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25화 (625/649)

625화. 그래도 고마운 일이라

목욕을 마친 두 친구는 목욕 가운을 두른 뒤 뷔페식 식당에 들어갔다. 장목화, 백새벽은 이미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 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었다.

원로원 근처에 위치한 이 목욕탕은 상당히 고급이었다. 고기도 충분했으며, 디저트도 있었다.

성건우, 용여홍이 각자 음식을 담은 접시를 하나씩 들고 자리에 앉자 장목화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힐긋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는 물을 한번 벌컥벌컥 들이켠 뒤 말했다.

“소스 브레인 분신의 일을 처리하고 전자파 차단복과 전자파 방해기 준비를 마치면, 구세군 세력 범위를 통과해 빙원 타이 시티로 가자.”

길치가 되기 전 그녀는 반고 바이오 내부 자료를 통해 타이 시티가 빙원 동북쪽에 자리해 있음을 확인했었다.

만약 화이트 기사단 쪽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구조팀은 그 후 오랫동안 빙원을 관통해야 했는데 그러면 보급에도 어려움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반면 구세군 영역을 관통해 타이 시티로 향하면 도중에 적잖은 거점에 들릴 수 있었다.

짝짝짝!

성건우는 구운 소고기까지 내려놓고 장목화의 말에 손뼉을 쳤다.

언제나처럼 장목화도 그를 팩 쏘아보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스 브레인 분신한테 어떻게 적합한 동체를 찾아 주느냐야. 우리는 늘 신용을 중시해왔잖아.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지.”

‘그런가요?’

용여홍의 머릿속엔 장목화가 팀원들을 속였던 일들이 몇 차례 스쳤다.

“좋은 로봇을 찾기는 쉽지 않아요. 한 팀을 노려 그들이 가진 로봇을 꾀지 않는 한에는요.”

백새벽에게는 그쪽 방면의 경험이 풍부했다. ‘꾀다’라는 말도 굉장히 완곡한 표현이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 그 팀이랑 우리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번엔 백새벽이 그를 흘겨보았다.

“네가 네 신분을 드러내면 유적 사냥꾼 팀들이 적잖게 너를 잡으러 몰려들 거야. 그럼 원한 관계도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너무 위험해.”

장목화가 일단 티격태격하려는 팀원들을 말린 뒤,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완전히 망가진 로봇을 찾아보는 건 어때? 다른 사람은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도 모델은 비교적 최신인 로봇 말이야. 우리한텐 겐이 있으니까 적합한 전자 부품을 모으기만 하면 그런 로봇도 충분히 고칠 수 있을 거야.”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방법이네요. 그렇게 망가진 것들을 제외하면 저는 여태 가정용 로봇을 파는 사람만 만나봤어요. 그런 로봇에는 무기 모듈과 상응하는 프로그램이 없고 따르는 제약도 너무 커서 별로 인기가 없거든요. 보통은 해체된 부품으로만 팔려요.”

몇 초간 생각에 잠겨있던 장목화의 눈이 확 밝아졌다.

“그런 가정용 로봇 모델, 선진화된 거야?”

* * *

그린올리브 구역, 안타나 스트리트.

긴 망토를 걸친 게네바는 구조팀원들을 따라 한 가게로 들어갔다. 낡은 창고를 개조해 만든 가게였다.

각종 방식으로 전자 부품들이 가득 널린 가게는 마치 폭격을 맞은 폐허 도시처럼 어지럽고 난잡했다.

그 안에 레드리버인 사장이 낡아 빠진 테이블 앞에 앉아 각기 다른 도구로 무전기를 고치는 중이었다.

그때, 가게 안으로 드리워진 그림자에 사장이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았다. 구조팀 모두를 훑던 그의 시선은 마지막에 백새벽 앞에서 멈췄다.

“이번에는 또 무슨 부품이 필요해서 온 거냐? 마지막으로 온 지 한 2년은 된 것 같은데?”

옅은 노란색 수염을 지저분하게 기른 사장이 물었다.

“그 정도 됐네요. 혹시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로봇 있나요?”

백새벽은 아주 간단히 답한 뒤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순간 사장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 방면의 전문가를 찾은 거냐? 망가진 로봇을 고쳐 돈을 벌려고?”

철저히 망가져서 고칠 수 없을 정도인 로봇은 부품으로 분해해 파는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상황이면 총 일이천 오레이 정도는 벌 수 있지만 손상도가 심각하다면 이삼백 오레이를 건지기도 녹록지 않았다. 헐값에 고철로나 내다 팔 것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리된 전투형 로봇은 퍼스트 시티 세력 범위 전체를 통틀어도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제품이었다. 구조팀이 당시 구입했던 군용 외골격 장치보다도 훨씬 더 귀했다.

믿음직하고 전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여러 영향에 면역이 되어 있는 로봇 동료는 모든 유적 사냥꾼의 꿈이었다. 누구라도 조건만 갖춰지면 그런 동료를 마련하고 싶어 했다. 그런 동료라면 솔직히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현재 장목화, 성건우, 용여홍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가장 익숙한 동료 백새벽에게 전적으로 모든 걸 맡긴 것이다.

뒤이어 백새벽이 덤덤하게 답했다.

“그런 셈이죠. 망가진 로봇을 사서 부품을 분해하고 연구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는 선생이 한 분 계시거든요. 시장 사람들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했길래, 사장님한테 와서 운을 한 번 걸어보려고 한 거예요.”

사장은 본격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와 도구를 내려놓고 물었다.

“어느 세력 사람인데?”

대형 세력의 구성원이 아니고서야 새로운 모델의 전투 로봇을 만들어봤자 대량 생산으로 이익을 얻을 수가 없었다.

또한 각종 전자 부품을 모아 본인이 쓸 로봇을 한 대 만들려고 해도 이삼 년 안에는 완성하기 힘들었다.

“어느 대형 세력 사람인지는 관심 없습니다. 그 사람이 제시한 가격에만 관심 있을 뿐이에요.”

백새벽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사장이 중얼거렸다.

“구세계에 돌던 말이 하나 생각나네. 적대 세력에 무기를 팔지 않는 무기 상인은 좋은 무기 상인이 아니라고. 난 안타나 스트리트에서 자기 고객한테 살해당한 사람을 여럿 봤어. 너희가 그다음 사람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기름진 천을 들어 기름진 손을 닦은 그는 뒤쪽 방으로 이어진 통로로 향했다. 바로 이 가게의 창고였다.

구조팀도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지저분하고 난잡한 가게에 비해 창고는 의외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각기 다른 전자 제품과 구세계 전자 기기가 각각 다른 구역에 구분된 채 놓여 있었다.

창고를 슥 둘러보던 용여홍은 로봇 두 개를 발견했다.

하나는 몸이 거의 산산조각이 난 채 여러 부품이 빠져있었고, 다른 하나는 가슴팍이 뚫려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은 멀쩡한 편이었다. 금속 골격이 가는 편인데,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해 보였다.

곧이어 사장이 두 로봇을 가리키며 말했다.

“운이 좋군. 최근 핏빛 황원에서 돌아온 어느 유적 사냥꾼이 나한테 판 거거든. 하나는 전력망 수리 전문 로봇인데 전능형으로 개조할 수 있을 거야. 음, 그러니까 내 말은 수리 영역에서의 전능을 말하는 거지.”

이때 내내 조용히 있던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도 고쳐놓을 수 있나요?”

사장은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본 뒤에 답했다.

“아마도 가능하겠지. 스패너를 쥔 190센티미터짜리 강철 로봇이 평범한 사람 하나 못 두들겨 패겠어?”

성건우가 얼른 추산해 보았다.

“최소한 다섯은 때려잡을 수 있겠죠.”

“게다가 이것의 메인 모듈은 기관 단총, 돌격 소총, 유탄 발사기 사용에 제한도 없어. 잘 고치기만 하면 상당히 인기 있는 녀석이 될 거야. 근데 이것의 문제는 지나치게 손상 됐다는 거야. 메인 칩을 포함해 고치거나 바꿔야 하는 부품이 너무 많아.”

사장은 역시 사업가답게 일단 칭찬부터 깔아놓은 뒤 핵심을 말했다.

똑똑한 장목화는 그의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그냥 폐품이잖아⋯⋯.’

그 사이 사장은 다른 로봇 소개에 들어갔다.

“이건 메이드형 로봇. 인공지능은 아주 높은데 공격 모듈이 없지. 구세계 파괴 전에는 출고할 때 인조 가죽까지 덮어서 겉보기에는 우리 인간과 아주 비슷했다더라고. 손상도 그렇게 심각하진 않은 편이야. 메인 칩이 파괴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양심에 찔리는지 사장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로봇에게 메인 칩은 기술 함량이 가장 높아 대체할 수도, 복제할 수도 없는 부품이었다.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던 사장이 다시금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다른 사람한테 연구용으로 팔 거라고 했잖아. 이 두 모델은 시야를 넓히고 지식도 풍부하게 해줄 거다.”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백새벽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격은요?”

사장이 웃었다.

“저 수리 로봇은 1500 오레이야. 인기도 많고 부품들은 다른 로봇에도 쓰일 수 있으니까. 메이드형 로봇은 800 오레이. 진짜 싼 거야. 부품만 팔아도 700 오레이는 받을 수 있다고. 달지기가 비호하신다면 1000 오레이까지도 벌 수 있을 거고.”

두툼하지 않은 지갑을 만지작거리던 장목화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인공지능 정도가 높다라⋯⋯.”

그녀가 망토를 걸친 게네바에게로 시선을 돌린 순간, 게네바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드형 로봇은 아무 기능도 없지만 메인 칩만 없다는 것이 또 장점이었다. 소스 브레인 분신의 예비 칩을 꽂고 주위 회로를 복원한 뒤 배터리 칸을 고치기만 해도 활성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목화의 말과 게네바의 고갯짓까지 확인한 백새벽은 흥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구조팀은 720 오레이에 메이드형 로봇을 구입했다.

장목화는 백새벽에게 지폐를 건네며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을 해보았다.

‘경비를 신청할 때가 됐네.’

불모지 13호 유적을 탐색했다는 사실은 상부에 보고할 수 있었다. 전에 받은 경비를 그 탐색에 써버렸다고 알리는 것에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절대 게네바를 끌어들이지 않고 그 비밀 실험실 문제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 * *

레드울프 구역, 구조팀이 빌린 아파트 안.

성건우는 신중하게 활성화 버튼을 눌렀다.

뒤이어 두 걸음 뒤로 물러난 그는 동료들과 나란히 서서 은회색 메이드형 로봇을 주시했다.

메이드형 로봇의 눈에는 금세 빨간 불이 들어왔다. 붉은 눈빛을 한동안 번득이던 로봇은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이건⋯⋯.”

그 입에서는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축하한다고 말하려던 장목화는 미소만 지었다.

이내 메이드 로봇의 말투가 빨라졌다.

“왜 무기 모듈은 없지? 유용한 모듈을 찾아볼 수가 없어. 있는 것이라고는 쓸기, 닦기, 요리하기, 설거지하기, 창문 닦기 같은 것뿐이잖아⋯⋯.”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용여홍은 이 소스 브레인 분신의 인간화 정도가 실험실에 있었을 때보다 훨씬 높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상대는 잠시 이성을 잃을 듯한 조짐까지 보였다.

그가 생각한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본체에서 완전히 분리돼 더는 통제받지 않는 소스 브레인 분신의 핵심 모듈이 점차 인간화됐다는 것, 또 하나는 이 메이드형 로봇의 인공지능 수용도가 상당히 좋다는 것이었다.

일찍이 이 상황을 설명할 준비를 하고 있던 장목화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신 후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얼굴엔 친절한 미소를 장착했다.

“이건 임시방편입니다.”

메이드 로봇의 붉은 눈이 자신에게 닿자, 그녀는 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퍼스트 시티에서 괜찮은 전투형 로봇을 마련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1년, 2년, 심지어는 3, 4년을 들여도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이죠.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면 저희가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뜻밖의 일이 생길지 몰라요.

우리 임무가 무엇인지,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만약 저희가 당신에게 적합한 동체를 찾기도 전에 어느 날 유적에서 비명횡사하게 된다면 그건 더 손해 아니겠어요?”

순간 성실한 성건우가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퉤퉤퉤, 불길한 이야기! 얼른 취소해요!”

장목화는 그를 팩 노려본 뒤 메이드 로봇이 이미 냉정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금 웃음을 머금었다.

“그래서 저희는 일단 당신에게 그 칩을 수용할 동체부터 급히 찾은 거예요. 앞으로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요.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 가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요.

보세요. 저희는 이미 당신을 위한 유탄 발사기도 하나 마련해뒀습니다. 게네바가 이미 연구했으니 조금 개조만 하면 바로 장착할 수 있을 겁니다.”

한동안 붉은 눈을 번득이던 메이드 로봇은 은회색 금속 손을 뻗었다.

“아주 일리 있는 말이야.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워.”

그 말에 구조팀 전원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목화는 곧 왼손을 내밀어 상대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이내 손을 거둔 메이드 로봇이 퍽 만족한 듯 말했다.

“그럼 이제 잔여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을 게네바한테 알려주지. 아, 참. 이제부터 날 알파라고 불러줘. 이건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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