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0화. 데이터 업데이트
장목화가 겸손하게 웃었다.
“사실 나도 나중에야 깨달았어. 작은 흰둥이가 짚어내지 않았다면 못 알아챘을걸.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사이에 피어난 전우애라고만 여겼겠지.”
용여홍은 약간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우리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그때,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전 이런 방면에 꽤 예리한 편이거든요.”
‘엇?’
순간 긴장한 용여홍이 버벅거렸다.
뒤이어 솔직한 게네바가 말했다.
“난 그 부분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다른 문제를 분석해냈어.”
“뭔데?”
용여홍이 주도적으로 물었다.
게네바는 금속 목을 움직이며 답했다.
“성영희와 남편이 결혼한 지는 거의 1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이가 언급된 적은 없어. 애쉬랜드의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세력에게 임신과 출산은 최우선 순위의 기본 정책이잖아. 구세군도 예외는 아닌데.”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낳긴 했어도 기르진 않거나, 임신했다는 사실도 모르다가 침입자나 퍼스트 시티의 습격에 유산해버린 것일 수도 있지. 이유는 많아. 외부 환경은 회사 내부랑 달라서 임신도, 출산도 힘든 환경이잖아. 이제 저녁 준비 하자.”
장목화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정리했다.
오늘 저녁은 구조팀이 최근 거래한 신제품 산채(酸菜) 돼지고기 통조림이었다.
* * *
그 시각, 개울 동쪽에선 울퉁불퉁하고 낡아빠진 녹색 지프 한 대가 다가와 거점 대문 앞에 섰다.
“성 대장, 데이터 업데이트를 하러 왔어!”
지프의 보조석에 앉은 누군가가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얇은 펠트 모자를 쓴 도둑 같은 행색의 남자는 객지에서 상당히 고생한 듯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그를 알고 있지만 일단 관례대로 두 부하를 보낸 성영희는 거점을 찾아온 두 사람의 몸수색과 지프까지 수색한 후에야 안으로 들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전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잖아?”
성영희가 담장 위에서 목제 계단으로 내려오며 남자를 다그쳤다. 조금 전 구조팀과 대화했을 때의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의 성영희는 매우 매섭고 거칠었다.
“아, 진짜 억울해! 오는 길에 차가 고장 나서 수리하느라 엄청 지체됐어.”
흡사 도둑놈처럼 보이는 이 남자는 우베이 사냥꾼 길드 직원으로, 이름은 장신광이었다. 그는 동료와 정기적으로 주위 넓은 구역에 자리한 거점과 변경 초소를 돌며 사냥꾼 정보를 갱신하고 데이터가 최대한 통일되도록 만들었다.
성영희는 더 이상의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곧바로 장신광과 동료를 거점 안쪽 깊은 곳,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2층짜리 건물로 데리고 갔다.
건물로 들어간 성영희가 휴대용 컴퓨터 한 대를 가리켰다.
“왜 이렇게 버벅거리는지도 좀 봐줘. 사냥꾼 정보를 좀 찾아보려 하는데도 한참이 걸리더라고. 결국 그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못했어.”
“알겠어!”
장신광은 전문 교육을 받은 기술자였으며 유적 사냥꾼도 겸했다. 평소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자연히 완수할 수 있는 임무들도 있어서였다. 특정 초소에서 일하는 병사들 편지를 집으로 전해주는 것이 그 예였다.
한 차례 정리를 하고 나니 성영희의 컴퓨터는 멀쩡해졌다.
이후 USB를 컴퓨터에 꽂은 장신광은 애쉬랜드 각지의 최신 사냥꾼 데이터를 업로드하며 기존의 데이터를 덮어씌웠다.
성영희는 이를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서시월, 장우병, 전하얀, 고지용, 이 사냥꾼 네 명 좀 다시 검색해줘. 아까는 이 사람들이 왜 퍼스트 시티 현상 수배자가 됐는지 확인을 못했거든. 사냥꾼 번호는 각각⋯⋯.”
그녀가 옆에 놓인 종이 한 장을 들고 적어둔 숫자를 줄줄 읊었다.
“알겠어.”
장신광은 힘차게 키보드를 두들겼다.
곧 그는 구조팀의 자료를 찾아냈다.
동시에 장신광은 압정을 깔고 앉기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현상금 2만 오레이?”
‘돼지고기를 몇 근 아니, 몇 톤이나 살 수 있는 금액이잖아! 얼마나 위험한 팀이길래 이렇게 많은 현상금이 걸린 거지?’
“그건 알고 있어. 수배된 이유를 알고 싶다니까.”
성영희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구조팀에 걸린 현상금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면, 그들의 최종 목적지가 빙원이 아니었다면 그녀도 절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장신광은 꼭 밖에 괴수 몇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에 불안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내 장신광이 다시금 흠칫 놀랐다.
“퍼스트 시티를, 헉! 퍼스트 시티를 노린 거대한 음모를 세웠다는데?”
성영희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거대한 음모? 퍼스트 시티를 노린?”
‘저 네 명이랑 로봇 한 대가?’
장신광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에는 그렇게 나와 있어.”
“그렇지, 퍼스트 시티에서 수배 내린 이유가 꼭 사실이란 법은 없으니까. 거기선 때때로 진짜 이유를 가리려고 구실을 대기도 하니까. 근데 이렇게 중시를 받는 건 그들이 분명 뭔가 대단한 일을 했기 때문일 거야. 상부에 보고하고 그들한테 더 심층적으로 접촉할지, 말아야 할지 확인해야겠어.”
빠르게 평정심을 찾은 성영희는 방 한쪽에 놓인 무선 통신기를 쳐다봤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짐을 꾸린 구조팀은 차에 올라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개울 맞은편 변경 거점 대문이 열리더니 성영희와 정평안이 걸어 나왔다. 성영희는 먼저 웃으며 구조팀에게 인사를 했다.
“이렇게 일찍 가?”
성실한 성건우가 반문했다.
“혹시 우리한테 점심 식사라도 대접해주려고?”
하마터면 사레에 들릴 뻔한 성영희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조금 기다려줄 수 있어? 마침 우베이로 가서 보고할 게 있는데, 너희랑 같이 가고 싶어서. 나랑 같이 가면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할 거야.
우리 구세군은 다른 세력과는 좀 달라. 관리가 좀 엄격해.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나 소개, 통행증이 없으면 농장, 삼림장, 거점 대부분에서 물자 거래는 고사하고 너희 접근조차 허락하지 않을 거야.
너희한테 빙원에 가서 우리 남편 좀 찾아봐 달라는 부탁도 했잖아. 가는 길에 도움 좀 주고 싶어서. 그래서 이야기하는 거야.”
그녀는 다시 그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장목화가 아무 대답 없이 조용히 백새벽을 바라보자, 성영희가 덧붙였다.
“강제로 요구하는 건 아니야. 거절해도 돼. 나랑 같이 안 가더라도 골치만 약간 아파지는 거지, 물자 거래나 길 묻는 게 아예 불가능하진 않을 거야.
황야 각 거점 외부에 브로커 역할을 하는 유적 사냥꾼이 있거든? 그 사람들을 통하면 적잖은 일은 다 해결할 수 있어. 좀 상대적으로 불편하고, 꽤 톡톡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게 흠이지만.”
우베이는 구름산에서 가장 가까운 초대형 거점으로, 구세계 도시에 상당할 정도였다. 또한 그곳은 비교적 위험한 구역 몇 곳을 우회해 가지 않는 이상 빙원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백새벽이 곧 고개를 끄덕이며 성영희 말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을 표하자,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호의를 거절할 리 있겠어? 마침 우베이에서 빙원에서 필요한 물자를 보충하고 관련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거든. 그런 것들은 퍼스트 시티에선 구하기 쉽지 않으니까.”
퍼스트 시티는 빙원과 직접 맞닿아 있지 않았다.
성영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걱정 마. 난 우베이에 아는 사람이 많아. 그들 도움을 받으면 각 방면의 검사도 빠르게 통과되고, 빙원으로 향하는 데 필요한 통행증도 마련할 수 있을 거야. 음, 우리 집안 어르신 한 분이 우베이 물자 총괄 위원회 후방 지원부에서 일하고 계시거든? 믿을 만한 물자 공급 루트도 소개받을 수 있어.”
그녀는 더 상세한 설명 대신 이쯤에서 적당히 마무리했다.
“정말 고마워!”
성건우가 장목화보다 먼저 두 손을 뻗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의 모습에 흠칫 놀랐던 성영희는 결국 성건우와 악수를 했다. 상대가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순간, 성건우의 얼굴이 다시금 진지해졌다.
“만약 너희 구세군에 가입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 대충 얼마나 걸려?”
성건우가 아직도 악수했던 성영희의 손을 잡고 있자, 정평안이 결국 참을 수 없다는 듯 끼어들었다.
“최소 어느 농장이나 삼림장, 목장, 도시 거점에서 만 3년은 살아야 해.”
“그렇구나.”
성건우는 퍽 실망한 듯 손을 거뒀다.
그 화제엔 관심도 없던 성영희는 손목의 조악한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15분 후에 출발하는 게 어때?”
“좋아.”
장목화가 흔쾌히 수락했다.
이내 변경 거점으로 돌아가는 성영희와 장평안을 바라보던 장목화는 살짝 고개를 틀어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회사 떠나고 싶어?”
성건우가 단호하게 답했다.
“에이, 그럴 리가. 조금 전의 저는 지금의 저랑 달라요. 저희는 10명이나 되는 거 알잖아요. 한 명이 따로 구세군에 가입한다 한들 큰 문제는 없어요. 아홉은 여전히 회사 소속이니까요!”
“하…….”
장목화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뱉은 한숨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 *
이후로 1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성영희가 녹색 방탄 산악자동차 한 대를 몰고 거점 대문을 빠져나왔다.
구조팀의 지프도 즉각 작은 개울을 건너 그 차 옆에 이르렀다.
보조석에서 그 차를 슥 훑어본 장목화는 성영희의 차에 남자 두 명과 여자 하나가 탑승해 있는 걸 확인했다. 다들 구세군의 검은 제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그중에 그 장평안이라는 소년은 없었다.
성건우는 차창을 내리고 성실하게 물었다.
“어? 장평안은?”
운전석에 앉은 성영희가 구조팀을 돌아보며 웃었다.
“걔는 거점에 남아있어야 해. 나랑 그 애, 그리고 나머지 둘이 여기 배치된 사람 중에 좀 강한 전사거든. 동시에 둘이나 자리를 비우면 안 돼.
전에도 장평안이 너희들한테 뭔가 문제가 있으면 어떡하냐고, 굳이 나랑 같이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면 난 혼자 너희를 만나러 왔을 거야. 자칫 일이 잘못되더라도 전력에 큰 손실이 발생하지 않게.”
성영희의 태도는 아주 당당하고 솔직했다.
장목화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런 변경 거점에 각성자가 무려 넷이나 있다고? 아니면 실력은 비슷하지만 강화 방향은 다 다른 사람들인 건가?’
어느 쪽이든 구세군이 당시 퍼스트 시티를 곤경에 처하게 했을 만큼 극도로 강한 대형 세력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간단한 대화를 마무리한 성영희는 구름산 동쪽으로 이어지는 길에 먼저 올랐다. 구조팀의 지프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전방을 주시하던 장목화가 불쑥 웃었다.
“성영희는 장평안의 마음을 알고 있나 봐. 허울 좋은 구실로 일부러 떼어놓고 온 것을 보면.”
백새벽이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육감은 무서우리만치 예리하니까요.”
용여홍이 재차 긴장했다. 장목화가 이 화제를 이어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점점 충격적일 정도로 험준하거나 심하게 파괴된 몇몇 구역을 천천히 통과하니, 도로도 평탄하고 넓어지기 시작했다. 유지보수 된 흔적이 또렷했다.
“퍼스트 시티에서 오랫동안 손 보지 않은 황야 도로보다 훨씬 나은데?”
성건우가 거만하게 창밖을 가리켰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구세군으로 착각할 법한 자세였다.
장목화는 그를 노려보지도, 콧방귀를 뀌지도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감정이 어린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구세군의 동원 능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부분이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전방의 녹색 산악자동차가 길 한쪽의 탁 트인 곳에 멈춰 섰다. 곧이어 차 문을 열고 내린 성영희가 지프를 향해 외쳤다.
“이제 정오야. 잠깐 쉬면서 뭘 좀 먹자. 이후에는 산에서 나갈 때까지 계속 달려야 하니까.”
“좋아!”
매우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성건우를 보며, 장목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얘는 대체 누구를 팀장으로 생각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