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화. 입경처(入境處)
배불리 먹고 마신 구조팀은 정리를 도맡았다.
대부분의 일은 장목화의 지시를 받은 성건우의 몫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백새벽은 두 배반자를 쫓아 나섰던 유적 사냥꾼들이 속속들이 거점으로 돌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성영희는 즉각 그들에게 다가가 그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무슨 수확이라도 있었어?”
질문을 받은 유적 사냥꾼은 그녀의 검은 제복과 견장을 보고 약간 경외심이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있었습니다. 그 두 배반자 녀석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한 명을 죽이자 나머지도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깨닫고 입에 총을 물고 자살했습니다.”
구세군에 속한 유적 사냥꾼은 정규군의 고루함을 조롱하길 좋아했지만 실제로 그들을 마주한 상황에서까지 함부로 입을 놀리지는 못했다. 든든한 가문을 배후에 두고 있지 않은 이상에는 그랬다.
성영희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둘 다 죽었다고? 그자들 몸에서 뭘 찾은 건 없고?”
유적 사냥꾼이 답했다.
“중요한 군사 물자라는 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통조림 몇 개, 압축 비스킷, 에너지바, 총알과 라이터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엄숙한 표정의 성영희를 보고 그가 덧붙였다.
“그 물건들 대부분은 우베이산이었습니다. 그 둘은 우베이 암시장에 가서 물자를 보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겠군.”
성영희가 중얼거렸다.
‘그 중요한 군사 물자는 이미 그들의 손을 떠난 모양이네. 찾아내지 못한다면 연쇄적인 반응이 일어나겠어.’
청력을 회복한 장목화는 이미 타인의 말을 엿듣는 데 능숙해져 있었다.
* * *
하룻밤을 무사히 보낸 구조팀은 다음 날 아침 7시에 성영희의 산악자동차를 따라 우베이로 향했다.
그 후 거의 9시간이 지난 오후 4시경, 마침내 위에린 강변에 원자력 발전기를 끼고 자리한 혁신 도시에 도착했다.
이 도시의 전체적인 스타일은 구세계와 매우 비슷했다. 고층 빌딩이 많지 않고, 건물색과 형태가 비교적 단조로웠다.
구조팀은 성영희 덕에 몇 개 길목에 자리한 검문소를 순조롭게 지나 도시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때, 성건우가 돌연 창밖을 가리키며 흥분했다.
“어어어-!”
‘또 뭐야?’
그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돌린 장목화는 옆쪽 골목 안에서 기이한 차림을 한 두 사람을 발견했다.
입은 옷이 먼지투성이기는 했지만 평범한 편이었다. 하지만 기이한 부분은 머리에 조리용 알루미늄 냄비를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앞은 어떻게 보고 다니는 건지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두 사람은 곧 빠르게 골목길 끝으로 사라졌다.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그들을 쫓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성영희의 녹색 산악자동차는 곧 10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참 기백이 넘치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성건우는 곧장 차에서 튀어 나갔다.
성건우가 방금 본 주민들을 묻자, 성영희는 미간을 팩 찌푸렸다.
“걔넨 또라이들이야!”
“또라이?”
성건우는 실망하기는커녕 눈을 반짝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 이상자들이지. 습관이라 그래, 습관이라. 아무튼 저 사람들 머리는 다 정상이 아냐. 신경 쓸 필요 없어.”
성영희가 손을 휘휘 흔들었다.
성건우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얼마나 비정상인데?”
성영희는 구조팀도 이 문제에 흥미를 보이는 것을 보고 간단히 설명했다.
“머리에 약간씩 문제가 있어. 내 식대로 표현하면 무슨 피해망상증에 걸린 것 같다니까? 늘 누군가 자신들을 해하고 통제하려 한다고 생각해.”
“이유는?”
아직 성건우의 호기심이 해소되지 않은 듯했다.
성영희는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무심병에 놀라서 그래. 저들은 물자 총괄 위원회 위원 대부분이 이미 타락했다고 의심해. 어둠에 숨어 구세계 파괴를 일으킨 특정 세력과 결탁해, 뇌 통제기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몰래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모두를 저도 모르는 새 복종하게 하고 심지어는 생각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고 믿어.”
‘뇌 제어기? 진짜 정상들이 아니네.’
용여홍 입장에선 구세계 콘텐츠에서나 봤던 물건이었다.
그 사이 성영희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누구라도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면 사유 능력을 제거당하면서 생물적인 본능만 남게 된다는 거야. 그게 바로 무심자고. 그렇게 무심병의 원인이 설명되는 거지.”
‘뇌 제어기, 사유 제거, 무심병⋯⋯.’
장목화는 그 구세군 구성원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이론은 정말 그럴듯해서 완전히 부정하기도 힘들었다.
그 논리에는 모순되는 부분이 없었다. 뇌 제어기라는 물건이 실재하는지는 차치하고, 누구도 무심병의 기원을 밝혀내지 못한 현재 상황에서는 그들의 가설을 깊이 반박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구조팀 자신들 역시 그것이 신세계, 어둠과 일정한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다만 충분한 증거까지 갖추진 못한 상태였다.
성건우도 단박에 설득된 듯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그럼 냄비를 머리에 쓰는 이유는?”
성영희는 별 확신 없이 답했다.
“아마도 뇌 제어기가 뇌파에 영향을 미쳐 대뇌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 아닐까. 머리를 냄비로 완벽하게 감싸야만 자유로운 사고를 유지하고 세상의 진상을 똑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저들은 언제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알루미늄 냄비를 써.”
‘확실히 정신에 문제가 있네.’
용여홍은 재차 확신했다.
짝! 짝! 짝!
뒤이어 성건우가 박수를 보냈다.
“훌륭한 행위 예술이네! 게다가⋯⋯.”
돌연 고개를 돌린 그가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네가 전자파 차단복을 입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도 않고.”
“그렇지.”
게네바는 매우 솔직했다.
그 이야기에 용여홍은 바르르 몸서리를 친 뒤 얼른 캐물었다.
“그럼 그들 중에도 무심병에 걸린 사람이 있어?”
“당연히 있지.”
성영희의 답은 매우 단호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용여홍은 자신이 또 성건우에게 스리슬쩍 휘말렸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백새벽은 이 일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
“너희 구세군 스타일대로면 그들을 전부 정신 병원에 보내야 하는 거 아냐? 왜 저렇게 당당하게 길거리를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성영희가 코웃음을 쳤다.
“그자들은 만약 자신들이 표적이 되면, 물자 총괄 위원회 위원 대부분이 이미 타락했고 뇌 제어기를 이용해 영원히, 대대로 위에서 군림하려 한다는 의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내내 홍보해왔어.
그런 방면에서의 행동 방식이 조금 독특할 뿐이지, 다른 이들 일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 게다가 어떤 이들은 꽤 깊이 숨어있기도 해.
그자들은 냄비를 뒤집어쓰지도 않고, 알루미늄 조각을 구해 모자 솔기 속에 봉해. 겉으로는 정상인과 다를 바가 없어.”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에도 근원은 있을 텐데, 안 그래? 맨 처음으로 그런 낭설을 퍼뜨린 사람을 찾아서 감옥에 가두거나 하지는 않았어?”
“그건 나도 잘 몰라.”
그대로 옆으로 몸을 튼 성영희가 뒤쪽의 10층짜리 회색 빌딩을 가리켰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일단 통행증부터 받으러 가야겠다.”
용여홍은 그녀가 가리킨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빌딩 대문 옆에는 세로로 걸린 간판이 있었다.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여진 간판이었다.
[우베이 관리 위원회]
[입경처(入境處)]
[세무처]
[안전 검사처]
⋯⋯
성영희는 구조팀원을 이끌고 빌딩으로 들어가며 여유롭게 설명했다.
“사실 우리 구세군 대부분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어. 어음과 잔돈을 낼 때 이미 상당 부분 공제되거든. 세무처는 너희처럼 경내에 들어온 입경자나 경계를 넘어 다니며 무역하는 사람들, 그리고 유적 사냥꾼을 대상으로 설립된 곳이야. 입경처나 안전 검사처랑 같은 시스템에 속해 있어.”
장목화가 숨을 살짝 들이마시며 물었다.
“그럼 우리가 가진 물자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하는 거야?”
이는 퍼스트 시티보다 더 엄격한 수준의 관리였다.
그 말에 성영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내가 너희 물자들을 다 어음으로 바꿔두라고 한 거야.”
‘이래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과 친해지면 좋다니까.’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내 장목화는 게네바를 가리키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로봇은 관제품에 속할 텐데, 통행증 받는 데 아무 문제도 없겠어?”
성영희는 상당히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별문제 없을 거야. 다만 통행증에 이 로봇을 데리고 거점에 들어가지 말라는 조건이 하나 달리긴 하겠지. 혹시 로봇이 갑자기 통제 불능이 되면 끔찍한 참극이 벌어질 테니까. 우베이엔 로봇이 아주 많아.”
우베이에는 로봇이 난동을 피워도 제압할 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다행이네, 그럼 다행이야⋯⋯.”
장목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로봇이 있어도 상관없다면 그 이상의 다른 문제는 없을 터였다.
성건우는 잠시 동정심이 어린 눈으로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너 참 불쌍하다.”
“휴.”
게네바는 협조적으로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냈다.
* * *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성영희는 부하틀에게는 자유 시간을 주고, 구조팀을 데리고 1층 측면에 자리한 어느 홀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입국처’라는 간판이 붙어있었다.
성영희는 현장 직원들과 인사하는 대신 곧장 복도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뗐다. 안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할아버지, 이 유적 사냥꾼들이 통행증을 받고 싶답니다.”
6, 70살 정도 돼 보이는 노인은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눈빛은 날카롭고 분위기도 제법 단단해 보였다. 군관이 아닌 행정관을 대표하는 짙은 파란색 옷도 빳빳하고 단정했다.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듯 문가를 슥 둘러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라고 해.”
성영희는 구조팀에게 소개를 시작했다.
“이쪽은 홍 처장님, 입국처 처장이셔. 세무처 처장도 겸하고 계시고. 내가 말했던,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의 오랜 전우시기도 해.”
순간 흥분한 성건우가 앞으로 몇 걸음 나섰다.
“혼란의 시대와 신력 초기를 경험하신 구세군의 노전사이신 겁니까?”
성영희가 소개한 입국처 처장, 홍광명은 짙은 경계심이 어린 눈으로 성건우를 위아래로 몇 번이나 훑어보았다.
“난 혼란의 시대 초기에 태어나, 후기에 군대에 들어갔다. 뭐, 일을 적잖게 겪기는 했지.”
성건우는 등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더니 오른손을 왼 가슴에 얹었다.
“전 인류를 위해!”
홍광명의 얼굴에 떠오른 의혹에, 장목화가 얼른 나섰다.
“얘가 구세군을 열광적으로 숭배하거든요. 특히 어르신 같은 분들이 혼란의 시대 후기와 신력 초기에 했던 일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홍광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희가 데려온 사람이라면 각자 내력과 목적을 간단히 설명해 봐라. 너희들이 어떤 물자를 가지고 있는지, 그중에 대규모 살상 능력이 탑재된 무기는 없는지 확인만 하면 바로 통행증을 발부해주지.”
그리고 그가 낮게 웃으며 덧붙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안전 검사처에 먼저 갔었어야 할 거야.”
장목화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야 상대의 왼팔과 오른 다리가 정상이 아님을 알았다. 노인의 팔다리엔 어떤 모델인지 모를 기계가 이식돼 있었다. 그 시커먼 왼팔과 일어서는 동작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홍광명도 그녀의 눈빛을 읽은 듯했지만 화를 내기는커녕 웃었다.
“전투에서 잃었지. 네 동료 녀석처럼.”
용여홍의 기계 팔 역시 눈에 확 띄는 편이었다.
성건우는 그를 향해 충만한 존경심이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
뒤이어 성영희가 얼른 길을 비켜주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할아버지.”
홍광명은 약간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문제가 있는 부분은 기계 다리로 대체된 오른 다리가 아닌 왼 다리였다.
노인의 다리로는 기계 다리의 박자를 쫓아갈 수 없었다. 불균형한 다리의 움직임은 그리 조화롭지 못했다.
성영희는 따로 홍광명을 부축하려 하지 않았다. 구조팀에게도 그러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혹시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전투에서 입은 부상은 훈장이었다. 노쇠해지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