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러면 안 됐는데 (2)
“이리나!”
「시작은 아버지가 온 줄 알고 달려 나간 여동생이었다.
생일 선물로 사 준 흰 원피스가 붉게 물들었다. 그 중심에는 빛조차 반사하지 않는 까만 칼날이 있었다.」
“안 돼!”
「그 다음은 수석기사인 형이었다. 이리나의 몸에 꽂힌 칼을 보고 뛰쳐나간 형은, 검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한 채로 같은 칼날에 스러졌다.
소리치던 목소리가 끊기고, 그 몸이 기우뚱하며 널브러지던 장면이 선명하다.」
“아서!”
「형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이 개자식이!”
「형 다음 기수의 수석을 차지한 누나는 벽에 기대 놨던 메이스를 쥐고 달려 나갔다. 얼어붙은 나를 지나치던 누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피가, 선혈이, 생명 그 자체를 증거하는 붉은 물이 삼켜 버려서.」
“도망가, 어서!”
「어머니가 무어라 외쳤다. 그 손엔 아버지의 검이 들려 있었던가? 아니면 식칼이 들려 있었던가.」
“나도 기사야!”
“안 돼, 너라도 도망가!”
“무슨 일이야!”
「아버지도, 아버지도 오셨던 것 같은데.」
“어서 도망가, ──!”
“너라도 몸을 피하거라!”
「그 뒤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검을 쥐었고, 세상이 붉어졌고, 다시 희어졌고, 다시 검었다가, 희미한 달빛 하나로 밝아져서.」
[좋은 그릇이구나.]
「내 오른팔에 꽂힌 까만 검날이, 그대로 살갗 아래로 꾸물, 꾸물, 꾸물…….」
[너는 좋은……가 되어 줄 거야.]
「아아, 이리 바라건데.
악성을 이겨 낼 수 있는 영혼이, 악 앞에 무너지지 않을 강인한 존재가, 마에게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부디…….
.
.
.
…내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허억!”
마지막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시야가 밝아지고,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내리십쇼!”
뒤이어 귀를 파고드는 건 시장통에 들어온 듯한 왁자지껄한 소란과, 코앞에서 우렁차게 울리는 외침이었다.
「타타라: 교역소」
때마침 퉁, 하고 둔중한 종소리 따위가 귀에 울리며 제정신을 일깨웠다.
바야흐로 ‘영웅전설’의 서막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오프닝이 준 여운이 너무 압도적이었던 까닭이다.
요즘 게임은 영상을 이렇게…… 단순히 본다의 감각을 넘어서 회상하는 느낌까지 낼 수 있는 걸까? 너무 생생한 나머지 꼭 그때의 감정마저 주입당한 기분이다.
나는 괜히 뒷목을 쓸었다. 속된 말은 안 쓰자는 주의지만, 정말, 정말 개쩔었다.
“이봐, 너.”
추억과 좋아진 기술력의 뒷맛에 조금 잠겨 있었을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오프닝 영상도 끝났겠다, 아까 지역 이름을 알려 주는 창도 떴겠다, 게임이 시작되었을 터였다.
“안 내릴 거냐?”
온갖 게임을 섭렵하다보면 삐딱한 말투는 애교나 다름없어진다. 그게 한 번 보고 말 존재라면 더 그렇다.
해서 저는 불쾌함을 느끼는 대신 재빠르게 눈을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짐마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는 사람들과 아직 마차 위에 앉아 있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꼬나보는 한 사람.
그 순간, 그때 그 시절의 향수가 차올랐다. 2D에서 3D로 바뀌었을 뿐, 원작의 악마기사 튜토리얼과 동일한 장면이었던 탓이다.
튜토리얼부터 이렇게 추억을 자극한다고? 나 컨셉에 몰입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울컥울컥하는데?
나는 억지로라도 생각을 돌렸다. 과몰입은 못 할지언정 울 수는 없었다.
물론 눈물이 구현되어 있을 리 없지만! 반영되지 않는 걸 알아도 표정 관리는 해야겠다 이 소리다.
탁.
해서 저는 마차에서 성의 없게 내렸다.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미, 란 공식 설정 및 그를 기반으로 짠 컨셉 따위를 의식한 건 아니었다.
그것도 있긴 하지만, 그보단 대답할 것을 알려 주는 창도 안 뜨겠다 딱히 반응 보여야 할 구간도 아니겠다 하며 생각 없이 한 행동에 가까웠다.
“재수 없는 새끼.”
한데 내 행동을 본 마차 주인─아마도?─이 혀를 차며 험담했다. 순간 나는 그가 진짜 사람인가 했다.
NPC와의 상호작용이 엄청나다고 베타테스터들이 하나같이 떠들더만, 빈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격을 더 줘야…….”
“그러면 이윤이…….”
“반란군이…….”
“악마가…….”
하나 내린 직후, 펼쳐진 교역소의 정경을 보며 나는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심해진주들 드디어 외계인 잡아먹었나?”
개발진 놈들이 사고를 제대로 쳤다.
“그래픽 돌았어?”
바퀴 자국이 남은 흙바닥이나 건물 외벽의 텍스쳐, 여러가지 광원 효과, 그림자 효과…… 그밖에 피부에 닿는 솔바람의 간지러움이나 허공을 떠도는 먼지, 코를 찌르는 온갖 냄새까지.
그뿐인가? 이 장소를 꽉 채운 NPC들을 면면히 살피면 얼굴이나 옷 하나 겹치는 이들이 없다.
트레일러 때도 장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실물이 더할 줄은 몰랐다. 이건 진짜 리얼 가상‘현실’이었다!
“오브젝트가 이렇게 많은데 렉이랑 프레임 드랍도 하나 없다고……? 미친 거 아냐?”
다운받을 때만 해도 용량이 뭐 이리 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반대다. 최적화를 어떻게 했으면 이 그래픽을 그 정도 용량으로 해낸 거지? 진짜 외계인 갈았나?
“미친, 진짜 미친…….”
심해진주는 진짜 개자식들이다. 사람을 감동의 물결에 빠트려 죽이려 들다니. 이건 합법이고 자시고 고의적 살인이 분명하다고.
“후.”
나는 밀물처럼 쏟아지는 감동을 두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진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길 막지 말고 비켜!”
다행스럽게도, 감격에 허우적대는 나를 누군가가 구해 주었다. 지나가던 NPC였다.
나는 그것을 신호탄 삼아 슬슬 감정을 갈무리했다.
이미 뱉어 버린 말과 행동은 주워 담을 수 없으나, 이 이상은 컨셉충의 자존심이 용납 못 한다. 이제 정신 차리고 게임을 즐길 때가 됐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자기 암시를 걸었다. 캐릭터에 이입할 때 꼭 하는 습관이었다.
자, 지금부터 나는 가족을 죽인 악마가 팔에 깃들어 버린 악마기사다.
언제 팔의 악마가 나를 잡아먹을지 몰라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고, 그게 주변인들에게 어떤 화를 불러올지 몰라 사람을 억지로 멀리하는. 날카롭고 예민한 성질을 기반으로 연약함을 숨기는 외강내유형 싸가지 바가지다!
트레일러 영상과 풀린 정보들, 공식 설정 등을 토대로 짠 설정이 하나의 가면처럼 내 위에 덧씌워졌다.
컨셉질의 시작이었다.
스릉
나는 표정을 죽이며─물론 게임 캐릭터의 표정은 변하지 않을 거다. 그냥 수월한 몰입을 위한 거지─들고 있던 검을 등에 메었다.
길이가 너무 길어서 되나 싶었는데, 몸이 알아서 움직이며 칼집에 넣어 주었다.
하면 이제 뭘 해야 할까. 보통은 퀘스트 표시 뜨는 사람을 찾아가면 되는데, 어째 주변을 살펴봐도 보이는 게 없다.
미니맵을 살피자니 해당 기능 자체가 없고, 퀘스트창은 불러내 보면 텅텅 비어 있고.
그렇다면 스토리 진행 NPC가 알아서 찾아오나?
“아앗, 모험가님!”
그때 누군가가 내게 탁탁 다가왔다. 내 명치까지 오는 작은 아이였다.
“저…… 모험가, ‘악마기사’ 님 맞으…… 신가요?”
아이가 입에 담은 이름은 내 직업군 명칭이자, 동시에 내가 지은 닉네임이 맞았으니.
그 사건 이후 이름을 버렸다는 양념을 더하기 위해 일부러 저렇게 설정했다. 그러니 저건 나를 부른 게 맞을 거다.
별개로 나는 잠깐 창이 뜰 걸 기다렸다. 보통 선택지를 주거나, 자유 대화형이어도 진행에 필요한 필요 문구 내지 키워드 정도는 제시해 주는 까닭이다.
“아, 아니신가요?”
그런데 안 뜨더라.
나는 그 부분에 약간의 당황을 느끼면서도 일단 긍정해 주기로 했다. 아무리 봐도 퀘스트 진행인데 놓칠 순 없었다.
“…아니, 내가 맞다.”
컨셉을 고려해 퍽 싸늘히 답하니, 아이의 몸이 움찔 떨렸다. 꼭 제 눈치를 보는 것처럼.
그게 너무 현실 사람 같아, 순간적으로 겁먹지 말라고 달래 줄 뻔도 했다.
“그, 그러면 따라오세요. 모험가 길드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와, 인물 진짜 잘 만들었네. 나는 그런 감탄을 하며 총총 나아가는 어린 NPC를 뒤따랐다.
터벅터벅.
내 구두 굽 소리가 마른 흙바닥 위를 걸었다.
그보다 모험가 길드는 또 어디에 있으려나.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슬쩍 제 자신을 확인해 보았다. 커스텀이 잘 반영됐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디럭스 에디션으로 받고 캐릭터 커스텀때 설정한 의장, 예약 구매 특전으로 받은 파괴의 트루 투헨더, 허리와 허벅지엔 인벤토리용 레그백.
시야가 너무 멀쩡해서 안대를 쓰고 있는 건 맞나 싶었는데, 만져 보니 확실히 쓰고 있었다. 시야 끄트머리에 보이는 머리색도 반반인 게 외형 설정도 잘 반영된 듯싶고.
완벽했다.
“이곳이에요!”
「타타라: 모험가 길드」
한데 제가 저 자신을 확인하는 데 얼마나 걸렸다고, 모험가 길드에 다다랐다.
지나오면서 본 걸 생각하면 도시를 작게 만든 것 같진 않고, 그냥 교역소랑 모험가 길드가 붙어 있는 듯하다.
“이 정도가 우리한테 맞지 않을까?”
“소식 들었어? 파니네 오빠가 상단 호위하러 갔다가 상단이랑 같이 사라졌대.”
“요즘 실종자가 는 것 같아…….”
모험가 길드 내부는 굉장히 소란스럽고 복잡했다. 특히 게시판에 사람들이 많이들 모여 있었는데 대충 눈치껏 파악하면 임무 게시판이 아닌가 싶다.
“사무관님! 모험가님을 데려왔어요!”
“아, 도착하셨니?”
여하튼 아이가 나를 데려다 놓은 곳은 한쪽 창구였다. 사람을 막 응대하던 이가 저를 보고 반색했다.
“고마워. 그만 일 보러 가 보렴.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타타라의 모험가 길드 소속 사무관, 이즈렌입니다.”
사무관은 제게 가볍게 목례하곤, 아이와 자신이 처리하던 이를 돌려보냈다.
그녀에게 붙어 있던 남은 인원을 다른 창구에 넘겨 버리는 솜씨가 한두 번 해본 사람의 것이 아니다.
“악마기사님, 맞으시지요?”
“그래.”
“특징이 확실하셔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네요.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모험가 패로 신분을 증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요즘 모험가 사칭이 많아, 부득이하게도 증명 절차를 필수로 밟게 되었거든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창이 내 시야 한쪽을 가렸다.
「인벤토리│가방에 손을 넣는 것으로 인벤토리를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꺼낼 물건을 인지하고 움켜쥐세요.」
기본 시스템을 알려 주는 튜토리얼이었다.
나는 안내를 따라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관련 UI가 뜨며 내 시야 한구석을 차지했다.
각 아이템마다 일정 개수의 칸을 차지하는 테트리스형 인벤토리였다. 위쪽에 무게가 표기되는 걸 보면 부피뿐 아니라 무게 시스템도 채택한 듯하다.
스윽
슬롯형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게임이 이렇게나 잘 빠진 게 어딘가 싶어서. 나는 아이템 중 모험가 패를 찾아 꺼냈다.
“확인했습니다.”
모험가 패를 건네받은 사무관이 그것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확인하더니 곧 다시 돌려주었다.
“타타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모험가님.”
내가 정말 ‘영웅전설’을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드는 환대였다.
“먼길을 오신 건 알지만, 바로 의뢰로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의뢰주분께서 굉장히 급하신 상태라서요.”
음, 난 저기 게시판이나 여기 이용법을 마저 알려 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좀 나중인 모양이다. 뭐, 원작이랑 시스템 자체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아서 감이야 잘 잡히지만.
“안내해라.”
그리고 이것도 나름의 튜토리얼일 게 분명한지라. 나는 바로 수긍했다. 사무관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안내했다.
이번에도 그리 먼 곳은 아니었다.
메이블 상회. 나는 사무관을 따라 해당 간판을 단 건물로 들어갔다. 상업조합에 걸맞게 안쪽엔 상인 여럿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험가 길드 내부처럼 무척이나 시끄럽지만, 그래픽이 너무 좋아서 별 신경도 안 쓰인다. 나는 돌아가려는 눈동자를 겨우 붙잡은 채 사무관의 등을 졸졸 따랐다.
“회주님, 요청하신 모험가님께서 도착했습니다.”
“들어와!”
곧 들어가게 된 곳은 입구부터 으리으리해 보이는 방이라. 회주라 부른 걸 고려하면 아무래도 상회의 주인이 있는 방이 아닌가 싶다.
“애꾸?”
근데 왜 보자마자 시비야.
“혓바닥에 예의가 없군.”
나는 방 안쪽 NPC들을 확인하며 일갈했다. 특별히 반응을 바란 건 아니고, 그냥 컨셉에 맞는 가벼운 대사였다.
아무렴,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플레이어의 모든 말에 반응하도록 설계하진 못한다. 경우의 수도 너무 많고 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까닭이다.
해서 나는 당연히 NPC가 대응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다음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게 애꾸라 지껄였던 대상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마치 내 대사에 반응한 것처럼.
“헹! 듣던 것보다 더 지랄 맞은 놈이로군.”
“고정하시지요, 회주 어르신.”
“모, 모험가님도 진정하세요.”
심지어 얼굴만 구긴 게 아니라 말까지 했다. 표적이 되지 않은 다른 NPC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정말 실제 사람인 양 굴었다.
조금 미친 것 같다. 심해진주, 정말 외계인 갈아서 게임 만들었나?
“네가 그 악마기사냐?”
“그럼, 이 내가 누구일 거라 생각하는 거지?”
혹시나 싶어 ‘어’라든가 ‘맞다’, ‘그래’ 같은 긍정 키워드를 빼고 대답해 보았다.
게임 내에서 필수 키워드 지정을 안 해주는 것도 그렇고, 방금 전 반응도 그렇고. 정말 플레이어가 어떻게 말하든 반응할 수 있게 설계했나 궁금해서였다.
“그래, 네놈처럼 불길한 낯짝이 둘이나 있진 않겠지. 사무관이 아닌 놈을 데려왔을 리도 없고.”
놀랍게도, 대화가 이어졌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내 싸가지 대사를 제대로 알아들은 것이다!
“회주니임…….”
“어르신, 제발…….”
미친, 뭐냐고!
나는 튀어나오려는 흥분을 강제로 억누르며 싸한 표정으로 방 안의 이들을 노려보았다. 말이 거친 노인─아마 회주겠지─과, 그를 달래는 중늙은이 하나, 나와 함께 온 사무관.
수는 적었지만 그거야 아무래도 좋다. 이런 식으로 세 NPC가 각자 적절한 반응을 연계할 수 있는 시점에서 이 게임은 갓겜이었다.
“모험가님도 조금만 말을 순하게 해주세요…….”
내가 왜? 절대 싫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나오는데 컨셉에 몰입 안 하면 대체 게임 왜 해. 그건 컨셉충이 아니지.
“설득의 대상이 틀렸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모험가니임…….”
“저, 저 건방진……!”
와, 진짜 미쳤나 봐. 이걸 이렇게 다 입력해 뒀다고. 아니, 입력한 게 아니라 AI가 알아서 대사를 짜게 프로그래밍한 쪽이겠지? 그런데 얘네가 뭐라고 이 정도 AI를 줬냐.
거의 뭐, 옛날 게임으로 따지면 마을 주민1에게도 성대 달아 준 격이잖아. 너무 좋아.
“흥, 실력이 안 좋기만 해봐…… 추천해 준 놈을 콱…….”
“어르신, 듣습니다.”
“들으라 해! 저놈도 대놓고 말하잖아!”
하…… 이럴 줄 알았으면 갓진주 주식 사 둘걸.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주식이지만, 게임 퀄리티 보니까 거기서 더 올라도 이상할 게 없는데. 아쉬운 일이었다.
“크흠! 그보다! 어서 의뢰를 시작하지요! 그것 때문에 모험가님을 이 도시까지 부르신 것 아닙니까!”
사무관이 서둘러 장내 분위기를 정리했다. 컨셉에 맞춰 좀더 인성질을 해보고 싶었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놀랐기에 따라 주기로 했다.
나는 노인 NPC를 꼬나보았다.
“일단, 의뢰 내용은 알고 오셨지요?”
사무관 이즈렌이 제게 물었다. 의미없는 물음이었다. 내가 의뢰 때문에 이 도시에 왔다는 사실마저 지금 알았는데, 의뢰 내용 따위 알 리가.
“들은 바 없다.”
“뭐? 이런…….”
쌀쌀맞은 어조로 부정했다. 그러자 노인이 욕설을 삼켰다. 중늙은이가 입을 막지 않았으면 아마 끝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네? 길드에서 안 알려 드렸나요? 아니, 그보다 모르시면서 자원하신 거예요?”
이즈렌이 깜짝 놀라 물었지만, 별로 할 말 없었다.
뭐 누구는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까. 게임에 접속했는데 대뜸 일거리를 던져 준 건 진주 놈들이다.
아, 물론 저는 불만 없습니다 갓진주 님. 이런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할 뿐입니다. 충성충성.
“그래서? 같잖은 벌레들이 날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가?”
어쨌거나 좋은 컨셉충은 이런 것마저 기회로 삼는 법.
나는 자존심만 더럽게 높은 싸가지를 연기하며 노인과 눈싸움을 이어 나갔다.
“저, 저…….”
그러자 늙은 NPC는 무어라 꿍얼거렸다. 아마 내 욕 절반, 추천한 놈 욕 절반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아까 들은 바론, 누구한테 추천받아서 날 고용한 모양이니까.
이쯤 되면 프로그래머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절 먼저 하고 두 번째로 당신은 신이냐고 좀 물어보게.
아무렴 신이 아니고서야 한낱 NPC를 이렇게까지 사람처럼 만들 수 없다. 갓진주는 진짜 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