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화. 실험실
훌륭한 장비를 갖춘 구조팀은 빠르게 인공 호수를 돌아 한 블록에 진입한 뒤 목표 구역을 향해 성큼성큼 내달렸다.
챙! 챙! 챙!
다들 발소리를 죽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멈추지 않고 한창을 달려가는데, 갑자기 성건우가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쳐들고 측면 어딘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유리창 하나가 깨지고 그 안에 있던 인영 하나가 4층에서 추락했다.
다른 옷 몇 종류는 걸친 그는 손과 발은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손톱은 단단하면서도 날카로웠다. 틀림없는 무심자였다.
성건우는 계속 앞으로 향하던 보폭을 늦추지 않고 군용 외골격 장치의 도움을 받아 펄쩍 뛰었다. 원래라면 자신이 통과할 구역이 총알 세례를 받게 되리라는 걸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바주카포 한 발이 또 다른 건물 3층의 어느 방을 파고들었다.
콰르릉!
유리창을 몇 장이나 산산이 조각낸 화염이 몇 개의 인영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공격을 당하지 않은 성건우는 안정적으로 착지한 뒤 몸을 틀어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장목화는 개인용 바주카포를 들고 여전히 빠르게 직선을 그리듯 달렸다.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 이 무심자들에게 쓸 시간 없어!”
탕! 탕! 탕!
성건우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의 측면을 두드리는 것으로 박수를 보낸 뒤 장목화의 명령에 따랐다. 용여홍과 백새벽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 * *
엄청난 속도로 돌진한 구조팀은 연달아 두 블록을 그대로 가로지른 후에야 평범한 무심자들을 떨쳐냈다.
“헉, 헉……. 여기는 무심자가 없을 줄 알았는데.”
용여홍이 숨을 살짝 헐떡이며 말했다. 물론 그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인공지능 갑옷은 군용 외골격 장치와 달리 달리기를 보조하거나 힘을 강화하는 능력이 강하지 않았다. 주요 기능이 그러한 방면에 집중된 유형인 경우에나 군용 외골격 장치에 필적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검은 늪 철갑뱀 타입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용여홍은 한참을 달린 여파를 직격타로 맞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맞아, 맞아.”
습관적으로 동조하는 성건우가 맞장구를 쳤다.
여태 이곳에 몇 차례 들어 왔지만 그간 무심자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구조팀은 그것이 불모지 13호 유적의 특징인 줄로 알았다. 괴물 같은 오하명이 무심자들의 번식을 막고 목숨을 끊은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헉, 헉, 여기 무심자들은 주로 이 구역에서만 활동하면서 다른 구역으로는 잘 이동하지 않나 봐.”
유전자 개량을 한 백새벽 역시 숨을 헐떡이고 있기는 했으나 상태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어쩌면 조금 전의 폭발음에 이끌린 것일 수도 있어.”
이렇게 간단한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구조팀은 때로는 펄쩍 뛰어 길을 막은 자동차의 지붕을 밟아 나갔고, 때로는 길가 상점을 이용해 곡선 노선을 직선으로 달리며 이동 거리를 줄였다.
20분쯤 지나, 구조팀은 예상한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이곳에 자리한 건물들은 높든 낮든 하나같이 압도적이었다.
이곳에서 아비아가 전해준 오레이의 말을 떠올린 장목화는 개인용 바주카포를 든 채 좌측으로 향했다. 동시에 그녀는 군용 외골격 장치에 달린 스피커로 자신의 목소리를 키웠다.
“오른쪽으로 가서 저 빌딩을 우회한 다음에 3층 높이에 정원이 딸린 흰색 건물을 찾자.”
용여홍과 백새벽이 보폭을 늦추는 사이, 성실한 성건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물었다.
“왼쪽이에요, 오른쪽이에요?”
순간 그 자리에 멈춘 장목화는 다시금 생각하다 방향을 틀었다.
“오른쪽!”
그녀는 이 부끄러움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팀원들을 따라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블록을 우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목화가 설명한 흰 건물이 나타났다.
높진 않아도 점유 면적이 상당한 이 건물은 공원 같은 정원이 딸려 있지만 문에는 구체적인 위치를 드러내는 표식 같은 게 전혀 없었다.
일단 대문 안으로 달려들어 정원을 관통한 구조팀은 흰 건물 정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장목화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속도 늦춰. 주위 상황 확인해.”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절차였다.
기본적인 정탐을 마친 후에야 건물 안으로 들어선 구조팀은 게네바가 남긴 흔적을 탐색했다.
이곳에는 거울처럼 매끄러운 검은색 대리석 타일이 깔려있었다. 굉장히 단단한 바닥에는 어떠한 자국도 남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엔 먼지가 적잖게 쌓여서 일련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바로 로봇의 발자국이었다.
“겐은 여기 왔었어요. 계단 쪽으로 갔네요.”
안도감을 표한 성건우는 곧장 발자국을 따라 이동했다.
장목화도 성건우를 저지하진 않았다. 그저 어두운 계단 입구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적만 경계하고 있었다.
손전등 빛이 어둠을 걷어내고, 숨어있는 위험한 생물이 없음을 확인한 장목화는 그제야 용여홍과 백새벽에게 따라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앞장서 상황을 탐색하는 일은 원래 팀의 방패인 용여홍의 몫이었으나 장목화는 이 실험실이 굉장히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팀원 중 가장 강한 성건우는 현재 군용 외골격 장치까지 착용 중인 상태라 여러모로 용여홍보단 성건우가 나서는 게 제격일 것 같았다.
군용 외골격 장치는 일정한 방어 능력과 충분한 도피 능력도 있고, 자체적으로도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어 성건우에게 더 큰 힘이 돼주었다.
* * *
발자국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 구조팀은 지하 2층에 당도했다.
제일 첫째론 묵직한 금속 벽에 둘러싸인 은색 홀이 보였다.
위로는 형광등이 반쯤 숨겨진 방식으로 설치돼 있었는데, 현재 형광등은 모조리 다 밝혀진 상태라 홀 안은 대낮처럼 훤했다.
용여홍은 눈동자를 굴리며 중얼거렸다.
“전기가 어디서 오는 거지?”
구세계가 파괴된 지도 벌써 6, 70년이었다.
성건우는 오른손으로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두드리며 흥미를 보였다.
“발전을 위해 오하명을 납치했나?”
‘역시 너다⋯⋯.’
장목화는 즉각 홀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은흑색 금속 대문이 자리해 있었다. 이미 열려 있는 대문 옆에는 조각상 같은 로봇도 한 대 서 있었다.
배터리가 방전된 듯 고개 숙인 로봇은 뽀얀 먼지를 입고 있었다. 크기는 게네바보다 훨씬 작았고, 외형을 보면 구세계에서 생산한 로봇 같았다.
머뭇거리던 장목화가 말했다.
“겐은 이미 실험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아.”
그녀는 또 잠시 뜸을 들이다 덧붙였다.
“이곳처럼 비밀 실험실이 있던 늪 1호 유적에는 수력 발전소가 있었어. 그래서 매일 밤 전기가 들어왔지.”
그녀의 말은 어쩌면 이곳에도 살짝만 손봐도 장기적으로 사용 가능한 발전소가 있고, 그 때문에 이 실험실이 유지됐는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건 구세계 로봇들일 가능성이 컸다.
장목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건우가 비밀 실험실 입구로 달려갔다.
눈 깜빡할 사이 문가에 이른 그는 그곳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 은색 로봇을 향해 공손하게 물었다.
“혹시 너보다 키가 큰 지능인 한 명 본 적 있어?”
성건우는 동시에 손짓으로 게네바의 키를 표시해 보이기도 했다.
친구를 보는 용여홍은 역시 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바빴다.
‘질문에 답하면 그게 더 무서울 것 같은데⋯⋯.’
바로 그때였다. 문가에 서 있던 로봇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눈으로 붉은빛을 번득였다. 그리고 그 입에선 냉랭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법 침입! 불법 침입!”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은색 로봇은 벌써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끝의 유탄 두 발은 타오르는 꼬리를 끌고 가까운 곳의 성건우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성건우는 쏜살같은 유탄보다 더 빠른 강자였다.
로봇이 고개를 들고 붉은 눈빛을 발산함과 동시에 몸을 젖힌 성건우는 다리로 땅을 박차고 허리와 배에 힘을 주어 뒤로 공중제비를 넘었다.
일반적으론 그냥 평범한 공중제비겠지만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지금의 성건우는 탄성으로 보나 균형 능력으로 보나 이미 인간을 초월해 있었다. 심지어 공중제비를 도는 동안 구세계 신화 속 근두운이라도 얻은 양 천장에 닿을 뻔까지 했다.
이내 그를 지나친 유탄은 금속 홀 가장자리로 추락하며 격하게 폭발했다.
다른 구조팀원들 역시 굉장히 빠르게 반응했다.
카멜레온 인공지능 갑옷을 입은 백새벽은 삽시간에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면서 가장 적합한 공격 기회를 노렸다.
용여홍은 로봇과의 정면 승부엔 자신이 없어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의 뛰어난 방어력을 믿고 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직선으로 돌진하는 대신, 지능 갑옷에 달린 꼬리를 이용해 뱀처럼 S자 궤도를 따라 달리며 충분한 균형을 유지했다.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T1형 기계 팔의 레이저 무기를 발사 대기 모드로 전환했다. 적을 포착하고 중요 부위를 조준해 치명적인 일격을 날릴 준비였다.
그사이 펄쩍 뛰어 옆의 금속 벽 위로 올라갔던 장목화는 벽, 천장, 바닥에 연속으로 튕기며 어지럽고 포착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로봇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상대와 원거리에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홀은 광장이 아니라 충분한 공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지하 2층이었다. 치열한 전투로 하중 구조가 파괴되기라도 한다면 건물은 무너져 내릴 테고 구조팀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도 위에서 몇 톤이 추락하는 것까지 감당할 순 없었다. 정말로 그런 상황에 봉착한다면 갑옷 자체는 어느 정도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지 몰라도 그 안의 용여홍이 위험해지는 건 자명했다.
구조팀원들의 협공을 마주한 은색 로봇은 곧 프로그램에 따라 풍부한 전투 지능을 갖춘 듯 가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용여홍은 상대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뒤이어 로봇은 민첩하게 훌쩍 뛰어오르거나 달리면서 계속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불법으로 침입한 이들을 향해 유탄을 날리고 전자파 무기를 사용해 한 차례씩 폭발을 일으켰다.
로봇은 그 때문에 건물이 무너져 내릴 것은, 실험실이 묻혀버릴 것은 걱정도 하지 않았다. 구조팀이 서로를 도우며 빠르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미 이 무정한 살인 기계의 공격에 당하고도 남았을 것 같았다.
상황은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전투가 시작된 지는 사실 십여 초 정도 지났을 뿐이었다.
이제 데구루루 굴러 실험실 입구 근처로 돌아간 은색 로봇은 공격을 한 차례 마치고 다시 펄쩍 뛰어오르려 했다.
바로 그때, 로봇의 눈에서 발산하던 붉은빛이 돌연 깜빡거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
경직은 단 1초에 불과했지만 그 사이 은백색 아크에 휘감긴 탄환 한 발이 날아들었다. 강력한 운동에너지를 실은 총알은 로봇의 가슴에 명중했다.
탕!
그 부분의 금속판은 거미줄 같은 균열에 뒤덮인 채 무너져 내리며 안쪽에 숨겨져 있던 칩과 빽빽한 전자 부품, 송신 회로를 드러냈다.
장목화는 이 기회를 틈타 허공에 대고 군용 외골격 장치가 딸린 전자파 발사기를 사용했다.
곧바로 천장에서 방향을 바꿔 은색 로봇 앞에 착지한 그녀는 개인용 바주카포로 벌어진 적의 가슴팍을 겨냥했다. 충분한 사거리만 남겨 놓았을 뿐, 굉장히 가까운 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