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17화 (617/649)

617화. 상황 재현

팀원들이 호응하기도 전, 장목화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신세계와 어둠은 또 무슨 관계일까? 음, 일단 유적에서 빠져나간 뒤에 다시 얘기해보자. 돌아갈 때 14호 병실을 수색해야 한다고 나한테 일러줘.”

“네.”

용여홍은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잠들어 있는 로봇들을 중점적으로 관찰했다.

다행히 이 경비 로봇들은 구조팀의 시끄러운 대화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참 까닭은 모르겠지만 용여홍은 뒷덜미에 서늘한 공기가 닿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누군가의 숨이나 불어오는 바람 정도의 세기는 아니었다.

용여홍은 전술 가이드에 따라 이 사실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여기 좀 음산한 것 같지 않아요? 특히 목 뒤쪽이요.”

“글쎄.”

장목화와 백새벽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바로 그때, 용여홍은 곁눈으로 빈 금속 침대 위의 한 인영을 목격했다.

“저기!”

화들짝 놀란 그가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의 총구를 그쪽으로 겨누었다.

그 순간 용여홍은 맥이 탁 풀렸다.

“아…….”

침대에 누운 건 바로 성건우였다.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알아봤으니 망정이지, 용여홍은 하마터면 진짜로 성건우에게 총을 쏠 뻔했다.

그렇게 성건우는, 또 어느새 그 금속 침대에 몰래 기어 올라가 있었다.

“⋯⋯.”

장목화는 애써 웃으며 성건우에게 물었다.

“지금 뭐 하냐?”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그 식물인간이 깨어난 후 뭘 봤을지 궁금해서요. 당시 상황을 한번 재현해보려고요.”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가 싶던 장목화가 정색을 한 채 물었다.

“그래서, 뭐가 보여?”

“천장이 상당히 깨끗하네요.”

성건우는 아쉬움인지 감탄인지 모를 답을 내놓았다.

흠칫 놀란 장목화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생명 천사 목걸이를 착용해봐.”

그녀는 생명 천사 목걸이를 착용했을 때 그 안에 잠재된 기운을 빌려 박사로부터 기인하는 듯한 어둠을 감지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홀연 밝은 눈빛을 드러낸 성건우는 옆에 내려놓았던 전술 배낭에서 생명 천사 목걸이를 꺼냈다. 시종일관 누워있었기 때문에 어딘가 마비된 듯한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성건우 손의 은제 펜던트 목걸이가 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몇 초 후, 그가 웃었다.

“천장 위에 검은 그림자가 있어요. 수시로 이쪽으로 뻗어왔다가 다시 움츠러들기를 반복하고 있네요.”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육안으로 보기엔 은백색 천장에 검은 그림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한번 접촉해볼래? 네 의식을 이용해서.”

“시도해봤는데 반응은 없네요.”

성건우는 이런 방면에서는 언제나 적극적이었다.

“총을 쏴 볼까?”

백새벽이 건의했다.

“좋아.”

성건우는 곧장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쳐들었다.

장목화도 빠르게 총성에 깰지도 모를 주위의 경비 로봇을 주시했다.

탕!

총알 한 발이 금속으로 이뤄진 천장을 때렸다.

하지만 이상 현상은 없었다. 경비 로봇들도 깨어나지 않았다.

생각에 잠겨있던 장목화가 한숨을 토해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다시 시도해 보자. 일단은 겐부터 찾고.”

감정을 중시하는 성건우는 빠르게 생명 천사 목걸이를 챙겨 넣은 뒤 침대에서 내려왔다.

* * *

구조팀은 전투 대형을 갖추고 반원형 홀 측면에 난 금속 문으로 향했다.

연달아 문 두 개를 통과한 구조팀은 거대한 컴퓨터 한 대를 보았다.

이미 고장이 난 듯한 컴퓨터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고, 그 앞에는 큼지막한 인영이 하나 서 있었다.

키가 190센티미터 정도 되는 것으로 보아 게네바인 것 같았다.

전신을 기이한 흰색 옷으로 감싸고 있는 그는 방전이 된 듯 그곳에 우두커니 자리해 있었다.

그러다 이곳에 들어온 누군가의 인기척을 감지한 그가 홱 돌아섰다.

눈으로 붉은빛을 번득이는 그의 입에서는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없다!”

게네바의 말에 놀란 장목화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다고? 황제 오레이가 남겨둔 소스 브레인 포맷 방법과 그가 아는 구세계 파괴 관련 정보가 없다는 건가? 아비아가 거짓말을 한 거야? 그럴 리가⋯⋯.’

그녀는 소스 브레인이 잘못된 장소를 찾았을지도 모른다고, 그 자료들은 이 실험실 안의 다른 곳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한편 그럴 리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스 브레인이 이곳에 온 지는 벌써 한참이 지났다. 논리에 빈틈이 없고 행동이 꼼꼼한 진정한 지능 로봇이 어딘가를 빠뜨렸을 리는 없었다.

고민하는 사이 장목화는 경계심을 드높이며 대비에 나섰다. 실망한 소스 브레인이 폭발을 할 수도 있겠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백새벽과 용여홍도 그랬다. 양쪽으로 흩어진 그들은 상대를 반쯤 포위하는 듯한 대형을 갖췄다.

바로 그때였다. 소스 브레인의 말을 무시한 채 한 발 앞으로 나선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뭘 입고 있는 겁니까?”

소스 브레인에게 통제되는 것으로 의심되는 게네바는 전신을 뒤덮는 흰색의 기이한 옷을 입고 있었다. 눈 역시 그 안에 가려져 붉은빛만 밖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그 붉은 눈빛을 살짝 번득이던 게네바가 답했다.

“구세계에서 생산된 전자파 차단복. 퍼스트 시티에 있을 당시 대부분은 이걸 착용했다. 목표가 봉인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오하명은 지금 전자파를 통한 조종으로만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오하명이 보내는 신호를 차단할 수만 있다면 나한테 아무 짓도 할 수 없어.”

“오오, 그렇구나!”

성건우는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흥분했다.

나머지 세 사람도 소스 브레인이 오하명의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모지 13호 유적에 들어와 이 비밀 실험실을 찾을 엄두를 낸 이유를 알았다.

이때 성건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상하다? 빛도 전자파잖아요. 전 지금 당신 눈에 발산되는 붉은빛이 보입니다. 그건 그 옷이 전자파를 완전히 차단해주지 못한다는 뜻인데요.”

그의 목소리에는 의혹과 걱정이 어려 있었다. 게네바가 오하명에게 통제당할까 봐 겁이 나는 듯했다.

이내 소스 브레인이 진지하게 답했다.

“완전한 차단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을 차단하고 나머지를 약화하기만 해도 내 자체적인 전자파 방해 저항 능력을 기반으로 오하명의 영향을 막을 수 있다.”

성건우, 백새벽, 용여홍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스 브레인의 말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런데 그 찰나, 장목화가 한 가지 문제를 알아차렸다.

‘소스 브레인이 왜 건우 질문에 답해주는 거지? 이런 장소, 이런 상황에서 게네바를 통제한 소스 브레인은 냉혹하고 무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오레이가 남긴 자료를 찾는 게 유일한 목적인 로봇이 이렇게 하등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려 할 리는 없는데.’

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폭발한 상대가 동료들을 상대로 공격을 퍼부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소스 브레인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설마⋯⋯.’

한 가지 추측을 번뜩 떠올린 장목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지금 소스 브레인인가요?”

“그렇다.”

전자파 차단복으로 전신을 감싼 거대한 로봇이 진지하게 답했다.

그 말을 듣고 성건우가 내뱉듯 물었다.

“겐은요? 겐은 지금 어떤가요?”

전자파 차단복 아래에 감춰진 눈으로 붉은빛을 번득이던 소스 브레인은 합성음으로 이뤄진 목소리를 냈다.

“그의 핵심 모듈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은 내가 신체를 관장하고 그는 수면 상태에 진입시킨 것뿐이다.”

‘정말로 질문하는 대로 답을 해주잖아.’

성건우와 소스 브레인의 대화를 듣던 장목화는 조금 전 생각했던 추측을 아예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소스 브레인은 완전한 소스 브레인이 아냐!’

구조팀이 타르난에서 통화했던 소스 브레인은 진정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와의 대화에는 프로그래밍 된 듯한 느낌이나 모종의 규칙을 따르는 듯한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만약 소스 브레인과 통화하게 되리란 사실을 몰랐다면, 목소리가 합성음이 아니었다면, 구조팀원들 모두가 통화 상대는 그저 지식이 풍부하고 식견이 넓은 어른이라 생각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자리한 이의 행동 양식은 보다 기계적이었다.

상대는 인간을 위해 복무하라는 강령을 따르고 있는 듯했다. 구조팀이 공격 의지를 보이지만 않는다면 묻는 모든 것에 답을 해줄 것 같았다.

장목화는 컴퓨터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상황을 짐작해보았다.

‘게네바의 핵심 모듈과 동체를 구성하는 자원이 소스 브레인의 모든 기능을 발현하긴 부족해서인가? 눈앞의 소스 브레인은 말하자면, 다운그레이드 버전인 건가?’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물었다.

“방금 그랬죠? 여긴 아무것도 없다고.”

소스 브레인은 고개를 틀어 작동하지 않는 거대한 컴퓨터를 바라보며 약간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오레이가 남긴 것은 없다. 적어도 난 찾지 못했다. 난 이미 이 컴퓨터의 저장 장치를 읽어보기도 했다.”

그제야 용여홍은 소스 브레인의 발치와 대형 컴퓨터 앞쪽에 자리한 몇 가지 전자 기기를 발견했다.

사실 게네바의 동체에는 그런 기기를 대체할만한 모듈이 딸려 있었다. 하지만 소스 브레인은 전자파 차단복을 벗고 싶지 않았던 나머지 이런 도구까지도 미리 준비해온 듯했다.

설령 그런 전자기기가 오하명의 영향을 받더라도 지능 로봇이라면 그런 것쯤은 얼마든 처리할 수 있었다.

“아비아한테 우리를 속일 필요는 없어요. 이게 당신을 노리고 설치된 함정이 아닌 이상은요. 근데 이런 함정이 당신의 본체까지 위협할 순 없겠죠?”

장목화는 의도적으로 말을 질문으로 끝맺었다.

“이 동체를 파괴할 뿐이다.”

소스 브레인이 간결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다시 또 질문을 이었다.

“그럼⋯⋯. 전에 누군가 이미 암호를 대고 이곳에 들어와 오레이가 남긴 걸 가지고 간 걸까요?”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소스 브레인의 답은 매우 솔직했다.

이번엔 계속 지켜보고만 있던 성건우가 물었다.

“퍼스트 시티의 강자가 그랬을까요?”

“오레이와 손녀, 외손자는 모두 퍼스트 시티의 보호를 받아. 이 비밀 실험실 위치와 진입에 필요한 암호는 그곳 고위층 중 특정인들한테 더 이상 비밀이 아닐지도 몰라.

게다가 그들 중에는 신세계에 진입한 강자도 있어. 어느 신세계 강자가 돌아왔을 때 그에게 이 폐허에서 오레이가 남긴 것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말을 하자마자 질문을 하지 않았단 걸 깨닫고 장목화가 얼른 덧붙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자파 차단복 밖으로 방출되는 붉은빛이 두어 번 번득였다.

“정말 그렇다면 그들은 왜 아직 아비아, 마커스를 보호하지? 낚으려고?”

짝짝짝!

성건우가 소스 브레인을 위해 손뼉을 쳤다.

“낚는다는 말도 배웠네요!”

장목화는 그를 흘겨볼 틈도 없이 얼른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 비밀 실험실에 잠재된 위험이 남았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퍼스트 시티 강자들이 보수적인 선택을 한 거예요. 여기 들어와서 뭘 발견하셨나요?”

소스 브레인이 했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었다.

“암호를 대니 실험실 대문이 알아서 열렸고, 안쪽 경비들도 깨어나지 않았다. 계속 수면 상태였지. 경비들과 억지로 대화하려고 하지만 않으면 그들도 깨어나 신분증을 스캔하거나 구체적인 신분을 확인하려 하진 않는다.”

‘그렇군.’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틀어 성건우를 노려보았다.

‘그럼 그 전투는 안 할 수도 있었던 거잖아! 쟤가 까불지만 않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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