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4화. 정보 공유
우베이 관리 위원회 건물을 나와 구조팀의 지프 옆에 이른 홍광명이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이제 너희 내력과 목적을 말해 봐.”
장목화는 전에 성영희에게 말한 내용을 간단히 반복하며 끝으로 덧붙였다.
“저희는 정말로 퍼스트 시티의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사냥군 길드에서도 이 사람들한테 현상금을 걸어뒀어요.”
성영희가 증언했다.
홍광명은 그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었다.
“거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퍼스트 시티에 현상 수배됐다고? 무슨 음모를 꾸몄지?”
“그쪽에서 만들어낸 구실일 뿐입니다. 사실 저희는 일부 정보를 훔쳐냈을 뿐입니다. 그 후 쫓기다가 그들 사람 몇몇을 죽였고요.”
성실하게 답하려던 성건우는 장목화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홍광명은 구조팀을 재차 한번 훑어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로 대규모 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
동시에 그는 검사를 위해 용여홍에게 트렁크를 열라고 지시했다.
“통조림⋯⋯. 개인용 바주카포, 하하, 이건 대규모 살상 무기라고 할 수는 없지. 위력이 상당히 제한돼 있으니⋯⋯.”
뒤이어 물건을 하나하나 검사하던 그가 가장 안쪽에 자리한 나무 상자 네 개를 가리켰다.
“저기에는 뭐가 들었나?”
“군용 외골격 장치 세 대랑 인공지능 갑옷 두 대요.”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성영희가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홍광명은 소리까지 내어가며 웃었다.
“과연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수배범들답네. 열어봐.”
용여홍, 백새벽, 성건우, 게네바는 각자 하나씩 상자를 꺼내 열었다.
현장은 순간 극도의 적막에 휩싸였다.
현재 성영희는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구조팀이 현상수배당한 것도 정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퍼스트 시티에서 군용 외골격 장치 세 대랑 인공지능 갑옷 두 대를 다 훔친 걸까?
홍광명은 드넓은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순간을 겪었던 만큼, 빠르게 정신을 차린 뒤 구조팀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만만치 않은 사람들일세⋯⋯, 이런 장비들은 다 관제품이야.”
퍼뜩 정신을 차린 성영희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와 홍광명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어음 한 다발을 찔러주며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할아버지, 좀 봐주세요. 정말로 빙원 유적을 탐색하려는 사람들이에요.”
그녀가 건넨 어음은 전에 구조팀과 거래하면서 얻은 이익에 상당했다.
홍광명은 그 어음의 양을 대강 살핀 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러곤 다시 구조팀을 향해 경고했다.
“이 물건들 가지고 거점에 들어가면 안 돼. 통행증에도 단서를 달 거다.”
장목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의식적으로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성건우는 마치 조각상이 된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건우의 표정 변화를 보고, 홍광명은 그가 구세군의 열광적인 숭배자라던 장목화의 말을 떠올렸다. 이내 홍광명은 어음 더미를 받아 주머니에 챙기며 중얼거렸다.
“내가 뭐 하러 평생을 목숨 바쳐 일했겠어? 내 자손이나 후손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지. 좋아, 이제 통행증 만들러 가자고.”
그가 기계 팔인 오른손을 휘휘 흔들었다.
장목화는 다시 절뚝거리며 우베이 관리 위원회 빌딩으로 돌아가는 홍광명을 보다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약간 어두워진 성건우의 표정에는 막막함과 실망감이 어려 있었다.
“가자, 마음의 준비 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
채근하는 장목화를 보며 성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팀장님은 몰라요.”
장목화가 눈을 살짝 가늘게 뜨자 그가 얼른 덧붙였다.
“현실은 현실이지만 이상은 이상이죠. 둘 사이에 차이가 나타나면 감정적으로 영향받을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작은 빨강⋯⋯.”
“그만!”
장목화와 용여홍이 동시에 신기한 비유를 하려는 성건우를 저지했다.
구조팀의 관계를 잘 모르는 성영희는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볼 뿐이었다.
* * *
구조팀은 다시 홍광명의 처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홍광명은 고개 숙여 통행증을 작성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가진 어음 다 꺼내 봐. 검사하게.”
“이것도 검사해야 하나요?”
장목화가 의혹을 표했다.
“규정이야. 가짜 어음을 대량으로 갖고 입경하는 걸 방지하는 거지.”
홍광명은 예의 바른 미인에게 꽤 관대한 편이었다.
곧이어 옆에 있는 성영희가 덧붙였다.
“우리 어음은 모두 플라스틱을 눌러 만든 거라 일반인은 위조할 수 없어. 원자재를 구하기도, 상응하는 기계를 만들기도 쉽지 않아. 근데 퍼스트 시티 같은 대형 세력은 달라. 그래서 변경 거점이나 각지의 입경처, 안전 검사처는 외부에서 가짜 어음이 들어오는 일을 막을 의무가 있어.”
‘그렇구나. 구세계에선 소형 공장이나 심지어 가정 작업장에서도 이런 플라스틱 카드를 만들 수 있었다던데. 당시 공업 체계가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이겠지. 근데 지금의 애쉬랜드에선 석유를 얻는 것도 엄청나게 어렵잖아.’
장목화가 속으로 한숨을 뱉었다. 예전과 지금의 차이를 실감한 탓이었다.
이내 성영희가 홍광명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이 사람들이 가진 어음은 전부 제가 어제 바꿔준 거예요.”
“그럼 문제없겠구나.”
홍광명은 강철 팔에서 열쇠 하나를 탁 꺼내더니 그것으로 아래쪽 서랍의 기계 자물쇠를 열었다. 안에는 도장과 인주가 있었다.
그가 작성한 통행증에 붉은 인주를 묻힌 도장을 찍어주자, 장목화가 그 통행증을 받아들었다. 상규적인 내용 외에 추가된 문장이 있었다.
「본 통행증은 지능 로봇에게는 적용되지 않음. 네 명은 거점에 진입할 때 중무기, 첨단 기술 장비, 나무 상자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음.」
“감사합니다, 홍 처장님.”
장목화는 그래도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제한이 많긴 해도 이런 통행증이 있는 한, 앞으로 구조팀의 여정은 적잖게 수월해질 것이다. 특히 물자를 보충할 때는 더 그랬다. 이제는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빙원으로 직행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 * *
우베이 관리 위원회에서 나온 구조팀은 지프를 타고 녹색 산악자동차를 따라 도시 가장자리의 애쉬랜드 그랜드호텔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랜드호텔이라고는 하나 사실 구세계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넓기도 하고 차를 대기에도 편했으나 최고층은 고작 3층에 불과했다.
구조팀의 체크인을 돕고 어느 방에 이른 성영희가 웃으며 말했다.
“외부인 전용 숙소야. 다른 데 묵을 순 없지. 통행증이 있다고 해도.”
‘내부인과 외부인 관리 시스템이 완전히 분리돼 있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난 이틀 동안 실례 많았어. 홍 처장님한테는 어음을 몇 장이나 드린 거야? 우리가 보충할게.”
성영희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됐어. 전에 너희한테서 얻은 이익만큼 드린 거니까. 게다가 그 비용 일부를 청구할 방법도 있고.”
순간 구조팀 모두가 익숙한 기분을 느꼈다.
뒤이어 성영희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다 방문을 닫고 정색을 했다.
“퍼스트 시티에서 정보를 훔쳤다고 했지? 어느 방면의 정보였어? 우리한테 팔 수는 없을까?”
그녀는 원래는 믿지 않았지만 군용 외골격 장치 세 대와 인공지능 갑옷 두 대를 보고서야 구조팀의 말이 허풍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총합 10만 오레이가 넘는 현상금이 걸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팀원들과 시선을 주고받은 뒤 미소를 지었다.
“사실 굳이 비밀에 부쳐야 하는 정보는 아냐. 관련자는 심지어 우리한테 그걸 널리 퍼뜨려달라고 요구하기도 했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퍼스트 시티에서 오레이 후손과 접촉하려 했어. 오레이가 누군지는 알지? 퍼스트 시티 전 집정관이자 한동안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 사람.”
성영희가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교과서에도 나와 있어. 계속해.”
장목화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음, 현재 남은 오레이의 후손은 둘이야. 손녀 아비아랑 외손자 마커스. 이 둘은 오레이가 남긴 특정 비밀을 알고 있고, 그래서 퍼스트 시티가 철통으로 보호하고 있어. 보호라고는 하는데, 사실 감시이기도 하지.
구체적인 경과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아무튼 우린 천신만고 끝에 오레이의 두 후손과 만났고, 그들에게 그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
이 정보에 따르면 오레이는 구세계 파괴 원인에 대한 추측과 신세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머신 헤븐의 소스 브레인을 처리하는 방법을 불모지 13호 유적에 있는 한 비밀 실험실에 숨겨뒀대.
또한 아비아는 일찍이 오레이가 쓰던 신비로운 핸드폰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걸로 깨진 글자가 포함된 번호를 누르면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존재와 연락할 수 있어. 그리고 그 비밀 실험실의 문을 여는 암호는 ‘메시아’고.
이후 우리는 불모지 13호 유적에 잠입해 비밀 실험실을 찾아낸 후, 진짜 그 암호로 문을 열었어. 근데 안에 아무것도 없더라고. 오레이가 남겼다던 자료도 못 찾았고.
이 모든 건 그 사람이 말년에 만들어낸 새로운 인공지능 퓨처 때문이야. 퓨처는 신세계와 교차점을 통해 실험실 내의 전자파를 조종하고 컴퓨터를 통제할 수 있는데, 이미 오레이가 남겨둔 자료를 이전시키고 실험실을 하나의 함정으로 만들어버렸더라고.”
말해도 되는 것과 말하면 안 되는 걸 정확히 구별할 줄 아는 장목화는 주로 오레이의 유산에 관한 것만 집중해서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도 성영희는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왜 그 정보를 널리 퍼뜨려달라고 했을까? 퍼스트 시티의 황제와 관련돼 있다면 확실히 중요한 정보겠네. 진짜 막강한 녀석들이야. 퍼스트 시티의 삼엄한 보호를 뚫고 그 중요 인물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니. 이해는 잘 안 되지만 무척 대단한 것 같긴 해. 잠깐만,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신세계와의 교차점? 인공지능이 전자파를 조종해?’
점점 가면 갈수록 정신이 아득해지는 이야기뿐이었다. 마치 장목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성영희는 먼저 무의식적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사, 상부에 보고해야겠어. 만약 정말로 가치가 큰 정보라면 너희한테 어음으로 보상해줄 수 있을지도 몰라.”
우호적인 태도를 드러낸 그녀는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근데 그 비밀 실험실은 지금 어떻게 됐어?”
난해한 이야기에 당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녀는 경험을 토대로 비밀 실험실이 중점 중 하나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모든 단어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중점만 알면 됐다.
망설이던 장목화가 말했다.
“파괴됐어.”
뒤이어 성실한 성건우가 얼른 덧붙였다.
“오해는 마. 우리가 파괴한 건 아니고, 당시 인공지능 퓨처가 조성한 곤경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수 없이 실험실 자폭 장치를 활성화한 것뿐이야.”
‘그게 더 무시무시하게 들리는데.’
성영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난 퇴근하기 전에 일단 이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겠어. 내일이면 결과가 나올 거야. 내일 봐.”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언제나처럼 성건우가 제일 열심히 호응했다.
“응, 내일 봐!”
성건우는 언제나처럼 열정적으로 호응했다.
그러다 성영희가 잠시 또 고민하다 당부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성급히 해결하려고 직접 나서지 마. 특히 그 장비들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아. 그냥 우베이 치안 관리 위원회에 신고만 해. 호텔 방에 전화가 있고, 그 위에 그곳 번호도 적혀 있으니까.”
“알겠어.”
장목화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구조팀의 가장 큰 강점은 장비도, 게네바도 아닌 소리소문없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건우였다.
성영희를 배웅했을 때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이에 장목화는 저녁 식사를 말하는 대신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보며 주위 환경을 관찰했다.
방은 겨우 3층에 불과했지만, 주위 건물도 높지 않아서 시야가 괜찮았다.
백새벽도 장목화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는데, 순간 곁눈에 저 멀리 떨어진 어느 도로 위에 한창 줄지어 달리는 장갑차와 탱크가 들어왔다.
카무플라주 패턴이 들어간 녹색 장갑차와 탱크 뒤쪽으로 완전 무장을 한 검은 제복 차림의 병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사뭇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지는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