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러면 안 됐는데 (7)
퀘스트 종료가 아니라 갱신이었다.
“이걸 혼자 다 처치했단 말인가……?”
“이마저도 혼자 해내지 못할 수준임을 고백하는 것도 우습군. 자살 희망자였나?”
나는 반사적으로 용병의 감탄을 쳐내며─일일이 반응해 주니까 대사 칠 맛 났다─퀘스트를 슬쩍 확인했다.
「❖ 위험에 빠진 사람들
∎ 시신 수습 3 / 25
∎ 물건 회수 5 / ?」
뒤처리까지 퀘스트로 내주는 게임은 또 처음이었다.
그보다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숫자는 왜 카운트된 거지? 혹시 NPC가 한 것도 같이 쳐주는 건가?
그렇다면 뭐, 굳이 나설 필요 없겠다 싶다. 재수는 없지만 이런 잡일하는 건 가오가 안 살잖아.
나는 길가 가장자리의 나무에 몸을 기댔다. 상회가 보낸 용병이 뭐라 꿍시렁들 댔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악마들이 어째서…….”
“상행을 여럿 몰아 봤지만 서부에서 이런 일을 당하긴 처음이라고요.”
“야만인이면 차라리 이해라도 하지…….”
수습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게 있다면, 게임 진짜 각잡고 만들었는지 전투흔도 안 사라지게 해놨다는 것 정도?
맵에 이 정도로 데이터가 쌓이면 렉 걸리기 일쑤라, 시체까진 아니어도 전투흔─땅 울룩불룩해진 거나 무기 자국─은 없애기 마련인데, 얘넨 그런 거 하나 없더라.
차세대 게임업계는 아무래도 심해진주가 전부 먹고 갈 것 같다.
“어째서 도시 근방에서 이런 악마 떼가 나타난 거죠!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잖아요!”
“도시에 항의해야 합니다!”
이건 게임 외적인 부분이고, 내적으로 알게 된 것도 있다.
지금 이 습격이 너무 기형적이고 전례가 없다는 걸로 보아 이거 100% 뭔가 얽혀 있다. ‘영웅전설’의 스토리 틀이 ‘봉인을 깨고 나온 대악마: 사탄을 막기 위해 모인 모험가의 이야기’임을 감안하면 더욱 추측은 쉽다.
“시신이 안 보입니다…….”
“뭐?”
“전투 과정에서 훼손됬다고 해도 빈 사람이 너무 많아요.”
거기에 시체까지 부족하다? 무조건 악마추종자나, 흑마법사나…… 하여튼 관련된 놈들이 아무 생각 없이 벌인 테러일 거다.
해서 나중에 이번 일 관련 범인을 찾는 퀘스트가 따로 나올 거고.
안 봐도 훤하다. 20년 게이머 짬밥이면 궁예질은 기본이었다.
“일단, 도시로 돌아갑시다. 살고 봐야죠.”
“돈은 돈대로 받아먹은 주제에 악마 토벌도 제대로 안하다니…… 성주는 이 일에 대한 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나는 겨우 살아남은 이들의 불만을 들으며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이런 대화와 귀환 과정까지 보여 주니까 나름 진짜 판타지 세계를 경험해 보는 기분도 들고, 게임 참 재밌었다.
“…수고했다.”
그렇게 복귀하는 이들 호위하며 도시로 돌아가니. 썩은 표정의 노인 NPC가 담배를 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때문에 썩은 건 아니고, 피해가 막심해서 표정이 더러워진 듯하다.
“합당한 값이나 치르도록.”
그렇지만 인성 파탄 난 컨셉이라,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목숨 이만큼 살려 놨으면 된 거지, 그 이상 배려할 이유 있나.
“흥, 모험가 길드를 뒷배로 둔 놈한테 돈 떼먹을 일 없다! 기다려!”
여기서 마기해독제 얘기 꺼내면 캐붕이겠지? 좋아. 그건 알아서 챙겨 주리리라 믿자.
나는 피에 절은 채로 퀘스트 종료 알림을 들었다. BGM 크기 조절을 해둔 덕에 귀는 더이상 안 아팠다.
근데…… 이게 벌써 울리면 보상은 어떻게 되는 거지.
“사람을 붙여 줄 테니 여관에 가 있는 건 어떻겠소.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값을 치르리다.”
서순을 두고 눈살을 잠시 좁히니, 중년 NPC가 다가와 말을 붙였다. 컷 신도 아닌데 섬세히 구현된 표정에 새삼 감탄하다가, 그 내용에 바로 납득했다.
하긴, 메인 퀘스트도 아직 안 나왔는데 퀘스트가 끊길 리 없다. 퀘스트창에도 퀘스트가 갱신된 채로 한 줄 적혀 있었다.
“내 마음에 찰 정도가 되어야 할 거다.”
나는 그를 지그시 보다가 긍정의 뜻으로 꼈던 팔짱을 풀었다.
안 그래도 여관은 한 번 들러 볼 생각이었는데, 타이밍 참 좋지.
“물론이오.”
아니면 게임사에서도 이걸 의도한 걸지도 모르겠다. 더럽게 둔한 유저라도─예컨대 나 같은─이쯤 플레이하면, 몸에 묻은 오물이 자연적으로 지워지지 않는단 걸 깨달을 테니까.
“이봐, 거기! 이분 좀 안내해 드려라!”
게임 이렇게 만들었으면 샤워시설도 있겠지. 좋아, 샤워 기능은 또 어떻게 만들어 뒀는지 한번 보자. 이참에 여관 구경도 해보고.
아깐 입구까지만 가봐서 방 안쪽은 확인 못했는데. 안쪽은 어떠려나?
가슴이 기대로 두근두근했다.
* * *
아니, 두근두근은 취소다.
상하수도 시설은 있으나, 방마다 욕실이 딸려 있진 않아서 부득이하게 전체욕탕을 써야 했다. 심지어 온수는 나오지도 않았고.
비누 역시 추가금이었다. 그것도 엄청 비싼!
덕분에 게임사를 향한 충성심 일부를 거둬들였을까.
날이 밝자 상회의 NPC가 나를 찾아왔다. 두둑한 보상과 모험가 길드 사무관 이즈렌도 함께였다.
“우리 애들이 신세를 졌군.”
그들은 가장 먼저 값부터 치렀다.
30만 갈의 돈과 5통의 마기해독제, 지혈용 붕대 5뭉치, 진통제 등등. 혹시나 했더니 상단 사람들에게 베풀었던 게 배로 돌아왔다.
“일반적인 구조 의뢰에 조금 더 얹은 금액인데, 만족하시나요 모험가님?”
“충분하다.”
어휴, 일반적 구조 의뢰 비용이고 뭐고 덤이 이렇게 많으면 패악질 할 구석도 없다.
나는 인벤토리에 물건들을 쑤셔 넣었다. 아직 공간이 많아서 테트리스는 좀 나중에 해도 됐다.
“볼일이 더 남았나.”
그보다 NPC들 자리 안 비키는 게 어째 퀘스트의 냄새가 나는데.
“저는 아닌데…….”
“의뢰를 하나 더 맡기고 싶은데.”
“…예?”
게이머 짬밥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역시 퀘스트였다.
정작 의뢰 중개를 맡아 줄 사무관은 처음 듣는단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말해라.”
쿵.
여관 방 문을 닫고 그 바로 옆쪽 벽에(팔짱을 낀 채로) 기대섰다. 나가려던 참에 저들이 들어온 거라, 장비는 다 착용한 상태니 나름 가오는 있을 거다.
“싸가지 하곤…….”
“어르신…….”
지금의 내겐 연기 잘했단 소리와 동일한 말이므로 칭찬은 감사히 받았다.
“악마 퇴치다. 위치는 서북쪽 숲.”
“네? 어르신. 그곳은 이미 저희 길드에서 다른 모험가에게…….”
“당최 해결했다는 소식이 안 들려오니까 그런 거잖아!”
노인은 제 다리를 치며 바락바락 소리 질렀다. 정말이지 작은 체구에 비해 기력 하난 옹골진 양반이었다.
중년 NPC가 머리를 짚고, 사무관 이즈렌이 몸을 움츠렸다.
“서북쪽 숲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애들이 한둘인 줄 알아? 애초에 너희 모험가 길드 놈들이 제대로 된 놈을 보냈으면 나도 안 이래!”
“그건…….”
“됐어! 저놈 실력을 본 이상 난 저놈 보낼 거다!”
성질과 별개로 사람은 꽤나 호인인 듯싶다. 의뢰 내용이 죄다 남들을 위한 것인 걸 보면.
“그래서, 서북쪽 숲의 악마를 퇴치하면 되는 건가?”
그런 캐릭터, 싫어하지 않는다. 예의 있게 굴 생각까지야 없지마는.
“그래.”
“하아…… 의지가 강경하시니, 하면 바로 의뢰 중개에 들어가겠습니다. 대신 먼저 출발한 모험가에겐…….”
“실력이 없어서 못 받는 걸 어쩌라고?”
“위약금은 주셔야죠.”
“흥.”
사무관과 회주가 아옹다옹하는 사이, 중년 NPC가 낡고 지친 얼굴로 제게 말을 걸어왔다.
“크흠…… 상황을 설명해 주겠네.”
그는 옛저녁에 노인의 고집을 꺾기를 포기한 모양이다. 중년 NPC는 의뢰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 주었다. 크게 귀 기울일 만한 내용은 없었다.
서북쪽 숲에서 악마가 나타났고, 놈이 좀 교활해서 아직까지도 안 잡혔다. 그걸 잡아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숲에 오갈 수 있도록 해달라. 요약하면 그게 끝이었으니까.
특이사항이 있다면, 앞선 하수도 퀘처럼 원작에서도 있었던 의뢰란 점?
긴가민가하긴 한데 아마 이거 다음에 본격적인 메인 퀘스트가 출현할 거다. 개편했다고 하니까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당장 출발해 달라고까진 안 하겠소. 그렇지만 최대한 빨리 잡아 주면 좋을 거요.”
“보수는.”
“그놈 목에 달아 둔 금액이 70만 갈이오.”
“그래서.”
“…개인 고용인 만큼 잡아만 주면 20만 갈 더 얹어 드리지.”
아니, 난 그냥 그래서 70만 갈이 보수냐고 물어본 거였는데.
이렇게 가격을 더 올릴 수 있다고? 생활스킬에 있던 ‘협상’ 아직 안 찍었는데? 다른 거 찍느라 미뤄 뒀는데?
설마 스킬 안 찍고도 가능한 거야?
“…30만 갈.”
게임 시스템을 고찰하느라 잠깐 침묵 좀 했다. 그러자 가격이 더 올라갔다.
“대신 잡아왔을 때만이오. 잡지 못하면 지급할 수 없소.”
“…내가 잡지 못할 일 따윈 없으니, 돈만 준비해 두면 되겠군.”
엄마. 나는 내가 가격 협상을 잘 못한다고 여겨 왔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아니면 컨셉이 문제인 걸까? 엄마, 나 현실에서 일할 때도 이렇게 컨셉 잡고 일할까?
“하면 현상금 70만 갈에, 개인 고용비 30만 갈. 총 100만 갈로 계약을 체결하겠습니다. 선금은 따로 없으며, 기한은 정해져 있지 않으나 목적물을 가져왔을 때만 보수가 지급됩니다. 중개비는 언제나처럼 5%입니다.”
그사이 사무관은 노인네와 결판을 낸 모양이다. 그녀의 펜이 빠르게 움직이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 서북쪽 숲에 도사린 위험
∎ 서북쪽 숲까지 이동」
그리고 제가 그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퀘스트가 새로 추가되었다.
“그럼 바로 가지.”
“잠깐, 바로 간단 말이오? 하루 정도는 쉬고 가도─.”
“악마를 두고 시간을 끌 생각 없다.”
이번 퀘스트 하나만 깨면 소지금이 2배로 부는데, 쉬긴 뭘 쉬어.
나는 싱글벙글거리는 속내와 다르게 목소리만큼은 북극의 얼음에 빙의한 양 굴었다. 노인과 중년 NPC, 사무관이 입을 뻐끔뻐끔거리다가 이내 진중한 눈빛을 했다.
“경비는 줘야겠지.”
“…뭐어, 이건 재량으로 주시는 용돈이니 길드에서도 터치하지 않습니다.”
노인 NPC가 그리 말하며 품에서 돈을 더 꺼냈다. 반사적으로 받아든 돈주머니가 꽤나 묵직했다. 5만 갈이었다.
“서북쪽 숲은 꽤 멀다. 서북쪽 숲으로 가는 마차를 구해야 할 거야.”
마차라. 도시간 기본 이동은 마차로 하나 보지?
“말은.”
“말을 빌려가고 싶다면 빌려주지. 그렇지만 그건 값을 내야 할 거다. 말은 귀하니까.”
노인은 그리 말하곤 조금의 계산 끝에 요구값을 제시했다.
“실력을 아느니만큼 50만 갈까지는 내려 줄 수 있겠군.”
순간 눈 튀어나올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지금 뭐라고? 50만 갈? 하수도 청소 대금이 40만 갈이고 지금 해결한 퀘스트 보상이 30만 갈이었는데?
“사정이 급한 건 우리들이니만큼, 일을 완료하고 말을 성히 데려온다면 돈은 다시 돌려주겠소. 다만, 말이 죽거나 다칠 경우 위약금은 받아낼 거요. 200만 갈 정도.”
아, 설마. 말도 공격받는 시스템인가? 고증에 맞춰 말값도 비싸고? 나 아까 말 타고 돌진했는데, 하마터면 망할 뻔했네.
뒤통수가 조금 얼얼해진 기분이다. 보통 오픈월드 게임에서 이동 수단에 이런 제한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는 까닭이다.
아니면, 나중에 따로 줄 셈인가. 왠지 아닐 것 같다는 직감이 들지마는.
“…마차는.”
허세킹이어도 현실을 모르진 않는다는 느낌이니까, 이건 양보해 주기로 했다. 조금 패배한 기분이었다.
“마차야 마차 대여소에 가면 있지요.”
사무관이 대답하고, 중년 NPC가 여관 아래층으로 소리쳤다. “심부름꾼!” 곧 양뺨과 코에 주근깨가 난 소년이 달려왔다.
“마차 대여소에 갈 거라면 이 애한테 안내를 맡기면 되오. 직접 걸음할 의향 없다면 저 애만 보내도 되고.”
“바로 간다 했을 텐데.”
바로 갈까, 잡화점 같은 거 들렀다 갈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바로 가보기로 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시스템인지 알고 싶었다.
“신이 함께하길 빌어 주지, 싸가지.”
“…부디 신이 그대와 함께하길.”
“무운을 빕니다, 모험가님.”
나는 세 NPC의 배웅을 등지며 바로 여관을 나섰다. 미리 차려입길 잘했다. 덕분에 짐 주섬주섬 챙기는 꼴 안 보여도 됐다.
“이쪽으로 오세요, 나리.”
그사이, 소년은 쾌활한 걸음으로 여관을 나섰다. 그를 따라 발을 옮길 적이면 등에 달린 투헨더가 절그럭절그럭 소리를 낸다.
“나리, 나리는 모험가신 거죠?”
소년은 종종걸음으로 앞서나가면서 힐끗힐끗 날 돌아보았다. 흔들리는 곱슬머리가 쓰다듬고 싶어질 만큼 사랑스러웠다.
“…아니.”
별개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글쎄. 내가, 이 캐릭터가 모험가냐면 그건 좀 애매하지 않으려나.
물론 소유한 모험가 패나 돌아가는 상황 보니까 모험가 길드 소속 같긴 한데…… 그건 직업이지 정체성이라고 보기엔 좀?
설정상 돈 문제로 모험가를 하는 거지, 정말 본인을 모험가라 여길 것 같진 않다. 따지고 보면 얘는 복수자, 방랑가 그쪽이 좀 더 정체성에 부합하지.
“난 모험가가 아니다.”
그러니 일단 부정하자.
“…아, 아니시구나…….”
너무 단호박으로 대답했나 보다. 기대감으로 물들었던 아이의 뺨이 축 쳐졌다.
계속 말하는 거지만, NPC 더럽게 잘 만들었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한다. 궁금한 거라도 있나?”
“……!”
슬쩍 덧붙인 말에 아이가 다시 화색을 했다. 젖살 붙은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저, 그럼, 혹시 바다 보신 적 있으세요?”
아, 내가 과몰입은 해도 NPC에게 정 주는 편은 아닌데. 이 게임에선 진짜 정 안 주는 게 더 어렵겠다.
나중에 가서 리셋 어떻게 하지.
“있다.”
잘하겠지. 벌써 다른 직업, 다른 컨셉 들고 왔을 때 달라질 반응이 궁금하다. 2회차는 좀 더 유쾌하고 교류 좋아하는 성격의 투사 직업으로 해야지.
“바다는 어떻게 생겼어요?”
“…네 눈처럼 파랗고, 네 머리카락처럼 구불구불거리는 물결로 가득하다.”
“제 눈색이랑 바다랑 비슷해요?”
“그래.”
“우와.”
나는 재잘거리는 소년을 두고 몇 가지 대답을 내놓으며 대여소로 향했다. 저 소년이 일개 NPC란 걸 잠시 잊을 만큼 대화는 부드럽고 활발하게 이어졌다.
“잠시만요! 제가 서북쪽으로 가는 분 중 제일 마차 잘 모는 분을 알아요!”
해서 그런 직감 하나가 불쑥 들었다.
아, 이 게임. 이동 수단을 안 주더라도 할 만하겠다. NPC들과의 상호작용이 이렇게 자유롭고 다채로워서야, 그 재미 하나만으로도 망하려야 망할 수 없다. 욕이야 좀 먹긴 하겠지만서도.
“…아, 미친진주 놈들.”
주변에 소리가 안 나도록 입술만 달싹였다. 속절없는 일이었다. 내 아픈 손가락이 이렇게나 아름다운 게임이 되어서 돌아왔는데,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없다.
“여기, 이분이에요!”
“서북쪽 숲에 가신다 들었습니다마는…… 맞으십니까, 나으리?”
“…맞다.”
“하면 잘 오셨습니다요. 마침 출발하려던 참인데. 이번 마차를 놓치셨다면 사흘은 더 기다렸어야 했을 겁니다요.”
…그렇지만 이건 좀 그렇지 않아? 이동 수단을 이렇게 만드는 오픈월드 게임이 어디 있어.
난 시스템만 확인하고 마을 좀 둘러보다가 출발하고 싶었단 말이다……!
“대금은 1만 갈입니다.”
잡화점이나, 뭐 그런 걸 돌아다니면서 정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마부의 ‘사흘’ 발언이 너무 컸으므로, 나는 결국 값을 치르고 마차에 탑승했다.
샤워 문제로 흔들리던 충성심이 또 한 번 깎여 나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