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601화 (601/649)

601화. 동굴 안

곧이어 게네바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작은 빨강이는 나랑 여기 남아 팀원들 지원하는 역할을 맡아도 된다.”

“싫어!”

용여홍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제안을 거절했다.

짝짝짝!

성건우는 친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손뼉을 쳤다.

그러자 용여홍도 정신이 들었는지 약간 죄책감이 밀려왔다.

“보조 칩을 끄고 절연 모듈로 보호하면 돼. 그럼 기계 팔의 기능 대부분을 사용할 순 없겠지만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지는 않을 거야.”

성건우는 매우 엄숙한 얼굴로 진지하게 물었다.

“빗이나 통조림 따개는 쓸 수 있지?”

“⋯⋯.”

살짝 짜증이 난 나머지 용여홍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물론이지! 그건 다 단순 기계 장치에 의지하고 있으니까!”

성건우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안심이네.”

곧바로 장목화가 인공지능 갑옷이 든 상자를 가리키며 나섰다.

“작은 빨강이는 검은 늪 철갑뱀 갑옷을 입어. 작은 흰둥이는 카멜레온 입고.”

그렇게 용여홍과 백새벽이 각자 갑옷을 착용하는 동안 각 방면의 상황을 검색하고 살피던 게네바가 일렀다.

“큰 흰둥이, 전에 불모지 13호에서 있었던 일, 기억하고 있나? 전류의 흐름만 있었을 뿐 소리는 없었는데도 그중 유적 사냥꾼 세 명이 사유 이식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히 기억해. 난 시시각각 그런 동정을 감시할 수 있어. 야도 그렇고. 그리고 뭐라도 느껴진다면 그 순간 자기 성찰을 하면서 비교 검사를 진행할 거야. 만약 정말로 무슨 문제가 있다면 야한테 사유 이식 효과를 제거해달라고 해야겠지. 야는 이제 그런 방면의 전문가니까.”

“그래,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

게네바는 이제 인공지능 갑옷 착용을 도와주려는 듯 백새벽과 용여홍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이 작업에 굉장히 익숙해진 데다 유전자 조작까지 마친 터라, 서로 살짝씩 도와가며 인공지능 갑옷 착용을 다 마친 상태였다.

팀원들을 훑으며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장목화가 게네바를 쳐다봤다.

“겐,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그녀는 웃지도 않았지만 지나치게 엄숙하지도 않았다. 앞으로의 탐색에서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일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다.

“뭐?”

게네바가 약간 의혹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막 각 방면의 문제를 살펴보았지만 분명 빠뜨린 부분은 없었다.

장목화는 여유롭게 고개를 들어 동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구세계 위성 중에 아직 파괴되지 않고 궤도를 돌고 있는 것들이 적잖게 남았을 거야. 그중 사용할 만한 것이 있을까?”

“사용할 수 있는 위성에 대한 정보는 얻어본 적이 없다. 오하명이 우주 궤도 위의 위성을 조종해 우리한테 영향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게네바는 오직 그 가능성에 관해서만 인지했다. 이는 지능 로봇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장목화는 답을 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했다.

“겐, 너희 머신 헤븐에 위성을 발사할 능력이 있지?”

게네바가 붉은 눈빛을 몇 차례 번득였다.

“기술이야 있지만 자원은 부족하지. 합금을 제작하는 광석도, 연료도, 연소 촉진제도 모두 부족해.”

이 지능 로봇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인공지능 갑옷을 착용한 백새벽과 용여홍, 그리고 한편에 선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붉은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다시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큰 흰둥이, 확실히 말해도 된다. 같은 동료 사이에 뭐든 물을 수 있지.”

“그래?”

순간 흥분한 성건우가 끼어들었다. 대체 어떤 분야의 호기심 버튼이 눌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장목화는 눈짓으로 그를 저지한 뒤 정색하고 입을 열었다.

“겐, 오레이는 소스 브레인을 포맷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걸 불모지 13호 유적의 그 비밀 실험실에 숨겨뒀어. 네 생각에는 소스 브레인이 이 사실을 얼마나 중시했을 것 같아?

소스 브레인이 경찰 로봇을 보내 네 인간화 정도를 조사시킨 일, 너무 갑작스럽고 뜬금없었던 것 같지 않아? 그건 우리가 소스 브레인과 막 대화를 마친 뒤의 일이었어.

그리고 그 이후 머신 헤븐의 추적은 생각만큼 끈질기고 촘촘하지 않았지.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았고.”

그녀는 게네바가 소스 브레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구조팀을 따라가 오레이의 후손을 만나고 상응하는 정보를 얻으려는 소스 브레인의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게네바는 침묵에 빠진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눈에 붉은빛이 번득이지 않았다면 용여홍은 그가 다운됐다고 착각했을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게네바가 말문을 열었다.

“레드스톤 마켓에 임시회장으로 있는 동안 어느 정도 의심은 했었다. 그리고 너희가 아비아를 통해 오레이의 유언을 들었을 때는 이 상황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지. 하지만 내 몸의 모든 부품을 검사해봤는데도 문제가 있는 부분은 없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중계기 역할을 하는 위성 없이는 소스 브레인이라도 원거리에서 널 통제하긴 불가능해.”

“내 각종 모듈에도 백도어는 없다.”

게네바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 뒤 또 한 번 침묵했다.

그러다 십여 초 후, 그가 다시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핵심 모듈은 자가 검사할 수 없다.”

그건 당시 오레이와 부하 연구원들의 성과이자 소스 브레인도 여태 꿰뚫지 못한 구세계 문명의 찬란한 결정체였다. 이는 소스 브레인의 연산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 역시 핵심 모듈의 제한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여러 시도를 할 수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소스 브레인도 핵심 모듈을 어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뭔가를 못 더할 거라 볼 순 없어.”

뒤이어 성건우는 평소 용여홍을 겁줄 때의 표정을 하고 덧붙였다.

“어쩌면 소스 브레인은 네 핵심 모듈에 다른 행동 양식을 더한 건지도 몰라. 인간의 인격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듯이 말이지. 그리고 그 행동 양식의 이름이 바로 소스 브레인인 거야!”

게네바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득였다.

“네 말은 소스 브레인이 마치 유령처럼 다른 인격의 형식으로 내 핵심 모듈 속에 매복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냐? 그렇다는 건 지능인 역시 인격 분열이 될 수 있다는 건가?”

게네바는 더 인간다워진 듯한 느낌에 약간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아니, 건우를 정상인의 예로 생각하지 말라고!’

속으로만 무기력하게 외치던 장목화가 다시 신중하게 말했다.

“네 질문에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답은 없어. 아는 게 많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런 가능성에 대비하고 경계하기는 해야 할 것 같아.”

게네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난 얌전히 여길 지키겠다. 어쨌든 난 13호 유적에 들어가기 적합하지 않으니까.”

장목화는 일단 고개를 끄덕인 뒤 차분하게 말했다.

“소스 브레인은 오하명의 존재를 잘 모르거나, 그 사람의 특수한 부분을 모르는 것 같아. 그래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란 건 예상치 못한 거지.”

잠시 분석하던 게네바가 대꾸했다.

“그게 가장 그럴듯한 이유인 것 같군. 앞으로는 최대한 내 앞에서 13호 유적의 비밀 실험실과 그 안의 정보는 얘기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내 핵심 모듈 안에 또 다른 인격이 매복해 있더라도 그건 중요 단어나 특수한 상황에서만 깨어날 테니까.”

또 다른 인격이 일정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나타나 활동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래서는 폭로되기 너무 쉬웠다.

장목화가 웃었다.

“응, 어쨌든 우리도 이번에 그곳에 갈 계획은 아니니까.”

이후로 게네바와 몇 마디 얘기를 더 잇던 그녀가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래, 이제 출발하자.”

“네, 팀장님!”

인공지능 갑옷을 입은 백새벽과 용여홍이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 * *

구조팀 네 사람은 게네바와 작별하고 그 자리에 군용 외골격 장치를 남겨 놓은 뒤 통로를 따라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향했다.

그동안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물었다.

“여객선에서 522호 방 주인은 찾았어?”

곧 성건우의 얼굴에 의혹이 어렸다.

“모든 승객한테 물어봤는데 아이언마운틴 시티에 갔다는 사람은 없어요.”

퍼스트 시티에서 북안 뭇 산까지 오는 동안 성건우는 또 시간을 아껴가며 912호에 다시 들어가 여객선에서 522호 방 주인을 찾아다녔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물어도 승객 중 아이언마운틴 시티 폐허에 가봤던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 중 522호 방 주인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질문을 할 때도 성건우는 추리 광대나 사유 이식을 사용했으니, 상대가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했다.

그래서 성건우도 여객선 승객 중에는 정말로 522호 방 주인이 없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즉, 그 트라우마를 통과해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틀렸던 것이었다.

성건우의 말을 경청하던 용여홍은 검은 늪 철갑뱀 타입 인공지능 갑옷의 꼬리를 치켜들었다.

“522호 주인이 그 여객선에 탔다고 912호 주인과 같은 때에 탔으리란 법은 없지. 그 여객선, 기이하긴 해도 여러 번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잖아.”

백새벽이 동조했다.

“어쩌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 여객선의 이상을 숨기고, 자신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걸 이용한 건지도 몰라.”

“무시무시한데.”

어느새 인격이 바뀐 성건우는 실망감을 버리고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장목화 역시 팀원들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 여객선에 탄 승객들은 마지막 날 순조롭게 목적지에 도착해 더는 혼란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거나 소리소문없이 죽게 된 건가? 소수의 몇몇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걸까?’

손전등을 쥔 그녀가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만약 정말로 작은 빨강이, 작은 흰둥이가 말한 대로면 그 트라우마를 통과하려는 생각은 접어야겠네. 정 포기가 안 되겠으면 일단은 보류해두고 공략이 있는 방을 이용해 실력부터 키우는 게 어때?”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잠깐 뜸을 들였다.

“음, 근데 난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건우 너,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물어본 거 확실해?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질문했던 사람과 질문을 하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기억할 수 있어?”

용여홍은 처음만 해도 성건우가 그런 간단한 문제에서 실수할 만큼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더 고민해보면 자신이었어도 기계 팔의 보조 칩 도움이 아니면 승객들을 다 구분하고 기억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더더군다나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중한 임무를 맡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실수를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성건우는 상당히 당당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희 중 한 명은 묻고, 나머지 아홉은 기억하며 각기 다른 인물의 특징을 다 기록해뒀어요. 이론상 빠뜨린 사람이 있을 순 없어요.”

그는 말하는 동시에 전술 배낭을 풀어 안에서 종이 한 무더기를 꺼냈다. 그 종이엔 ‘담배 냄새만 맡고 피우지는 않는 사람’, ‘눈썹 끝에 점이 난 사람’, ‘바보 같은 사람’ 등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 종이를 보고 장목화는 순간 좀 멍해졌다.

“지난 며칠간 뭘 그렇게 열심히 쓰나, 달지기 상징 모음집을 다시 그리려고 하나 했더니⋯⋯.”

진아교 거점에서 출발한 구조팀은 곧장 북안 뭇 산으로 향하는 대신 차의 외형을 바꾸고 다른 거처를 찾아 적들을 정말로 따돌렸는지를 확인했었다.

의도적으로 간단히 방 한 칸만 빌린 그들은 벙커 침대에 모조리 끼어 자면서도 완전히 안심한 척, 깊은 잠에 빠진 척을 하기도 했었다.

가짜로 잠을 자는 동안에는 에이돌른의 주시를 받았던 때를 끊임없이 회상하며 적들의 습격에 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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