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화. 유비무환
의심의 여지 없이, 구조팀은 그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이 층의 다른 방들도 살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시켜 병력을 읊게 하고 옥부처를 꺼내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으나 이 불가 성지는 전에 방문한 두 곳과는 전혀 다른 듯했다.
“지, 지나치게 정상적이고 지나치게 평범하네.”
4층 계단 입구에 선 용여홍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불가 성지가 지나치게 정상적이라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장하시 연합 철강공장에서도,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에서도, 많건 적건 이상은 존재했었다.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탐색도 다 했고 의식도 다 치렀잖아.”
턱을 쓰다듬던 성건우가 웃는 얼굴로 반문했다.
“아냐. 있어야 할 게 빠진 것 같다는 느낌 안 들어?”
약간 멍해진 백새벽은 몇 초간 고민했지만 답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에 장목화가 작게 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냉동 생식 재료 창고가 안 보였어. 불임을 치료할 수 있는 난임 센터에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잖아.”
반고 바이오 직원인 그들은 그런 문제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었다.
순간 깨달음을 얻은 용여홍이 중얼거렸다.
“그, 그럼⋯⋯. 지하에? 우린 아직 지하에는 안 내려가 봤잖아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지금 가보자.”
말을 마치자마자 갑작스레 옆으로 돌아선 그녀가 맞은편 방 안의 통창을 바라보았다.
“생물 전기 신호가 강하게 느껴져!”
하지만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순간 화들짝 놀란 용여홍은 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실체를 갖춘 듯 그의 심장을 꽉 옥죄었다.
뒤이어 그는 통창을 때리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 하나를 목격했다.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굵기가 물통만 한 구렁이였다. 차가운 눈은 동그랗고도 커다랬고, 피로 가득 찬 듯 새빨갰다.
‘붉은 눈을 가진 거대한 구렁이? 오하명 곁에 있던 그 구렁이인가?’
용여홍은 전에 이 무시무시한 구렁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음에도, 그저 패링턴에게 들은 게 다인데도, 저 또렷한 특징에 바로 오하명을 떠올렸다. 저 구렁이의 습격 역시 오하명의 짓일까 봐 더더욱 공포가 밀려왔다.
그는 전전긍긍한 나머지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다. 숨이 턱 막혀와 저항할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아니, 생각마저도 얼어붙어 버린 듯했다. 그 얼음층 아래 흘러 다니는 생각들은 있지만 몸은 여전히 굳어버린 상태였다.
정신이 아득한 가운데, 용여홍이 추측에 나섰다.
‘저건 변이 생물이다. 에이돌른 영역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목표의 두려움을 유발할 수 있는 거야. 극도의 두려움처럼 곧장 쇼크사를 야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냥감의 저항심을 와해시키기에는 충분해.’
용여홍과 마찬가지로 카멜레온 타입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백새벽 역시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그녀는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고도 평소처럼 오렌지 소총을 들어 조준하지 못했다.
장목화는 짙은 고통에 점철된 표정이었다. 얼굴 근육이 약간 왜곡되는 것이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 기인하는 강렬한 느낌에 온 힘을 다해 맞서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성건우만은 너무도 담담했다. 열 성건우 중 어느 성건우 같지도 않았고,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을 기색이었다.
북안 뭇 산에 자리한 이 동굴에 들어오기 전 구조팀은 마주할 수 있는 상황에 적잖게 대비했었다. 그중에는 공포, 매혹, 친근함 등 구조팀이 경험한 적 있으면서도 저항하기 어려운 각성자 능력에 대한 예방책도 있었다.
그 예방책은 바로 사유 이식이었다.
물론 사유 이식의 효과가 중첩될수록 문제가 커지기에 구조팀은 각 팀원 당 하나의 사유만 이식해 상응하는 능력에 저항할 수 있도록 했다.
전에 차으뜸에 통제됐을 때처럼 정신을 차린 사람 하나 없이 전원이 특정한 각성자 능력에 영향을 받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중에서도 성건우는 평소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흥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에 팀원들은 상의를 거친 후 그에게 두려움을 맡기기로 했다. 진지하게 경계해야 하는 공포의 상황에 그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사실 장목화의 자극 둔화로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유지 시간에 따르는 한계 때문에 몇 시간 동안 이어질 탐색을 다 감당하지는 못했다.
도중에 끊임없이 능력을 다시 발휘해야 할 텐데 그래서는 상당히 골치가 아프고 또 성가셔졌다. 게다가 장목화는 아직 기원의 바다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정신력도 그러한 작업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또한 성건우가 자신을 상대로 사유 유도를 발휘할 때 그 효과는 어쩔 수 없이 감퇴되었다.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는 사유로는 두려운 상황에만 맞설 수 있을 뿐, 다른 상황까지 커버하지는 못했다. 그래야 정상적인 판단과 정상적인 반응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침착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된 성건우는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통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에서는 순간 빨간 불꽃이 튀어 나갔다.
탕! 탕! 탕!
총성과 함께 통창은 산산조각이 났고 붉은 눈을 가진 거대한 구렁이의 몸 곳곳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쉬익-
그 변이 생물은 입을 쩍 벌리며 말로 형용하기도 어려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보이지 않는 공포심은 더욱 깊어졌다.
탁!
녀석이 뒤로 흔든 몸에 밖의 가로수가 부딪혀 곧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이러한 기회를 마주한 성건우는 공격을 퍼붓는 대신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 상대를 호되게 꾸짖었다.
“이건 반칙이지! 너한테는 사지가 없잖아!”
그는 조금 전 저 붉은 눈의 거대한 구렁이를 상대로 사지 동작 불능 능력을 쓰려고 했으나 당연히 실패했다.
구렁이는 지금껏 의식을 숨긴 채 몰래 접근하다가 장목화에게 생물 전기 신호를 들킨 후에야 모습을 드러내며 성건우의 영향 범위로 들어왔다.
저 거대한 구렁이는 성건우의 질책을 듣지 못한 듯했다. 설령 들었더라도 알아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의 구렁이는 고통에 잠식된 채 몸을 뒤틀고 있었다. 녀석에 휘감긴 나무는 어찌나 꽉 옥죄어지고 있는지 곧 즙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구렁이의 비늘은 검은 늪 철갑뱀만큼 견고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방어 효과는 있었다. 거기다 가죽과 살이 아주 두껍고 단단해서 성건우의 총에 맞아도 상처가 그리 치명적이진 않아 보였다.
성건우가 다른 능력을 발휘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때였다. 갑자기 거대한 흰 늑대 한 마리가 3층에서 뛰어 올라왔다.
장목화는 두려움에 잠식된 터라 아무런 주의도 주지 못했다. 거기다 그 백효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늑대는 매혹을 발휘할 때까지 자신의 의식을 숨기고 있다가 그제야 구조팀 뒤쪽으로 달려들었다.
녀석은 원래 붉은 눈의 구렁이와 앞뒤로 구조팀을 압박하며 협공해 최단 시간 내에 적들을 처치할 생각이었던 듯했다. 그러나 그가 나타났을 때 구렁이는 이미 물러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용여홍이 홱 돌아섰다.
바이저 아래 자리한 그의 눈은 잔뜩 충혈돼 있었다. 전혀 매혹당한 것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오히려 눈앞의 흰 늑대를 철천지원수로 여기듯 매섭게 노려보던 용여홍은 미친 듯 난사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가 매혹에 대한 저항을 담당하기로 한 멤버였다.
성건우는 용여홍한테는 굳이 사유를 유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상대가 백새벽이 되지 않는 한, 모든 매혹에 저항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성건우는 용여홍에게 이런 사유를 유도했었다.
“네가 어느 생물에 매혹당했을 때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 역시 상대에게 매혹당할 수도 있단 걸 잘 알 거야. 그러니까 상대를 바로 죽여 박제한 뒤 수집을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이 순간 마음속 통한과 갈망은 용여홍이 매혹에 맞설 수 있도록 도왔을 뿐 아니라 두려움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여유만 있었더라면 성건우도 친구를 위한 박수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탕! 탕! 탕!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에서 쏘아진 총알들이 초연과 불꽃을 피워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흰 늑대는 붉은 눈의 구렁이보다 더 신중했다. 무턱대고 달려드는 대신 용여홍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몸을 날려 아래층 계단으로 뛰어내렸다.
쿵! 쿵! 쿵! 쿵…….
허둥지둥 도망치다가 결국 꼬리에 총을 맞은 늑대는 균형을 잃고 계단 난간 위로 추락했다.
뒤이어 용여홍과 성건우가 각자의 적을 추격하려 한 그 순간, 갑자기 호움 난임 센터 4층의 모든 형광등이 다 켜졌다. 바깥의 햇빛과 겨룰 수 있을 정도로 밝고 환한 빛이었다.
탕! 탕! 탕!
태산처럼 침착한 성건우는 바로 몸을 틀어 지금 자신들이 자리한 방의 형광등을 모조리 총으로 깨부쉈다.
멍한 표정을 보이던 용여홍도 동료들을 위해 복도의 등을 제거했다.
점차 두려움과 매혹이 사그라듦에 따라 속속들이 정신을 차린 장목화와 백새벽도 동료를 도와 통제 불능이 된 이 층의 모든 전등을 처리했다.
파직-
마지막 등이 꺼지고 호움 난임 센터는 원래의 상태를 되찾았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만 늘어났을 뿐이었다.
장목화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자기 상태 한번 점검해 봐. 기이한 생각이 늘어나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팀원들이 모르는 새 오하명의 영향을 받았을지 염려하고 있었다.
이때 구렁이와 늑대 모두 종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차례 확인을 거친 뒤, 구조팀은 오하명이 그 애완동물들을 구조하기만 했다는 걸 확인했다.
성건우가 유도한 사유는 대조를 위한 기록에 쓰여 있어서, 이런 확인을 한다고 효과가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동료에게 외부에서 유입된 생각이 있다는 걸 유적을 나가는 즉시 바로 일러 줘야 했다.
잠시 한숨을 토해낸 장목화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하명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최대한 빨리 지하 1층 수색을 마치고 충분히 여유 시간을 둔 뒤에 여기서 빠져나가자.”
지하 1층을 수색하고도 수확이 없으면 내일 다시 와야 했다.
“예, 팀장님!”
갑자기 흥분한 성건우가 답했다.
그 모습에 팀원들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떨렸다.
* * *
지하 1층에 이르러 몇 분간 수색을 거친 구조팀은 예상했던 대로 그곳에서 냉동 창고를 하나 발견했다.
창고의 시커먼 금속 문 앞에서 백새벽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전기를 공급하지 않는 이상 열 방법이 없어요.”
“전기를 공급해도 안 열려. 시도해봤는데 문 안의 부품들이 심각하게 망가져 있더라고.”
성건우도 이미 이 문에 전기를 공급해봤던 시도를 밝혔다.
이내 장목화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러나 있어. 내가 날려버릴게.”
거의 70년이 다 되도록 버려져 있었으니 안에 있는 생물 재료에도 더 이상의 활동성은 없을 터였다.
성건우는 즉각 장목화 뒤로 물러나다가 뭔가 또 생각에 잠겼다.
“근데 호움 난임 센터가 불가 성지가 된 건, 이곳에 보리나 장생의 생식 재료가 저장돼 있기 때문 아닐까요?”
“⋯⋯.”
순간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그 누구도 아무 대꾸를 하지 못했다.
성건우는 냉동 창고의 검은 대문을 한번 돌아보며 더 의욕을 보였다.
“그럼 그건 성유물로 봐야 할까요?”
지금 장목화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얘랑 좀 떨어져 있어야겠네. 쟤가 달지기의 벼락을 맞을 때 나까지 거기에 휘말릴 순 없잖아.’
숨을 깊게 내뱉은 그녀가 개인용 바주카포를 어깨에 얹었다.
콰릉!
포구에서 튀어 나간 포탄 한 발이 금속 대문을 절반 정도 날려버렸다.
부연 초연이 이는 사이, 성건우는 신난 듯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내가 앞장설게요!”
잠시 고민했지만 장목화도 그를 저지하진 않았다.
성건우는 곧 폭발로 날아간 냉동 창고 문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그의 주머니에서 미약한 청록빛이 흐릿하게 발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