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러면 안 됐는데 (1)
나는 컨셉충 즐겜러다.
직업에 맞춰 컨셉을 짜고, 짠 컨셉에 맞춰 즐겁게 플레이하는 게이머란 소리다.
채팅? 당연히 컨셉에 맞춰 쳤다. 가상현실 게임이 득세하며 텍스트가 아닌 육성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움에 지는 컨셉충은 진짜 컨셉충이 아니다.
“더 지껄여 봐라. 네놈이 내 분노를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해지니까.”
때문에 난 평소처럼 신작 게임에서도 컨셉─악마가 팔에 깃든 기사─에 충실한 과몰입 즐겜러가 되었고…….
“로그아웃.”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 로그아웃.”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
지금에 이르러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망했다. 아니, X됐다.
* * *
즐겜러든 빡겜러든, 하다못해 라이트 게이머든 간에. 모든 게이머에겐 인생 게임이 하나쯤 있는 법이다. 유독 기억에 많이 남고, 미련도 남는 그런 게임.
내게 있어선 ‘영웅전설’이 그러했다.
내 십대 시절 나온 그 게임은, 짧게 설명하자면 PC전용 국산 MMORPG였다. 초창기엔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초기 개발진이 대거 이직한 후 망해 버린 비운의 게임이기도 하다.
망해 버린 주요 원인으로는 2주년 기념 패치 때 판매 개시한 사행성 과금아이템과 밸런스 붕괴를 일으킨 신규 직업, 뜬금없는 설정 추가로 앞뒤가 안 맞게 된 세계관, 망한 운영 등이 있겠으나…… 별로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20년은 족히 갈 거라던 게임이 5년만에 섭종(서버종료)한 것도, 내가 섭종까지 함께하며 20대를 맞이한 것도 역시 신경 쓸 필요 없다.
‘영웅전설’에서 주목할 건 딱 하나.
자신들이 이직한 뒤 게임이 폭망하는 걸 전부 지켜봐야 했던 초창기 개발진들의 한이었다.
“친구야, 나 가슴이 너무 떨리는데 어떡하냐.”
“어, 수고.”
“오픈까지 30분밖에 안 남았단 게 믿기지 않아.”
한이 어찌나 깊었던지. 새로운 게임사: ‘심해진주’를 만들어 온갖 히트작을 내는 것으로 업계에 자리매김했던 초기 개발진들은 기어코 ‘영웅전설’ 리메이크 소식을 들고 왔다.
아무도 그들에게 요구하지 않았는데 굳이 저작권을 사 와서, 굳이 리메이크하겠노라 밝힌 거다.
“나 사실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어, 사실 너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곧 깨어날 예정이죠.”
“진짜 꿈인가……?”
“…농담이야. 진짜겠냐고.”
“아니, 그치만 너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심지어 그냥 하는 것도 아니다. 진짜 칼을 갈았다는 듯, 그들은 각잡고 리메이크했다.
출시 형태를 온라인이 아닌 패키지로, 장르는 벨스크롤 액션 게임이 아닌 오픈 월드 ARPG로.
플랫폼마저 시대에 맞게 변경했다. PC가 아니라 가상현실 전용 캡슐로 플레이할 수 있단 소리다. 게임도 그것에 맞춰 가상현실 게임으로 업그레이드되었고.
이쯤 되면 망겜에 미련이 남은 게이머의 망상이라 해도 너무 과하다.
“차라리 꿈이라고 하면 믿길 것 같아…….”
내가 오픈 30분 전이 되도록 현실감을 못 찾은 채 꿈 타령을 하는 이유도 딱 이것 때문이었다.
‘영웅전설’은 내 인생 첫 게임이었고, 내가 게임에 빠져들게 된 원인이며, 내 진로에도 작게나마 영향을 끼쳤다.
그런 내 인생 망겜이 돌아온다? 근데 그냥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나 화려한 갓겜이 돼서 돌아온다?
솔직히 감격해서 기절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이 너무 넘쳐 난다.
“15년 전 게임에 붙잡혀 있는 너도 참 너다…….”
“네가 게임을 안 해봐서 그렇다고…… 너도 하면 내 심정 알았을 거라고오…….”
하, 수능 결과 발표날에도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는데. 내 작품이 해외 수출까지 결정됐을 때도 이런 심정은 안 느꼈는데.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나는 줄어드는 시간을 보며 가슴을 졸였다.
“이러다 게임이 기대보다 못 미치면 어쩌려고.”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죽는다.”
물론 이 정도까지 기대하면 외려 실망할 확률이 크다는 건 안다. 제가 해본 게임이 몇 개고 당해 본 게임이 몇 갠데 모를 리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트레일러 반만 해줘도 난 행복할 거라고……!”
“어휴.”
“으아악! 아직도 2분밖에 안 지났어! 28분 언제 흐르지!”
“나도 몰라 이 자식아.”
제 울부짖음에 놀러 온 친구 놈이 얼굴을 구겼다. 공감 한 번 해주지 않는 게, 게임 같은 건 손도 안 대는 갓반인다웠다.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그럼 친구지 내가 뭐냐? 됐고, 그럴 거면…… 거 뭐냐, 너 잘하는 그거나 하지?”
“뭐?”
“거, 뭐지. 컨셉?”
“그건 이미 짰지.”
“미친, 벌써 짰냐.”
아니, 그럼 내가 그동안 놀고만 있었을까. 컨셉이란 게 하루만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물론 누군가는 단시간에 짜내서 컨셉질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아니었다. 연극 영화과 출신이어서 그런가, 캐릭터 연구는 내게 정말 중요했다.
“어떻게 했는데?”
“어, 일단 외형은 이렇게.”
설정 짠다고 미리 이미지를 그려 놔서 다행이지.
나는 소파에 굴러다니던 전자 노트를 집었다. 7년 된 전자 노트가 느릿하게 화면을 띄웠다.
“와, 씨. 이건 뭐냐…….”
해서 드러난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정수리를 기점으로 왼쪽은 은발, 오른쪽은 흑발.
피부는 핏기가 없다 못해 시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하얗게. 거의 회백색처럼 보이는 빛깔로.
눈은 회색(좌) & 회적색(우) 오드아이이되 하이라이트를 제거해서 동태눈깔처럼 죽여 버렸다. 짙은 다크서클은 덤이었다.
“미쳤나 봐. 커마 진짜.”
자고로 컨셉질의 시작은 외형부터 시작한다는 게 내 지론인지라.
나는 친구의 반응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나이 삼십 먹고 이딴 짓이냐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내 돈 주고 내가 한다는데 당당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컨셉질이 남한테 피해를 주는 류도 아니고.
“머리는 왜 그래?”
“그건 악마의 힘에 물들었다는 설정이야.”
“돌았냐고. 악마의 힘은 또 뭔데?”
“아…… 직업 이름이 ‘악마기사’거든.”
이건 공식 설정을 같이 봐야 이해가 잘되는지라, 나는 해당 페이지를 띄워 주었다.
「악마기사│가족을 참살한 악마가 제 팔에 깃들어 버린 이래, 견습기사였던 이는 기사의 길을 관두고 방랑을 시작했습니다.
오른팔에 깃든 악마를 더없이 증오하나, 그 악마로 인해 초인적인 힘을 가지게 된 그의 목표는 모든 악마를 죽이는 것입니다.
날카롭고 예민한 성미만큼이나 빠르고 강력한 기술들을 사용합니다.」
“오…….”
“사실 사제로 시작할까도 했는데…… 처음 할 때 골랐던 게 악마기사라서.”
갠스는 사제가 더 취향이지만, 이왕 되살리는 추억. 그때와 똑같이 하기로 했다. 어차피 다회차 할 거기도 하고.
“그리고 간지 나는 게 제일 컨셉질하기 좋아.”
“미친, 개웃기네.”
설명을 듣고 낄낄 웃던 친구 놈은 얼굴을 보기 위해 확대했던 걸 다시 줄였다. 캐릭터의 전체 모습이 전자 노트에 다시 담겼다.
“근데 이거 그대로 구현 가능해?”
“가능할걸.”
요즘 게임들 보면 이 정도 커스터마이징은 거의 기본이다. 하물며 ‘영웅전설’ 원작은 커스텀 자유도 때문에 갓겜 소리도 꽤 들었으니, 개발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안 넣었을 리 없다.
“옷도 디럭스 에디션 구매하면 제공되는 것 중에서 골랐고.”
“현질을 더 했어?”
아니 뭐, 고작 몇만 원 더 해서 OST에 아트북에, 게임 내 의장까지 얻을 수 있다면, 심지어 그게 직업별로 다 주어진다면 완전 혜자 아닌가?
심지어 시작하자마자 입을 수 있게 해주고 종류도 엄청 많은데.
나는 노트 화면에 비친 캐릭터를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오른쪽 눈을 가리는 안대. 등에 붉은 십자가 자수가 박혀 있고 밑단이 세 갈래로 갈라진 검정 롱코트. 오른팔에만 착용한 건틀릿. 무광택의 검은 가죽 바지와 무릎까지 오는 군화…… 잘 안 보이지만 상의 안의 붕대까지.
제공된 이미지를 모아 내가 그린 거긴 하지만, 그래도 참 완벽한 컨셉이었다. 이 이상 간지에 죽고 간지에 살 수 없다.
“이거 온라인 되냐?”
“되긴 돼. MMORPG처럼 실시간으로 교류하는 형식이 아닌 거지.”
인터넷을 연결하고 매칭을 넣으면 최대 4인까지만 함께할 수 있는 걸로 안다. 그래 봤자 보스전 협력, PVP 정도만 가능한 듯하지만.
개발진도 온라인엔 학을 뗐다는 증거다.
“그럼 남들도 못 보는 거 아냐? 그런데도 샀다고?”
“친구야. 컨셉질에 남들의 시선은 아무 관련 없단다.”
컨셉질이 뭐 남 보여 주려고 하나. 제정신으로 못 뱉을 대사, 익명에 힘입어 던지는 것 자체가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엄지를 척 들고 방긋 웃으니 친구 놈이 배를 잡고 굴렀다. 내가 한두 번 이러는 것도 아닌데 매번 저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게 바로 컨셉충과 일반인의 차이인가?
“어우. 미친놈.”
“‘내돈내산’ 한다는데 왜 그러냐 진짜.”
“그건 그런데…….”
친구가 악마기사 공식 설정 페이지로 다시 화면을 넘기더니 마지막 줄을 유심히 보았다.
“애초에 공식에서 성격 잡아 주는데, 컨셉질에 의미가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아무 반응도 없었다. 공식에서 설정 잡아 주는데 의미가 있냐고? 하, 이것까진 내가 말 안 하려 했는데.
나는 일반인에게, 내가 덕질하는 장르 질문을 받은 오타쿠처럼 입술을 씰룩였다.
진정하자. 너무 흥분하면 뉴비가 겁먹고 도망친다. 그러니 최대한 살살…… 살살…….
근데 살살이 대체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너는 2차판에 지금 싸움을 건 거다. 딱 대라. 내가 이번에 2차판에 대해 알려 줄 테니.”
“아냐, 내가 잘못 말했다.”
“공식에서 준 설정은 날카롭고 예민한 성미란 거랑, 모든 악마를 죽이는 게 목적이란 거거든? 야, 근데 사람마다 날카로움이란 게 다르죠? 얘는 심지어 가족을 죽인 악마가 지 팔에 깃들었다는 설정이 있죠? 그러면 생각해 봐. 얘가 태생적으로 성격이 더러운 거겠어, 팔에 잇든 악마 때문에 더러워진 거겠어?! 거기서 바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단 말이야!!”
“아놔, 내가 잘못했어.”
“만약 악마가 언제 폭주할지 몰라서, 그거에 신경 곤두서 있는 바람에 성격이 까칠해진 거라면? 만약 주변 사람들에게 날카롭게 구는 이유가, 자기 때문에, 정확힌 자기 안의 악마에게 피해 입지 말라고 밀어내는 거라면? 그러면 속 알맹이는 얼마나 다정한 거냐?!”
“내가 잘못했다고.”
“내 컨셉의 기반이 되는 해석도 바로 그거야! 외강내유! 강한 척하는데 속은 무르고, 트라우마 있고, 사람을 밀어내는 주제에 외로움을 엄청 타는 캐릭터 말이야! 나 사연 있어요, 나 상처 받았어요를 대놓고 보여 주는 그런 거!”
“살려 줰.”
“살려 줘는 뭐가 살려 줘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아직 더 말할 거 남았어. 외형에서 머리 반반한 거 외에도 저렇게 꽁꽁 싸맨 것도 이유가 다 있단 말이야!”
“아낰.”
“아, 대사 준비한 것도 있는데 볼래?!”
“아니라곸, 괜찮다곸.”
아니 쟤는 왜 물어봐 놓고 뒤로 빼. 안 빼도 되는데. 그러니까 더 들어 보라고.
옛 영상까지 일부러 찾아보고, 트레일러 직업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해해 가며 심혈을 기울여 짠 설정을 봐 보라고!
도망가는 친구를 붙잡고 앞에 앉혀서 설명을 시작했다.
건틀릿을 오른쪽만 낀 이유는 본인이 본인 팔을 너무 증오한 나머지 보기도 싫어서 낀 거라든가, 안대 역시 바뀐 눈동자를 담고 심지 않아서 멀쩡한 눈을 가린 거라든가. 게임 내에선 밝힐 수 없는 세세한 지점들이었다.
“돌아 버린 오타쿠 새끼야…….”
그렇게 장장 20분을 떠들자 친구가 넌덜머리 난다는 듯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야, 그래도 나 정도면 오타쿠까진 아니거든.”
“일반인 눈엔 게임에 몇십만 원씩 쓰는 시점에서 오타쿠야.”
“아놔.”
이건 부정 못 하겠네.
“어휴, 징글징글한 새끼. 됐다, 난 이만 가련다.”
“벌써?”
“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게임 시작까지 5분 남았어요, 이 미친 오타쿠야.”
“아.”
그러네. 20분 넘게 떠들었으니 5분 안쪽으로 남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됐고, 이제 연락은 또 언제 되냐?”
“이번에 준비한 풀다이브가 사흘짜리긴 한데.”
“저번에 나흘이라고 해 놓고 열흘 잠수 탄 거 아직도 안 잊었다.”
풀다이브란 식사와 수면 없이 24시간 이상 게임을 이어 나가게 해주는 기능이라.
그에 필요한 전용 용액과 영양제가 비싸서 쉽게 쓰진 못하지만─현실 관계가 끊긴다는 단점도 있고─게임에 몰두하고 싶을 때만큼은 최고의 성능을 자랑했다.
뭐, 오랫동안 캡슐에 갇혀 있어야 하는 만큼 게임이 끝났을 때의 탈력감도 커서 하루 정도는 뻗어 있어야 하긴 하다.
저번의 나는 그렇게 나흘 게임하고 하루 쉬고, 또 나흘하고 하루 쉬면서 장장 열흘을 잠수 탄 거고.
“몰라. 네가 먼저 연락해. 난 먼저 연락 안 한다.”
“옙.”
“그리고 게임 좀 작작하고. 몸 상한다.”
“네엡.”
그때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엄청 혼났으니 이번엔 그런 일 없을 거다. 몸 상하는 건…… 애초에 상하지 말라고 그 비싼 전용 용액을 쓰는 거지만, 굳이 말대답하진 않았다.
걱정해 주는 사람 마음은 고마운 거니까. 며칠 얼굴 못 볼 거 알고 시간 내서 찾아와 줄 우정은 더더욱.
덜컥
나는 닫힌 현관문을 가만 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번엔 게임이 아무리 재밌어도 딱 사흘만 하고 끝내야지. 철들려는 다짐은 덤이었다.
「플레이까지 남은 시간 00: 00: 03」
「플레이까지 남은 시간 00: 00: 02」
「플레이까지 남은 시간 00: 00: 01」
「플레이까지 남은 시간 00: 00: 00」
「추가 아이템을 설치 중입니다…….」
띵!
「게임을 시작합니다.」
다만 그 다짐이, 타의로 박살 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게임 같은 건 켜지 않았을 텐데.
「악마를 막는 여정이 시작됩니다.」
아니, 다른 거 다 제쳐 두더라도 컨셉질만은 말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일상을 망가트리는 건 한순간이었다.」
오프닝 영상이 시작, 아니 뇌리에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