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화. 유전자 연구
뒤이어 장목화가 나서서 자신이 발견한, 북방 회사에서 호움 난임 센터를 참관하러 왔던 사실을 설명한 뒤 끝으로 덧붙였다.
“북방 회사가 파흐 지구 바이오 기술 국제 박람회에 참가한 건 그들의 새로운 유전자 연구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어.”
백새벽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그 후 호움 난임 센터의 초청을 받은 걸까요? 양측은 유전자 연구에 있어 어느 정도의 합작을 하기로 결정한 걸까요?”
장목화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근데 날짜를 보면 북방 회사가 여길 참관하고 파흐 지구를 떠난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 구세계가 파괴됐어.”
무슨 합작을 약속했든 그 일이 이행될 시간은 없었을 것이었다.
즉 양측이 정말로 합작을 달성했다 한들 그것과 구세계의 파괴는, 무심병의 폭발은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것이었다.
용여홍이 말했다.
“그럼 이곳이 불가 성지가 된 것도 북방 회사와의 그 미약한 연계 때문은 아니겠죠?”
북방 회사의 연계가 불가 성지의 요소라면 오히려 파흐 지구에서 바이오 기술 국제 박람회가 열렸던 그 장소가 더 신성할 것이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앞으로 조사해야 할 방향이지.”
장목화는 일단은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았다.
구조팀은 한 차례 수색을 마쳤지만 성건우의 전술 배낭을 가득 채운 성스러운 잡지와 장목화가 기억해둔 북방 회사 부총재 오크, 호움 난임 센터 센터장 치코프 등의 모습을 제외한다면 그 외의 수확은 없었다.
다시 홀 중앙으로 돌아온 성건우가 퍽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시작할까요?”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용여홍, 백새벽에게 말했다.
“너희는 밖으로 나가서 창문으로 홀 상황을 살펴봐.”
예전 그 철강공장 폐허 가족 2구역 4동 302호를 탐색했던 경험에 기반한 방법이었다.
백새벽과 용여홍이 각자 위치에 이르자 이미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던 성건우는 한 손에는 육식주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철강공장 폐허에서 찾은 병력 복원본을 펼쳤다.
뒤이어 그는 염불을 외듯 병력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호움 난임 센터 내부의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무전기를 통해 백새벽과 용여홍이 목격한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한번 상황을 점검한 뒤,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옥부처를 꺼내라고 했다.
성건우는 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호수 같은 색의 옥부처를 꺼내 손바닥으로 받쳐 들었다.
이번에도 주위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구조팀이 제2 식품회사에서 사용했던 방법도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성건우는 옥부처를 움켜쥔 채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되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도 무전기를 들었다.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돌아와. 2층을 탐색한 뒤 같은 작업을 한 번 더 반복해보자.”
* * *
용여홍과 백새벽이 복귀한 뒤 구조팀은 다시 전투 대형을 유지한 채 계단으로 2층까지 올랐다.
호움 난임 센터 내부의 피해 상황은 확실히 심하지 않았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부 테이블과 의자가 엎어져 있거나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 있거나 몇 군데에만 검은 혈흔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길고 조용한 복도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던 구조팀은 복도에 딸린 방들에 하나씩 들어가 단서를 찾았다.
그런 식으로 각각 방을 살피던 가운데, 용여홍은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앞서 우측 앞쪽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 들어가자마자 용여홍은 한 유화를 발견했다. 가슴이 드러난 여인을 그린 유화였다. 뒤이어 용여홍은 그와 비슷한 대량의 사물과 액정 모니터 등의 물건도 보았다.
결국 그는 귀까지 빨개진 채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나왔다.
“왜 그래?”
장목화가 물었다.
호기심을 안은 채 앞으로 나선 성건우는 용여홍의 곁으로 다가와 방 안의 상황을 훑어보았다.
탁!
그는 바로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 측면을 때리며 말했다.
“알겠다. 여긴 수트라 룸이야.”
말을 마친 그가 낮게 염불을 외웠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장목화와 백새벽은 순간 성건우의 진정한 말뜻을 알아차렸다.
이에 애써 웃음을 참은 장목화가 간단히 지시했다.
“빨리 한 번만 훑어보자. 안에는 아무 단서도 없는 것 같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구조팀은 이 방에서는 유용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다시 걸음을 옮겨 가로로 뻗은 복도에 접어든 장목화는 주위를 한번 슥 훑다가 한 표찰을 발견했다.
[센터장 사무실]
구조팀은 서로를 보며 모두가 조심스러운 표정을 한 걸 발견했다.
아니, 그중 성건우는 예외였다. 용여홍은 심지어 그가 지금 노래하고 춤추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잠시 머뭇거리던 백새벽이 말했다.
“센터장 사무실이면 비밀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커요.”
바로 불가의 성지가 된 비밀……?
곧이어 늘 하고픈 말은 곧바로 하는 성실한 성건우가 나섰다.
“그건 정상적인 상황일 때 얘기지. 불가 성지는 그 자체로 비정상적인 곳이잖아. 장하시 연합 철강공장이 불가 성지가 된 건 가족 2구역 4동 302호에 있던 옥부처와 방민서, 이진용의 시체 때문이었어.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가 불가 성지가 된 건 평범한 판매부장 유옥로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됐을 수도 있는 전 직원 때문이었지. 이들은 철강공장 공장장이나 식품회사 사장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
용여홍은 반박해주고 싶었으나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웅얼웅얼 중얼거리기만 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여기의 문제가 센터장과 관련돼 있을지 누가 알아?”
장목화도 성실한 성건우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않고 상황을 수습했다.
“어쨌건 여긴 아주 중요한 장소야. 호움 난임 센터를 한층 더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 차례대로 들어가 보자.”
팀의 방패인 용여홍은 절대 그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다시 메고 제일 먼저 호움 난임 센터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면적은 작지 않았다. 용여홍의 집보다도 컸다. 구조팀 사무실 627층 14호 방도 이곳보다는 작을 듯했다.
바로 뒤따라 들어온 성건우가 시원하게 평가도 내렸다.
“으리으리하네!”
바닥엔 두꺼운 회색 카펫이 깔려 있고, 왼편엔 책장과 진열장 등이, 접대 구역인 오른편엔 소파, 티 테이블, 의자 몇 개, 소형 바와 옷걸이 등, 중앙 통창 앞엔 짙은 검은색 대형 사무용 책상과 가죽 등받이 의자가, 또 사무용 책상 맞은편에는 인체 공학 의자 두 개도 더 놓여 있었다.
성건우는 당장이라도 그 의자에 앉아보고 싶다는 듯 중얼거렸다.
“딱 봐도 엄청 편해 보이네.”
동시에 용여홍은 사무실 카펫 곳곳에 남은 검은 혈흔을 발견했다. 어디에선가 튄 피의 흔적인 듯했다.
거기에 통창 앞 대형 사무용 책상 위엔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문서와 펜 등이 사방에 흩어진 상태였다.
장목화도 고개를 숙여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누군가 총에 맞고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남은 흔적인 것 같은데. 핏방울이 저 사무용 책상 앞까지 죽 이어져 있어.”
그녀가 총격이라 단정한 건, 문 근처 벽에 난 총알 자국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말하는 사이 대형 사무용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은 약속이나 한 듯 흩어져 각자 한쪽씩 경계를 맡았다.
빠르게 도착한 장목화는 가죽 등받이 의자에서 색이 짙은 부분을 확인했다. 그 주위 카펫도 다른 구역보다 더러웠고 검은 흔적도 곳곳에 보였다.
뒤이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본 그녀는 그곳에서도 혈흔으로 의심되는 대량의 검은 흔적을 발견했다.
“경동맥이 터져서 피가 몇 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건가?”
그녀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는 어떠한 유해도 남아있지 않아서 분명히 증명할 수는 없었다.
장목화는 현장의 흔적을 다시 검사한 뒤 돌아서 팀원들에게 말했다.
“구세계가 파괴됐을 때 호움 난임 센터의 적잖은 이들이 무심자로 변했어. 그들은 인간을 쫓으며 사냥을 시도했고, 그중 한 명은 이곳에 쳐들어와 치코프로 의심되는 센터장에게 총을 맞은 거야.
하지만 그 자리에서 죽지 않고 상대의 코앞까지 달려들어 책상을 뛰어넘고 센터장의 경동맥을 물어뜯거나 잡아 뜯은 거지. 이후 무심자는 시체를 끌고 그걸 여유롭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 거 아닐까?”
성실한 성건우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이 함께 죽으며 다른 무심자가 덕을 봤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목화는 이를 악문 채 대꾸했다.
“그 말도 맞네.”
백새벽이 물었다.
“수정의식교 승려들은 2층이나 다른 층에 올라가 봤을까요? 이런 방들에 들어와 본 적 있을까요? 왜 여기 바닥에 널브러진 문서나 서적, 펜은 정리하지 않았을까요? 설마 매번 진정한 성지인 특정 방에만 갔던 걸까요?”
용여홍이 백새벽의 질문에 답했다.
“내 생각엔 여기도 들어와 본 적 있을 것 같아. 안 그럼 우리가 여기까지 탐색하는 동안 시신 한 구 못 봤을 리 없잖아.”
논리적으로도, 무심자의 행동 습관에도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시체를 더 안전한 곳에 숨겨놓고 몰래 먹으려 하기도 했지만 묵직한 무언가를 끌고 멀리까지 이동하려 하지는 않았다.
즉, 호움 난임 센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시체는 아직 이 건물 안에 남아있어야 했다.
물론 이는 혼란의 시대 전기 무심자들의 행동 습관일 뿐이었다.
그 후 여러 유적 사냥꾼은 살아남은 무심자들이 식량의 감소와 동족과의 경쟁 때문에 작은 집단을 이루고 분업을 통한 합작을 하는 걸 발견했다.
그런 무심자들은 사냥에 성공한 뒤 한 명, 혹은 여러 명에게 소굴까지 식량을 끌고 가도록 했고, 나머지에게는 보호를 맡겼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어쩌면 수정의식교 승려들은 더러운 시체는 정리할 필요가 있지만 이 성지는 원상태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그럼 곳곳을 뒤져보면서 뭔가 단서가 있는지 찾아보자. 마지막으론 제도 선사한테 예불을 드리며 1층에서 했던 절차를 반복하는 거야.”
장목화는 농담으로 성건우를 제도 선사라고 칭했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성건우는 매우 흥분한 얼굴을 했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본체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인정받은 성건우 민주협의회 회원이 이 빈승인 겁니까?”
‘⋯⋯내가 미쳤지.’
장목화는 바로 후회했다.
그 사이, 성건우가 다시 피식 웃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누가 본체인데?”
이를 시작으로 성건우들의 입씨름이 시작되었다. 그 시끌벅적한 소리에 용여홍은 가까스로 무르익은 엄숙한 분위기가 연기처럼 흩어지는 걸 느꼈다.
결국 장목화가 팀장의 위엄을 앞세워 성건우들의 토론을 저지했다.
이후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성건우, 용여홍은 책장과 진열장 쪽을, 백새벽은 접대 구역, 장목화는 옆쪽 검은색 사무용 책상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장목화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개인용 바주카포를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 문서와 책, 펜을 주웠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살폈지만 별 수확은 없어서, 다시 사무용 책상 서랍을 열어 다른 단서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성건우에게 전력을 공급받아 이곳에 있던 컴퓨터를 켜보려고도 시도했다. 하지만 컴퓨터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이따 저장 장치만 따로 분해해 게네바에게 데이터 복원을 부탁해봐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