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화. 계엄
마찬가지로 그쪽 상황을 확인한 용여홍이 화들짝 놀랐다.
“우리를 잡으러 오는 건 아니겠지?”
구조팀은 퍼스트 시티에 넘기면 거금의 돈으로 바꿀 수 있고, 인질로 삼을 수도 있었다. 용여홍도 현상 수배범답게 아직 그런 자각을 하고 있었으며 압박감도 느꼈다.
그 말에 백새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 같진 않아. 방향을 보면 우베이 중심으로 가는 것 같은데.”
구조팀이 묵고 있는 애쉬랜드 그랜드호텔은 도시 가장자리에 있었다.
이때 성건우가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심리적 압박감을 가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일 수도 있잖아. 어느 순간에 홱 돌아설지 누가 알겠어.”
솔직한 게네바는 그의 추측을 부정했다.
“그보다는 우리 주의를 돌리려는 수작일 가능성이 더 커. 실제로 체포 임무를 맡은 건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 숨어있는 정예 엘리트 팀일지 몰라.”
성건우가 눈을 빛내며 손뼉을 쳤다.
“역시 전 타르난 시장 답네. 나보다 훨씬 주도면밀해! 네가 말한 그 방법이 훨씬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것 같아.”
본디 성건우는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칭찬은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정직한 사람을 보며 장목화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좀 더 나은 쪽으로 생각할 수 없어? 왜 굳이 우리랑 저들을 엮냐고! 우리가 구세군에서 무슨 잘못을 했는데? 아무 짓도 안 했잖아. 오히려 좋은 마음으로 기꺼이 정보를 공유했지. 근데 왜 우리를 노리냐고?”
“현상금!”
성실한 성건우가 한 가지 이유를 찾아댔다.
뒤이어 유약하고 겁많은 성건우가 바로 덧붙였다.
“장비!”
끝으론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성건우가 마무리를 맡았다.
“미인!”
장목화는 결국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칭찬해줘서 정-말 고맙다.”
그 순간 갑자기 성건우와 장목화의 시선이 동시에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초 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누구세요?”
성건우가 신이 나서 물었다. 그는 이미 게네바의 가설과 현재의 상황에 근거해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상상한 듯했다.
곧 문밖의 방문자가 빠르게 답했다.
“호텔 지배인입니다. 아까 만났죠? 말씀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장목화는 눈짓으로 성건우에게 문을 열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도록 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대처하라는 의미까지 잘 전달됐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적극적인 성건우라면 알아서 잘 해내리라 믿었다.
곧이어 성건우는 허리와 등을 굽혀 먹잇감을 물기 직전의 표범 같은 자세로 한 걸음씩 문가로 향했다.
문을 여니 바깥에 선 사람은 전에 홀에서 본 호텔 지배인이었다. 정수리가 살짝 빈, 평범한 생김새의 그 중년 남자가 맞았다.
“뭐죠?”
약간 실망한 성건우의 말투는 냉담했다.
호텔 지배인은 목을 한번 가다듬은 뒤 말했다.
“흠흠, 그게, 지금 우베이에 계엄령이 내려졌습니다. 여러분들은 관리 위원회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 호텔을 떠나실 수 없게 됐습니다.”
우베이 물자 총괄 위원회에 소속된 기구인 우베이 관리 위원회는 주로 이 핵심 도시의 행정 관리와 외부인 등록을 담당했다.
장갑차와 탱크, 군인들의 움직임을 확인했던 만큼 구조팀은 이 돌발 상황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장목화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갑자기 계엄령이 내려진 거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건 여러분들이 알 필요가⋯⋯.”
막 입을 연 호텔 지배인은 홀연히 주머니 속에 찔러 들어온 어음 두 장을 발견했다. 장목화가 건넨 그 붉은 플라스틱 어음엔 달콤한 글이 쓰여있었다.
「돼지고기 5kg」
흠칫한 호텔 지배인의 얼굴에는 곧 웃음이 피어났다.
“통행증도 가지고 계신 데다가 대장급 전사의 안내를 받고 오신 분들이니, 알려 드려도 상관없겠죠.”
그는 능숙하게 어음의 진위를 확인한 뒤 다시 주머니에 잘 챙겨 넣었다.
“그게 말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말버릇부터 내뱉은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얼마 전 저희 구세군의 어느 비밀 기지에서 중요한 군사 물자가 사라졌는데, 현재까지 파악된 정보론 그게 우베이 지하 시장에 흘러 들어갔답니다. 그 군사 물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근처의 수많은 사람이 치명적인 해를 입을 수도 있지요.
그 상황을 막기 위해 우리 우베이의 물자 총괄 위원회에선 계엄령을 내리고 시외 주둔군에게 이 일을 처리하게 한 겁니다. 최대한 빨리 그 위험 물품을 회수하고 경보를 해제하도록요.”
총 10킬로그램의 돼지고기 어음을 받은 호텔 지배인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는 신용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용여홍은 속으로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헉,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잖아! 만약 그 군사 물자에 정말 문제가 생기면, 마침 그게 이 호텔 근처에 있는 상황이면, 우리도 피해가 있을 텐데!’
진지한 표정의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계엄이 필요한 상황이네요. 음, 저희에게도 영향이 있을까요?”
호텔 지배인의 경계심 어린 눈빛에 그녀는 다시 웃으며 덧붙였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희는 물자도 가지고 있고, 바꿔놓은 어음도 좀 있거든요. 수색이라도 받게 된다면 손실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군용 외골격 장치와 인공지능 갑옷들이었다.
정말로 수색을 받게 되면 그때는 성건우의 능력을 써야만 할 터였다.
호텔 지배인은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 구세군 전사들은 절대 그렇게 구린 짓을 하지 않으니까요.”
성건우는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호텔 지배인이 덧붙였다.
“관리들은 다른 뒷구멍이 있어서 여러분들이 가진 물자에는 눈독 들이지 않을 겁니다. 통행증에는 날짜도 명시돼 있잖아요. 여러분은 오늘 도시에 들어오셨으니 그 전에 사라진 군사 물자와는 관계가 없지요. 그런데 여러분을 누가 수색하려 하겠습니까?”
“그럼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장목화는 감정 변화를 숨기지 않았다.
성건우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감정이 다행에서 실망으로 바뀌긴 했지만.
이때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 군사 물자가 구체적으로 뭔지 아세요?”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 질문은 아니었다. 만약 뭐라도 알아낼 수 있다면 그에 따른 위해를 파악하고 사전에 어느 정도 예방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통지받은 바 없습니다.”
호텔 지배인은 자신도 알고 싶다는 듯 대꾸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 더 불안한 법이었다.
“저는 이만 다른 손님들께 알려 드리러 가야겠습니다. 휴, 전화로 알리지 말고 면대면으로 안내하라는 요구가 있었거든요.”
대외적인 장소인 만큼 애쉬랜드 그랜드호텔의 모든 객실에는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세력 범위 밖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은가요?”
이미 뇌물을 받은 호텔 지배인은 계속 솔직하게 답했다.
“적지는 않죠. 일부는 경계를 넘어 다니며 무역을 하는 상인들입니다. 우리 구세군은 공업 체계를 다시 세우긴 했지만 자원과 기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요. 석탄, 기계 팔, 일부 전자 설비, 태양열 충전기, 고성능 배터리 등의 수입이 필요하죠. 또 다른 일부는 유적 사냥꾼이고요. 그들은 공식적으로 여기 머물며 우리 일원이 되고 싶어 합니다.”
“오오-.”
성건우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뒤이어 호텔 지배인이 여유롭게 덧붙였다.
“여러분도 신청하실 수 있어요. 물자 총괄 위원회에서 반포한 법률에 따르면 경내에서 만 3년만 거주해도 신청서를 제출하고 상응하는 시험을 치를 자격이 주어져요. 통과 확률도 꽤 높은 편이죠. 근데 그 3년간 어떤 직업을 분배받을 수는 없어서 알아서 먹고살아야 합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계속해서 유적 사냥꾼 일을 하죠.”
성건우가 약간 실망한 듯 물었다.
“구세군에선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호텔 지배인이 웃었다.
“언제 적 이야기입니까! 자원은 유한하잖아요.”
그때, 옆에서 줄곧 얌전히 듣기만 하던 백새벽이 질문을 하나 던졌다.
“구세군 경내의 폐허 도시와 각종 유적이 외부인에게 열려 있나요?”
지나치게 관대한 처사였다.
남자는 대외적인 장소인 호텔 지배인으로 일하는 만큼 보고 들은 것이 많은 까닭에 가볍게 웃음을 보였다.
“그런 구역 대부분은 구세군의 실질적인 통제 구역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 안의 자원도 군대를 보내 관리할 정도는 아니고요. 퍼스트 시티에서 오셨다면 이와 비슷한 상황들을 보셨을 텐데요.”
애쉬랜드에서는 보통 그랬다. 구세군처럼 강한 세력도 도로가 회복된 각 거점과 주위 일부 구역만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구조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호텔 지배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원이 결핍돼서 대규모 탐색과 수색까지 할 필요 없는 구역도 있어요. 그런 건 차라리 유적 사냥꾼들에게 맡겨 처리하게 하는 편이 낫죠.
하하, 그런 곳에서 발견된 물건은 대부분 우리 같은 일반인에게 거래됩니다. 구세군은 현재 모두가 먹을 음식과 지낼 집, 겨울에 덮을 이불, 입을 옷 정도만 보장할 수 있을 뿐이에요.
자원 부족과 치중된 생산 방향 때문에 만들어낼 수 없거나, 생산량이 너무 적어 수요를 충족할 수 없는 물건들도 아주 많죠. 그런 것들은 유적 사냥꾼들의 수확을 통해 보충하는 수밖에 없어요. 저희 집에 우산이 총 세 개 있는데, 그것들도 전부 유적 사냥꾼에게서 얻은 거예요.
그들이 공식적으로 우리 일원이 되려고 하는 건 안정성 때문이죠. 겨울에 먹을 걸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 비와 바람을 피할 곳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내년을 맞지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요.”
안정적으로 먹고, 지내고, 입을 수만 있어도 충분했다. 그건 수많은 황야 유랑자 모두의 꿈이었다.
장목화는 더 이상 질문을 이어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지배인이 다른 방으로 떠나자, 그녀는 작은 한숨과 함께 동료들을 쳐다봤다.
“내가 그랬지. 애쉬랜드에서는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문제가 알아서 찾아온다고. 운 나쁘게 마침 사라진 군사 물자 부근에 머물고 있는 거라면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죽게 될 수도 있어.”
팀원들 모두 팀장의 말에 깊이 동감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을 안고 새벽빛을 볼 때까지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지배인의 예상대로 구조팀은 수색을 받지 않고 하룻밤을 무사히 보냈다.
이윽고 구조팀이 호텔에서 제공한 노란 옥수수빵으로 아침을 해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영희가 다시 찾아왔다.
성영희는 이 위험한 인물들을 우베이로 들여온 것은 자신이니, 이들이 우베이를 완전히 떠날 때까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입을 열기 전, 성건우가 먼저 물었다.
“그 군사 물자라는 게 대체 뭐길래 온 도시에 계엄령까지 내려졌어?”
성영희는 닫힌 문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해, 핵탄두 같은 거야.”
“⋯⋯.”
장목화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