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16화 (616/649)

616화. 실험실 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구조팀은 계속해서 병실로 의심되는 공간들을 하나씩 지나쳤다.

그런 방 중엔 침대에 백골이 놓인 방도 있고, 텅 빈 방도 있었다.

잠시 후, 복도 양쪽에 딸린 방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는 반원형 홀이 나타났다.

장목화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병실은 총 마흔 개. 그중 스물여섯 개에는 백골이 있었고, 열네 개는 비어있었어.”

그녀는 이런 기본 정보를 기록하고 팀원들과 공유하는 걸 잊지 않았다.

딱히 대답이 필요한 말은 아니라 용여홍, 성건우는 먼저 홀에 들어섰다.

이곳에는 비교적 큰 기기들이 놓여 있었다. 더러는 금속 벽으로 격리된 채 흰색 커튼이 쳐져 있었으며 몇몇은 공개돼 있었다.

한번 슥 훑어보던 장목화는 그중 몇 종류 기기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어느 것은 우주선 캡슐 같았고, 어느 것은 거꾸로 뒤집힌 관 같은 유리막이 달려 있었다. 아래쪽에는 각종 센서가 가득한 침대가 자리해 있었는데 그 침대 위에, 남루한 옷을 입은 백골 한 구가 얌전히 누워있었다.

마찬가지로 익숙함을 느낀 용여홍이 내뱉듯 물었다.

“이 실험실, 인간을 각성시킬 때 쓰였던 곳일까?”

익숙하게 느껴지는 기기들은 C-14 프로젝트에서 봤던 것들이었다.

“아마도.”

성건우가 웃었다.

장목화는 다시 반원형 홀 안의 각종 상황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지체할 시간 없어. 겐을 찾아야지.”

비스듬히 떨어진 맞은편에 금속 문이 있었고, 현재 열린 상태였다.

용여홍과 백새벽은 각각의 기기와 그 주위를 진지하게 살폈다. 그곳에 경비 로봇 몇 대가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들은 깨어나지 않았다.

검사를 하는 사이, 용여홍은 일부 기기에 누워있는 백골의 수를 신중하게 헤아려 보기도 했다.

“십일, 십이, 십삼, 십사⋯⋯. 비어있던 병실도 열네 개였죠. 딱 맞아요.”

용여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세 금속 침대에 연결된 어느 기기에서 시선을 거뒀다. 그곳에는 백골 세 구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이상한 부분은 없어?”

막 답을 하려던 용여홍은 홀연 곁눈으로 뭔가를 보았다.

기기에 연결된 세 금속 침대에, 백골이 두 구만 얌전히 누워있었다.

‘……두 구?’

눈이 휘둥그레진 용여홍이 손을 들어 그쪽을 가리켰다.

“배, 백골이 하나 사라졌어요!”

백새벽, 성건우, 장목화는 곧장 무기를 들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이상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물었다.

“처음부터 두 구였던 거 아냐? 병실 마흔 개가 꼭 다 찼으리란 법은 없지.”

“아니에요! 분명 세 구였어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하던 용여홍이 순간 좀 머뭇대다 덧붙였다.

“제가 환각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요.”

고개를 끄덕이던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가까이 한번 가보라고 지시했다. 위험이 잠재돼 있을지 모르는 상황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실험실 안의 등불 덕에 장목화와 성건우는 손전등을 사용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란히 놓인 회백색 금속 침대 세 개는 같은 톤의 아치형 기기 안에 놓여 있었고, 그 위쪽에는 원형 패드가 달린 전선이 드리워져 있었다.

이때 그중 두 침대 위에는 백골이 한 구씩 자리해 있었다. 파란색, 흰색이 어우러진 체크 패턴의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고개는 옆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지만 누워있는 자세는 매우 정석적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깔끔하게 비어있었다. 심지어는 위에 쌓인 먼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 공기 정화 시스템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던 건가?”

또 이상한 부분에 집중한 성건우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먼지 한 톨 쌓이지 않았을 리 없었다.

장목화는 그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백골이 놓인 한 금속 침대 앞으로 다가가 몇 초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녀가 할 말을 골랐다.

“금속 표면에 흔적이 적잖게 남았어. 시체가 여기서 썩어갔다는 뜻이야.”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백골이 없는 금속 침대를 바라보았다.

“근데 여기 위는 엄청 깨끗해. 구세계 파괴 이후 이곳에 누웠던 사람이나 시체는 없었던 것 같아.”

용여홍이 조금 전 정말로 환각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성실한 성건우가 곧장 반박했다.

“어쩌면 그 위에 누워있던 시체가 알아서 깨어나 어디론가 떠났고, 그 이후 실험실의 청결을 담당하는 로봇이 청소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현재 상황으로 볼 때 보안 등급이 비교적 높은 편인 이 실험실에서는 로봇을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했던 것 같았다.

장목화도 청소 로봇이 있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이곳의 로봇들이 소스 브레인이 온 뒤에야 할 일을 멈추고 수면 상태에 진입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

퍼스트 시티 전 황제이자 소스 브레인의 아버지인 오레이는 이 실험실에 신원 확인이 돼 있었을 테니, 로봇들도 당연히 무리 없이 통과시켰을 터였다. 실험실에 파괴된 부분이 없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장목화의 추측이었다.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 좀 하지 말라니까.’

용여홍은 모처럼 자신을 지지해준 성건우가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계속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비어있는 금속 침대를 진지하게 한 차례 검사해 보았다. 하지만 가치 있는 단서는 하나도 없었다.

뒤이어 장목화는 그 기기를 조작하는 구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종이가 한 다발 쌓여있었다.

장목화에게도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바로 실험 노트였다.

그걸 빤히 응시하던 그녀는 이 실험 노트가 펼쳐진 상태라는 걸 발견했다. 그 펼쳐진 페이지에는 여러 항목이 나열되어 있었다.

번호, 심장 박동, 혈압, 빈도, 강도⋯⋯.

이 실험은 구세계 파괴 당시에 막 시작됐는지 번호란 아래에만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다른 부분은 다 공란이었다.

번호란에는 숫자 세 개가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14 (왼쪽 침대)

27 (가운데 침대)

32 (오른쪽 침대)」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아치형 기기 안의 세 금속 침대를 다시 바라봤다. 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비어있는 건 14라는 번호가 붙은 왼쪽 침대였다.

장목화는 빠르게 그 정보를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백새벽은 자신이 맡은 구역을 관찰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분명 실험 대상의 번호일 텐데⋯⋯. 번호는 뭐에 근거해서 붙여졌을까?”

순간 뭔가를 번쩍 떠올린 용여홍이 말을 받았다.

“병실 번호? 14가 가리키는 건 14호 병실에 있던 실험 대상인 거야!”

조금 전 구조팀은 복도를 지나 이 홀로 들어왔을 때 그 복도에 딸린 병실 문의 숫자에 주목했었다.

탁! 탁! 탁!

성건우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 측면을 두드렸다.

친구 용여홍을 위한 박수였다.

“그럴듯한 이야기야.”

장목화도 동조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던 그녀의 말투가 한층 진지해졌다.

“실험 노트에 이렇게 쓰여 있다면 당시 여기엔 세 명이 누워있었던 게 맞아. 근데 지금은 두 구만 남았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용여홍은 다시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중 하나가 방금 도망쳐 버린 걸까요?”

그러자 어느 성건우일지 모를 성건우가 비어있는 중간 과정을 채웠다.

“구세계 파괴 당시에 도망친 것일 수도 있지. 낮에는 곳곳을 휘젓고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돌아와 잠을 자는 거야. 오늘은 자리에 눕자마자 웬 외부인들이 침입한 통에 몰래 빠져나간 거고.”

장목화는 그 추측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다.

‘꽤, 꽤 인간적이네⋯⋯.’

뒤이어 용여홍은 백새벽을 힐긋 바라보더니 무의식적으로 반박했다.

“구세계가 막 파괴됐을 당시 이 실험 대상 아니, 지원자들은 죽지 않았을 거야. 만약 우리가 조금 전에 한 추측이 맞다면 그 사람들은 그때도 식물인간이었을 거니까.”

성건우가 웃었다.

“그래서 넌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 것 같은데? 죽은 사람이 몰래 도망친 거? 아니면 식물인간이 몰래 도망친 거?”

‘둘 다 아니지!’

용여홍이 속으로 포효했다.

장목화는 약간의 표정 변화를 보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적어도 구세계 파괴 전에 식물인간이 된 강소월의 심령 방은 오늘날까지도 심령의 복도에 있어. 구세계 파괴 당시 어느 식물인간이 그 자극으로 깨어났을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만은 아냐.”

탁!

성건우가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 측면을 때렸다.

“알겠다! 북방 회사와 이 비밀 실험실은 모두 어둠의 힘을 넘겨받아 특별한 능력을 얻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자체적인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만큼 실험 대상으로 삼기 적합한 존재는 없죠. 본인 의식이 없으면 어둠의 침식으로 인한 충돌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구세계 파괴는 이런 실험으로 인한 문제에서 비롯된 거예요. 어둠이 장벽을 돌파하고 대규모 침식에 성공함에 따라 대응하는 인간의 의식은 녹아내렸고, 그렇게 무심자가 된 거죠.

또 이 식물인간 중 자체적인 의식이 없었던 까닭에 운 좋게 어둠의 앞잡이가 된 몇몇은 깨어나게 된 거고요. 강소월도, 이 침대 위에 누워있던 그 사람도, 박사, 찰리, 부원장도 다 그런 거예요!”

처음에만 해도 용여홍은 성건우가 또 헛소리를 한다고, 또 누구일지 모를 성건우가 활발히 활동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추측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듯했다. 어쨌건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모순이 없었고 특정 현상이 설명되기도 했다.

함께 생각에 빠져있던 장목화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럼 무심병은 왜 지금도 발발하는 거지?”

성건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어둠의 침식이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다만 방어되고 있고 적잖이 약화된 거죠. 달지기 여명은 줄곧 악몽에 대항하고 있잖아요. 현재 무심병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건, 또 각성자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그거죠.”

장목화는 그의 추측이 옳은지, 그른지는 평가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네 논리대로라면 나랑 너도 지금은 어둠의 앞잡이인 거야?”

어둠의 힘에 침식되어야만 각성할 수 있었다.

성건우가 성실하게 답했다.

“우린 아직 자격이 없어요, 너무 약해요.”

순간 백새벽이 끼어들었다.

“소위 신세계에 진입한 사람만이 가능한 거야?”

장목화는 쿵쿵 뛰는 심장을 안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신세계에서 돌아온 자의 어둠의 힘 때문에 주위에 무심병이 발생한다?”

구조팀은 전에 무심병의 근원이 신세계라고 추측한 바 있었다. 신세계에 진입하고도 파괴되지 않은 강자의 육신에 애쉬랜드와 신세계를 잇는 교차점이 하나 만들어지고, 그 교차점을 통해 무심병이 전파된다는 요지였다.

그 가설을 따르면 퍼스트 시티에 동란이 발생했을 당시 반고 바이오에 무심병이 발발했던 것과 염호 주위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무심병에 걸리게 된다는 그 현상도 설명이 되었다.

또한 그건 성건우가 조금 전에 한 상상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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