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화. 산속
곧이어 백새벽도 입산로를 향해 차를 몰며 설명했다.
“여기 와본 적은 없는데 예전부터 어느 정도 알고 있기는 했어요. 당시 구세군은 도처로 사람을 파견해 황야 유랑자를 모으고 조직해 구름산 동쪽으로 보냈었어요.
식량은 좀 부족하지만 산과 강에 의지해 먹고 마시면서 제도를 엄격히 준수하며 살다 보면, 다들 힘겹기는 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 후 함께 노력하면서 위험에 대항하고, 오염이 그리 심각하지 않은 구역에 논밭들을 개척하고, 공장을 세우면 더는 누구도 굶주림과 추위에 고생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백새벽의 말투는 느릿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그때의 심경이 떠오르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성건우는 허리와 등을 곧추세우더니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었다.
“전 인류를 위해!”
‘전 인류를 위해’는 구세군의 구호이자 이상이었지만,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해’라는 건 성건우의 것이었다. 그는 이 둘을 확실히 구분했다.
백새벽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시 저희가 살던 거점에도 구세군 사람이 왔었어요. 그 사람은 저희한테 그런 미래를 설명하면서 퍼스트 시티 군대를 피해 구름산을 통과하는 방법도 알려줬어요. 그게 바로 이 길이에요. 전에 퍼스트 시티에서 흩어져서 지도와 정보를 수집했을 때도 한눈에 이 길을 알아봤어요.”
진지하게 듣던 용여홍이 얼른 증언했다.
“맞아요. 그때 작은 흰둥이가 이 길의 상황을 일부러 물었었어요.”
“맞아.”
게네바도 확인해주었다.
장목화는 일단 이 길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른 부분이 더 궁금했다.
“당시 너희 거점에서 구세군을 따라나선 사람이 있었어?”
“적지 않았어요. 우리 부모님도 그러고 싶어 했었고요. 근데 제가 좀 어려서 긴 여정을 떠나긴 힘들 것 같아 몇 년 더 기다렸다가 결정하기로 하셨어요. 그 후엔 두 분 다 돌아가셨고요. 최근 십수 년 동안 구세군이 아직도 그런 일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요.”
입술을 오므린 백새벽을 보며, 장목화는 자연스레 이 화제를 흘려보냈다.
“그렇구나.”
* * *
지프는 점점 산 안으로 진입했다.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길 양쪽의 숲은 점점 우거졌고 먼 곳에선 수시로 새 소리도 들려왔다.
구세계가 파괴된 지도 어언 70년 가까이 되었다. 인류 문명이 이 지역에 미친 영향이 감퇴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대자연은 이미 그 모든 흔적을 깨끗이 없앤 듯 잡초가 우거진, 오랫동안 보수되지 않은 낡은 도로만이 남아있었다.
성건우는 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황야에는 또 어떤 특이한 조리 방식이 있을지 고민 중인 것 같았다. ‘굽기’만 생각했는데도 절로 흐르는 침에 결국 그는 손을 들어 입가를 훔치기까지 했다.
지프가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동안 구조팀은 이따금 차에서 내려 길 한복판을 막은 돌이나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푹 꺼진 홈을 메웠다.
이에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오전 9시에 출발했는데 오후 4시가 넘을 때까지도 구조팀은 여전히 구름산 안에서 힘겹게 나아가고 있었다.
다만 이때쯤은 퍼스트 시티의 실제 통제 범위에서 벗어난 듯했다.
이윽고 왼쪽으로는 높은 절벽이, 오른쪽으로는 깎아지르는 듯한 낭떠러지가 자리한 구역을 통과하려는 순간, 장목화의 눈빛이 돌연 굳어졌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고개를 돌린 그녀는 매우 자연스럽게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인간과 비슷한 생물 전기 신호가 있어. 둘이야.”
생물 전기 신호에만 의지해서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중형 동물 역시 인간과 체격이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성건우가 곧장 대꾸했다.
“인간 의식은 안 느껴져요.”
용여홍과 백새벽은 긴장감이 솟았다.
이내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큼직한 원숭이 두 마리거나, 각성자 두 명이겠네. 구세군이 순찰하고 있는 건가?”
이 길이 구세군이 알려준 비밀 노선이라면, 그 감시 아래 있을 것이었다.
“이제 어쩌죠?”
용여홍은 장목화처럼 그들 오른편, 대량의 초목으로 뒤덮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지는 않았다.
그 말에 장목화가 웃었다.
“일단은 신경 쓰지 말자. 우리는 어쨌든 구세군 사람과 접촉하게 돼 있었어. 모른 척하는 것도 마냥 나쁜 일만은 아냐.”
“네, 게다가 우리는 치안 관리 위원회의 서동수도 알고 있으니까요.”
용여홍이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구세군의 핵심 기구는 물자 총괄 위원회였고, 치안 관리 위원회는 그 직속 기구에 속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반고 바이오 질서 감독부와 대외 작전 기능을 뺀 안전부를 합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실권이 상당히 큰 편이었다.
구세계 용어를 빌리자면 구세군은 군대와 정부가 단단히 합쳐진 세력이었다. 그래서 내정 관리 여러 방면에서 짙은 군대적 색채를 띠었다.
이는 애쉬랜드에서는 특이한 사항이 아니었다. 반고 바이오와 같은 소수에서만 군대와 관리자를 확실히 분리했지,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했다.
이내 용여홍의 말을 들은 성건우가 혀를 찼다.
“구세군 내부에 정치적 투쟁이나 파벌 갈등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만약 우리가 맞닥뜨린 게 서 위원의 정적이라면?”
용여홍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가 본 구세계 콘텐츠와 경험했던 여러 세력의 상황에 비춰보면 사람이 있는 곳엔 분명 알력 다툼이 있었다.
다시 장목화가 나서서 코웃음을 쳤다.
“건우 넌 구세군이 이미 타락했다는 걸 믿은 적도 없잖아? 그들을 여전히 이상으로 충만한, 빛나는 조직으로 여기고 있던 거 아니었어?”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는가 싶던 성건우가 비통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아, 지금의 건우는 감정을 중시하는 녀석인가, 아니면 악을 증오하고 전 인류 구원을 자신의 임무로 삼은 녀석인가?’
곧이어 게네바가 백새벽과 교대해 운전대를 잡았다.
곁에서 장목화가 말했다.
“방금의 속도를 유지해줘.”
* *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위험한 길모퉁이에서 돌연 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정지! 더 이상 전진하지 마라! 안 그럼 원거리 폭격을 당할 것이다!
애쉬랜드어였지만, 사투리가 약간 섞여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본 장목화는 길 가장자리 나무 한 그루에 설치된 녹슨 확성기를 발견했다. 연결된 회선은 초목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장목화는 이미 이런 상황도 대비하고 있었던 듯 게네바에게 말했다.
“멈춰.”
지프가 길 중앙에 서고, 구조팀은 속속들이 차에서 내렸다.
이런 환경에서는 차에 앉아있는 것도 그다지 안전하지는 못했다. 표적이 되기는 쉬우나 피하기는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 너희는 누구냐. 여기에는 왜 왔지?
다시금 확성기로 그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낡은 설비 때문인지 목소리는 약간 변조되어 있었다.
장목화가 답했다.
“유적 사냥꾼이다. 구름산 동쪽으로 가서 일을 좀 해보려고 왔어.”
- 왜 퍼스트 시티에 머무르지 않고?
여성은 성건우의 감지 범위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장목화는 곧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운이 별로 좋지 않았거든. 퍼스트 시티에 현상 수배됐어. 너희가 있는 이곳에도 사냥꾼 길드는 있을 것 같은데. 원한다면 그들을 통해 확인해봐. 우리가 정말로 퍼스트 시티에 현상 수배됐는지, 아닌지.”
- 이름, 사냥꾼 번호.
구조팀에게 사냥꾼 배지를 직접 요구하진 않는 걸 보면 여자는 꽤 매너가 있는 편인 듯했다.
장목화가 가짜 이름과 진짜 번호를 대자 상대는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 현상 수배당한 이유는?
장목화는 잠시 멈칫했다. 무슨 이유로 현상 수배를 당한 건지 바로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한두 번도 아닌 일이라 약간 공백이 생겼다.
“군용 외골격 장치 세 대와 인공지능 갑옷 두 대를 훔쳤거든!”
- …….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다 함께 노력했지만 결국 자신들의 장비 현황을 폭로하는 성건우를 막지는 못했다.
여자가 침묵에 빠진 사이, 성건우는 다시 또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여자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시 확성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나온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 확인 끝. 정말 퍼스트 시티 현상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군. 현상금도 꽤 높고. 여태까지 붙잡히지도 않은 걸 보면 그만큼 실력이 뛰어나단 거겠지.
“맞아, 맞아.”
성건우는 조금의 겸손도 떨지 않았다.
장목화가 웃었다.
“지금 우린 누굴 공격할 의도도 없어. 거기다 우리 최종 목적지는 빙원이고. 외부에서 온 사냥꾼을 무턱대고 배척할 생각은 아니지?”
적어도 구세군이 다른 세력에서 온 유적 사냥꾼을 본인들 세력 범위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 빙원?
약간 의아해하던 여자는 몇 초간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 우린 간첩 노릇을 하는 유적 사냥꾼을 환영하지 않을 뿐이야. 계속 가도 좋아. 거점을 마주치더라도 외부에 야영지만 마련해야지, 절대 그 안에 들어가면 안 돼. 굳이 거점에 들어가려고 하면 심층 검사를 받게 될 거야.
정상적이고 순조로운 대화에 장목화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 * *
지프는 한쪽에 절벽을 낀 울퉁불퉁한 도로를 한참 달려 한 산골짜기에 이르렀다. 골짜기에선 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 소리가 들려왔다. 앞을 향해 즐겁게 흘러나가는 그 물줄기는 드넓은 옥토를 적시고 있었다.
개울은 깊지 않았다. 심지어 약간 얕아서 지프는 직접 바닥에 깔린 자갈을 밟으며 개울을 건넜다.
여기서 끊긴 길은 개울 너머에서 이어졌다. 중앙에는 철근과 진흙을 섞어 만든 소형 거점이 세워져 있었는데, 거점을 에워싼 높다란 담장 위엔 검은색 구세군 제복을 입은 남자 몇 명이 있었다.
반자동 소총, 돌격 소총 등의 무기를 멘 남자들은 가만히 서서 구조팀을 예리하게 주시했다.
그 주위로 개울에 에워싸여 펼쳐진 논밭에는 마찬가지로 군복을 착용한 남녀가 경작 중이었다.
보조석에서 장목화는 이 광경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곳은 변경의 군사 거점이었다. 이런 거점의 군인들은 교대로 순찰하고, 경작하고, 사냥에 나섰다. 탄약과 의복 등 후방에서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것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주위를 슥 둘러보며 능숙하게 몇 가지 흔적을 발견한 장목화는 골짜기 사방의 절벽에도 구세군 몇 명이 매복해 있으리라 판단했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거점을 습격할 것에 대비하려고 수백 미터 밖에 강력한 장거리 화력도 준비해뒀네.’
이내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웃으며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날이 곧 어두워질 테니 오늘은 개울가에서 야영하자.”
“좋아요!”
곧바로 호응한 성건우는 냅다 차 문을 열고 내렸다. 그는 그대로 군사 거점을 마주한 채 오른손을 왼 가슴에 얹고 큰소리로 외쳤다.
“전 인류를 위해!”
거점 담장 위의 구세군들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다 상대가 그 이상의 행동만 보이지 않으면 그냥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뒤따라 내린 장목화는 성건우 뒤에서 입을 비죽이며 그를 모른 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