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9화. 인내심
각자 준비를 마친 구조팀은 비대칭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 황금 저울 영역 각성자를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일격은 적시에 더 큰 효과가 있었다.
현재 성건우가 든 육식주나, 장목화가 가진 생명 천사 목걸이, 용여홍의 T1형 기계 팔과 게네바의 레이저 발사기도, 어인형 생체 공학 의수에서 분사되는 화염도 모두 다 직간접적으로 목적 달성이 가능했다.
구조팀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물리적인 상해에 끄떡하지 않는 각성자를 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물질 간섭 능력에 의지해 어느 정도의 방어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미 신세계에 진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염호가 호수 중앙 섬에 남긴 비쩍 마른 시체도 파괴할 수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기다림의 시간은 굉장히 느릿하게 흘러갔다. 용여홍은 창밖으로 석양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도 보았다. 어느새 손바닥도 식은땀에 축축해져 있었다.
결국 그가 잔뜩 낮춘 목소리로 물었다.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지?”
본디 위험에 맞서는 것보다 다가올 위험을 기다리는 과정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었다. 미지는 두려움의 불길을 돋우는 장작과 같았다.
성건우가 웃으며 답했다.
“강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암살자가 될 수 없지.”
백새벽이 작은 목소리로 반박했다.
“근데 그 사람, 심각한 대칭 강박증 환자 아니었어?”
이렇게나 많은 비대칭인 존재 앞에서는 그 인내심도 빠르게 바닥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요지였다.
각성자 영역에선 적의 대가만 파악해도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한동안은 대가의 부작용을 낮출 방법이 있는 것 같아. 그래도 우리가 방심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인내심을 잃고 말 거야.”
‘그렇게 되면 그 암살자가 선택한 사람은 어마어마한 상해를 입고 심지어는 죽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용여홍은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구조팀이 한발 먼저 그 암살자의 종적을 포착하고, 먼저 공격에 나서기 전에 상대를 제압하지 않는 한, 사실상 가망은 없었다. 형태도, 흔적도 없는 상대는 분명 구조팀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저승으로 함께 끌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비대칭에 대한 분노를 잠재우려 할 것이었다.
용여홍은 부디 모두가 높은 경계심을 유지하고 있다가 그 암살자에게 공격 당한 순간 때맞춰 반응해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기만 바랐다.
그때 장목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어. 암살자가 아직 우리 주위에 매복해 있지 않을 가능성. 악몽의 힘이 한 번 더 응집되고, 자기 동료가 몰래 우리 기억을 조작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라. 상황에 변화가 생긴 후에야 접근해서 우리 목숨을 앗아갈 작정인 거지.”
짝짝짝!
육식주를 쥔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이후 장목화는 빠르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나부터 기록해뒀던 중요 기억이랑 내가 기억하는 상황을 비교해볼게. 내가 끝나면 다음에는 야,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다음에 또 나, 이 차례야. 계속 이런 순서로 기억이 조작됐는지 살펴보자. 겐은 기록해 둔 기억을 확인하는 사람 상태랑 주위 상황을 보면서 계속 암살자 습격에 대비해줘.”
지능 로봇인 게네바에게는 기억을 조작당할 염려도, 습격에 대한 걱정도 없었다. 암살자라도 일격에 그를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장목화가 성건우를 보고 복잡한 얼굴을 했다. 성건우는 본인 뺨을 어찌나 세게 때린 건지 한쪽 뺨이 아예 부어있었다.
“너도 참, 살살 좀 하지⋯⋯. 근데 넌 어쩌다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우리가 몽유하고 있다고 추측한 거야?”
성건우가 육식주를 가리켰다.
“이게 곧 다가올 위험을 어느 정도 예감하게 해줬나 봐요. 꿈과 결합된 결과인지도 모르겠고요. 지금까진 이런 능력을 발견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때, 여러 가능성을 분석한 게네바가 현실에 가장 부합하는 걸 언급했다.
“어쩌면 악몽의 영향 아래, 그것에 녹아든 불가 성지의 이상한 기운이 활성화된 건지도 모른다.”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음, 여명 샛별은 줄곧 그들이 꿈속에서 악몽에 대항하며 인류를 수호해오고 있다고 주장해왔어. 오레이는 제8 연구원 사람 중 구세계 파괴로부터 살아남은 몇몇이 어둠의 앞잡이로 전락했다고 했고. 난 이 둘이 어느 정도 연계되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다면 악몽의 침략이 육식주 안에 숨겨진 불가 성지의 이상한 기운을 자극한 건 그 이유일 것이었다.
또한 이는 구세계 파괴의 특정한 본질적 요소를 상징하는 것일 가능성이 컸고, 구조팀이 찾고자 노력 중인 목표이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장목화는 자신이 기록했던 중요 기억을 빠르게 확인했다.
동시에 성건우,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동료들과 주위 상황을 유의 깊게 살폈다.
한 명씩 돌아가다 용여홍 차례가 왔을 때, 장목화가 왼손을 들었다.
그녀는 들어 올린 왼손을 힐긋 살피더니 조용히 반대편 손으로 바꿔 들고 자신의 배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강한 타격에 일그러졌던 장목화의 표정은 곧 원상 회복되었다.
뒤이어 주위를 한 번 둘러본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느닷없는 팀장의 행동에 흠칫 놀란 백새벽은 무의식적으로 상대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으려 했다.
그러나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금방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장목화는 바로 저런 방식으로 몽유를 피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몽유 중인 사람이 꿈에서 하는 행동은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니 장목화와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면 스스로를 깨울 수 있었다.
반면 실제적인 꿈을 꾸고 있다면, 장목화는 보조 칩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이상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상응하는 자극을 가하게 할 수 있었다.
이때 성건우가 염주를 굴리며 말했다.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주님,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장목화도 제도 선사의 말을 알아들었다. 육식주의 경고 능력이 있으니 별도로 몽유 상태를 경계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얘기였다.
“이중 점검이야.”
이어진 장목화의 말에, 성건우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구조팀은 높은 집중력을 유지한 채 순서대로 기록된 기억을 확인하고 몽유를 경계했다.
시간은 1분 1초 흐르고, 그렇게 밤이 찾아왔다.
* * *
한편 벨프는 어느 창고 옆에 소형 트럭을 조용히 세웠다. 이곳은 구조팀이 머무는 아파트, 그 진아교 거점에서 15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이내 벨프는 저 멀리 불을 밝힌 창문들을 보며 옆을 돌아보았다.
“란, 언제까지 기다릴 작정이야?”
그러자 아무도 없던 보조석에 곧 챙이 넓고 높은 펠트 모자를 쓴 청재킷 차림의 여자, 란이 나타났다.
의자에 기댄 그녀의 왼손 중지엔 고루한 디자인의 금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고, 크게 뜬 눈은 초점 없이 멍했다.
지금의 그녀는 앞을 볼 수 없었다. 볼 수가 없으니 심각한 대칭 강박으로 인한 고통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손끝에 만져지는 비대칭까지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그래서 허란은 심지어 오른쪽 손에도 디자인은 같지만 아무 능력도 없는 금반지를 하나 끼고 있었다.
허란이 곧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지금 그녀는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오래 기다릴수록 효과는 좋아져. 우리는 어둠 속에 숨어있고, 저들은 빛 아래 드러나 있지. 우리는 힘을 아끼고 축적할 수 있지만 저들은 한순간이라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야. 그동안 저들의 정신과 힘은 빠르게 소모돼. 자정, 혹은 날이 밝아올 무렵이면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을 거야.”
벨프가 투덜거렸다.
“그랬으면 좋겠네. 설마 교대로 돌아가며 휴식도 안 취할까.”
허란은 여전히 여유롭게 답했다.
“그거야 저들에게 그럴 용기와 결단력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우리는 언제라도 기습할 수 있잖아. 적어도 저들은 아무 확신도 못 해. 왜냐하면 저들은 진아교의 거점에 있으니까.
전에 받은 영향 때문에라도 한동안은 꿈을 꾸지 않으려 할 거야. 게다가 우리가 꼭 24시간 안에 행동에 나서야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계속해서 저들을 따라다니며 더 나은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고.”
벨프는 반박하는 대신 상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 사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허란이 물었다.
“넌 전에 뭐 때문에 그렇게 놀라서 실수를 저지르고 그들의 기억을 뒤져봤다는 사실을 들킨 거야?”
순간 벨프의 안색이 겨울날 빙원을 걷기라도 한 것처럼 창백해졌다.
그는 한참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그분의 기운.”
허란은 몸을 곧추세웠다.
“그분?”
“그분.”
벨프는 이상하리만치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아교 아파트 꼭대기 층, 구조팀이 자리한 방.
용여홍은 창밖에 뜬 밝은 달을 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몇 시간 동안 내내 고도의 경계심을 유지한 탓에 머리가 멍했고, 반응도 둔해져 있었다.
그를 발견한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작은 빨강이, 너하고 야는 이제 가서 좀 쉬어. 세 시간 후에 나랑 작은 흰둥이랑 다시 교대하자.”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장목화가 웃었다.
“지금은 경계만 하는 중이잖아. 아직 적도 보이지 않으니까 지나치게 긴장할 필요 없어. 안전부 베테랑 직원들도 다 알아. 전투 전에 푹 자둘수록 이길 가능성이 커진다는 거.
그래서 포위된 상황에도, 적이 언제라도 사방팔방에서 몰려들 수 있는 와중에도 꼭 짬을 내서 눈을 붙여. 걱정하지 마. 우리 팀엔 24시간 내내 휴식이 필요 없는 겐도 있잖아.”
그러자 성건우가 게네바 대신 말했다.
“그건 배터리가 충분할 때의 이야기죠.”
장목화는 재차 웃었다.
“문가랑 창가에 전기 철조망을 설치해두는 방법도 있어. 암살자라도 벽을 관통하지는 못할걸!”
백새벽의 저주파 탐색은 일찍이 중단된 상태였다. 에너지 소모량이 상당한 작업이기 때문이었다.
성실한 성건우는 빠르게 장목화가 말의 허점을 찾아냈다.
“벽을 관통하지는 못하겠지만 맞은편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중무기로 이곳에 폭격을 날려 저희를 날려버릴 순 있어요.”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그럼 여명의 신상에 대고 이곳에 여파가 미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겠네.”
그녀가 보기에 진아교의 강자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는 악몽에 대항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적들이 자신들 거점을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건 달지기의 신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었다.
탁!
성건우는 오른 주먹을 쥐고 왼손 손바닥을 내리쳤다.
“여명도 제 달지기 상징 모음집에 더해야겠어요!”
대부분의 성건우들은 행동력이 어마어마해서 말한 것은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빠르게 달지기 상징 모음집을 꺼낸 성건우는 그 위에 그려져 있던 8개 도안 옆에 얼굴이 거울인 조각상을 더했다.
장목화도 그저 못 말린다는 듯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쉴 수 있는 시간은 세 시간뿐이야. 작은 빨강이가 회복할 시간을 뺏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성건우는 고개도 들지 않고 오른손에 쥔 펜으로 슥슥 그림을 그리며 왼손으로 알겠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정밀도와 복원도 같은 건 신경 쓸 것도 없는 상황이라 거의 20초도 안 되어 작업이 마무리됐다.
그 완성된 그림을 힐긋 확인한 장목화는 2월의 달지기 여명이 절대 이 끔찍한 그림에 분노해 신벌을 내리지 않기만 몰래 기도했다.
그 후 각성자 한 명, 개조인 한 명으로 이뤄진 조가 당직을 서는 사이 나머지 팀원은 거실 소파에서 돌아가며 휴식을 취했다.
이곳에선 오직 지능인 게네바만이 쉼 없이 제 일을 맡았다. 물론 그도 짬을 내 고성능 배터리를 교환하고 절반 정도 쓴 배터리는 충전기에 넣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게네바에게 장착된 모든 고성능 배터리가 50퍼센트 이상의 전량을 유지하는 게 좋았다. 혹여나 발생할지 모르는 각종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 정도 이상의 전량을 유지하고 있으면 레이저를 연속으로 발사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에너지 부족 현상에 허덕이지 않을 수 있었다.
고요한 이 밤은 형용할 수 없는 고난 속에 천천히 여명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각성자인 장목화, 성건우는 이런 상황에도 걱정 때문에 잠을 설치진 않았지만 백새벽과 용여홍은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전전반측했다.
그중 백새벽은 그나마 나았다. 경험이 풍부한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가다듬고 잠들었으나, 용여홍은 결국 성건우에게 차라리 때려서 기절시켜주겠다는 제안까지 듣게 되었다.
그러다 그는 ‘태산이 무너져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는 사유를 유도당한 끝에 겨우 잠드는 데 성공했다.