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47화 (647/649)

647화. 선의 표시

황 위원은 저도 모르게 성건우를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보며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돌아와 앉아.”

장목화는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도록 애썼다.

곧이어 성건우는 한쪽 발로 한번 뛴 후에야 이번에 마비된 부분은 생명 천사 목걸이를 쥐지 않은 왼팔임을 깨닫고 황급히 원래 자세로 걸었다.

“자네 대가가 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겠어.”

황 위원은 성건우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보였다. 지난 세월 동안 그는 매우 많은 경험을 해왔다.

자리에 앉은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위원님의 대가는요? 그것도 명확한가요?”

‘야! 그렇게 대놓고 물으면 어떡해?’

장목화는 여객선 트라우마를 통과한 이후 성건우의 대가가 한층 더 심각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의를 지키지 않는 횟수가 전보다 더 많아졌다.

하지만 그녀 역시 황 위원의 대가에 관심이 있었다. 지금껏 줄곧 그의 언행을 분석해온 장목화는 일단은 조급증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황 위원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까지 명확하지는 않아. 내가 봤던 것 중 가장 불명확한 대가는 변비였지.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심령의 복도에 진입한 후 가중된 부작용 때문에 배변을 돕는 수술을 받다가 감염돼서 세상을 떠났어. 그 시대 수술의 청결도에는 상당히 문제가 많았거든.”

예의 바른 장목화는 간단히 대꾸했다.

“지나치게 비밀스러운 대가는 아닌 것 같네요. 오랜 시간 목표가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한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겠죠.”

“내가 가장 불명확한 대가라고 말한 건, 그자가 얻은 능력이 본인을 장기적으로 관찰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어서야. 에이돌른 영역에 속해 있었거든.”

황 위원은 마치 조그만 아이들을 대하는 듯한 투로 말했다.

순간 깨달음을 얻은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경계와 관련된 능력이었나?’

대화는 곧 불모지 13호 유적의 비밀 실험실에 관한 주제로 넘어갔다.

구조팀은 당연히 인공지능 퓨처를 비밀에 부치지 않았다. 오하명의 평가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않았을 뿐, 이야기해야 할 것은 다 이야기했다.

황 위원은 시야를 넓혀주는 이야기에 인공지능은 잘 모르지만, 충격적이긴 하다고 답변하며 점차 표정이 묵직해졌다. 그러다 미지의 위험을 싹부터 잘라버리고 싶은 듯한 의중이 느껴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런 인공지능이 훗날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목화와 성건우의 진술이 끝나자 황 위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줘서 고맙네⋯⋯.”

“저희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의심은 안 드십니까?”

성실한 성건우가 상대의 말을 끊어 들었다.

황 위원이 웃었다.

“난 눈썰미가 꽤 좋은 편이야. 인공지능 퓨처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로 겪어본 것이 아니라면 지어낼 수 없어.”

이내 그는 화제를 전환했다.

“어떤 보수를 원하나? 우리 구세군은 늘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그런 말을 본인 입으로⋯⋯.’

장목화는 무해한 웃음을 지으려 애쓰며 답했다.

“제8 연구원 관련 정보를 공유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구세군이라면 제8 연구원과 특파원을 한두 번 맞닥뜨린 게 아닐 것 같은데요.”

구세군은 반고 바이오와 달리 지하 깊은 곳에 숨어있지도 않았고 오랫동안 전 인류 구원을 임무로 삼아왔었다. 그러니 제8 연구원에 방해받고, 공격당하고, 위협받았을 확률도 낮지 않았다.

구조팀이 우호적인 방식으로 구세군의 세력 범위를 통과하고, 대가를 들여가며 통행증을 얻은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래야만 물자 보충을 더 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세군에게 정보를 좀 빨아먹……. 아니, 정당하게 정보와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몇 초간 고민하던 황 위원이 입을 열었다.

“내 개인적인 원칙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지만 상부에 신청해야 할 필요는 있어. 대략 하루에서 이틀 정도 걸릴 거야.”

우베이 물자 총괄 위원회에서 정보를 관장하는 위원이 신청할 상부란 당연히 구세군 물자 총괄 위원회를 가리키는 것일 터였다.

“기다리겠습니다. 제8 연구원에 맞서는 건 저희 공통적인 목표잖습니까.”

장목화는 말에 조급함이 묻어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대화를 마무리한 황 위원은 기계식 손목시계를 보았다. 곳곳에 파손된 흔적이 남은 손목시계는 폐허 도시에서 찾아내 간단하게 수리한 듯 보였다.

시간을 확인한 황 위원이 살짝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번에 빙원에 가려는 목적을 간단하게라도 알려줄 수 있나? 뭐, 불편하다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아.”

“비밀에 부칠 일은 아닙니다. 저희는 지금 불가의 5대 성지를 조사하고 있고 다음 목적지는 빙원의 타이 시티입니다. 아, 저희는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에서 구세군 치안 관리 위원회 서동수 위원을 만나 구세군 역시 그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5대 성지의 자료를 서 위원에게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장목화는 의도적으로 이 일의 중점을 서동수와 안면을 텄다는 사실부터, 구조팀이 늘 구세군에 호의적이고 계속 정보를 교환해왔다는 식으로 바꿨다.

이에 황 위원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자네들의 이타심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군.”

정상적인 팀이면 이런 정보는 값이 오를 때를 기다렸다가 팔려고 했다.

그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성건우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은 채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 인류를 위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던 황 위원은 한참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뒤이어 그는 성건우를 따라 일어나더니 이상하리만치 엄숙한 표정으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었다.

“전 인류를 위해!”

착각인지 몰라도 장목화는 황 위원의 눈이 좀 촉촉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내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낸 황 위원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자네들 통행증은 홍광명 그 늙은이가 서명해줬겠지?”

“그렇습니다.”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황 위원은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한 명과 지능 로봇이 포함된 데다 인공지능 갑옷 두 대, 군용 외골격 장치까지 세 대를 가지고 있는 팀에게 그리 쉽게 통행증을 내줬다고? 당치도 않는 소리! 혹시 자네들한테서 어음을 받아 챙기지는 않던가? 대체 희생돼 땅속에 묻힌 전우들을 대체 무슨 낯으로 보려고 그러는지!”

숨김없이 분노를 드러내던 황 위원이 다시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자네들이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품성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난 이 일을 쉬이 넘기지 않았을 거야. 가서 홍광명에게 전하게.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휴, 자식을 위해 그러는 줄은 알지만, 방식과 방법은 가려야지. 규칙과 제도를 어기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렇죠.”

장목화와 성건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장목화는 황 위원의 대가가 욱하는 성격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생각하던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황 위원님, 이번에 우베이에 계엄령이 내려온 이유는 뭡니까? 성 대장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던데요.”

의도적으로 이 질문을 던진 건 훗날에라도 성영희가 외부에 정보를 흘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물음에 황 위원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딱 맞는 사람에게 물었군. 난 우베이 치안 관린 위원회 주임도 겸하고 있고, 마침 그 일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지.

세상에 말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지만, 한마디로 집안 망신이 난 거야! 이번에 소형화된 수소 폭탄 하나를 훔친 내부자 둘이 그걸 우베이로 가져와 이곳에서 만난 연락관에게 넘겼다는 게 아닌가! 그 위험한 물건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으려면 뭘 어떡해, 우베이를 봉쇄하는 수밖에 없었지.”

‘수소 폭탄⋯⋯.’

순간 장목화는 치아 뿌리가 다 시려왔다.

옆에서 성건우는 또 성실하게 물었다.

“저희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아직은 괜찮네. 우리 우베이에서 처리할 수 있어.”

황 위원은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다가 잠시 좀 뜸을 들인 후 덧붙였다.

“자네들에게 이렇게 상세하게 알려주는 건 그 연락관이 어느 외부자를 통해 그 핵폭탄을 밖으로 내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야. 애쉬랜드 그랜드호텔에 묵는 자네들이 그런 부분에 신경을 좀 써줬으면 좋겠어.

음, 정말로 그 폭탄이 발견되면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지는 마. 위기에 처한 그들이 정말로 폭발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다들 끝장나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성건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몇 초간 머뭇거리던 장목화는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저희가 최대한 빨리 우베이를 떠날 수는 없겠습니까?”

흠칫 놀란 표정을 드러낸 황 위원이 탄식을 뱉었다.

“제8 연구원 관련 정보를 얻고 상세한 검사를 받기만 하면 떠나도 좋아.”

막 고개를 저으려던 성건우는 장목화의 눈총을 받았다.

뒤이어 장목화가 자발적으로 대꾸했다.

“네, 떠나기 전까지는 애쉬랜드 그랜드호텔 관련 상황을 면밀하게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황 위원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돌아가 봐도 좋네.”

작별을 고한 장목화와 성건우가 문 앞에 이른 순간, 황 위원이 갑자기 또 그들을 불러세우더니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만약 우리가 자네들과 함께 타이 시티로 가서 공동으로 그 불가 성지를 탐색할 팀 하나를 조직하려 한다면, 괜찮겠나?”

장목화는 성건우와 시선을 교환한 뒤 고민 끝에 답했다.

“도움 줄 분들이 있다면 당연히 좋죠. 때가 되면 구세군은 구세군의 탐색을, 저희는 저희의 탐색을 하다가 얻은 수확을 공유할 수도 있을 거고요.”

빙원 타이 시티에서 또 무슨 뜻밖의 상황을 겪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니 구세군의 강자가 탐색에 동참해 함께 위험에 맞서준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구조팀이 불가 성지 조사에 기대하는 건 진상이지 그곳의 물건이 아니었고 그 진상 역시 꼭 독점해야 하는 비밀은 아니었다. 이익의 충돌이 크지 않다면 합작은 나쁠 게 없는 선택이었다.

황 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 뜻은 잘 알겠네.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우리 내부적으로도 토론이 필요할 거야.”

그와 동시에 주머니에서 주름진 담배 한 갑을 꺼낸 그는 한 개비 뽑아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흡연을 고민의 동료로 삼을 모양이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도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무기를 돌려받고 산악자동차에 오른 성건우는 성영희를 보자마자 매우 적극적으로 말했다.

“홍 처장님한테 전하라는 말씀이 있었어. 지금 바로 입국처로 가자.”

‘어째 얘 EQ가 점점 게네바랑 비슷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지. 솔직하고 성실해질수록 짜증이 나네.’

장목화는 속으로 중얼거렸지만,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곧이어 성영희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말?”

“홍 처장님이 우리한테 통행증을 발급해준 건 엉터리 수작이래.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은 없을 거라고, 앞으론 아무리 자식을 위한 일이라도 방식과 방법에 주의하라고, 제도와 규칙을 어기지 말라고 하던데.”

성건우는 정리 능력이 참 뛰어난 편이었다. 동시에 홍광명이 그런 질책을 받게 만든 구조팀의 일원으로서 남 일 인양 말하는 소질도 탁월했다.

몇 초간 말이 없던 성영희가 대꾸했다.

“그건 너희가 안 전해도 될 것 같은데. 내가 나중에 기회 봐서 얘기할게.”

‘적합한 방식과 적합한 표현으로⋯⋯.’

장목화는 상대가 굳이 하지 않은 말을 마음속으로 덧붙였다.

사람에게는 체면이, 나무에는 껍질이 있는 법이었다. 그건 굳이 건드리거나 벗기려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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