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42화 (642/649)

642화. 웍 전병

산악자동차에 주유를 마치자, 성영희와 부하들은 구조팀을 데리고 거점 구석의 야영장으로 향했다.

이동 중 유적 사냥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했다.

장목화가 그들을 유적 사냥꾼이라 확신한 것은 그들의 분위기가 거점 주민들이나 병사들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유적 사냥꾼으로 보이는 그들은 산만하고 거리낌이 없으며 타인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차 지붕에 올라가 음악을 틀고 몸을 흔들기도 했다. 그를 본 성건우의 눈도 반짝거렸다.

다만 이들은 구름산 서쪽의 유적 사냥꾼과는 또 달랐다. 절망감, 우울함, 방자함이 합쳐진 독특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데, 아마도 극심한 굶주림과 추위에 고생해 본 적이 없는 듯했다.

일단 야영장에 차를 세운 장목화는 성영희와 부하들에게 다가갔다.

“저 사람들, 유적 사냥꾼이야?”

“맞아.”

고개를 끄덕이던 성영희는 구조팀의 의혹을 느꼈는지 웃으며 덧붙였다.

“우리 구세군에서는 되고 싶다고 다 유적 사냥꾼이 될 순 없어.”

“뭐?”

성건우가 협조적으로 호응했다. 그렇다고 그가 느끼는 호기심이 거짓인 것은 아니었다.

“아이랑 노인을 제외한 구세군 모든 구성원은 각자 주어진 직무와 직책이 있어. 근데 어떻게 유적 사냥꾼이 되고 싶다고 바로 유적 사냥꾼이 되겠어?

너희는 믿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세력 범위에서 깊은 산이나 아직 탐색 된 적 없는 오염 구역 같은 소수의 몇 곳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에는 황야 유랑자도 없어.

처음에는 그런 직업을 아예 환영하지도 않았어. 유적을 탐색하고 물자를 수집하는 전문 인력이 따로 있으니까. 하지만 훗날 도시의 인구가 갈수록 많아지면서 분배할 직무도 점점 부족해지기 시작했지.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도 충분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지원자들을 받아 사냥꾼 협회에 가입시키기 시작한 거야. 그러니 우리 구세군에서 유적 사냥꾼이 되려면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 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성영희에게선 태생적인 자부심이 느껴졌다.

용여홍은 놀라운 이야기에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회사와 다를 게 없었다.

지금 구조팀 식구들도 안전부에 배정되지 않았다면 밖으로 나와 이런 자유로운 활동을 할 기회는 얻지 못했을 것이었다. 유적 사냥꾼이 되었을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다.

장목화는 머지않아 유적 사냥꾼에 대한 구세군의 태도가 변한 또 다른 이유도 추측해 냈다.

‘유적 사냥꾼은 사냥꾼 길드를 통해 애쉬랜드 각지의 기본적인 정보도 얻을 수 있지⋯⋯.’

이내 유적 사냥꾼들을 힐긋 보던 성영희가 약간 복잡한 얼굴로 얘기했다.

“저들은 이제 우리더러 고루하고 보수적이라고 놀려대. 하지만 저 사람들은 몰라. 탐색에서 아무 수확을 얻지 못했을 때도 굶주릴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야외에서 강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뭔지 말이야. 바로 그들의 가족, 우리 같은 정규군인데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부하들도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유적 사냥꾼 몇이 거점 모처에서 달려 나와 큰소리로 외쳤다.

“그 내부 범인 두 명에 대한 단서를 찾았어!”

‘이렇게 빨리 단서를 찾았다고?’

용여홍은 흠칫했다. 솔직히 애쉬랜드에 수배령이 내려진 범인이라도 운이 극도로 나쁜 게 아닌 이상 그리 쉽게 잡히진 않으리라 예상했었다. 용여홍 자신이 퍼스트 시티 중요 수배 대상이라 그렇게 생각한 경향도 있었다.

물론 구조팀은 경험 면에서도, 능력이나 신중한 판단력에서도 상당히 걸출한 조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퍼스트 시티에 몇 번이나 들락거리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을 붙잡을 인력 관리 수단이 결핍했고, 각종 기술의 단절, 자원 부족, 정보 교환에 생긴 문제 등의 요인이 있었다.

그런데 오전에 구세군의 두 내부자가 군용 물자를 훔쳐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오후에 바로 단서를 잡았다는 건 실로 충격적인 효율이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용여홍은 전에 들은 구세군에 관한 각종 소문과 성영희가 방금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흘린 상황을 토대로 이것이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구세군은 여러 방면에서 상당히 강한 인원 관리 능력을 보였다. 외부자는 반드시 검문받고 통행증을 얻어야 했고, 내부 강도와 황야 유랑자는 기본적으로 제거된 상태였다. 심지어는 유적 사냥꾼이 되기 위해서도 조직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각 거점, 혹은 암시장을 충당하는 유적 사냥꾼과의 접촉도 피하고 황야와 산봉우리에서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배반자들의 존재는 당연히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특수한 각성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들 한동안은 도망칠 수 있을지 몰라도 지나치게 오랜 도주는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단서가 발견되는 시점을 하루 이틀 정도 늦출 수 있을 뿐이었다.

물론 추리 광대처럼 효과가 오래 가는 능력이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구세군의 관리 수준으로 볼 때 일선 인원들에게 조사 중 그런 능력의 영향을 피하고 실제 상황을 알아내는 방법까지 이미 가이드로 제공했을 것 같았다.

등급이 낮은 치안요원들에게 여러 능력의 특징을 숨기며 자신들의 통치 안정성을 높이는 퍼스트 시티와는 전혀 달랐다.

이내 장목화가 고개를 들고 황급히 그 단서로 수배범을 쫓으려는 유적 사냥꾼들을 바라보았다. 용여홍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라면 장목화도 당연히 다 생각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장목화는 다시 성영희와 부하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웃었다.

“저녁에 뭘 먹어야 하나 고민인데, 여기 특색 있는 음식이 따로 있나?”

성영희가 약간 놀란 듯 되물었다.

“벌써 저녁 걱정을 하는 거야?”

바로 성건우가 나섰다.

“삶에서 식사만큼 중요한 게 있어? 우리는 매일 세 번 스스로를 돌아보잖아. 아침으로 뭘 먹을까, 점심으로 뭘 먹을까, 저녁으로 뭘 먹을까.”

구세계 콘텐츠에서 배운 이 말은 오늘날의 애쉬랜드에도 잘 적용되었다. 표현만 약간 바꾸면 딱 들어맞았다.

아침으로 먹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점심으로 먹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저녁으로 먹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장목화는 그를 한번 흘겨보곤 못 말린다는 듯 말했다.

“나는 준 민속학자거든. 지역마다 각기 다른 풍습을 경험하는 걸 좋아해. 각종 특색 있는 음식도 풍습에 포함되고.”

성영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구나. 난 네가 일부러 화제를 전환하려고 하는 줄 알았어. 혹시 우리 미움을 살까 봐 구세군 내부 도난 사건에 관한 관심을 표하지 않으려고.”

‘아니었어?’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태껏 그가 아는 장목화라면 지금 성영희의 추측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럴 의도가 아예 없진 않았지. 원래 초행자는 의심을 피하는 방법부터 알아야 하잖아.”

짝! 짝! 짝!

탁! 탁! 탁!

성건우와 게네바가 동시에 손뼉을 쳤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돌린 성건우가 게네바를 향해 말했다.

“어우, 이젠 인간화 정도를 숨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네!”

“세상을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

게네바가 솔직하게 답했다.

백새벽은 얼른 고개를 돌리고 저 둘과 모르는 사이인 척 하고 싶었다.

그러나 성영희와 부하들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눈치였다. 구세군의 핵심 도시인 우베이에는 로봇이 적지 않았고, 그들은 실제로 인간과 만담하는 로봇을 본 적도 있었다.

구세계 예술의 일종인 만담은 애쉬랜드인 위주의 일부 조직에서 계승하고 보존해오고 있었다. 구세군과 반고 바이오도 그런 조직 중 하나였다.

성영희는 장목화를 칭찬했다.

“훌륭해. 다른 외부 유적 사냥꾼은 그 이치를 모르더라고. 그래서 대개 변경 밖으로 호송되거나 법정에 올라 노역형을 선고받았지.”

‘암묵적인 경고인 건가?’

용여홍은 언제나 생각이 많았다.

뒤이어 장목화와 성건우가 호응하기 전, 성영희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점심에 너희들 통조림을 좀 얻어먹었으니까 저녁에는 우리가 우베이의 특색있는 음식을 대접할게.”

“좋아, 좋아!”

성건우는 조금도 사양치 않았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질 무렵, 성영희는 거점에서 장작을 한 무더기 교환해 왔다. 거기다 웍 하나, 알루미늄 대야 하나, 국자 하나까지 빌려왔다.

그녀는 일단 대야에 밀가루를 상당량 넣고, 물과 설탕 등을 붓더니 잘 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그런 뒤 한동안 달군 웍 안쪽 가장자리에 돼지기름 한 조각을 문질렀다.

준비 작업이 끝나자 성영희는 금속 국자로 알루미늄 대야의 하얗고 끈적끈적한 반죽을 하나 떠서 웍 안쪽 가장자리에 빙 둘렀다.

치직- 치직-

하나씩 뜬 국자 속 반죽은 곧 얇은 전병으로 익어갔다.

성영희는 익숙하게 불을 조절해가며 일정 시간마다 전병을 뒤집었다.

달콤하고 유혹적인 냄새가 번지자, 성건우는 절로 꼴깍 침을 삼켰다.

드디어 양쪽이 고르게 익자 내내 옆에서 대기하던 남자 구세군이 전병을 한 장씩 집어 각자의 도시락통에 넣어주었다. 개별로 예닐곱 장씩이었다.

장목화는 당장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팀원들에게, 특히 성건우에게 급하게 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성영희가 아직 요리 중이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전병까지 구웠는데도 대야엔 아직 반죽이 남아있었다. 성영희는 그 안에 물을 콸콸 부어 넣더니 휘휘 저은 반죽을 몽땅 웍에 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글부글 끓는, 냄새 좋은 수프도 하나 만들어졌다.

각자에게 수프를 반 통씩 덜어준 성영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기 통조림 몇 개를 더 꺼내 웍에 넣고 데웠다.

“우리처럼 체력을 많이 쓰는 사람은 고기 없이 전병만 먹으면 안 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가 안 차잖아. 먹어봐, 다들.”

성영희가 구조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성건우는 바로 허겁지겁 전병 하나를 입에 넣었다.

친구 용여홍도 질세라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부드럽고 찰지고 쫄깃한 식감이 느껴졌다. 씹으면 씹을수록 밀가루 향과 설탕의 단맛이 어우러졌다.

턱의 움직임은 점점 빨라지더니 용여홍은 눈 깜짝할 사이 전병 하나를 해치우고 즉각 수프를 들이켰다. 수프는 전병과 비슷해서 물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밀의 향과 단맛이 살짝 더해진 물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내 장목화도 고개를 들고 성영희를 쳐다보았다.

“훌륭한데? 이거 이름이 뭐야?”

성영희가 웃었다.

“우베이에선 웍전병이라고 불러.”

“진짜 요리 솜씨 대단하네!”

성건우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스물네다섯 살 정도의 여자 구세군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아, 성 대장님은 종종 직접 요리해서 근사한 음식을 먹게 해주셔.”

성건우는 바로 장목화를 돌아보았다.

“좀 배우세요.”

장목화는 그저 무표정하게 왼손을 들어 올려 그의 입을 직접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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