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03화 (603/649)

603화. 다른 블록 (1)

성건우, 백새벽, 용여홍은 서점 곳곳으로 흩어져 지도를 찾기 시작했다.

“보존 상태가 꽤 괜찮네⋯⋯.”

장목화가 책등들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전부 다 뽑아 한 번씩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구세계의 각종 책을 연구하는 건 어릴 때부터 이어진 그녀의 취미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폐허 도시의 각종 상점을 잘 아는 백새벽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카운터와 멀지 않은 진열대 위에서 파흐 지구 지도를 찾아냈다.

지구는 세 개 도시로 이뤄져 있었는데 구조팀이 현재 자리한 도시의 이름이 바로 호움이었다.

함께 지도를 연구하고 싶었던 장목화는 아담한 백새벽 뒤에 서서 높은 키로 지도를 같이 살폈다.

“목적지는 세 블록 떨어진 곳에 있어.”

역시 집중력을 발휘해 지도를 살피던 백새벽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최단 노선은 그런데, 그러려면 도시 중앙 구역을 가로질러야 해요. 위험도가 너무 높은데……. 외곽 구역으로 우회할까요?”

장목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외곽 구역은 퍼스트 시티 군대가 순찰을 돌 가능성이 커. 그러면 더 위험해질지도 몰라.”

성건우가 바로 동조했다.

“맞아요, 맞아. 그냥 가로질러 가는 게 더 나아요.”

이번엔 용여홍이 백새벽을 도우려 나섰다.

“왜?”

성건우는 진지하게 답했다.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까.”

“⋯⋯.”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용여홍은 곧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어느 노선이 더 위험할지 모르는 상황에 시간을 아낄 수 있단 건 굉장한 이유가 됐다.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구조팀은 목적지를 더 잘 탐색할 수 있고, 불모지 13호 유적에서 허둥지둥거리지 않고 여유롭게 철수할 수도 있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백새벽도 본인의 주장은 접었다.

이후로 장목화는 입구 근처의 책장을 대충 슥 훑어보았으나 가치 있는 단서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 * *

성건우를 필두로 서점을 나온 구조팀은 호움 난임 센터로 향해갔다.

그런데 이 거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역에 진입하자마자 장목화의 시선이 측면 건물 2층으로 홱 돌아갔다.

그곳에서 여러 개의 미약한 생물 전기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 같기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 열려 있던 2층의 어느 노란색 창문 쪽에서 대량의 초록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수많은 반투명한 초록 점으로 이뤄진 듯한 그것은 착지하자마자 하나의 인영을 형성했다.

다다다-

용여홍과 성건우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그들이 쏜 총알은 액체 같은 녹색 인영을 관통할 뿐, 아무런 상해도 입히지 못했다.

장목화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돌리며 낮게 외쳤다.

“불!”

카멜레온 타입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백새벽이 갑자기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그녀는 이미 그 기이한 생물 근처에 가 있었다.

곧이어 백새벽은 그 자리에서 어인형 생체 공학 의수를 들더니 손바닥으로 목표를 겨냥했다.

다음 순간, 붉은 화염이 쏟아지며 수많은 녹조로 이뤄진 인영을 감쌌다.

인영은 몇 차례 격렬하게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분열됐다.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염은 꺼지지 않았다. 그 녹조들이 완전히 불살라질 때까지 그들의 몸에 꼭 붙어 있었다.

그렇게 그 괴이한 생물은 끝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용여홍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뭐죠? 어느 소형 생물이 변이한 뒤 모여서 이룬 집합체일까요?”

‘근데 우리가 전에 측정했을 때 여기에 방사능은 확인되지 않았는데?’

장목화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본 적 없는 존재야.”

이야기를 나눠봤자 별 소용없을 상황에 구조팀은 의혹만 안은 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 후로 이 블록에서 거의 벗어날 때까지 그들은 더 이상 어떠한 습격도 받지 않았다.

“혹시 느꼈어?”

장목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오하명은 아무 소통도 시도하지 않고 있어.”

그녀는 현재 미약한 전류 신호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성건우가 웃었다.

“여기 전자기기가 다 망가져 버렸나 보죠.”

“그럴지도⋯⋯.”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약간 멍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설마 이곳에 굉장히 강렬한 전자기 폭풍이 있었던 건 아닐까? 전의 그 기이한 생물은 그 영향으로 태어난 건가?”

그녀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어느 누가 세부적인 연구 없이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의 흔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겠는가.

* * *

구조팀은 곧 새로운 블록에 진입했다.

측면에서 걷던 백새벽은 맡은 구역 상황을 관찰하면서 구세계 당시에도 수십 년은 되었을 법한 각종 건물을 훑어보았다.

이곳은 역사적인 느낌이 굉장히 짙게 풍기는 거리였다.

그러던 그때, 그녀는 어느 유리창에 붙은 창백한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얼굴에는 몇 갈래 균열이 일어나 있었고, 안쪽 근육은 말린 소고기처럼 짙은 갈색이었다.

성건우 역시 그 얼굴에 주목했다.

“인간 의식은 없어.”

뒤이어 장목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생물 전기 신호도 엄청 미약해. 인간이랑 다르게.”

구조팀이 그 창백한 얼굴에 시선을 빼앗긴 그때,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창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생물 전기 신호에 근거한 장목화의 판단이었다.

검은 늪 철갑뱀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용여홍은 바로 그쪽으로 돌아서서는 바이저 너머로 상황을 살폈다.

이곳에 자리한 건물은 전부 고전적인 느낌이었다.

1층에 난 문은 굉장히 높은 편이라 전설 속 거인이라도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래쪽은 절반만 열렸다.

또 위쪽 창문은 아치형이었고, 협소한 발코니는 실용적인 용도라고는 하나도 없이 오로지 장식용으로만 만들어둔 것 같았다.

그렇게 건물을 슥 훑어보던 용여홍이 망설임 끝에 물었다.

“설마 우리를 공격하려는 걸까요?”

‘오랜만에 만난 고향 사람처럼 눈물 흘리며 얼싸안진 않겠지? 건우는 인간 의식이 없다고 했고, 의도적으로 의식을 숨길 존재도 아닌 것 같은데.’

용여홍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금 전 그 건물의 반쯤 열린 1층 문 안에서 한 인영이 나타났다.

그는 퍼스트 시티 정규군 군복을 입긴 했지만 손상이 심각한 옷 안쪽으론 창백한 피부와 짙은 갈색 근육이 다 드러나 보였다. 게다가 옷의 온전한 부분도 물에 젖었다가 자연스럽게 마른 듯 쪼글쪼글 주름이 져 있었다.

무엇보다 밖으로 툭 튀어나온 눈엔 아무런 빛도, 초점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멍하니, 의도를 숨길 생각 같은 건 전혀 없는 모습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백새벽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지능에 문제가 있네. 심지어는 동물만도 못한 것 같은⋯⋯. 뭐야! 죽고 싶어 환장한 건가?’

계속 유심히 관찰하던 용여홍이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다. 그는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들어 올린 후,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다다다-

총알에 명중 당한 인영의 몸에는 큼지막한 상처들이 생겼다. 일부 부위는 심지어 그대로 갈라져 몸통에서 분리되기도 했다. 절단면에서 흐른 진득진득한 액체도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상대는 계속 앞으로 달려들려 했다. 균형 능력에 약간의 영향을 받기만 했을 뿐, 부상으로 인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콰릉!

백새벽이 로켓탄 한 발을 쏘았다.

불빛은 인영을 뒤덮으면서 그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던 터라 백새벽도 폭발의 여파를 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여파는 카멜레온 타입의 인공지능 갑옷에 완전히 가로막혔다.

장목화가 감히 개인용 바주카포를 쓸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건 이미 그로 인해 팀원이 다칠 염려는 없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폭발음이 사그라들기 무섭게 그녀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작은 흰둥이, 시체 한번 살펴볼래? 조심해야 해. 아직도 미약하게 생물 전기 신호가 잡혀.”

성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이상하네요.”

폭발로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목숨이 붙어있다니.

용여홍은 백새벽이 너무 걱정됐지만 전술 가이드 규정을 어길 순 없었다. 그는 기습을 대비해 전술 대형의 한 축을 유지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다.

이내 카멜레온 타입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백새벽이 오렌지 소총을 쥐고 시체 앞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막 쪼그려 앉아 상황을 살피려던 그때, 머리가 달린 그 시체 조각에서 한 줄기 검은빛이 튀어나와 백새벽을 향해 돌진했다. 꼭 한 가닥 길고 검은 철사 같은 빛줄기였다.

쾅!

그러나 검은 빛은 카멜레온 타입 인공지능 갑옷을 꿰뚫지 못하고 표면과만 충돌한 뒤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백새벽이 곧 한 손으로 그걸 움켜쥐고 몇 번 흔들어보았다.

“이상한 벌레예요.”

장목화가 별 확신 없는 말투로 추측했다.

“연가시?”

벌레는 그녀가 아는 철사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기생충의 일종인 연가시는 하류나 연못 등지에 서식하며 수자원을 통해 목표를 감염시켰다. 그렇게 기생을 마친 뒤에는 대형 절지동물을 통제하면서 알아서 수자원을 찾게 해 그대로 익사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벌레는 인체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숙주가 죽으면 중추 신경 역할을 하면서 남아있는 양분을 먹고 살아가는 듯했다. 거기다 숙주를 강제로 교환하려 하는 특징도 있었다.

일찍이 황야유랑자로 살았던 터라 연가시에 대해 대략으로나마 알고 있던 백새벽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어떻게 처리하죠?”

장목화가 잠깐의 망설임 끝에 답했다.

“죽여. 채집 상자 없이 어떻게 손에 쥐고 다니겠어? 알아서 피부를 파고든 뒤 체내로 뚫고 들어갈지도 몰라.”

이는 벌레가 좀 전에 보인 모습을 토대로 한 판단이었다.

그때, 성건우가 아까워 죽겠다는 듯 대꾸했다.

“팀장님, 바이오 회사 직원 맞아요?”

장목화는 그를 아예 무시한 채 그 벌레를 몇 조각으로 갈라 땅에 버리고 발로 짓밟는 백새벽을 지켜보았다.

함께 지켜보던 성건우도 다시금 실망한 듯 중얼거렸다.

“별로네. 가르면 가르는 대로 불어나지도 않고.”

‘저게 무슨 지렁이냐?’

속으로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변이된 연가시일까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전에 본 그 초록 점들까지 더하면 무슨 전자기 폭풍 문제가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는 것 같아. 그 비밀 실험실에서 탈출한 것들 아닐까?”

그녀는 성건우가 또 허튼소리를 할 틈도 주지 않고 이야기를 마쳤다.

‘정말 그럴지도 몰라.’

용여홍이 긍정하며 눈동자를 굴리던 그때,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호움 난임 센터에서 나왔을지도 모르죠.”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

용여홍은 역시 장목화도, 성건우도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이한 벌레를 해치운 백새벽이 대열로 돌아오자 장목화가 말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추측에는 뒷받침할 증거가 없어. 일단은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저마다 마음을 다잡은 구조팀은 더러운 자동차들로 어지러운 길을 따라 다음 블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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