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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606화 (606/649)

606화. 지연

팀원들과 시선을 주고받던 장목화는 왼손에 쥐고 있던 개인용 바주카포를 내던졌다. 몸에 걸어놓았던 기관단총도 마찬가지였다.

총기를 모두 버린 그녀는 손목을 돌리며 그곳에 둘러놓았던 생명 천사 목걸이를 둘둘 풀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덕분에 장목화는 지금 상당히 대칭적으로 보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일부러 묶은 머리 방향도 조정하고 왼팔을 늘어뜨려 마비된 오른팔과 똑같은 자세가 되도록 만들었다.

그 사이 장목화는 손가락으로 ‘4’를 표시했다.

신호를 읽고, 성건우 역시 장목화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유탄발사기를 바닥에 내던지고 몸에 걸어놓았던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도 내버렸다.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손목을 몇 바퀴 돌린 뒤 육식주를 빼버린 그는 장목화처럼 똑같이 주머니에 넣었다.

심지어 머리를 뒤로 빗어넘기고 두 팔을 늘어뜨리는 절차까지 빠뜨리지 않는 걸 보고, 장목화는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한 걸 꾹 참았다.

백새벽도 오렌지 소총 위치를 조정해 자신의 몸 가운데를 가르는 수직선이 되도록 연출했다.

반면 용여홍은 T1형 기계 팔에 딸린 통조림 따개를 꺼내는가 하면 앞으로 뻗은 왼발로 땅을 두드렸다. 비대칭인 상태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동원하고 있었다.

구조팀이 세운 4번 계획은 아주 간단했다. 핵심은 한 구절이었다.

용여홍을 미끼로 삼아 심각한 대칭 강박증을 앓는 황금 저울 암살자의 습격을 유도하고, 나머지 세 팀원은 그 기회를 틈타 상대를 포착한 뒤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용여홍은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 중이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은 T1형 기계 팔 밖에 없었으니 다칠 염려가 없었다.

같은 논리로, 카멜레온 인공지능 갑옷의 보호를 받는 백새벽 역시 차선책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대칭에 그리 최선을 다하진 않았다.

구조팀이 빠르게 상태를 조정한 이때, 시간이 다 굳어버린 듯했다. 수시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이 아니었다면 이곳은 꼭 일시 정지된 화면처럼 보였을 것 같았다.

장목화, 성건우는 용여홍 주위에 모든 집중력을 쏟았다. 그래도 살짝이나마 백새벽에 관한 주시 역시 잊지 않았다.

장목화는 본인 스스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경계하고 있었으나 성건우는 아예 본인의 안위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양손은 다 주머니에 찔러 놓고 마치 산책하듯 가볍고 한가로운 태도였다.

시간이 1분 1초 흘러가는 와중, 용여홍의 긴장감은 더해갔다.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이 언제라도 뚝 끊어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더더욱 그를 긴장하게 하는 건 혹시 적이 백새벽을 노리진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혹시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채고 벌써 철수했나? 팀장님은 대칭 강박증을 그렇게 오랫동안 억누를 순 없을 거라고 했는데, 그 암살자는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냥 떠나버린 건가?

아, 어떻게든 작은 흰둥이를 잘 살펴야겠어. 적이 별 특별한 무기를 가진 것 같진 않지만 각성자 능력은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근데 왜 아직이야? 참을성이 이렇게까지 강하다고?’

생각들은 꼬리를 물고, 용여홍은 이 시간이 너무도 괴롭게 느껴졌다.

그러던 그때, 그는 자신이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적의 시선을 자신 쪽으로 돌려 백새벽을 보호해줘야 할 것 같았다.

머리를 굴리는 사이 용여홍의 시선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 또 다른 적이 엎어져 있었다.

‘저자가 언제 영향을 벗어나 깨어날지 몰라. 말인 영역의 각성자니 모르는 사이에 우리 기억을 뒤지고 조작할 수도 있지.’

순간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린 용여홍은 갑옷 밖에 드러난 기계 팔로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쥔 채 벨프에게로 달려갔다.

상대가 정신을 잃은 틈을 타, 일단 한 사람부터 처치할 생각이었다. 동시에 이는 암살자가 용여홍을 겨냥하도록 끌어내는 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

한 마디로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용여홍이 막 십여 미터를 나아갔을 무렵, 측후방에 한 인영이 나타났다.

허란은 아직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떠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었다.

심각하게 비대칭인 용여홍은 눈엣가시였다. 그녀는 뭐라도 해서 이 마음속의 분노를 분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에 진행했던 두 차례 정탐과 조금 전 암살 기도에서 쌓인 불만 때문에 허란은 더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었다.

물론 경험이 풍부한 암살자 허란은 성급히 굴지 않고 인내심 있게 기회를 노렸다. 이제는 앞도 보여서 목표가 출중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지능 갑옷을 입고 있다는 걸, 연합202 두 자루론 절대 해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그렇다고 지닌 고성능 폭약 두 줌을 쓰자니 상대의 보호장비야 파괴할 수 있겠지만 그녀 자신 역시 여파에 휩쓸리기 쉬웠다.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괴로움 속에서 허란은 다시 또 벨프를 공격하려는 용여홍을 목격했다. 더는 이 엄청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허란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모두에게 한 가지 능력을 발휘했다.

반응 지연!

여기서 반응이란 습격당했을 때의 반응만을 가리켰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허란이 전에 장목화를 습격할 때 이 능력을 쓰지 않은 건 은신한 채 접근한 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총을 쏘면 상대가 제때 반응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굳이 도중에 그런 능력을 하나 더 발휘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벨프는 전에 구조팀의 기억을 너무 급하게 열람했던 탓에 정보를 상세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상대에게 반응 지연 능력을 약화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장비가 있는지는 알 수 없어서 허란은 괜히 능력을 썼다가 총을 쏘기 전부터 자신의 존재가 노출돼 후속 공격에 실패할 것을 걱정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더 간단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은 은신으로 접근하고 모습을 드러낸 뒤 총을 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순간 성건우, 장목화, 백새벽, 용여홍의 동작이 느릿해졌다. 적이 나타난 걸 확인했는데도 준비해둔 대응이 조금씩 짜내듯 진행되었다.

그때, 양손에 권총을 쥔 허란은 용여홍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저 갑옷을 꿰뚫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허란은 이미 벌게진 눈을 번득이며 공격에 나섰다.

총알들은 곧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 표면을 때렸다. 하지만 위력은 고작 미세한 균열을 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

탕탕탕!

허란은 총알을 아끼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탄창을 비울 작정인 듯했다.

그 강력한 충격에 뒤로 밀려 비틀거리면서 갑작스럽게 정신을 차린 용여홍은 몸을 옆으로 틀며 난사에 나섰다.

그가 받은 유전자 개조는 평범한 편이었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자체 회복 능력 증강, 면역력 강화, 반응 속도 가속.

반응 속도 가속이면 이 상황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다다다-

소리에 눈을 휘둥그레 뜬 허란은 옆으로 몸을 홱 날렸다.

허공을 가르던 그녀의 인영은 재차 빠르게 사라졌다.

부옇게 피어오르던 먼지 연기 속, 아쉽게도 목표를 명중하지 못한 용여홍은 결국 적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도 원상태를 회복했으나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일단 나머지 하나부터 끝내!”

장목화가 크게 외쳤다. 위험한 적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건 막아야했다.

그녀의 명령에 성건우는 땅을 한번 구르면서 앞서 벗어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집어 들었다.

장목화는 무장 벨트에서 수류탄 하나를 꺼내 핀은 치아로 제거한 뒤 곧장 왼팔로 던졌다. 동시에 백새벽은 오렌지 소총을 쳐들었다.

한편, 조금 전 공격으로 쌓인 분노를 분출한 허란은 일단 몰래 숨어 이곳을 떠난 뒤 다음 기회를 엿보려다 벨프를 공격하는 구조팀을 보게 되었다.

몇 차례 안색 변화를 보이던 그녀는 끝내 적들을 상대로 전신을 마비시키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전신에는 의식이 포함되지 않았고, 성건우 역시 나름의 각성자 능력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허란이 그로 인해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녀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질 터였다.

결국 허란은 고성능 폭약 한 줌을 꺼내 벨프에게 던졌다. 혹시 동료의 몸에 남아있을지 모를 모든 단서를 전부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고성능 폭약을 던짐과 동시에 땅으로 몸을 던지며 납죽 엎드린 그녀는 한 번 더 자신의 모습을 감췄다.

콰르릉!

거대한 불꽃과 함께 일어난 맹렬한 폭발이 벨프를 집어삼켰다.

허란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며 이를 악문 뒤 우회로를 따라 호움 난임 센터 대문 앞을 벗어났다.

* * *

이동 중, 허란은 주위 건물에서 미약한 빛이 번득였다가 사라지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이후 황급히 건물 옥상으로 돌아가 태블릿 PC를 챙긴 그녀는 배터리가 거의 바닥난 것을 발견했다.

“충전할 곳을 찾아 박사님 도움을 구해야겠어.”

뒤이어 그녀는 숨겨둔 반지 두 개를 찾고 배낭을 챙겨 서둘러 이동했다.

적과의 거리가 충분히 벌어졌을 무렵, 허란은 모종의 생각에 잠긴 듯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임무를 완수하려던 오하명의 도움을 빌려야 할지도 몰라. 그의 힘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야겠어. 그의 봉인을 파괴하게 되더라도 상관없어.’

* * *

호움 난임 센터 문 앞 거리.

구조팀은 수많은 살점 조각으로 흩어진 시체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손을 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잔인하네.”

용여홍은 온전한 부분이라고는 없는 시체를 보며 긴 한숨을 뱉었다.

이 살점 조각들은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였던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와 함께하던 동료의 손에 죽었다.

암살자가 던진 고성능 폭약이 아니었더라도 장목화의 수류탄이 그의 세상에 마침표를 찍었겠지만, 어쨌건 그를 죽게 한 것은 그의 동료였다.

이내 성건우가 냉소하며 말했다.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우리한테 도움이 될까 남겨둘 수 없었겠지.”

그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고 표했다. 만약 구조팀이 그의 숨통을 끊었더라면 몸에 많은 것들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중에는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도구가 포함돼 있었을지도 몰랐다.

장목화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그녀에게 속한 강력한 물건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생명 천사 목걸이도 엄밀히 따지자면 성건우에게서 빌린 것이었다.

물론 선하고 온화하고 연민 넘치는 장목화는 그 감정을 표출하진 않았다.

“더 찾아보자. 혹시 뭔가가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장목화가 명령했다. 혹시 또 자체적인 특질 때문에 폭발로 날아가지 않은 물건이 있을 수 있었다.

가장 간단한 예는 용여홍의 기계 팔이었다. 만약 그가 맨몸으로 포탄을 맞더라도 T1형 기계 팔은 기껏해야 심각한 손상만 입을 뿐 사라지지는 않았다. 심지어 잘 고친다면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구조팀은 애써 구역감을 참으며 주위에 흩어진 것들을 살펴보았다.

잠시 후, 백새벽이 결과를 보고했다.

“아무것도 없네요.”

장목화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악몽의 수족은 신분을 숨기려고 조건이 갖춰진 상황에서 폭발로 파괴되기 쉬운 물건들만 휴대하나?”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보기에 평범하고, 휴대하기 편한 물건에 상응하는 기운을 고정해두길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죠. 예를 들어 이 녀석이 쓰던 선글라스 같은 거요.”

장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감수할 수 있을 만한 것이라야 하겠지만.”

“장신구를 차고 있지는 않았나요?”

용여홍이 의혹을 표했다. 대부분 장신구는 폭발로 파괴되기 쉬웠다. 특히나 금으로 만들어진 것은 더더욱 그랬다.

그러자 성건우가 픽, 웃었다.

“장신구가 대칭이 아니라 자격을 박탈당한 건지도 모르지.”

시선을 옮긴 장목화는 호움 난임 센터를 돌아보았다.

“전리품을 찾을 수 없다면 얼른 목적지부터 탐색해보자. 그 암살자, 언제 돌아올지 몰라. 악몽의 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일 거고.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 많지가 않아.”

장목화는 심장 박동으로 악몽을 몰아내기는 했지만 다른 두 세계에 존재하듯 아득히 먼 상대에게 치명적인 위해는 못 끼쳤으리라 생각했다.

성건우, 백새벽, 용여홍도 얌전히 팀장을 따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한 걸음씩 호움 난임 센터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장목화는 전에 던져둔 무기 수거도 잊지 않았다. 다만 생명 천사 목걸이의 부작용 때문에 기관단총은 가슴 앞에 걸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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