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33화 (633/649)

633화. 우리한테 팔아

같은 시각, 야영지 안의 사냥꾼들은 기본적으로 원상태를 회복했다.

장목화 역시 몸을 훌쩍 일으키며 오른발과 왼발을 묶어두었던 매듭을 풀고 생명 천사 목걸이를 성건우의 전술 배낭 안에 던져 넣었다.

성건우는 못내 아쉽다는 듯 물구나무서기를 중단하고 똑바로 섰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 것을 확인한 장목화는 데이비스와 그의 동료들을 향해 물었다.

“그거, 너희들이 9호 폐허에서 찾은 물건이야?”

데이비스는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거기 특수한 능력이 있는 걸 보고 가져왔어.”

이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른 유적 사냥꾼이 불만을 표했다.

“전에는 이런 이상 현상이 없었나?”

‘진짜 하마터면 야영지 내 모두가 몰살당할 뻔했어! 저 미인과 동료가 전에 이런 경험을 했던 건지, 대응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데이비스는 동료들과 시선을 주고받은 뒤 미간을 살짝 구기며 말했다.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5분을 채 넘기지 않고 원상태로 회복됐어.”

장목화가 눈썹을 추켜 올렸다.

“그런데 왜 안 버린 거야?”

데이비스의 진술은 갈수록 그 무시무시한 여객선을 떠올리게 했다.

두 상황 모두 한동안 몇 차례 반복되었다. 다만 한쪽은 이미 결론이 났지만, 한쪽은 아직 그 단계까지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여유롭고 자신 있었던 데이비스는 자신을 향한 분노 어린 눈빛들을 보고 우물쭈물 중얼거렸다.

“버릴 계획이었어.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뭐?”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추궁했다.

곧이어 데이비스와 동료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잊어버렸어!”

“잊어버렸다고?”

어떤 사냥꾼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고, 어떤 사냥꾼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드러냈다.

성건우가 제 턱을 쓰다듬었다.

“저 물건의 부작용이 건망증인가?”

데이비스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대꾸했다.

“그랬군⋯⋯.”

장목화도 괜한 갈등은 원치 않아서 잠시 생각하다 화제를 바꿨다.

“그 물건, 9호 폐허 어디에서 찾은 거야?”

데이비스도 본인 팀이 야영지에 초래한 위험을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의 팀은 핏빛 황원 9호 폐허에 갈 시도도 했을 정도로, 다시 모두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그래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냥꾼을 다 당해낼 수는 없었다. 수적으로 불리하다면 승산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이제 건망증의 영향에서 벗어난 데이비스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 목걸이는 9호 폐허 어퍼이스트 구역에서 찾은 거야.”

“어퍼이스트 구역?”

성건우도 더 이상 물구나무 서서 걸을 수 없다는 실망감을 억누른 상태로, 매우 협조적으로 나왔다.

데이비스가 간단히 답했다.

“폐허 안에서 찾은 도시 지도에 표시돼 있었어. 거길 탐색했던 사람들이 좀 위험한 구역으로 알고 있더라고.”

“하지만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곳인가?”

장목화는 은근슬쩍 화제를 본론으로 돌려놓았다.

데이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랬어. 우린 어퍼이스트 구역에서 사냥꾼의 발길이 닿지 않은 한 아파트를 찾았거든. 그중 11층 왼쪽 집에는 시신 몇 구가 있었어. 소파에 기대앉아있거나, 침실 침대에 누워있는데, 살은 이미 썩어 증발했고 백골만 남은 상태였어. 그 목걸이는 소파에 있던 시체 앞에 놓여있었고.”

“그 시체들 살이 알아서 썩어 증발해버렸다는 건 어떻게 확신해? 무심자한테 뜯겨 먹은 것일 수도 있잖아?”

성실한 성건우가 또 성실하게 빈틈을 찾아냈다.

데이비스는 그를 한번 돌아보더니 약간 어색한 투로 말했다.

“경험 있는 유적 사냥꾼이면 한눈에 판별할 수 있는 단서가 있었지. 첫째, 그 시체들 옷은 약간 썩었지 비교적 온전했어. 찢긴 흔적 같은 건 없었고. 둘째론 온 집을 통틀어 피가 튄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 시체들의 사인은?”

갑자기 장목화가 끼어들었다.

핏빛 황원 9호 폐허는 폭격을 당한 적도 없고, 여러 부분이 꽤 잘 보존돼 있었으며, 심각한 방사능에 오염된 흔적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은 대부분 무심자의 습격으로 사망했을 테고, 일부는 식량을 쟁탈하는 과정에서 동족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데이비스는 당시에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는지 상당히 조리 있게 설명했다.

“내 생각에는 자살한 것 같아. 그 방의 자물쇠는 파괴되지도 않고 아주 단단히 잠겨있었어. 외부인이 들어갔던 것 같지는 않아. 시신들 자세도 그렇게 왜곡된 건 아니었고.

난 방 안의 그 사람들이 식량을 찾으려 밖으로 나가고 싶기는 했지만 도처에 널린 무심자 때문에 그 안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해. 그 후 극심한 굶주림과 절망에 완전히 무너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지.”

“냉장고와 냉동고도 확인해봤어?”

장목화가 캐물었다.

약간 멍한 표정을 보인 데이비스는 이후 또렷한 표정 변화를 보이며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그 동료들 역시 뭔가 엄청난 일을 떠올린 듯 충격과 두려움이 어린 표정을 드러냈다.

몇 초간 망설이던 데이비스가 혼란에 찬 눈으로 답했다.

“집 안의 대용량 냉동고에 상당한 양의 소고기가 얼려져 있었어⋯⋯.”

그건 그 사망자들이 굶주림으로 인해 절망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장목화가 말했다.

“만약 그들이 한 가족이었다면 구세계 파괴를 마주하면서 절망감에 자살을 시도했을 때 한곳에 모여 함께 일을 도모했을 거야. 그렇게 곳곳에 흩어져 있지는 않았겠지.”

“그렇지.”

성건우가 깊이 동조했다.

뒤이어 겁에 질린 데이비스가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여태 냉동고의 상황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거야. 우리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 목걸이에 영향을 받았던 걸까?”

심지어 악령에 씌기라도 한 듯 그 십자가 목걸이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신세계 교차점 부근에서 기이한 일이 발생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야.’

장목화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주위 유적 사냥꾼들은 이미 이 이야기에 푹 빠진 나머지 조금 전 발생한 이상 현상은 잠시 잊은 듯했다. 다들 긴장한 상태로 경계심을 높이고 있지만, 앞으로의 전개에도 관심을 보였다.

장목화도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대부분 묻고 싶어 할 질문을 던졌다.

“그 집에서 또 어떤 수확을 얻었어?”

데이비스와 동료들은 곧장 답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신들의 기억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한참을 생각해보며 세세한 부분까지 더듬어나가던 데이비스는 정리가 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탐색할 때 얻게 되는 것과 비슷했어. 가치가 높은 황금, 휴대하기 쉬운 전자 기기, 실용적인 지식이 있는 책, 심각하게 삭지는 않은 옷가지⋯⋯.”

사실 폐허 도시 안의 전자 기기는 대부분 망가져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잘 분해해 고르면 나름 온전한 전자 부품 몇 가지를 건질 순 있었고, 꽤 돈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어떤 전자 기기는 고치기만 하면 쓸 수도 있고, 모든 전자 부품이 다 망가진 폐품 역시 수요는 있었다. 구세계 과학 기술이 고도로 집약된 그런 상품에는 소수의 세력이 모방해 만들 수 있는 합금을 포함해 귀한 금속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말을 잇던 데이비스가 뭔가를 퍼뜩 떠올렸다.

“그 백골에서 핸드폰을 찾기도 했어. 목걸이 앞에 있던 그 백골 말이야.”

“그 핸드폰 아직 가지고 있어?”

장목화는 상기된 마음을 감추려 노력했다.

데이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퍼스트 시티에 가서 팔려고 했거든.”

“우리한테 팔면 안 될까?”

장목화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공갈이나 협박 등의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상황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데이비스가 망설이자 뒤이어 성건우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우리가 이런 일을 처리하는 데 경험이 있다는 거, 너도 알아차렸을 거야. 솔직히 말해서 이런 일에 따르는 위험도는 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야. 너희는 짐작도 못 할걸. 억지로 참여하려 했다가는 몰살당하고 만다고.”

데이비스가 알겠다고 말하려는데, 성건우가 또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만약 그 목걸이를 안 버렸다면 결국 어떻게 됐을지 알고 싶어?”

“어떻게 되는데?”

데이비스가 본능적으로 반문했다.

주위 다른 유적 사냥꾼들의 시선도 성건우에게로 몰렸다.

장목화는 같은 팀이 아닌 척하고 싶었지만, 아니, 그냥 성건우를 한 대 때리고 싶었지만, 곰곰이 고민해보면 저들에게 그 결과를 알려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인류 구원을 목표로 하는 구조팀이라면 모두에게 신세계와 관련된 물건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할 책임도 있었다.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줄이는 것도 그들의 역할이었다.

성건우는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초기에는 목걸이로 인해 일어난 이상 현상도 한동안만 유지되다가 다시 원상태를 회복해. 근데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위험이 한계점까지 쌓이면 현장에 자리한 대부분이 무심병에 감염돼. 구세계가 막 파괴됐을 당시처럼 결국 극소수만 살아남는다고.”

모두의 마음에 수십 년에 걸쳐 드리워진 그림자 같은 무심병이 언급되자 유적 사냥꾼들 전원이 헉, 하고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동시에 그들은 그런 일에 능한 팀을 만났다는 걸 무척 다행으로 여겼다. 그 반대의 결과는,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적잖이 놀란 데이비스 역시 황급히 옆에 있던 소가죽 배낭을 집어 들더니 그 안에서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핸드폰이 무심병 바이러스나 뜨겁게 달아오른 구운 감자라도 되는 양 허겁지겁 성건우에게 건네버렸다.

“그냥 줄게!”

그러곤 짐짓 대범한 척하기 위해 애썼다.

샴페인 골드 빛깔의 핸드폰엔 파손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꽤 낡기만 했을 뿐이었다. 성건우는 잠시 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이상도 없네.”

그는 아직 발목에 육식주를 걸어둔 상태라 어둠이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곧이어 장목화가 웃으며 1오레이 지폐 몇 장을 꺼냈다.

“아니야, 공짜로 가질 수는 없지. 우리는 늘 공평한 거래를 숭상하고, 깔끔한 계산을 지향해.”

데이비스가 손사래를 치려 하자 그녀가 얼른 덧붙였다.

“돈 안 받을 거면 핸드폰 다시 돌려줄게.”

화들짝 놀란 데이비스는 얼른 지폐를 받아들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질문이 이어졌으나 이렇다 할 단서를 얻을 순 없었다.

장목화는 이내 성건우, 게네바를 데리고 지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 * *

성건우는 현재 육식주 때문에 다리로 걷는 건 불가능했지만, 물구나무를 서서 달리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금 손으로 발을 대체하려다가 장목화의 눈총을 정면으로 받고 얌전히 육식주를 거뒀다.

백새벽과 용여홍도 방금 옆에서 동료들과 데이비스의 얘기를 듣고 있어서 대략적인 상황은 다 파악한 상태였다.

이내 백새벽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겐한테 그 핸드폰 데이터 다 복구해달라고 하려고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답했다.

“날이 밝으면 여길 떠나 황원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도해보자.”

“그래, 알겠다.”

게네바도 분석 끝에 가장 합리적이고 온당한 선택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 사이 성건우는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보면 여객선의 혼란도 정말 신세계 교차점과 관련돼 있을 수 있겠네. 육식주나 생명 천사 목걸이 속 기운을 심령의 복도로 이전해 봐야지. 그중 하나로 여객선에서 신세계 교차점의 구체적인 위치를 찾아내야겠어.”

하나를 보고 열을 알아낸 성건우는 금세 여객선 트라우마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는 이미 그 트라우마를 통과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혼란의 베일을 벗겨 그것의 진상까지 밝혀내려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근데 너한테도 방금 한 말이 똑같이 적용되는 거 알지? 날이 밝으면 이 거점을 떠나 황원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시도해보자. 지금 넌 정신력을 너무 많이 소모했어. 회복하려면 좀 자야 해.”

성건우는 바로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을 드러냈다.

“해가 언제 뜨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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