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강력한
장목화는 오하명이 부근의 전자 기기, 회로, 전선 등에 의지해 상응하는 구역을 억지로 바꾸고, 동시에 전자 신호를 보내 이곳에 자신의 영상을 송출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 상황을 벗어나려 한다면 청력을 박탈해 오하명의 말을 듣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 더 간단한 방법도 있었다.
이곳 전자파 환경을 바꿔 오하명이 보낸 신호를 막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장목화는 개인용 바주카포를 내던진 뒤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는 생체 공학 의수에 남은 고압 전류를 방출해 범위 내의 전자파 환경을 강제로 파괴할 작정이었다.
그때였다. 어느 쪽 나사가 풀렸는지 모를 성건우가 돌연 웃음을 터뜨리더니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하, 이번에는 애완동물을 안 데리고 왔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유롭게 호움 난임 센터 홍보물을 읽던, 오하명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네 사람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순간 장목화,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은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자신이 뭘 하려고 했는지, 뭘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심지어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렸다. 그야말로 갑자기 사고 능력을 잃은 듯 멍한 느낌이었다.
장목화가 준비하던 전기 충격 역시 발사되기 전에 그대로 멎어버렸다.
검은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곧 가볍게 웃음을 짓더니 꼭 레드리버인이 애쉬랜드어를 하는 듯 묘한 말투로 말했다.
“긴장할 것 없어. 내가 정말로 너희들을 처리할 생각이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일 필요 있겠어? 전기 스파크만 번쩍 터뜨리면 될 일인데. 대도는 물과 같아서 그 기세를 따라 드넓게 흘러. 막을 수 없는 거야.”
남자의 목소리는 확실히 오하명의 음성이었다.
그가 말하는 사이 구조팀도 빠르게 사고 능력을 회복했다.
그렇게 정신이 들자마자 네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저 독창 같은 놈, 너무 강하잖아?’
하지만 성건우는 저항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대신 침착한 얼굴로 호기심을 표했다.
“멍청한 아우라?”
이건 장생 영역의 능력이었다. 성건우는 오하명이 조금 전 발휘한 능력의 영향이 그 영역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 앉은 오하명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느릿하게 등받이에 기댄 채 미소를 지었다.
“신세계에 진입하면 한 영역의 모든 능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되지.”
장목화는 조금 전의 일을 되새겼다. 방도가 없는 상황에서는 충분한 준비를 미리 해둬야만 멍청한 아우라의 영향 속에 상대가 원하는 대로 이끌려가지 않고 저항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대로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적당한 때를 틈타 오하명을 내보내고 주도권을 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고 뭔가를 얻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기왕 이렇게 위험한 처지에 몰린 상황이면 뭐라도 묻고, 뭐라도 더 들어야지. 혹시 모르잖아. 도움이 될지도!’
“그럼 달지기는?”
장목화의 물음에 오하명이 다시금 웃었다.
“꿈이 원대하군. 근데 그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야. 먼저 싸우려고 하지 않아야만 세상도 그와 싸우려 하지 않는 법이지.”
장목화가 자신의 타진이 실패로 돌아간 모양이라 생각한 순간, 오하명이 또 옆쪽의 파란 쿠션을 두드렸다.
“거시적으로 보면 달지기는 각각 세 개 영역을 장악할 수 있어. 자연히 해당 영역의 모든 각성자도 제압할 수 있고.”
세 개의 영역⋯⋯. 한 개의 대가, 세 개의 은혜⋯⋯.
장목화는 일맥상통하는 법칙을 깨달았다.
이윽고 작고 둥근 테의 안경 너머로 주위를 슥 둘러보던 오하명은 용여홍과 백새벽이 매우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말로 긴장할 것 없다니까? 내가 너희를 통제하려고 했다면 지난번에 진즉 그랬을 거야. 여태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어.”
괴물, 혹은 독창이라고 불리는 이 신비로운 존재의 태도는 진짜 방송 진행자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말투에 웃음기가 어려 있기도 했다.
“지난번에 너희가 돌아간 후, 세 명이 자살했을 거야. 내가 그때 겨우 그들 셋한테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순간 정신이 번뜩 든 구조팀은 탐색을 마치고 풍부한 수확을 얻었으나 돌연 자살을 선택한 웨트, 파르스, 패링턴 세 사람을 떠올렸다.
용여홍은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저 우아하고 공손한 남자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어! 손 하나 대지 않고 살인할 수 있다는 거야!’
이내 성실한 성건우가 반문했다.
“왜 우리를 놓아준 거지?”
오하명은 두 다리를 꼬며 매우 여유로운 자세로 답했다.
“너희는 달지기의 주시를 받고 있으니까.”
구조팀원들을 훑던 그의 눈빛은 점차 성건우에게 머물렀다.
“사명, 에이돌른, 여명, 쌍태양, 깨진 거울, 보리⋯⋯.”
영리한 장목화는 곧바로 전에 한 추측 중 가장 가능성 없어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이건 그때 양범구가 한 추측이잖아. 근데 그 사람은 우리가 어느 달지기의 신실한 신도라고 믿고 있었는데.’
하지만 구조팀도 그렇게 많은 달지기가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걸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레드스톤 마켓에서 옥부처가 에이돌른의 주시 아래 기묘한 변화를 보인 이래로 구조팀도 이미 다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 달지기들이 왜 우리를 주시하는데?”
용여홍이 내뱉듯 물은 말에 오하명이 픽 웃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물어야지.”
다시 장목화가 냉정하게 캐물었다.
“그럼 넌 왜 우리를 찾아온 거지?”
오하명은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회색 정장의 매무새를 한번 다듬었다.
“너희가 내 애완동물을 다치게 했잖아. 너희를 보러 온 이유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본론인가.’
자신이 흰 늑대의 꼬리를 쐈던 것을 떠올린 용여홍은 더더욱 긴장했다.
이때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건우가 다른 질문을 했다.
“전에 우리를 공격한 사람이 있었어. 넌 왜 그들한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고 이 유적을 멋대로 휘젓고 다니게 내버려 뒀어? 우리 같은 레벨은 전기 스파크 한 번이면 된다며. 설마 그들도 어느 달지기의 주시를 받고 있어?”
‘좋은 질문이야!’
장목화는 성건우가 그리도 좋아하는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었다.
이어, 오하명은 고개를 틀어 자동문 쪽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봉인돼 있다 보니 재미있는 게 필요했거든. 게다가 그들은 박사의 보호를 받고 있기도 하고.”
장목화가 예리하게 그 단어를 포착해냈다.
“박사? 제8 연구원 박사?”
오하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장목화는 머리를 굴리며 분석에 나섰다.
‘오레이는 박사를 비롯한 그들이 어둠의 앞잡이로 전락했다고 했어. 여명 샛별과 진아교에서는 그들을 악마의 수족으로 여겼고. 그렇다면 악몽도 어둠의 일부인가?’
그 사이 성건우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우리를 처리할 생각이 없다면 네 애완동물은 왜 우리를 공격한 건데? 그리고 넌 왜 우리 팀이 가진 전자 기기에 몇 번이고 영향을 미쳤던 거고?”
오하명은 웃음을 터뜨렸다. 동시에 작고 둥근 테의 안경 뒤에 자리한 그 눈동자에선 약간의 붉은빛이 어렴풋하게 번득였다.
“맞혀봐. 우리 중 너희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는 몇 명이고, 전력을 다해 그들을 제압하려는 이는 또 몇 명일까?”
용여홍이 보기에 저 독창의 웃음엔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운 잔인함과 기묘한 즐거움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안 돼, 저 사람을 자극하면 안 돼. 역시 장생 영역에 속한 저 사람의 대가는 건우랑도 비슷한가 보네.’
장목화는 왼손을 들어 성건우에게 이야기를 그만하란 신호를 보냈다.
뒤이어 구조팀이 무슨 말을 하기 전, 오하명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너희를 만나러 온 이유가 있어. 너희가 조사하는 일, 나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야. 나중에 혹시 내 봉인을 해제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 사냥꾼 손을 빌려 ‘파흐 포스트’를 보내준 것도 그 이유고.
너희한테 알려주려는 건, 다음으로 탐색해야 할 불가 성지는 빙원 타이 시티 제1 고등학교라는 거야.”
말을 마친 오하명의 낯빛이 묵직해졌다. 주위 공기 역시 순간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는 듯했다.
“이제 떠나도 돼.”
구조팀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더는 이곳에 머무르겠단 엄두도 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홀을 가로질러 호움 난임 센터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막 자동문을 나설 무렵, 장목화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너, 정말로 생물을 변이시킬 수 있어?”
오하명이 미소를 지었다.
“어떨까.”
그는 직접적인 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구조팀의 네 팀원이 호움 난임 센터로부터 멀어지자, 돌연 오하명의 뒤쪽에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바로 허란이었다.
“왜 저들을 조종해 네 봉인 해제를 돕도록 하지 않은 거야?”
허란이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지금 오하명의 곁에서 그녀는 대칭 강박증이란 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 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오하명이 웃었다.
“너와 저들만으론 안 돼. 게다가 이따가 박사는 전력을 다해 저들에 맞서야 할 거야. 그 목걸이 주인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허란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넌 신경 안 써?”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오하명의 인영은 점차 흐릿해지다가 사라졌다.
그가 남긴 말은 단 한 마디였다.
“저들을 죽이지 못하는 것은 저들을 강하게 할 뿐이야.”
* * *
구조팀은 저녁이 되기 전 동굴 통로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는 네 사람 모두 기록해 둔 중요 정보를 보며 기억이 조작되지 않았다는 걸, 기이한 생각이 이식되지도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곤 서로에게 일러가며 성건우가 유도한 사유 제거도 마쳤다.
“오하명의 말, 대체 무슨 뜻일까요?”
용여홍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장목화가 막 질문에 답을 하려는데, 손전등 빛에 나무 상자가 드러났다. 바닥에 놓인 나무 상자들은 구조팀이 군용 외골격 장치와 인공지능 갑옷을 담아둘 때 쓰는 것들이었다.
상자가 이곳에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장목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겐은?”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게네바가 보이지 않았다.
장목화의 말에 용여홍도 따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전등 빛 아래의 공간은 전과 완전히 달랐다. 이곳은 게네바와 헤어진 그곳이 아니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와 인공지능 갑옷을 담은 상자는 원래 더 멀리 떨어진 동굴 안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들은 최소 300미터 이상 옮겨졌다.
장목화가 상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겐을 찾기 시작한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현재 칩 안에 충성심과 책임감이 새겨진 지능 로봇 게네바는 멋대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겐! 겐!”
일찍이 육식주를 전술 배낭에 넣은 성건우가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동굴 벽에 부딪혀 메아리를 울리고 있지만 부름에 응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배터리가 다 된 거야?”
백새벽은 바로 성건우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야, 겐은 고성능 배터리를 넉넉히 가지고 있었어. 충전을 못 해도 일주일은 문제없이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
성건우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그럼 겐은 왜 사라졌지? 지나가던 유적 사냥꾼이 납치한 거 아냐?”
그는 게네바를 약하고, 유인되기 쉬운 아이로 여기고 있었다.
백새벽은 침묵했다. 더불어 손전등의 노르스름한 불빛에 드러난 그녀의 표정은 이미 뭔가를 짐작한 듯 매우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