죽이는 건, 악마나 할 짓이라는 사고가 콕 박혀 있을 테니까.
그게 내 해석이다.
“…….”
나는 검을 등에 지며 몸을 돌렸다. 퀘스트엔 사냥의 증거 회수가 포함되어 있으니, 그것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잠깐.”
허리를 숙여 뱀의 시체를 회수했다. 그에 맞춰 사제…… 그러니까 인퀴지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사과하겠다.”
시체를 가져가는 걸 두고 뭐라 하는 줄 알았는데, 사과여서 조금 놀랐다.
“난……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이겠지. 먼저 공격해서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하겠다.”
어…… 사실 신경 쓴 적도 없다. 설정만 보면 오해할 만한 건 맞지 않나.
오히려 지금껏 신전이랑 안 부딪친 게 용하다 싶다. 나중에 가면 신탁이 내려지니까 부딪치고 싶어도 못 부딪치겠지만.
“이 일에 대한 보상을 바란다면…….”
별개로 컨셉은 나와 의견과 다르다 하신다.
“필요 없다, 그깟 위선.”
그러니 따라야지 뭐.
“……!”
그런데 플레이어가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는데도 이걸 어떻게 스토리로 끌고 간다는 점이 좀 감탄스럽다.
물론 원래 목적은 협력을 넘어 협력자까지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음. 이건 좀 긴가민가하긴 하다. 이렇게 치고받고 싸우기까지 했는데 쉽게 동료가 되진 않을 것 같아서. 애초에 동료 시스템이 실존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너무 갑작스럽고 뜬금없잖아. 나야 다 좋아하는 즐겜러지만 보통 유저들은 이런 식의 예고없는 합류 안 좋아할걸.
“위선이 아니─.”
“자자, 인퀴지터. 진정하시지요.”
“아크메이지님……!”
그러고 보니 나 뱀 잡으면서 레벨도 오르지 않았나? 스킬 뭐 찍을지 고민이다.
공격스킬도 꽤 괜찮고, 이번 사건을 보니까 색적도 나쁘지 않고. 아니면 근접체술 트리를 찍어서 보정을 더하거나 방어력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보다, 우리도 그만 돌아가지요. 악마를 잡지 못해서 떠나지 않았을 뿐, 정화는 다한 상태가 아닙니까.”
헉, 맞다 정화.
“…알겠습니다.”
슬쩍 정화 진행도 창을 켜 보니 98%라고 되어 있었다. 엿들은 대화에서 나온 바대로 저 둘이 정화하며 다닌 듯하다.
이건 좀 부럽다. 악마기사 직업군은 정화하려면 불붙이는 수밖에 없거든.
나름 악마기사의 페널티였다. 덕분에 마기 침식 면역이었는데도 선호도가 좀 낮았지.
사제 직업군은 정화 스킬이 따로 있고, 다른 직업군은 신전으로부터 정화석 같은 걸 구매해 쓰면 되지만, 악마기사는 그게 아예 안 됐으니까.
“…….”
“…….”
…그래서 저 둘이 왜 날 뒤따라오는지 알려 줄 수 있는 분?
“일주일이나 고생하셨는데, 아쉬우시겠습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신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진짜 왜 따라오는 건데. 내가 전체맵 켜서 마을까지 직선길로 가고 있긴 하지만, NPC가 그걸 알 리는 없고.
사이도 서먹한데 다른 길로 가는 게 낫지 않아? 아…… 설마 스토리라서?
“내가, 꺼지라고 했을 텐데.”
혹시 몰라 위협을 해보기로 했다. NPC 반응이 워낙 사실적이어야지.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보지.”
허리춤의 칼자루를 움켜쥔 채 슬쩍 허리를 틀었다.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을 향해 돌 뻔했는데, 늦지 않게 안대 생각이 났다.
하마터면 안대 낀 눈으로 돌아보는 이상한 놈이 될 뻔했다.
“불쾌했다면 사과함세. 고의는 아니었네.”
돌아본 두 사람은 주위에 빛의 구를 띄워 둔 상태였다. 아까는 왜 안 켰나 싶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 크게 할 말 없다.
다만 눈에 띄는 건, 빛의 구 외에도 나침반처럼 생긴 게 하나 떠 있다는 건데…….
“길 안내 마법을 따라가는 중이었네. 아마 우리 두 사람이 마크한 곳이 같은 모양이야.”
네비게이션 기능이 마법으로 구현된 거였냐고. 졸지에 자의식 과잉맨 됐다.
“…….”
그래도 다행인 점은 쟤네가 날 따라오는 게 아니란 점이다. 직선으로 가서 길이 겹치는 게 고민이라면 내가 빠져 주면 되잖아.
어차피 저쪽 마을에서 해결해야 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마차 다시 탈 의향도 없다. 헤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스템이 헤어질 수 있게만 해준다면 말이다.
하여 나는 인상을 구기는 척하며 방향을 틀었다. 마차로 몇 시간이나 달려서 도착한 게 이곳이니, 시작마을로 돌아가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잠깐, 어딜 가는 거지?”
그러자 인퀴지터께서 내가 가는 길을 물었다. 대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굳이 답해 주지 않았다.
“이봐, 밤의 숲은 위험…….”
그런데 자존심 건드리는 말은 못 참지.
“네놈 따위에게나 그렇겠지. 네놈의 잣대를 내게 들이대지 마라.”
“…그래도 혼자 가는 건 좋지 않다.”
아니, 여기 이 숲에서 제일 위험한 걸 고르라면 난 님을 뽑을 것 같으니까, 혼자 가는 게 더 안전할걸.
물론 그런 속내를 그대로 말하면 캐붕이었으므로, 나는 사납게 일갈했다.
“네놈의 귀는 귀로써의 역할을 못하나보군.”
다행히 인퀴지터는 그 말을 듣고나서까지도 나를 붙잡진 않았다.
대체 무슨 이벤트였는지, 스토리였다면 무엇을 바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스템과 컨셉질의 싸움 중, 컨셉질의 판정승이었다. 아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