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18화 (618/649)

618화. 사기꾼!

계속 소스 브레인의 말이 이어졌다.

“난 이곳 중앙 관리 시스템을 접수한 뒤, 정확한 암호를 대지 않고 찍는 식으로 대문을 열려고 하면 세 번 실패 후 시스템이 봉쇄된다는 걸 파악했다. 다시 시도하려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지.

또한 연달아 세 번의 봉쇄가 이루어지면 자폭 장치가 활성화된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대문을 열려고 해도 같은 결과가 나타나고.”

성건우가 손을 들었다.

“질문이 있습니다. 구세계 파괴 전, 이 실험실에 어떤 직원이 잘못하다가 잘못된 암호를 연달아 세 번 댔을 경우 안쪽의 연구자들은 그 안에 꼼짝없이 일주일을 갇혀 있었어야 하나요?”

눈앞의 소스 브레인은 어떠한 질문도 빠뜨리지 않고 답해주었다.

“이 실험실에 딸린 냉동 창고에는 최소 2주 치 식량과 물이 저장돼 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거지.”

성건우가 언급한 직원과 연구자들이라는 말에 장목화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관찰했던 비정상적인 현상 하나를 떠올렸다.

“이곳에 남은 유골은 전부 실험 대상의 것이던데요. 그럼 그 연구자들과 실험실 직원들은요? 그들의 유골은 그 창고에 쌓여있나요?”

구조팀이 가보지 않은 곳은 소스 브레인이 이야기한 창고밖에 없었다.

소스 브레인이 답했다.

“내가 취득한 데이터에 따르면, 구세계가 파괴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부 인원이 암호를 통해 실험실 대문을 열었다. 그들은 전부 이곳을 떠났을 거다. 냉동 창고에 저장된 식량은 전부 썩어버렸고, 물은 증발해버렸지.”

‘수상한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의 눈이 돌연 커다래졌다.

방금 소스 브레인의 답에서 아주 중요한 정보를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소스 브레인을 바라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떠한 공격도 받지 않았다고요? 당신은 주로 실험실의 시스템을 침입하고, 데이터를 복원하고 각 방을 수색하는 데에만 시간을 들였다고 했죠?”

“그렇다.”

전자파 차단복으로 전신을 가린 소스 브레인이 간단히 답했다.

장목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쪽에서 폭발음을 듣고 온 건데요. 그래서 실험실이 이쪽에 있을 거라 확신했어요.”

“폭발음이라⋯⋯.”

소스 브레인은 갑자기 녹음기로 퇴화한 것처럼 장목화의 말을 반복했다. 이는 그녀의 말 중에 가장 핵심인, 중요한 단어이기도 했다.

그러다 소스 브레인이 뭔가를 분석해낸 듯 고개를 돌려 옆쪽의 대형 컴퓨터를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위험의 냄새를 맡은 장목화가 곧장 명령을 내렸다.

“일단 여기서 철수해!”

그녀는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도 없었지만,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란 생각이었다.

괜히 과하게 반응한 것이라도, 실제론 아무 일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럼 다시 돌아와 컴퓨터 저장장치와 종이 자료를 챙기면 그만이었다.

구조팀은 이제 상당한 경험을 쌓은 전투팀이 되었다. 팀원들은 서로를 굳게 믿고 있으며, 팀워크도 강했다.

장목화의 명령에 조금의 의심도 없이 동시에 돌아선 팀원들은 주요 연구 구역인 반원형 홀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비밀 실험실에서, 이 건물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이곳에 다시 들어올지 말지는 전에 들었던 폭발음의 진정한 원천을 찾고 진상을 파악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빠르게 돌아서는 와중,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는 소스 브레인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겐, 얼른!”

전자파 차단복을 뒤집어쓴 소스 브레인은 붉은 눈빛을 번득이더니 시스템 해킹과 데이터 추출에 썼던 발아래 도구들을 챙길 새도 없이 성건우의 뒤를 바짝 따랐다.

바로 그때, 실험실 곳곳에서 합성음 같은 소리와 인간의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불법 침입자 발견, 불법 침입자 발견. 3초 후 대문 폐쇄 및 시스템 봉쇄.

‘3초?’

용여홍의 심장이 졸아들었다.

동시에 그와 백새벽의 속도가 느려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이 아니었다. 현재 상황을 감안해 미리 세워둔 대책 중 하나를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반원형 홀의 옆문에서 실험실 출구까지의 직선거리는 80미터가 넘었다. 유전자 개조를 하고 인공지능 갑옷까지 입은 두 사람이라도 3초 안에 그 거리를 주파하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장목화와 성건우까지 그럴 수 없으리라는 뜻은 아니었다.

모두에게는 나름의 전공이 있는 법이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군용 외골격 장치 착용자는 한번 몸을 훌쩍 날리는 것만으로도 2~30미터, 심지어는 그 이상의 거리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그 자리에 멈춘 뒤, 성건우와 장목화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최상의, 그리고 유일한 상책이었다.

두 팀원이 속도를 늦춤과 동시에 그들을 따라잡은 장목화, 성건우는 각자 한쪽 팔을 뻗어 동료의 몸을 감아 겨드랑이 밑에 끼웠다.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이든, 카멜레온 인공지능 갑옷이든, 그 표면은 비늘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로 인해 움켜쥐기도 힘든 것을 굳이 움켜쥐는 것보단 차라리 팔과 몸통 사이에 끼우는 것이 훨씬 나았다.

사실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은 꼬리를 움켜쥐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성건우가 허리를 굽혀야 했고, 이는 용여홍에게도 좋지 못했다.

쿵! 쿵!

긴박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장목화는 성건우를 따라 이동했다. 그녀는 천장을 발판으로 삼아 펄쩍펄쩍 연달아 뛰면서 주요 실험구역과 전에 지나친 복도를 통과했다.

전자파 차단복에 둘러싸인 소스 브레인도 열심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 * *

구조팀은 결국 3초가 채 되기도 전에 실험실 출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꽉 닫힌 금속 문뿐, 실험실 출구는 이미 폐쇄되어 있었다.

“사기꾼!”

자리에 멈춘 성건우는 고개를 들어 스피커가 있을 법한 곳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장목화는 문가로 돌진하더니 분초를 다퉈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메시아!”

실험실의 통행 암호였다.

그 순간, 금속 대문 가장자리에 원형의 흰색 빛이 밝혀지더니 냉랭한 기계 전자합성음이 흘러나왔다.

- 시스템이 이미 봉쇄됐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시도하세요.

그 말을 들은 용여홍도 더는 참지 못하고 속으로 욕설을 뇌까렸다.

‘사기꾼! 대문 폐쇄와 시스템 봉쇄는 3초 후라고 했으면서!’

이때 성실한 성건우를 대체한 성급한 성건우가 제안했다.

“대문을 직접 날려버릴까요?”

“그럼 자폭 장치가 활성화된다.”

그의 뒤쪽에 선 소스 브레인이 얼른 저지했다.

그래도 성건우는 의욕을 꺾지 않았다.

“상관없어요. 위험할수록 그 위험을 감수하려 해야죠. 실험실이 자체적으로 폭파되면 출구도 파괴될 겁니다. 적당한 기회만 잡으면 나갈 수 있어요!”

“확률은 10만 분의 1이다.”

소스 브레인이 수학적 모형을 사용한 결과를 내놓았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실험실 스피커에선 약간의 웃음기와 합성음 같은 느낌이 어린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 다들 미안, 내가 경고를 너무 늦게 했네. 사실 너희가 주 실험구역에 진입했을 때 경고는 이미 울렸어. 대문은 폐쇄됐고, 시스템은 봉쇄됐지. 하지만 당시 대기열에 정체 현상이 일어난 바람에 바로 통지하지 못한 거야.

‘이거, 실험실 중앙 관리 시스템인가? 꼭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애 같네. 목소리만으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겠고.’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백새벽을 힐긋 바라보았다. 하지만 현재 두 사람의 눈은 모두 바이저로 가려져 있는 터라 상대의 생각을 읽기는 어려웠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바라보다가 소스 브레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실험실에 일주일 동안 갇혀 있어야 한다면 버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전투력은 잃어요. 당신도 마찬가지고요. 제 생각에 방금 그 목소리로 대표되는 중앙 관리 시스템은 당신에게 충전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 같거든요. 게다가 봉쇄는 최대 두 번 더 이어질 가능성도 있고요.”

돌아선 소스 브레인이 아무런 기복도 없는 그 목소리로 말했다.

“중앙 관리실로 돌아간다. 다시 시스템을 해킹해 여길 통제해보겠다.”

그리고 구조팀이 뭐라 호응하기도 전, 전자파 차단복 밖으로 발산되는 붉은빛이 네 사람을 슥 훑었다. 뒤이어 다시금 질문이 이어졌다.

“군용 외골격 장치를 입고 있군. 오하명에게 받을 영향이 두렵지 않나?”

성건우가 금속 골격으로 뒤덮인 손바닥으로 이마를 쳤다.

“아이고, 알려주는 걸 까먹었네. 오하명, 만났어요. 합작하고 싶다고, 우리 후속 작전을 도울 테니 자기가 봉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지만요.”

소스 브레인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듯했다.

“그럼 이따가 전자파 차단복을 벗고 전력을 발휘해도 되겠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 그는 주요 실험구역으로 가볍게 뛰어갔다.

구조팀원들도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소스 브레인과 구조팀이 막 중앙 관리실로 돌아왔을 무렵, 전의 그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돌아온 걸 환영해, 사랑하는 형.

“말도 안 돼!”

성건우는 어찌나 놀랐는지 거의 5미터를 펄쩍 뛰어올랐다. 머리가 천장에 부딪힐 뻔했을 정도였다. 감정을 중시하는 지금의 성건우는 실종된 아버지가 다른 누군가와 만나 동생을 낳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같은 시각, 소스 브레인을 휘감은 전자파 차단복 밖으로 발산되던 붉은빛이 더 짙어졌다. 그 이후 고개를 들어 스피커를 올려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내내 아무런 기복도 없었던 목소리엔 약간의 파동이 일었다.

“넌 누구냐?”

웃음기와 합성음 느낌이 어린 목소리가 답했다.

- 난 오레이가 말년에 만들어낸 걸작이자 그 평생의 지식과 지혜의 결정체, 진정한 인공지능 퓨처야. 너 같은 조잡하고 투박한 중간 생산물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그래도 난 널 형이라고 생각해.

‘이건 또 무슨 막장 드라마냐⋯⋯.’

용여홍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백새벽을 힐긋 돌아보니, 그녀도 매우 집중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탁! 탁! 탁!

성건우는 때맞춰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의 측면을 두드렸다. 박수를 보내지 않고서야 도저히 지금의 감정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대문이 완전히 닫혀서 일주일 동안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어야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 근심에만 휩싸였던 장목화도 말이 없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오레이는 구세계 인공지능 영역의 수석 과학자이자 소스 브레인의 아버지였고, 맥시미언이라는 본명을 가진 전 퍼스트 시티 황제였다.

그런 그가 인생의 말엽에 과거의 갖가지 경험과 불모지 13호 유적, 그리고 퍼스트 시티 자체의 자원을 가지고 개선된 인공지능 하나를 새로 창조해냈다는 건, 그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도 아니었다.

오히려 충분히 그럴 법하다고 생각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인공지능이 ‘사랑하는 형’이라느니, ‘조잡하고 투박한 중간 생산물’이라느니 떠들어 대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때, 박수 세례를 끝낸 친 성건우가 호기심을 표했다.

“인간화 정도가 100퍼센트를 넘나 봐?”

퓨처는 그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아예 무시했다.

지금 소스 브레인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득이는 빈도는 상당히 늘어나 있었다. 이내 쪼그려 앉은 그는 전에 이 실험실 중앙 관리 시스템을 침입하는 데 썼던 도구들을 이용하는 한편 퓨처의 비웃음을 애써 무시하며 물었다.

“오레이가 남긴 자료는 네가 숨긴 거냐?”

퓨처가 웃으며 답했다.

- 떨 것 같아? 내가 지키지 않았다면 퍼스트 시티 녀석들은 진즉 그걸 가져갔을 거야. 고작 암호와 오하명의 존재가 이미 신세계에 들어간 강자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

오레이의 후손이라면 순조롭게 그 자료를 손에 넣고 내 도움도 받을 수 있겠지만 너희들 같은 녀석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실험실 안에 갇혀버리고 마는 거야. 알겠어? 이게 바로 진정한 인공지능이라고.

‘그렇구나, 어쩐지.’

구조팀 모두가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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