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5화. 언쟁
긴 탄성을 뱉은 성건우는 방에 들어가 선장의 주위를 두 바퀴 돌았다. 그러고서야 제자리에 멈춰서서 모국어로 한탄했다.
“너였구나!”
어둠의 근원은 선장 체내에 자리해 있었다.
뒤이어 턱을 쓰다듬던 성건우가 선장의 아리아를 무시한 채 중얼거렸다.
“체내에서 기인하고 있어⋯⋯.”
어느새 오른 어깨 위로 성실한 성건우의 머리가 돋아났다.
“먹어서는 안 될 것이라도 먹은 건가?”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발랄한 성건우도 왼 어깨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무엇이든 몸에 박혀 있는 게 아닌 이상에는 결국 밖으로 배출되고 말아. 형태는 변하지 않더라도.”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가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말을 이었다.
“몸에 박혀 있다? 뭔가 떠오르지 않아? 이식받은 골수, 연구자였던 여신, 다피티르 오스라⋯⋯.”
성실한 성건우는 다시 폴짝 뛰어오르듯 목을 길게 뺐다.
“어둠의 근원, 신세계와의 교차점이 다피티르의 골수라고?”
발랄한 성건우도 이번에는 농담 따위로 유머 감각을 뽐내는 걸 자제했다.
“그 여자가 신세계에 진입하면서 현실에 남은 그 여자의 육체가 변이한 거야? 기증한 골수까지 다 포함해서?”
중앙의 성건우는 그 추측을 암묵적으로 시인하며 웃었다.
“잊지 마, 그 사람은 연구자이기도 했다고.”
여태까지 찾아낸 무심병의 근원에 관한 여러 단서는 구세계에서 이루어진 어둠과 신세계 관련 과학 실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애쉬랜드에서 가장 미스터리하고 위험할 뿐 아니라 구세계 파괴 원인을 밝혀내려는 이들을 저지하고 있는 조직은 제8 연구원이었다.
말을 마친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의 표정은 즉각 차가워졌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서성이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선장을 바라보다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가 뭐든, 어둠의 근원이 저 사람 체내에 있는 것만은 확실해. 저 사람한테 전기 충격을 가한다면 이 여객선의 이상 현상을 해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 트라우마를 통과할 수 있어.”
다른 성건우들은 동시에 침묵했다.
몇 초 후, 자비로운 제도 선사가 망설이다 물었다.
“전기 충격을 받으면 저 사람은 죽지 않겠습니까?”
음험한 성건우가 반기계 승려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차라리 잘된 일 아냐?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리면 저 신세계 교차점은 그대로 묻혀 버릴 거야.”
이에 악을 증오하며 전 인류 구원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는 성건우가 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저 사람은 나쁜 짓 하나 한 게 없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염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락사시킬 순 없잖아.”
“정신 차려! 이건 그냥 트라우마야. 이 안의 사람들은 다 허상이라고!”
음험한 성건우가 일갈했다.
하지만 정의감이 투철한 성건우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군자는 혼자 있어도 마음가짐을 바로 가져야 한다고 했어. 가상 세계에 있다고 멋대로 굴거나 우리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어길 수는 없지.”
음험한 성건우가 콧방귀를 뀌었다.
“위선자! 선장을 처리하지 않으면 마지막 날 이 배에 탑승한 승객 대부분이 무심병에 걸려! 그 알량한 선량함 따위가 뭐라고 수천 명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두겠다고? 그게 선량함이야? 퉤, 어쭙잖은 자아도취지!”
이번엔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가 악을 증오하는 성건우를 도와주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선장 입장에서 생각해 봐. 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수동적으로 감염됐을 뿐인데 누군가 나를 죽이고 제거하려 들어. 그럼 어떤 생각이 들겠어? 어떻게 하겠어?”
음험한 성건우는 대답에 거침이 없었다.
“당연히 그들을 죽이려 하겠지! 그래서 전 인류를 적으로 돌리게 되더라도 상관없어! 빌어먹을,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이 다 무슨 의미인데? 이런 상황에서의 선택은 결국 본인이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 달린 거 아냐?
내가 다수라면 소수의 권익을 존중해야 한다는, 어떤 개체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깃발을 든 쪽과 맞서야지. 우리를 절대 공격하지 못하게. 최악과 차악이 있으면 무조건 차악을 골라야 하는 거 아냐?
근데 내가 소수면, 피해를 받을 수도 있는 개체라면, 당연히 모두에게 죄짓고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냐고 으름장을 놓겠지! 그로 인해 전 인류와 맞서게 되더라도,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초래하더라도, 나부터 살아야 하니까! 이 두 가지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성모나 영웅밖에 없을 거야.”
그는 다른 성건우들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의 이념을 설파했다.
이기적인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낸 그 앞에서 나머지 성건우들은 한동안 반박할 방법도 찾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가던 그때,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굴 필요 없어. 현재 상황에 선장한테 전기 충격을 가하는 게 정말 제일 좋은 방법일까? 우리가 이전까지 처리해온 건 천장이었어. 근데 이번에는 인체야. 무슨 변화가 생길지 누가 알겠냐고.”
연이어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성건우 몸에서 돋아난 머리들을 바라보던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여긴 트라우마지만 정말로 어떤 상황이 발생해서 다치게 되면 현실 속의 우리도 피해를 받게 돼. 식물인간이 되거나 심지어는 그대로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최대한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음험하지만 겁 많고 유약한 성건우도 몇 초간 고민하다가 동의했다.
“하긴.”
이내 냉정하고 이성적인 성건우가 생각한 방안을 설명했다.
“일단 선장을 여객선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변화를 관찰하자.”
구조팀이 십자가 목걸이를 처리했을 때 썼던 방법과 같았다.
“좋아, 좋아!”
여태껏 동료들의 언쟁에 줄곧 숨을 죽이고 있던 맹종형 성건우가 얼른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성건우에게 돋아난 머리 열 개는 동시에 한창 무릎을 꿇고 앉아 구애의 아리아를 부르는 선장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전부 웃고 있었다.
그로부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침대보를 걸친 선장은 단단히 묶였다.
그 사이 성건우는 어둠에 오염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감히 능력을 사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뛰어난 신체가 있어 어렵지 않게 목표 대상을 포박할 수는 있었다.
“우우-”
계속해서 소리를 내는 선장을 짊어진 성건우는 마비되어 뒤로 옮겨둔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며 방에서 나가 갑판으로 향했다.
그의 목표는 여객선에 딸린 구명보트였다.
인간 의식 감지력과 민첩한 움직임으로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피한 성건우는 뱃전에 도착해 그곳에 달린 구명보트를 바다에 띄웠다.
이후 선장과 함께 그 구명보트에 탑승한 성건우는 여객선을 향해 오른손을 휘휘 흔들었다.
“바이바이!”
그는 마치 게임을 하는 양 신이 나 있었다.
밤중의 바닷바람은 매우 차가웠다. 성건우는 옷을 꽁꽁 여미며 무의식 상태에 처한 선장에게 말했다.
“운이 좋으십니다. 지금의 저는 자비로운 제도 선사고, 반기계 승려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그러지 않았다면 그 침대보는 벌써 제 차지가 되었을 겁니다!”
제도 선사는 덜덜 떨며 여객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구명보트를 몰았다. 구체적인 거리까진 계산할 수 없지만 5킬로미터는 충분히 벗어난 듯했다.
이후 고배율 망원경을 하나 구현해낸 성건우는 높은 하늘에 떠오른 달과 별빛에 의지해 여객선 상황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어둠은 여전히 그곳을 뒤덮고 있었지만 전보다는 약간 얄팍해진 상태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혼란과 광기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향 범위가 어마어마하네. 트라우마라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본질적으로는 거리를 벌릴 수 없기 때문인가? 정말로 전기 충격을 가하는 수밖에 없나?’
성건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다가, 선장을 다시 여객선으로 돌려보낸 뒤 트라우마에서 빠져나갔다.
* * *
현실 세계.
눈을 뜬 성건우의 시야에 어마어마한 적을 마주한 듯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그리고 제일 먼저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장목화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때?”
성건우는 관찰한 상황과 자신이 했던 일을 진지하게 설명했다.
설명이 끝난 뒤,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는 연구원과 연구자 이야기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니까.”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팀장님도 전에는 연구자였는데.”
“조수였어, 조수.”
겸손하게 대꾸한 장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을 이었다.
“그 트라우마, 혹은 방 주인의 인지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신세계 교차점을 제압해야 하나 봐.”
“혹시 무슨 아이디어라도?”
성건우가 체면 불고하고 물었다.
이내 백새벽은 입술을 오므리며 슬쩍 떠보았다.
“고압 전류로 전기 충격 가하기?”
“음, 그건 최후의 방법으로 쓰려고. 다른 방법은?”
성건우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게네바, 용여홍, 백새벽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트라우마의 규율부터 한번 정리하자.”
성건우가 빠르게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첫째, 일반적인 상황에서 트라우마에 들어갈 때 나타나는 장소는 지난번에 떠난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방 안이다⋯⋯.”
이는 그가 전에 이미 정리했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규율을 내뱉던 그가 마지막 규율을 언급했다.
“여섯째, 여객선에 오르기 전의 기간은 굉장히 특수한 것이었던 듯 그 이후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째 규율은 여태까지 그 어느 것에도 연루되지 않았어. 음, 다시 들어가서 요한과 살리를 비롯한 사람들한테 여객선에 오르기 전과 오르고 난 후에 뭔가 달라진 게 있느냐고 물어봐.”
탁!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쳤다.
“네!”
* * *
다시 들어와 보니 트라우마 속의 시간대는 대낮이었다. 모든 이들도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요한을 찾아낸 성건우는 또 한 번 그를 속이는 데 성공하면서 상대와 부모만 다른 형제가 되었다.
“이 여객선에 오르기 전과 오르고 난 후에 뭐가 가장 달라진 것 같아?”
성건우가 형형하게 빛나는 눈으로 물었다.
요한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기억을 더듬었다.
“마침내 안정됐지. 밤에 발생하는 이상 현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랬어. 더 이상 무심자들한테 쫓길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고⋯⋯.”
성건우는 그의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경청했고, 요한도 계속해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음, 이것도 달라진 점으로 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이전까지는 날씨가 꽤 따뜻한 편이었어. 이 긴팔 티셔츠만 입었어도 충분했는데 여객선에 오른 날 저녁 무렵부터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밤에는 추워지기까지 하더라고. 두꺼운 옷을 한 벌 더 입거나 이불로 온몸을 꽁꽁 싸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빌어먹을 선장, 에너지를 아끼겠다고 난방도 안 틀어준다니까!”
“추워졌다고?”
상대의 말을 되새기는 성건우의 눈빛이 점점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