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07화 (607/649)

607화. 호움 난임 센터

구조팀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호움 난임 센터 자동 유리문이 양옆으로 미끄러지듯 열렸다.

용여홍은 깜짝 놀랐다.

“응? 아직도 되네? 전기가 통하나?”

이에 측전방 앞의 성건우가 용여홍을 돌아보며 웃었다.

“내 지휘에 따른 거야.”

자동 유리문은 그의 전자파 간섭 영향으로 열린 것이었다.

이번엔 백새벽이 용여홍을 도와 물었다.

“이렇게 세심한 조작까지는 못 했었잖아.”

유리문 조작은 오하명 급은 아니어도, 예전의 성건우 수준보단 높았다.

성건우가 간단히 설명했다.

“구조가 꽤 완벽하고 보존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그래. 아주 약간의 전자파 자극을 가해서 노후화된 부품 몇몇 연결을 유지한 것뿐인데 가까이 온 사람을 감지하고 열어주더라고.”

장목화는 그를 힐긋 노려보며 조심스럽게 일렀다.

“여기선 최대한 그런 짓은 삼가. 안 그럼 오하명의 짓이라고 착각하게 되니까. 방금도 하마터면 자동문한테 유탄을 발사할 뻔했다고.”

탁탁탁!

성건우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의 측면을 두드리며 손뼉을 쳤다.

그는 장목화의 질책에 민망해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대신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그녀의 드높은 경계심을 칭찬했다.

“경계하는 마음은 영구히 존재하리라!”

‘하, 지금은 또 에이돌른의 신자인가 보네.’

장목화는 입꼬리를 뒤틀며 옆으로 두 걸음 움직였다.

생물 전기 신호도, 인간 의식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용여홍에게 길을 내준 것이었다.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용여홍은 지금 팀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었다. 대열의 전방에 서서 방어하고 미지를 탐사해야 했다.

성실한 성건우도 장목화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그가 느끼기에도 인간 의식의 존재 같은 건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비늘들이 부딪히는 경미한 소리 속,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쥔 성건우도 호움 난임 센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마구 어지럽혀져 있고, 쓰레기가 가득하고, 곳곳에 백골이 널려 있는 폐허 상점들과는 달랐다.

진열대 두 개가 엎어져 있고, 의자 몇 개가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것, 일부 구역에 검은 혈흔이 튄 자국이 남은 걸 제외하면 일정 수준의 단정함과 청결함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용여홍은 주위를 둘러보며 인테리어가 굉장히 간결하다고 느꼈다. 노란색, 파란색, 녹색, 붉은색 등 선명한 색 위주의 정말 간단한 인테리어였다. 건물 자체의 고풍스러운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물론 노란색으로 칠해진 외벽을 생각해 보면 또 어느 정도의 통일성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구세계 파괴 후에 무심자들한테 파괴되지 않았나 보네⋯⋯.”

용여홍의 중얼거림을 듣고, 제일 끝으로 들어온 백새벽이 말을 받았다.

“구세계 파괴 전부터 여기엔 의사, 간호사, 환자, 직원들이 많지 않았고, 강탈할 수 있는 식량도 많지 않았던 건가?”

개인용 바주카포를 멘 장목화가 말했다.

“그럴지도. 다들 좀 흩어져서 홀 안에 단서가 있는지 찾아보자.”

뒤이어 성실한 성건우가 웃었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 그래, 작은 빨강이 너 말이야. 여긴 또렷한 위험이 없어. 생각해 봐. 여긴 퍼스트 시티에서 엄청 가까워. 수정의식교에선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로 와 기도하고 의식을 치러. 위험한 요소는 일찍이 그들이 다 제거했겠지. 봐봐, 존재했을지 모르는 백골도 다 치워진 상태잖아.”

‘보긴 뭘 봐? 굳이 날 지적하는 이유는 또 뭐야? 일리야 있다만⋯⋯.’

용여홍은 속으로 중얼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는 저쪽에 있는 서적이랑 자료를 좀 찾아볼게요.”

엎어진 두 진열장에는 책과 그림, 홍보물 등의 자료가 채워져 있었다.

“그래.”

구조팀은 그렇게 흩어졌지만 여전히 일정 거리는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진열장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용여홍은 T1형 기계 팔을 뻗어 종이가 이미 누렇게 변색된 자료들을 집어 들었다. 야들야들해져 있긴 한데 건드리면 또 바스라질 정도는 아니었다.

제목들은 다 레드리버어로 쓰여 있었다.

《신혼부부가 알아야 할 것》

《불임과 제대로 마주 보기》

《시간, 분위기, 자세가 임신에 미치는 영향》

⋯⋯

용여홍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거 내가 지금 봐도 되는 자료인가?’

그가 약간 당황해하던 그때, 또 다른 진열장 앞으로 간 성건우가 그대로 쪼그려 앉아 서적과 그림, 홍보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용여홍은 조금 머뭇거리다 물었다.

“그, 그걸 뭐 하러 챙겨?”

성건우가 바로 돌아서 장엄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것들은 전부 다 성물이잖아!”

말을 마친 그는 양팔을 뻗어 아이를 안고 달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새 생명은 태양과 같다! 생명은 가장 귀중하다!”

‘그래, 지금은 또 생명 제례 교단의 충실한 교도, 사명의 광신도인가 보네.’

장목화도 이미 변화무쌍한 성건우들에 익숙해진 터라 잠시 시선만 던지곤 프런트 근처의 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 일부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

액자에는 호움 난임 센터를 방문한 유명인이나 큰 회사 사람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장목화는 구세계 어느 책에서 본 몇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다.

‘역사를 발굴해낸 듯한 느낌인데.’

장목화는 꽤 만족스러웠다.

사진을 자세히 살피던 그때, 그녀의 눈빛이 한 액자에 꽂혔다.

그 액자에 든 사진은 매우 평범했다. 호움 난임 센터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와 이곳에 내방한 사람들 무리가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었다.

아래쪽에는 그들의 신분이 적혀 있었다.

「북방 회사 오크 부총재의 방문⋯⋯」

장목화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 회사의 이름이었다.

북방 회사!

그녀는 전에 오하명이 패링턴을 시켜 이 유적에서 가지고 나가게 했던 ‘파흐 포스트’ 기사 한 구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29회 바이오 기술 국제 박람회가 파흐에서 거행되었다. 북방 회사에서는 최신 유전자 연구의 성과를 전시했다⋯⋯」

이를 보고 당시 구조팀은 식물인간이 된 방민서의 아들이 치료를 받던 북방 기지, 그리고 503호 주인 강소월이 구세계 파괴 이전 지원자 신분으로 북방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을 연상했었다.

이번 탐색 이전, 장목화는 호움 난임 센터가 북방 회사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방민서의 아들은 장하시 연합 철강공장과 아이언마운틴 시티 제2 식품회사, 이 두 불가 성지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아주 컸고, 지원자 신분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북방 모처에 보내지기도 했었다.

파흐에서 열린 29회 바이오 기술 국제 박람회에 참가한 북방 회사를 떠올리지 않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또 다른 불가 성지인 호움 난임 센터와 북방 회사도 어느 정도 관련 있으리라는 건 굉장히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추측이 현실로 확인되었다. 모든 상황이 특정 방향으로 천천히 모여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장목화는 상기된 눈으로 북방 회사 부총재 오크를 살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그는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전형적인 레드리버인이었다.

빳빳한 양복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장목화는 그가 회사 고위층이라기보다는 연구자나 기술자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세부적인 디테일에 기반한 추측이었다.

뒤로 묶은 오크의 머리는 고집스럽게 튀어나와 있었고 목에 맨 넥타이는 단정치 못했다. 뺨에는 여드름이 꽤 많았고, 둘 곳 없는 두 손에서는 모종의 문제가 엿보였다.

물론 장목화도 추측을 확신하진 못했다. 전날 밤 과음한 탓에 내분비계에 작은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황급히 팀을 따라 일정에 나선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 오크의 약간 거친 외형을 기억에 새긴 그녀는 다시 호움 난임 센터의 센터장으로 보이는 옆쪽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벽에 걸린 사진 열 개 이상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장목화는 그가 바로 센터장일 거라 판단했다.

센터장은 키는 오크보다 4, 5센티미터 작고 체형이 좀 퉁퉁한 편이었다. 또 연노란색 머리는 젤을 발라 넘겼고, 착용한 얇은 금속테 안경이나 손목에 찬 시계는 퍽 잘 어울려 보였다.

“치코프.”

장목화가 작은 소리로 그의 이름을 읽었다.

치코프와 오크 뒤로도 한 무리가 나란히 서 있었다. 왼편에는 호움 난임 센터의 이름난 직원들, 오른쪽엔 북방 회사 대표단 구성원이 있었다.

호움 난임 센터 사람들은 다 레드리버인이었지만 북방 회사 대표 중에는 애쉬랜드인과 레드코스트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애쉬랜드인의 수는 레드리버인에 비해서도 결코 적지 않았다.

순간 장목화는 언젠가 타르난의 여관 사장 아이노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아이노는 구세계 파괴 전 가장 큰 애쉬랜드인 국가와 가장 강력한 레드리버인 국가가 연합해 설립한, 미래로의 지향을 주장하는 연구 기구 9대 연구원이 있다고 얘기했었다.

‘대표단을 구성하는 레드리버인과 애쉬랜드인, 꽤 친근해 보이네.’

장목화는 사진 속 인물들을 자세히 보았다. 그들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아서 외형적 특징을 기억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용여홍은 이미 부끄러움은 다 극복했는지 한창 책과 사진, 홍보물을 살피고 있었다. 부디 여기서 뭔가 가치 있는 정보가 나오길 바랐다.

머지않아 어느 홍보물 제목을 보고 용여홍의 눈이 확 밝아졌다.

《특정 선천성 질병을 제거하는 임신 중 유전자 우화》

‘이거야 상식 아닌가?’

반고 바이오 출신인 용여홍은 이 홍보물을 간단히 넘겨본 뒤 비슷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전자 우화가 태아의 지능에 미치는 영향’, ‘임신 초기 유전자 우화의 현실적 의의’ 등의 서적과 홍보물을 더 찾아냈다.

지금 이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을 입고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메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꼭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용여홍은 조부모님, 외조부모님 댁에서 이와 비슷한 홍보 자료를 종종 봤었다. 이는 유전자 개량을 확대하기 위한 반고 바이오의 노력이었다.

그런 홍보가 점차 사라진 것은 모두가 그 성과를 직접 확인하고 장점을 직접 체험한 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는 ‘유전자 개량’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는 데 반해, 호움 난임 센터로 대표되는 이 지역에서는 ‘우화’라는 표현이 더 익숙한 모양이었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취향에 따른 표현일 뿐이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용여홍이 동료들에게 외쳤다.

“이 난임 센터에서는 유전자 개량도 했나 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성건우가 바로 성실하게 코웃음을 쳤다.

“구세계 파괴 전부터 유전자 개량은 대세였잖아. 중요 성과들도 여럿 상당하게 무르익어 있었고.”

그건 반고 바이오나 화이트 기사단만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세계 파괴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의도적인, 혹은 비의도적인 선전 아래 적잖은 대형 세력 사람들은 유전자 개량을 신권에 대한 인간의 저항이자 자연을 거스르는 일로 여겼다.

그것을 구세계 파괴와 무심병 폭발의 근본 원인으로 믿었기에, 상응하는 기술도 대부분 다 금기시됐고, 누군가 폐허 도시에서 발견한 관련 자료도 거의 다 폐기되었다. 가치 있는 자료까지도 가차 없었다.

반고 바이오는 이 상황을 꽤 기뻐했다. 퍼스트 시티의 귀족들도 그랬다.

몇 대에 걸쳐 우화를 진행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피드백하며 개선해온 이때, 반고 바이오와 화이트 기사단의 유전자 개량 기술은 구세계 파괴 이전의 수준을 일찍이 뛰어넘은 상태였다.

이내 용여홍이 변명했다.

“내 말은, 이곳을 단순한 난임 센터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거야.”

“당연하지. 여긴 불가 성지잖아.”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성건우를 보며, 용여홍은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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