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23화 (623/649)

623화. 질주

쾅!

구조팀이 착지하자마자 데구루루 구르는 사이, 뒤쪽 건물은 폭삭 무너져 내렸다. 붉은 눈빛을 발산하며 쫓아오던 경비 로봇들도 전부 그 안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뒤돌아보지 않고도 군용 외골격 장치의 종합 경보 시스템을 통해 그 사실을 확실히 인지했다.

“당장 유적을 빠져나가자!”

장목화는 백새벽을 팔에 끼운 채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신세계와의 교차점이 파괴된 이후 퓨처의 전자파 방해 능력이 언제 다시 회복될지, 실험실 밖에서도 지금처럼 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탈출하더라도 곧장 무슨 공격을 받게 될지도 미지수였다.

당장 불모지 13호 유적에서 빠져나가 이 위험한 지대에서 멀어지자는 명령을 내린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쿵! 쿵! 쿵!

성건우, 장목화, 그리고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은 배터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도망치듯 원래의 길을 따라 인공 호수의 공원으로 돌진했다.

이동 중 무심자들에 시달릴 여유는 없어서, 다들 매우 날랜 동작으로 상대를 우회하기도 했다.

이때 태양은 지평선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고 석양볕 꼬리만 남아있었다.

완전한 밤이 돼서야 구조팀과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은 마침내 소수의 기이한 생물과 일부 무심자의 추격에서 벗어나 공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대문을 통해 동굴에 들어온 뒤 계속해서 또 한참을 달린 그들은 전에 군용 외골격 장치와 인공지능 갑옷을 담을 때 썼던 상자들을 발견한 후에야 걸음을 늦추고 자리에 멈췄다.

“하마터면⋯⋯.”

성건우의 품에서 벗어난 용여홍은 식은땀을 훔쳐내려 왼손을 들어 올렸다가,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의 차가운 비늘을 느끼고 움찔했다.

그가 하려던 말은 하마터면 그 실험실에 그대로 묻혀 버릴뻔했다는 것이었다.

“맞아⋯⋯.”

장목화는 모두가 전력을 다해 중요한 순간에도 기회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칭찬해야 할지, 성건우의 달지기 상징 모음집을 꺼내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대량의 전류로 신세계와의 교차점을 공격하는 건, 대담한 가설을 조심스럽게 실증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내놓은 방안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증거는 있었지만 그렇게 큰 확신까지는 없었던 터라, 당시 장목화의 손바닥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결과는 그녀의 추측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장목화는 이를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다. 마음 같아서는 달지기를 찾아가 보답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백새벽은 여전히 전자파 차단복을 입고 있는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을 힐긋 돌아본 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충분히 자신 있던 순간은 하나도 없었어요. 언제라도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죠. 하지만 결국 성공했네요.”

유적 사냥꾼으로 지낼 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 시도를 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모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낭떠러지 끄트머리에서 춤을 추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아래로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지금까지를 복기하던 용여홍의 표정이 살짝 이상해졌다. 그는 잠시 좀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우, 우리가 또 건물 하나를 없앴네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진 건물을.”

장하시 연합 철강공장 가족 2구역 4동과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를 연달아 무너뜨린 구조팀은 이제는 파흐 지구 호움 시티의 비밀 실험실도 파괴하고 말았다.

“우연이야, 우연. 호움 난임 센터는 멀쩡하게 남아있잖아?”

장목화가 약간의 죄책감을 안고서 대꾸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성건우가 돌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장목화는 바로 의혹 가득한 눈으로 그를 경계했다.

“왜 웃어?”

그래도 성건우는 고개까지 젖혀가며 웃었다.

“퓨처 그 녀석이 참 바보 같아서요. 자폭 장치를 바로 활성화해 우리를 다 날려버릴 수 있었으면서도, 굳이 굶주리고 목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보겠다고 14일의 시간을 줬잖아요. 지금은 다 망해버렸고요.”

“정 방법이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그 실험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럼 우리가 대책을 세우고 실행할 때 방해할 수도 있었잖아요.”

장목화의 추측에도 성건우는 의견을 돌리지 않았다.

그때, 내내 침묵하던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이 입을 열었다.

“녀석에게도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공격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모종의 제한이 따르는지 모른다. 난 당시 그 연구자들을 직접 처리할 순 없었지만, 뜻밖의 사고를 일으키는 방식으로 해칠 수는 있었던 것처럼.”

소스 브레인의 분석은 약간 으스스했다. 하지만 용여홍, 백새벽, 장목화 모두가 잠시 고민해본 뒤에는 그럴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인공지능 퓨처의 갖가지 이상이 설명되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 따르는 제한은 소스 브레인이 말했던 것처럼 간단하고, 얄팍하고, 조악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보다는 심층적인 규칙이 퓨처를 속박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구조팀이 침묵에 빠진 가운데, 여전히 전자파 차단복을 입고 있는 소스 브레인이 붉은 눈빛을 두어 번 번득였다.

“너희는 내일도 불모지 13호 유적을 계속 탐색해 퓨처의 본체를 찾고 오레이가 남긴 자료를 찾을 거냐?”

순간 장목화의 표정이 약간 복잡해졌다.

용여홍, 백새벽 역시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는 일단 성건우부터 노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도록 막은 후, 할 말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더 이상 그런 시도는 못할 것 같아.”

팀장의 말이 얼마나 감동인지 용여홍은 하마터면 눈시울을 붉힐 뻔했다.

계속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불모지 13호 유적의 위험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았어. 겨우 두 군데 탐색했을 뿐인데 오하명과 퓨처라는 신세계 강자에 비견할 만한 존재를 맞닥뜨렸지. 게다가 그들에게는 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특수한 능력도 있고. 정말로 대대적으로 수색해서 퓨처의 본체를 찾아내려고 한다면 도중에 그 같은 괴물을 또 얼마나 더 만나게 될지 몰라.”

용여홍도 동조했다.

“퓨처만 해도 지금의 우리로서는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고요.”

그가 보기에 불모지 13호 유적과 관련한 무시무시한 전설도 그 유적 자체에 숨겨져 있는 위험보다는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이에 용여홍은 한 가지 사실을 똑똑히 이해했다. 오하명이 봉인된 이후, 퍼스트 시티에서도 이곳을 주로 봉인하기만 해왔을 뿐, 탐색한 적은 거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퍼스트 시티의 신세계 강자는 쉬이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머지 역량은 불모지 13호 유적을 파괴하는 데에는 충분하지만 이곳의 비밀과 자원을 취하기에는 부족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런 상황은 100퍼센트에 가까운 유적 사냥꾼의 죽음을 막는 격이기도 했다.

구조팀은 특수 사례였다. 그들처럼 구세계 파괴 원인과 무심병의 기원을 밝혀내겠다는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는 데다, 오하명의 탈출에 도움이 되고, 몇몇 달지기의 주시를 받고 있지 않았더라면 호움 난임 센터에서 오하명의 투영을 마주했을 때 결코 무사하진 못했을 것이다.

“전자파 차단복을 몇 벌 더 찾고 방해기를 더 준비하면 사실 오하명과 퓨처가 부지불식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은 구조팀을 계속 설득하려 했다. 그는 그러한 준비에 상당한 효력이 있는 것 같다고 믿는 듯했다.

이때 성건우가 단정하게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오하명과 퓨처는 사전에 그 방해기에 영향을 미쳐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어요. 퓨처는 어쩌면 그 방면에서 어느 정도 제한을 받고 있었을지 몰라도, 오하명은 매우 자유롭죠.”

말을 끝마쳤지만 성건우는 지금껏 어려움만 말했지, 질문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얼른 덧붙였다. 자신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는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중점은 역시 전자파 차단복이다.”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은 땅에 질질 끌릴 정도로 그를 완전히 감싸고 있는 하얀색 옷을 가리켰다.

그러자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던 백새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오하명에게는 아주 많은 비밀이 있는 것 같았어요. 흰 늑대에게 매혹당해 유적에 들어온 인간들이 끝내 타의로 자살한 것처럼요. 이건 오하명의 변태적인 취향 때문일까요, 아니면 모종의 원인에 기반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까요? 이런 비밀들을 확실히 파악하기 전까진 단순히 현재 상황에만 근거해 전자파 차단복이 유용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용여홍은 이를 보고 질세라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부끄럽게 손뼉까지 칠 수는 없었다.

이내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오하명에게는 아주 많은 비밀이 있어요. 인공지능 퓨처도 그럴지 모르죠. 현재 우리 팀 실력으로는 탐색을 이어갈 수 없어요. 다음 불가 성지에 가서 충분한 수확을 얻고, 또 성장한 다음에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요.”

오늘 불모지 13호 유적에 나타난 위험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 빙산의 일각마저도 구조팀에게는 너무나 위협적이었다.

소스 브레인이 침묵에 잠긴 사이, 성건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일이라는 게 꼭 마음처럼 되는 건 아니니까요.”

장목화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또 무슨 성건우야? 냉정하고 이성적인 건우?’

꽤 오랜 시간 함께하며 그녀는 모든 성건우의 특징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꼭 한 가지 특징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상인들처럼 성건우에게서 분열된 인격들 역시 평범한 방면은 있었다.

그래서 성건우가 여태 드러내지 않았던 특징, 혹은 그 특징으로부터 파생된 언행을 보일 때면 장목화도 솔직히 어떤 성건우인지 짚을 수가 없었다.

뒤이어 소스 브레인에게 무슨 답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한숨을 거둔 성건우가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서없이 꺼낸 ‘그 일’은 소스 브레인의 본체를 떠나 독립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야, 유적에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자파 차단복을 벗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모르겠냐.’

장목화는 속으로 빈정거리면서도 무턱대고 끼어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또한 백새벽과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인 채 답을 기다렸다.

만약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이 본체로 돌아가기를 선택한다면, 구조팀 입장에서 게네바를 구하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워졌다.

그들은 동체를 훼손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을 제압하고 휴면 상태에 진입시킨 뒤, 인공지능 방면의 전문가를 찾아 소스 브레인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분리, 전이, 혹은 제거를 시도해야 했다.

그때, 다운그레이드 버전 소스 브레인이 붉은 눈빛을 몇 번 번득였다.

“너희를 믿어도 되나?”

합성음 느낌이 나는 그의 목소리는 묵직했다.

성건우가 웃었다.

“겐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으니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거 아닙니까.”

‘겐이니까 너한테 홀랑 넘어갔지.’

장목화는 아까부터 계속 속에 있는 말을 꾹 참는 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